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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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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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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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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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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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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랑 2(2)

DUMMY

“사, 사도!”


“네. 저희는 사람을 간악한 짐승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신께서 보내주신 사도입니다.

우리가 당신을 구했습니다.”


“네, 네.”


“좋아요. 이제 당신이 할 일은 여우볕을 다스리는 족장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리는 겁니다.

할 수 있겠어요?”


“하, 할 수 있습니다.”


“흐튼짓하맨은 니 할매하고 아는 내한테 죽는다. 알았나?”


산어르신이 잡았던 머리채를 풀고 내 옆에 서서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적당한 환영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예를 들어 부족민이 성문 앞에서 도열을 한다던가.”


“제, 제가 반드시 그렇게 하도록 만들겠습니다.”


“네가 그럴만한 능력은 있어?”


불개가 나뭇가지로 경비병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경비병은 불개를 잠깐 멍하니 쳐다보더니 “제,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렇게 만들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목숨? 헤헤. 재밌네. 그냥 여기서 네 목숨을 바치는 게 어때?”


“네, 네?”


경비병이 침을 크게 삼키며 나를 쳐다본다.


“왜 날 보는 거죠?”


“아니, 저, 저기. 제가 여기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족장에게 가서 사도님들의 공을 말하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오-. 생각보다 머리가 돌아가나 본데? 아니면 말발이 좋은 건가?”


불개가 나뭇가지로 경비병의 입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좋아요. 그러는 게 좋겠어요. 하지만 제 마음에 들지 않을 땐 각오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네, 네! 반드시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하지만···.”


경비병이 뒤를 한번 쳐다보고 머뭇거린다.


경비병의 시선이 머물었던 곳을 보니 어느새 구경꾼들이 시체를 보고 비명을 지르며 날뛰고 있다.


“짐승에게 도륙당한 불쌍하신 분들이 또 있었군요.”


산어르신이 쏜살같이 앞으로 뛰쳐나간다.



///



“저희를 이렇게나 환대해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나는 족장에게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하하하! 나 꾀를내는 툰! 족장으로서 병사들을 대신해 짐승을 막아 준 당신들을 당연히 환영해야지.”


족장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 내 어깨를 꽉 쥔다.


씨발··· 더럽게.


족장의 손이 닿은 곳을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웃음을 짓는다.


“족장님. 짐승을 상대하느라 피로가 몰려오는군요. 잠시 휴식을 취할만한 곳을 내어주시겠습니까?”


내 마음을 알아챈 걸까?


산어르신이 자리를 피하고자 족장에게 말했다.


“그렇지. 짐승을 상대하느라 피곤할 텐데 내가 생각이 짧았군.

알았네. 잔치는 내일 하도록 이를 테니 자네들은 푹 쉬고 내일 봅세나.”


“감사합니다.”


족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녀가 어디선가 나와 우리를 이끈다.


안내를 받은 우리는 방 안으로 들어가 채비를 풀고 각자의 방식대로 휴식을 취한다.


“언니. 이제 어쩌려고요?”


“어쩌긴? 짐승을 찾아서 죽이고 또 다른 짐승을 죽여야지.”


“그런데 일을 왜 이렇게 크게 벌이는 거예요? 내일 잔치까지 하려면 시간이 많이 소모될 텐데···.”


대접받고 싶었으니까.


평생 눈먼 병신으로 살다가 사도가 되었는데 이 정도는 괜찮잖아?


“사람을 규합해야 해.

짐승은 모두가 뜻을 모아 거사를 일으키는데 사람은 그것도 모른 채 그저 돼지처럼 희희낙락하며 현실의 삶에 안주하기 바쁘지.

저 족장을 봐.

짐승이 자신의 땅을 침범하고 사람을 죽였는데 잔치할 생각밖에 없잖아.

우리가 경각심을 줘야 해.

우리가 사람을 규합시켜야 해.”


“아하···. 그렇구나.”


“짐승은 찾았나?”


산어르신은 아직 짐승을 찾지 못한 것이 못내 불편한 듯 나에게 말했다.


“못 찾았어요.”


“성안에 있는 건 맞나?”


“네.”


“알았다.”


“그냥 회수하면 안 돼요?”


불개가 산어르신에게 물었다.


“그래도 되는데···. 자존심이 상해서 말이야.”


도깨비가 무서워 죽이지 못한 거 말이죠? 라는 말이 턱 끝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산어르신과 불개의 대화를 잠자코 들었다.


“그럼 그냥 회수하면 안 돼요?”


“범은 자존심 빼면 시체야! 절대로 안 돼!”


“아니! 그러니까요. 왜 자존심이 상하냐고요?”


사도가 되어서 네 동족이 무서워 짐승을 죽이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더욱이 도깨비인 네가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잖아.


아니지, 의도를 갖고 물어보는 건가?


불개를 쳐다보니 털북숭이 얼굴에서 도드라진 입술이 비웃음을 머금고 있는 것 같다.


산어르신도 나도 같은 생각을 했을까?


몸의 줄무늬가 천천히 움직인다.


“고마해라.”


“아, 알았어요. 쳇 재미없어.”


불개가 꼬리를 내리고 바닥에 철퍼덕 누워 잠을 청하더니 코를 골기 시작한다.


산어르신은 그런 불개를 잠깐 쳐다보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일어나봐.”


불개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언제 코를 골았냐는 듯 벌떡 일어나 나를 보고 입을 연다.


“언니, 산어르신 정말 유치하지 않아요?”


빌어먹을 도깨비.


이 애비애미도 없는 것들은 항상 이렇게 간을 본다.


방금 산어르신을 가지고 놀았으니 이제는 내 차례라고 생각하겠지.


“그나저나. 노예기사는 이대로 둬도 괜찮아요? 지금 언니 찾는다고 이리저리 쑤시고 다닐 텐데.

참나, 그 족속들도 참 이해 못 할 것들이야.

주인이 사도인데 요란을 떨어요, 요란을.”


“말조심해.”


“죄, 죄송해요.”


천을 욕하는 불개의 말에 한참이나 쏘아보니 곧바로 고개를 조아려 나에게 사과한다.


저 사과는 진실한 게 아닐 테지.


“왜 천에 관한 얘기를 꺼낸 거지?”


“우리가 찾는 짐승을 노예기사에게 갖다 주는 건 어때요?”


“왜?”


“언니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알려주고 종 하나 있으면 노예기사도 편하잖아요.”


무슨 속셈이지?


“산어르신님이 짐승을 노리고 있잖아.”


“에이, 그건 못 찾겠다고 둘러대면 되는 거죠.”


“뭔가 오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나는 안 찾는 게 아니라 못 찾는 거야.

나도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제가 찾을 수 있어요.”


“어떻게?”


“그건 묻지 마시고요.

제가 찾아오면 언니가 짐승을 데려다주세요.”


“산어르신님이 눈치챌 거야.”


“언니하고 제가 말만 하지 않으면 절대 몰라요.

그리고 만에 하나 마주친다고 해도 못 알아볼걸요?

짐승은 다 똑같이 생겼는데 어떻게 알아보겠어요?”


“산어르신님을 속이면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싫으면 안 하셔도 돼요.”


천···.


날 애타게 찾고 있을 텐데···.


천도 내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한번은 뜻대로 해주겠어.


“내일 데려올 수 있어?”


“네. 가능해요.”


“잔치 중에 잠깐 빠질 테니 그때 데려와.”



///



“크하하하. 글쎄 말이야! 이 사도께서 그 악독한 짐승들을 손짓한 번에 싹 쓸어버렸지 뭔가!”


족장이 한 손엔 술잔, 한 손엔 고기를 든 채 연신 큰소리로 헛소리를 하기 바빴다.


“정말이오?”


“그렇다니까! 하하하!”


“어허. 그런데 이상하군. 어째서 짐승의 시체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건가?”


아 씨발.


그냥 넘어가면 되지 꼭 저렇게 초를 치는 새끼들이 있는단 말이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이큰 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족장을 쳐다봤다.


나의 불편한 시선을 느꼈는지.


“이보게,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사도가 언짢아하지 않는가?”


헛소리해댄 족장이 순을 다그쳤다.


“아,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험험.”


“족장님께선 저희가 못마땅하신가 봅니다.”


별안간 옆에 있던 산어르신이 순에게 말했다.


산어르신딴에는 조용히 말한다고 했지만, 워낙 목소리가 커 잔치를 즐기던 모든 사람의 눈이 산어르신과 순에게 향했다.


흥겹던 음악이 끊긴다.


“그, 그런 게 아닐세!”


순이 산어르신에게 발끈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럼 뭔데요?”


재밌는 건수를 잡은 듯 이번엔 불개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공을 깎아내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내, 내가 술에···.”


“우리 입이큰 순 족장님은 사도드리니이신가?”


도깨비의 말에 분위기가 한층 무거워진다.


“푸른바람에 있는 노래하는 구라는 족장 나리도 사도드리니던데.

아 맞다! 그 족장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글쎄. 하하.

우리 언니 앞에서 자기가 사도라고 하지 뭐예요?”


그걸 어떻게 알았지?


“저, 저런!”


족장들이 침음했다.


“다른 분들도 아시려나 모르겠네.

내가 그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알아요?

하여튼, 그래서 언니가 그 족장을 어떻게 했게요?”


불개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족장들을 한번 쓱 훑어본다.


“아무것도 안 했어요.

족장이 자신을 모욕하고 있을 때 아무것도 안 했고, 짐승이 족장의 땅을 짓밟을 때도 마찬가지로.”


불개가 장난기 섞인 눈으로 순을 쳐다본다.


불개의 시선을 느낀 순은 침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 언니는 지금 아무것도 안 하시고 계시네요.”


“미, 미안합니다! 내가 술에 취해서 실언을 내뱉었소!”


순이 내 앞에 다가와 연신 고개를 조아린다.


저 아랫것들이 보고 있는데도 체통을 생각하지 않는 걸 보니 불개의 말이 꽤 먹힌듯하다.


“족장님. 불개가 꽤 짓궂게 굴었군요. 저는 괘념치 않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고, 고맙소.”


순이 자신의 옷자락으로 땀을 닦아낸다.


다른 족장들은 그런 체통 없는 행동을 비난하기는커녕 자신이 저 상황을 겪지 않게 되어 안도하고 있다.


이거 예상치 않게 족장들을 휘어잡게 되었네.


얘기가 더 잘되겠어.


“언니, 짐승이 기다리고 있어요.”


불개가 내 옆에 와 소곤거렸다.


“알았어. 만나러 갈 테니 네가 산어르신님이 눈치 못 채도록 도와줘.”


“언니, 지금 말하는 건 어떨까요?”


“지금?”


“네. 지금 말해버려요.

분위기가 우리 쪽으로 넘어왔는데 뜸 들일 게 뭐가 있겠어요?

겸사겸사 산어르신님의 이목도 끌고요.”


“내가 없으면 산어르신님이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잠깐 둘러대면 되는 거죠.

그리고 얼마 안 걸리잖아요?”


이런 속셈이었군.


내가 없는 사이에 족장들을 모아 규합시키려는 거였어.


“···좋아. 어디 있는지 알려줘.”


난 생각 끝에 불개의 의견에 동의했다.



///



“너니?”


“흐엑? 아, 안녕하세요!”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 짐승은 인사말에 깜짝 놀라 뒤로 돌아 나를 보고 절을 하며 답했다.


나는 그런 짐승의 행동을 가만히 쳐다봤다.


내가 일어나라는 말을 하지 않아선지 짐승은 절을 한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알았으니까 일어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짐승은 내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어디에 숨어있었어?”


“그, 근처에 있는 산에 숨어있었어요··· 아니, 있었습니다.”


“탈 쓴 적 있어?”


“하늘에 맹세코 탈은 절대 쓰지 않았습니다!”


“짐승답지 않게 제법 현명한 선택을 했어.

탈을 썼으면 널 갈기갈기 찢어버렸을 텐데.”


짐승이 침을 꿀꺽 삼킨다.


“네가 뭘 해야 할지 들었어?”


“모, 못 들었습니다.”


“좋아. 네가 할 일은 내가 한 말을 누군가에게 그대로 전달해주는 거야.

내용이 별로 많지 않으니 네 비루한 기억력으로도 문제없을 거야.

알아들었어?”


“네, 네. 잘 알겠습니다.”


“너 노예기사 천을 기억하지?”


“아, 아무렴요. 사도님의 노예기사 아닙니까?”


“그래. 천에게 가서 내가 편히 지내고 있다고 말해.

천에게 내 안부를 전하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절대 까먹지 마.

그리고 날 찾지 말고 주비를 찾는 걸 최우선으로 하라고 말하고.

주비를 찾으면 신에게 가는 문으로 보내라고 해.

나는 보내라고 했어, 데려오는 게 아니라.”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천에게 주는 편지야.

네가 직접 천에게 전달해줘.

당연한 말이지만 목숨같이 여기고 절대 뜯어보면 안 된다.”


“제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짐승은 내가 건네준 편지를 신줏단지 모시듯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품속에 넣었다.


“더 시키실 일은 없으십니까?”


“없어. 내 손 잡아.”


나는 짐승의 손을 잡고 천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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