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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괴물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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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방법
작품등록일 :
2020.07.18 16:18
최근연재일 :
2020.07.19 12:22
연재수 :
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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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0
글자수 :
6,271

작성
20.07.19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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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Ep1_붉은 실뭉치(1)

DUMMY

"헉. 헉."


나는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 넘어로, 방이 보였다.

18평 남짓의 원룸.

침대, 탁자, 책상, 노트북과 옷걸이에 걸린,

몇 벌의 옷이 전부인 방.


짹-짹.


참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현실에는 빗소리, 천둥소리는 없었다.


대신, 베란다 유리문 넘어, 아침 햇살이 환히 비춘다.

나는 안도했다. 거칠게 몰아쉬던 숨을 고르고,

얼굴을 쓸어내리며 침대에서 반쯤 일어났다.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상의와 하의.

도저히 뭐라 말할 수 없는 불쾌감이다.


손을 더듬거리며 탁자 위에 안경을 찾는다.

안경을 찾아꼈다, 흐리게 보였던 세상이 선명하게 보인다.

탁장의 위에 있던 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오전, 8시 5분.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나는 몸을 일으켜 노트북으로 향했다.

노트북은 이미 켜져 있었다.


노트북 화면엔 문서작성 프로그램이 켜져있다.

흰 여백에 빼곡한 글자, 누군가 내 노트북으로 글을 썼다.

원룸에 살고 있는 건, 나 뿐이다.

난 글을 쓴 적이 없다.

초조하다.

글이 마지막 저장된 시간을 체크한다.


오전 8시.


역시, 전과 동일하게 내가 잠에서 깨어난 시간을 마지막으로 하고 있다.

즉, 방금 전까지 누군가 작성하고 있던 글이다.


그 일이 있고 6개월만이다.

또다시 발생한 괴현상...


온몸에 찌릿한 전율이 흐르고,

닭살이 돋았다.


"갑자기... 또..."


나는 떨리는 손으로 노트북의 마우스를 움직였다.

문서에는 내가 꾼 악몽의 내용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나는 글 맨 첫부분으로 스크롤을 올렸다.


그때와 같이 글에는 제목이 있었다.

전과는 다른 제목.


<붉은 실뭉치>


지금부터 시작될 이야기의 제목이다.


.

.

.

.


어느 3월의 둘째 주.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날씨.


난 뛰고 있다.

8시 40분, 상당히 아슬아슬한 시간.


전력으로 뛰어, 대학교 정문을 통과했다.


지방공립대 컴퓨터공학과 1학년,

유현민.

갓 대학교에 입학한 햇병아리의 이름이다.

오늘은 공학관이 아닌 교양관을 향한다,

오전 9시에 심리학개론 강의가 있어서였다.


필사적으로 뛰는 이유야.


"당연히 이번에 지각하면 재수강이니까...!"


현재 심리학 강의는 지각으로 인해 낙제점의 위기상황이기 때문이다.

2층, 코너를 돌아 간신히 강의실 문을 열었다.

강의실은 한산했고,

교수님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하...아. 세이브인가..."


나는 숨을 고르며 좌석을 둘러본다.


듬성듬성 비어있는 자리 중에서도 맨 뒷좌석을 훓는다.

역시, 뒷자리는 항상 만석이다.


할 수 없이 뒷자리에서 두 칸 떨어진 곳에 앉았다.

자리에 앉으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저질 체력으로 전력으로 달렸던 탓인가.

아님 악몽을 꾼 것 때문인가.


피로감의 원인은 알 수 없다.

다만 책상에 엎어져 한동안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졸린다.

스르르 눈이 감긴다.

그때 옆자리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내 옆에 누군가가 앉는다.

오전 9시 강의라, 자리가 헐렁하다.

굳이 많은 자리를 두고 내 옆에 자리를 택한 것일까?


"드디어 만났네. 네 강의 시간 때, 찾느라.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옆자리의 누군가의 목소리.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여자의 목소리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차피 내게 하는 말은 아니겠지.'


점차, 여자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다가 사라졌다.


.

.

.

.


붉게 물든 손,

흔들흔들.

뚝뚝.

노트북 화면에 떨어진 붉은 액체.

줄에 메여 흔들리는 덩치 큰 인형.

그 인형의 배부분에서 묵직한 뭔가가 떨어진다.


두득.


인간이었던 그녀가 가지고 있던 것.

나는 알고 있다.

돼지고기의 부산물처럼 흘러내리고 있는 그것을...

난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어둠 속을 뚫고 나온 손이 목을 졸랐기 때문이다.


"그만..."


나는 반사적으로 다가오는 무언가를 잡는다.

눈을 떴다.

이곳은 강의실이다. 잠깐 졸았나 보다.


"또 그꿈이야."


7년째, 반복되고 있는 살해현장.

살해당한 여자와 살인범의 손.


꿈 속에서 그 놈은 반드시 내 목을 조른다.

목이 졸려 죽으면 꿈에서 깨는 패턴이다.


한숨을 쉬며 축늘어지려고 할 때, 왼손이 불편했다.

왼손을 보니, 옆자리의 여자와 손을 잡고 있었다.


부드럽고 얇은 손가락.

죽음의 손길과는 다른 손.

내 옆자리에 앉은 여자의 손.


그녀와 눈이 맞았다.

그 여자의 눈동자는 신기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깊고 검은 눈동자.

그 눈동자에서 점차 멀어져, 전체가 보였다.


긴 생머리, 작은 얼굴의 흰피부, 붉은 입술.

감상은 한 단어만으로 충분했다.

미인.

그 미인은 흰색 블라우스, 검은 색 치마에 숄트 부츠를 신고 있다.

그녀의 표정에서는 여유가 묻어난다.


저 자신감의 근본은

자신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잘 알고 있어서겠지.

부럽다.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진 사람.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

그런 여자가 뭐가 아쉬워,

내게 호기심을 보이는 걸까?


"의외로 대담하네, 유현민."


나는 당황하며 그녀의 손을 놔줬다.


"죄송합니다. 잠꼬대를 한 것 같아요..."


나는 고개 숙여 사과하고 급히 짐을 챙겨 일어섰다.

내가 도망가는 건, 당연하다.

한눈에 봐도 이 여자 자존감이 높아보인다.


이런 여자와는 상극이다. 전에도 저런 분위기의 여자에게 잘못 걸려, 성추행범까지 몰려 경찰서까지 간 적이 있다. 다행히 목격자가 있어서 전과자는 되지 않았지만.


물론, 외형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잘못됐다. 그러나 최대한 조용히 대학생활을 지내고 싶은 나는 최소한의 가능성이라도 배제하고 싶었다.


그러나, 상황은 나쁘게 흘러갔다.

그녀는 일어섰고 팔짱을 끼며 말했다.

공격태세다.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여자는 지금 기분이 몹시 좋지 않다.


"왜, 피하는 거지?"

"그게...불쾌하실 것 같아서..."


나는 그 여자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갑자기 내 목에 팔을 두르더니, 안겼다.

풍만한 가슴이 몸에 닿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은은한 샴푸 냄새와 여자의 향기가 너무 좋다.

동정인 나에게는 너무 자극적이었다.


'이것이 여자...란 말인가.'


좀 더 세게 끌어 안고 싶다.

그런 욕정이 불끈 솟아오를 때,

이성의 끈이 간신히 잡아당겼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난 여자를 떨쳐내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꺅! 지금, 어딜 만져!"

"앗...죄... 죄송합니다."


나는 여자의 고음에 당황해 손을 뗐다.

정말 난감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본 여자는 웃었다.


"풋, 너 반응 웃긴다. 여자랑 스킨쉽 처음?"

"처...음이긴 한데...요. 그보다 팔 좀... 풀어줄래요?"

"순순히 내 질문에 대답한다면, 풀어줄게. "

"서로 초면인 것 같은데... 이런 스킨쉽은 실례라고...생각하는데요..."


여자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거짓말이지...나, 기억 않나? 1년 전, 한성 고등학교에서..."


지직...


순간, 떠올랐다.

그래, 이 여자와는 6개월 전.

만난 적이 있다.


가장 인상 깊은 첫 사건의 히로인을

잊어버리고 있었을까?

그 답은 내가 잘 알고 있다.


잊고 싶은 기억이었으니까.

그래서 노트북의 글을 지웠고,

흐릿한 기억의 조각만 남아있다.


괴로운 기억을 다시 떠올릴 필요는 없을테지.

나는 모른 척하기로 했다.


"사람... 잘못보신 것 같아요."


그러자, 여자는 실망한 표정으로 바짝 다가왔다.

나는 몸을 움츠렸다.


"너...설마, 그쪽이야...?"

"그쪽...?"

"게이."

"아닌데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게이가 아니라면, 나 같은 미녀를 기억 못한다는 게 말이 안되잖아?"


헐...자의식 과잉 증상.

멀쩡하게 생겼는데,

나사 하나가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더는 엮기기 싫었기 때문에 그냥, 멋적게 수긍한다.


"말이... 안되는 거 였네요..."

"정말, 안되겠어. 위기감이 전혀 없는 얼굴이야. 마음에 안 들어."

"네...?"


여자는 요염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기서 문제! 지금 여기 있는 얘들이 우릴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저 수업 전에 껴안고 있는 진상 연인정도가 고작이라고 생각하는데. 근데, 알고 있어? 모든 상황은 앞뒷면이 한끗 차이라는 걸."

"!"


그여자는 내 손목을 잡더니, 자신의 가슴에 올렸다.

부드럽고 좋은 감촉.


'아니아니아니!'


나는 당황하며 손을 뺐지만.

그러나, 이미 늦었다.

악마는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어머, 가슴 만졌니...?"

"내가... 한 게 아니잖아...요."

"그 말을 누가 믿어주겠어?"


처음부터 협박할 의도였나...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자, 악마는 내 턱을 어루만지며 말한다.


"이제 알겠니?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널 이 자리에서 성범죄자로 만들 수 있어."

"나한테...왜 이러는 거예요. 원하는 게... 뭡니까..."

"아까 말했는데, 이제 기억이 날 것 같아?"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여자다.

기억 안난다고 하면,

진짜 성범죄자로 만들 것 같고,

할 수 없이 백기를 들었다.


"기...기억났습니다."

"항복이 빠른 남자야. 매력 없는데. 뭐, 좋아. 장난은 여기까지로 하고~"


장난이라고!

난 부들부들 떨었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여자는 날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로 기억한다면, 내 이름을 말해줘."


한 순간, 슬픈 표정을 짓는 여자.

잠깐의 표정이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그때 한 번 만난 것이 전부인데,

왜 내게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그때의 구체적인 기억은 없습니다. 그냥 어렴풋이 아는 거죠. 그러니...당신 이름까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건가... 그렇다면, 한 번만 용서해줄게. 내 이름은 한세희, 앞으론 잊어먹지마. 또 날 잊는다면 그땐, 진짜 깜빵에 집어넣어버릴거야."


한세희는 생긋 웃으며 무서운 말을 한다.

다음에 이름을 까먹는다면, 목숨이 위태로울테지.

한세희, 기억하도록 하자.


찰칵. 찰칵.


사진 찍는 소리와 함께 강의실 안이 웅성인다.

세희도 주위를 의식했는지, 팔을 풀었다.


"대박! 미친 거 아니야. 강의실에서 키스를 한다고?"


주위의 웅성임은 강해졌다.

분명, 각도에 따라서는

키스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


'완전...위험한데...'


마침, 강단에 교수님이 나타났다.


"거기 두 사람. 강의 시작할 거니까! 빨리 앉자."


세희는 자리에 앉으며 팔을 끌어당겼다.


"어디 갈 생각하지 말고 자리에 앉지? 아직 질문이 많이 남았으니까."


여우는 토끼의 목덜미를 꽉 물고 있어,

토끼는 자리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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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1_붉은 실뭉치(1) 20.07.19 53 0 11쪽
1 프롤로그(악몽) 20.07.18 85 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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