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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신 님의 서재입니다.

주먹의노래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박동신
작품등록일 :
2012.10.05 17:20
최근연재일 :
2013.12.06 00:29
연재수 :
5 회
조회수 :
654,245
추천수 :
3,194
글자수 :
18,398

작성
12.07.23 14:19
조회
24,254
추천
68
글자
7쪽

위암말기

DUMMY

“크윽, 머리가 깨질 것 같군!”

창문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의 따가움이 비몽사몽간에 있던 나삼복의 정신을 현실세계로 돌려놓았다.

햇볕이 들어와 자신의 얼굴을 비출 정도면 이미 아침이 훌쩍 지나 점심때를 향해 나가가는 시간이기에 아무리 어제의 과음으로 머리가 아프고 속이 쓰려도 더 이상은 누워있을 수 없었다.

머리를 흔들며 겨우 일어나 방안을 둘러보니 여동생 혜진이가 차려놓고 갔을 것으로 추측되는 보자기로 덥혀있는 밥상이 보였다.

“벌써 아르바이트를 갔나보군.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동생이 차려준 밥은 먹어야지.”

어기적거리며 일어난 나삼복은 냉장고를 열어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후 밥상의 보자기를 걷어냈다.

“으으, 어제 얼마나 마셨는지 물맛이 꼭 술맛 같군.”

보자기를 걷어내자 돼지고기가 잔뜩 들어간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그리고 작은 쪽지가 보였다.

나삼복은 밥통을 열어 밥을 푸기 전에 먼저 쪽지부터 펼쳐봤다.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해! 사랑하는 동생이...]

피식.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웬일로 김치찌개에 고기가 푸짐하게 들어있나 했더니 여동생도 자신이 검정고시에 합격한 것을 알았나보다.

“뭐, 당연한 결과를 가지고 축하씩이나...”

말은 이렇게 했지만 기분은 상당히 좋았다. 사실 어제 절친인 대원이와 종도가 무리할 정도로 큰돈을 써가며 술을 사준 것도 자신이 검정고시에 합격한 것을 축하해주기 위해서였다.

나삼복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것은 두 친구까지 얽힌 폭력사건의 책임을 혼자지고 자퇴를 했기 때문인데 그들은 그것을 평생 갚아야할 마음의 빚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검정고시의 합격은 그런 그들의 마음 빚을 많이 덜어준 것이다.

후루루룩.

쪽지는 버리지 않고 곱게 접어 지갑에 끼우고 밥을 푼 후 김치찌개를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아침 일찍 끓여놓은 김치찌개인지 뜨겁지는 않고 미지근했지만 맛은 어느 때보다 좋았다.

김치찌개를 밥에 덜어 말아먹으며 계란말이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는데 갑자기 명치 아래쪽의 배가 송곳으로 찌르는 듯 아파왔다.

“크윽! 어, 어제 과음을 해서 그런가? 요 며칠은 잠잠했었는데 또 아프네.”

들었던 계란말이를 내려놓고 익숙하게 서랍을 뒤져 위장약을 찾아냈다.

위벽을 보호해주는 하얀 액체가 담긴 위장약. 어제 술 마시기 전에도 먹었던 그것이었다.

술을 마셨으면 당연히 아침을 먹기 전에 위장약을 먹었어야했는데 잠시 잊어버려 밥을 먼저 먹고 만 것이 조금 후회가 되었다.

이빨로 약봉지를 뜯어낸 후 쪽 빨자 텁텁한 그것이 입안을 지나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삼복은 위장약을 먹고 잠시 뱃속이 진정되길 기다렸다.

속으로 숫자를 세기를 한참. 약 오십 정도 숫자를 세었을 때부터 복통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쩝, 위장약 때문인지 입맛이 싹 달아나버렸네. 그래도 동생의 정성이 담겨있는 귀한 음식인데 안 먹고 남겨놓으면 화를 내겠지.”

위장약을 먹어서인지 밥을 먹어도 더 이상 배가 아프지는 않았다.

억지로 밥을 다 먹고 싱크대에 그릇을 담가놓은 후 두루마리 화장지를 손에 들고 마을 공용화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마을 전체가 판자촌이라 집에 화장실이 없어 주민 모두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공용화장실은 일을 하러 나가기 전인 새벽과 아침에만 분비고 이 시간대에는 굉장히 한산했다.

덜컹.

화장실의 문을 열자 지독하도고도 해도 좋을 배설물들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젠장, 이 냄새는 아무리 맡아도 도통 적응이 되질 않아!”

나삼복은 코를 부여잡고 입으로 숨을 쉬며 푸세식화장실의 변기위에 쭈그려 앉았다. 그나마 이렇게 입으로 숨을 쉬면 냄새를 조금이나마 더 견딜 수 있었다.

‘차라리 겨울이 낫지, 여름엔 정말 똥 싸는 게 고욕이야!’

아랫배에 힘을 준지 채 몇 호흡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등줄기는 축축하게 젖어들기 시작했고 콧등에도 땀이 맺히고 있었다.

화장지를 뜯어 콧등의 땀을 닦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처럼 젊은 사람들에겐 여름이 고욕이겠지만 올 초에 공용화장실 앞에서 얼어 죽은 장씨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차라리 여름이 낫겠다 싶기도 했다.

“그래도 겨울보단 여름이 나은 건가? 젠장, 낫기는 개뿔, 뭐가 나아, 여름이고 겨울이고 이놈의 푸세식은 쭈그려 앉아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싫어.”

나삼복은 쭈그려 앉아있는 내내 덥기도 하고 아랫배 또한 창자가 찢어지는 듯 아팠지만 이를 악물고 서두른 덕에 평상시보다 조금 빨리 볼일을 마칠 수가 있었다.

화장지를 뜯어 뒤를 닦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문득 화장지의 색깔이 이상했다.

‘붉은 색? 설마 또 피똥!’

다시 화장지를 뜯어 엉덩이에 대고 닦아보니 시뻘건 그것이 재차 확인되었다.

“제, 젠장! 한동안 잠잠해서 이제는 다 나은 줄 알았더니... 아무리 공짜 술이라지만 어제 과음하는 게 아니었는데.”

어쩐지 볼일을 보는 내내 아랫배와 뒤가 찢어질 듯 아픈 것이 심상치 않긴 했다.

나삼복은 평상시의 배나 되는 화장지를 소모한 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후아~

절로 참았던 숨이 깊이 쉬어지자 구룡산의 줄기를 타고 내려온 맑은 바람이 폐를 깨끗이 씻어주는 것 같았다.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집을 향해 가는데 저 멀리 마을 입구 쪽에 낮선 버스한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버스 주위로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 있었다.

“구호물품이라도 나눠주는 건가?”

나삼복은 반사적으로 버스가 서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기실 이곳은 서울의 마지막 남은 판자촌이라는 유명세 때문인지 평상시에도 많은 구호물품들이 들어오는데 특히 겨울철이나 선거 때가되면 그 양이 배가 되었다.

“응? 구호물자를 싣고 온 버스가 아니라 병원버스네.”

버스 옆으로 ‘무료건강검진’이라는 문구보다 더 크고 선명하게 대학병원의 이름이 써져있는 게 보였다.

나삼복은 잠시 주춤하며 평상시처럼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고민했다가 이내 오늘 또 혈변을 봤다는 것을 상기하고 버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약국 가서 내 돈 주고 약을 사느니 저 버스에 가서 공짜로 얻는 게 더 낫겠지.”

위장약을 달란다고 줄지 안줄지는 모르지만 설사 안 준다고 해도 손해 날 일은 없었다.

나삼복에겐 언제나 돈 한 푼이 아쉬웠다.


* * *


구룡마을의 공용주차장에서부터 구룡산으로 오르는 길의 중간에는 대통집이라는 비닐하우스와 판자로 지은 허름한 식당이 있다.

순두부, 손칼국수, 순대국, 보리밥, 파전, 닭 도리탕(닭 복음 탕) 등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식재료를 직접 재배할 뿐만 아니라 미원 같은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고 음식을 만들어 팔기에 이 식당은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좋아 항시 손님이 북적이는 곳이었다.


작가의말

시작합니다.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푸헤헤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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