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꼰대
“ 국장님이 어쩐 일로 이 곳에..... ? ”
“ 왜 그리 긴장 하나? 내가 못 올 곳에 온 듯한 표정 이군. ”
“ 아,아닙니다! ”
손에 만지작 거리고 있는 폰을 보며 이국장이 웃음을 짓는다.
“ 자네가 지금 중한 임무를 수행 중 인 듯 하니 짧게 묻겠네. 자네 직속 상사가 누구 인가? ”
“ 당연히 부국장..... ”
“ 이봐! 나랑 장난 칠 생각 말고 지금 자네가 전화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사를 말하는 걸세. ”
갑자기 굳어 버린 얼굴의 정지원을 향해 이국장이 다시 말을 이어 간다.
“ BH ( Blue House : 청와대 ) 에 소속 되어 있는가? ”
“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
“ 허! 자네 지금 대내외적인 소속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겠지? ”
“ 네, 국가 정보원 해외 정보국에 적을 두고 있습니다. ”
“ 그래, 그럼 난 누군가? ”
“ 해외 정보국 현(現) 국장님 이십니다. ”
“ 현? 협박 하는 건가 자네? ”
“ 아닙니다. 저는 제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죄송 합니다. 오늘의 일은 그대로 보고 드릴 예정입니다. ”
“ 보고의 대상은 당연히 내가 아닐테고..... ? ”
더욱더 굳은 표정으로 정지원이 입을 꾹 다물자 이국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어 간다.
“ 외국에서 손님이 오셨는데 좀 웃으라구! 마지막으로 하나만 대답해 주면 안되겠나? ”
“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
“ 참 충직스러운 수하를 우리 국에 내려 보냈구만. 알겠네. 가서 일 보고 나중에 내 사무실로 오게나. 이건 명령일세. ”
가타부타 말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는 뒤로 돌아 코지 대좌와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곳을 거침없이 돌아가는 지원을 보고 이국장이 혀를 찬다.
“ 쯧쯧, 좋지 않군, 정말 좋지 않아! ”
지원의 안내로 자신의 앞을 스쳐 지나 가는 일본 특수 부대의 수장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는 멀어져 간다.
“ 죄송합니다!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한 사람이 나타나는 바람에 실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
“ 괜찮습니다. 현재 상황에 대한 브리핑은 바로 부탁 가능 하겠습니까? ”
“ 네, 일단 숙소로 이동 하셔서 일행 분들이 짐을 푸시게 한 후 코지 대좌님께 브리핑을 해 드리겠습니다. ”
“ 감사합니다! ”
인천공장 출국장을 나서 외교관 전용 주차장에 검은색 리무진 버스가 대기 하고 있었고 검은색 정장을 한 운전기사의 안내로 각자의 짐을 짐칸에 넣은 후 버스에 탑승한다.
“ 대좌님은 저와 따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
“ 아닙니다. 저는 부하들과 같이 이동 하겠습니다. 이따 뵙지요. ”
“ 알겠습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
지원이 버스가 먼저 출발 하는 것을 보고 바로 앞에 외교관 주차구역에 세워진 자신의 벤츠 승용차에 몸을 싣자 마자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 네, 접니다. 방금 일본에서 넘어온 코지 대좌 일행들을 호텔로 보냈습니다만 예상치 않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네, 해외 정보국 이동욱 국장이 출국장에 나타나 제게 이것 저것 질문을 던졌습니다. 네, 제 소속이 어디며 해외 정보국이 아닌 직속 상사가 누군지 질문을 하였으나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네, 네! 제게 자신의 방으로 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말씀 대로 그대로 진행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
전화를 끊은 지원이 창문을 열고 품에서 마일드 세븐 라이트 담배를 하나 빼어 불을 붙이고는 깊게 한 모금을 삼키고는 뱉어 낸다.
“ 그 양반, 국장이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고 오지랖 넓은 짓을 하고 그러는지....... ”
****
인사동에 위치한 예의 그 고풍스런 한식집에 해외 정보국 이동욱 국장과 대테러 지원국 김영수 국장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 자네 너무 위험한 짓을 한 것 같은데.... ? ”
“ 아네! 한번 건드려 봐야지. 어디에서 누가 튀어 나오는지 보면 대략 그림이 나오겠지! ”
김국장이 이국장의 빈 잔을 채우면서 걱정스런 눈빛으로 말을 이어 간다.
“ 적당히 하게. 어차피 우리도 월급쟁이 아닌가? ”
“ 우리의 월급이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낸 세금으로 만들어 지는 걸세. 일반 기업이야 이익의 극대화니 판매 증진 이니 목표가 있지만 우리의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 보다 잘 살고 발전 시키는 것이 우리의 목표란 말일세. 한데, 지금 돌아 가는 상황이 요상스러워서 확인해 보고 싶을 뿐이네. ”
단숨에 잔을 들어 목구멍으로 술을 털어 넣은 이국장의 빈 잔을 김국장이 말없이 채워준다.
“ 자네 마음 아네! 자네 집안이 대대로 독립 투사의 집안 이었으니 누가 자네의 마음을 의심 하겠는가?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 ”
“ 자네 말대로 조심 하겠네. ”
그 때 술상 위에 놓아둔 이국장의 스마트폰이 몸 전체를 떨어 낸다. 스마트 폰 위에 뜬 수신자의 이름에 ‘꼰대 원장’ 이라는 것을 확인한 이국장과 김국장이 서로의 눈을 마주친다.
“ 네, 원장님! 네, 네, 알겠습니다. 네, 내일 뵙겠습니다! ”
짧은 통화를 마치고 다시 폰을 상에 내려 놓은 이국장이 궁금해 하는 김국장에게 입을 연다.
“ 내일 아침에 자기 방으로 오라는군. 이유는 이야기 하지 않고! ”
“ 빠르네. 네 시간 전에 있던 일로 원장이 자네를 콜 한거네. ”
“ 내일 원장과 독대해 보면 무언가 단서가 나오겠지. 이 요상스런 상황에 원장도 발을 담그고 있는 건지 말일세. ”
“ 다시 한번 이야기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앞서지 말게. 그나마 원에서 가장 마음을 터 놓고 있는 친우를 잃기 싫으니 말일세. ”
“ 후후후! 너무 걱정 말게. 그나 저나 이번에 우리 나라에 들어온 놈들 예사롭지 않던데? 자네도 깜깜이 인가? ”
“ 깜깜하지 아주! 나도 부국장은 통해 한번 넌지시 찔러 보았다네. 자신의 직책에 사명감이 철철 넘치는 우리 부국장이 제대로 들이 받았다네. ”
“ 결과는? ”
“ 하하! 그 놈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내 방으로 쳐들어와 혹시 내가 뭐 아는데 자신에게 숨기고 있냐고 으르렁 거리 길래 나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달래서 내 보냈지. 국가 정보원의 대테러 지원국에서 일본의 특수부대원들이 총기를 휴대 한 채 국내에 들어 왔는데 우리 보고 모른 척 하라는 것이 말이 되냐고, 그 놈들이 우리나라에서 무엇을 하는 지도 모른다는 것이 정말 개가 풀을 제대로 뜯어 먹는 소리 아니냐고 길길이 뛰다 내가 던진 책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고 풀이 죽어 방을 나갔다네. ”
“ 후후! 잘 달래게. 그 놈 제대로 된 공무원이니까. ”
“ 아네 알아! 가끔 도가 넘게 대들어서 문제지 나쁜 놈은 아니지. 그나 저나 내일은 하루가 조금 길겠군. 모른 척 하라고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문제 아닌가? 명색이 대테러 지원국장이 총기를 휴대한 일본 특수부대원들이 서울 한 복판을 활개 치고 다니게 할 수는 없지. ”
“ 내일 원장과 독대 후 자네 방으로 바로 가겠네. ”
“ 먹던 술이나 마저 먹고 가자구! ”
두 사람이 사이좋게 잔을 채우고 비우며 밤이 깊어만 간다.
****
“ 후우우! ”
국가정보원장실 앞에 선 이동욱 국장이 깊은 심호흡을 하고는 문을 두드린다.
“ 들어와! ”
검은색 자개 위에 은빛 칠보로 ‘ 국가정보원장 지백현 ’ 이라는 명패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 온다.
“ 거기 앉게! ”
반백의 은회색 머리가 인상적인 50대 후반 정도의 후덕한 인상의 사내가 소파 상석에 기대어 앉아 인터폰을 누른다.
“ 여기 용정 두 잔 부탁해! ”
잠시 후 깔끔한 정장 차림의 여비서가 정통 다기 셋트를 쟁반에 받쳐 들고 들어와 자기 잔에 김이 모락 모락 올라오는 차 두 잔을 채우고는 방을 나선다.
“ 들지! 누가 중국 갔다가 진짜 용정차라고 갔다 줬는데 먹을 만 하더군. ”
“ 감사 합니다! ”
잔을 두 손으로 들어 뜨거운 용정차를 한 모금 삼킨 이국장이 잔을 내려 놓는다.
“ 향이 좋군요. 저도 나중에 조금 얻어다 먹어야 겠습니다. ”
“ 이국장이 달라면 당연히 줘야지. 나가면서 조금 가져 가게. 그나 저나 말일세.... ”
지원장이 잔을 내려 놓으며 이국장을 지긋이 바라본다.
“ 뭐 할말 있나 자네? ”
“ 저야 딱히 없습니다. 원장님이 부르셔서 왔으니까요. ”
잠시지간 무거운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내리 누르며 서로 잔을 들어 다시 한 모금씩 차를 삼킨다.
“ 나도 답답 하다네! ”
“ 뭐가 답답하시다는 말씀 이신지요? ”
“ 자네가 어제 오후에 인천공항에 간 건 말일세. 어제 저녁 무렵 민정수석실에서 연락이 왔다네. ”
묵묵히 지원장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이국장을 보고 지원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 간다.
“ 지금 돌아가는 이해 못할 상황을 내가 자네에게 설명해 주지를 못해서 답답하다는 거네. ”
“ 국정원장님도 모르는 일이 청와대와 일본 정부간에 다이렉트로 진행 되고 있다는 이야기로 이해 하란 말씀 인가요? ”
“ 어제 민정수석이 내게 한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 주겠네. ‘ 지금은 설명 드리기에 애매한 시기 인 것 같습니다. 일이 정리 되면 직접 원장님을 뵙고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국정원 산하 저희 청와대에서 파견한 직원들의 행사를 당분간 간섭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부탁 드립니다. ’ 라고 하더군. ”
‘ 아니, 그런 건방진 언사를 듣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는 거야? ’
묵묵히 화를 삭히며 도전적인 눈빛을 던지는 이국장을 향해 지원장이 모른 척 찻잔을 집어 든다.
“ 자네나 나나 조금 특수한 월급쟁이란 말일세. 위에서 ‘ 나가! ’ 한 마디면 바로 실업자가 되는 아주 특수한 월급쟁이...... ”
‘ 아이구, 왜 당신의 별명이 ’꼰대‘ 인지 우리 국정원 직원들은 다 알고 있지. 자신의 보신을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은 위에 대고 못하고 아래에다가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강물과 같이 흘러 가면 된다고 이야기 하는 지상 최대 몸보신 꼰대! ’
이국장이 답답한 마음에 찻잔을 들어 크게 한 모금 차를 넘기다 입천장을 데고는 신음을 삼킨다.
“ 으윽! ”
“ 천천히 들게나. 자네 마음은 알겠지만 당분간 ‘ 위 ’에서 지시한 대로 그냥 놔 두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
“ 알겠습니다! ”
입천장과 혀를 데어 쓰린 속을 부여 잡고는 공손하게 이야기 한다.
“ 부탁 함세! ”
국정원장의 방을 나선 이국장이 뒤로 돌아 닫힌 문을 발로 찰까 말까 망설이다 긴 한숨을 쉬고는 김영수 국장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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