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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eness - 작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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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입니다
작품등록일 :
2016.03.16 01:36
최근연재일 :
2016.05.31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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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0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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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뜻밖의 전개 - 4

DUMMY

나는 복도로 나와 방문을 닫았다. 밝은 곳으로 나오니 횅한 오른팔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애써 이미 사라져버린 오른팔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괜히 오른팔을 상기할 때마다 오늘 저녁에 있었던 일들까지 모조리 떠올랐다.

고개를 돌려 안젤라의 방문을 쳐다봤다. 굳게 닫힌 방문을 보며 잠시 안젤라를 확인해볼지 고민했다. 원래 그녀를 보기 위해 나온 거였지만, 막상 하려니까 고민이 앞섰다.

만약 울고 있다면? 음, 안젤라가 운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는데. 아니면 이번 마법진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거나. 뭐, 그게 내가 생각하는 그녀의 모습과 가장 잘 매치된 모습이긴 했다. 뭐가 문제인지 확실히 짚은 다음에 나한테 다시 하자고 하겠지. 내가 다신 안하겠지만.

이래저래 생각하고 나니 일단 안젤라에게도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다. 복잡한 심경일 텐데 내가 모습을 드러냈다간 더욱 혼란해할 테니까 말이다.

“그냥 폰 좀 만지다가 자야겠다. 그나저나 잠이 오려나 모르겠네.”

기절한 거긴 하지만 어쨌든 눈 붙이고 있었으니 잤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잠은 다 잤다고 하는 편이 좋을 듯했다. 아무래도 오늘밤은 폰만 만지다가 샐 것 같았다.

소파가 있는 큰 방으로 내려오니 불이 꺼져있었다. 하긴 쓰는 사람도 없는데 켜놓으면 낭비지. 안젤라라도 마나석이 썩어나는 건 아닐 테니까.

큰 방으로 들어와 소파에 털썩 앉으며 마나석 충전기에 꽂아뒀던 폰을 집었다. 배터리는 한나절이나 충전기에 꽂아뒀더니 밤은 새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히 차있었다. 비록 인터넷은 안 됐지만 오프라인으로 할 수 있는 게 제법 많았다. 정식으로 돈을 주고 다운받은 소설이나 영화, 만화, 음악, 노래 등등. 다만 영화는 대부분 섭렵해서 지루했고 음악이나 노래는 이어폰이 없어서 공동생활을 하는 입장에서 듣기엔 조금 난처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소설이나 만화를 보는 게 전부였지만, 없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오른손만 쓸 수 있었다면 말이다.

“으, 이거 은근히 불편하네. 소설 좀 보다가 자려고 했는데 왼손으로 하려니까 안 되네. 이러다가 쥐나겠네.”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폰을 만지작거리려니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래도 폰에 살고 죽는 현대인으로서 왼손이 쥐가 나 감각이 없어진다 해도 이 손에서 폰을 놓지 않을 것이다.

계속 자세를 바꿔가며 어떻게든 폰을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손이 저릴 때마다 탁자에 올려놓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 30분을 전전긍긍하니, 도저히 손이 저려서 폰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씨, 때려치우자 그냥. 손이 저려서 못해 먹겠네.”

나는 폰을 테이블에 내려놓자마자 저린 손을 털었다. 있지도 않은 손으로 주무를 수도 없는 일이니. 오른손의 유무에 대해 뼈저리게 느꼈다.

“흠, 딱히 할 만한 것도 없고. 잠은 안 오고. 시간도 늦어서 마을엔 별 거 없을 거고.”

시간 때우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밤을 어떻게 보내나 걱정이었다. 즐길만한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뭐라고 씹어볼까. ···아, 아무것도 없지. 그럼 뭘 하지···.”

뭐라고 먹으려고 생각하던 찰나 지금 이 집에 음식이라곤 생고기랑 채소밖에 없다는 게, 정확히는 당장 먹을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떠올랐다. 점심에 먹다 남긴 음식물은 찌꺼기만 남아서 싹 다 버린 지 오래였다.

결국 당장 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책을 읽자니 분수에 맞지도 않는 수준의 책을 고상한 척하며 읽기엔 내 인내심이 부족했고 이미 봤던 영화를 보기에는 너무나 지루했다.


············


“아니지, 지루하다보면 잠이 올지도?”

꽤 명안이었다.

“레이크?”

번뜩 떠오른 해답에 손가락을 튕기는데 뒤에서 안젤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안 자고 있던 건가?

“안젤라님? 안 주무셨어요?”

“어···, 아직 할 게 있어서 연구실에 있었는데 위쪽이 시끄러워서 올라와 봤어.”

조금 피곤해 보이는 기색은 있었지만, 내가 염려하던 것처럼 많이 다치거나하진 않은 것 같았다.

“아, 죄송해요. 너무 시끄러웠나요?”

자세 잡는답시고 고작 두꺼운 판자 몇 장을 사이에 두고 소파 위에서 이리저리 부산하게 움직였으니 그 밑에선 판자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렸을까? 괜스레 안젤라에게 미안해졌다.

“아냐! 괜찮아, 괜찮아! 뭘 그런 걸 가지고!”

안젤라는 내 사과에 당황스러워하며 세차게 손을 내저었다. 어색하게 웃는 표정이 왠지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밤이니까 커피는 좀 그렇고, 코코아라도 한 잔 끓여다 드릴까요?”

“그, 그럼 내가 끓일게! 넌 그냥···.”

“한 손으로도 충분히 끓일 수 있어요. 안젤라님은 소파에 앉아계세요. 필요하면 그때 부를게요. 불 킬까요?”

“아냐 그럴 필요 없어! 그리고, 필요하면 꼭 불러.”

안젤라가 소파에 앉는 걸 확인한 난 물을 넣은 주전자를 불 위에 올렸다. 요상하게도 지구에 있던 가스레인지와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만, 엄연히 마나석으로 가동되는 장치였다. 하지만 사용하는 방법은 여기나 거기나 똑같아 쓰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물이 끓는 잠깐의 시간동안 슬쩍 안젤라의 동태를 살폈다. 평소 같았으면 얼른얼른 하라고 성화인 그녀가 유독 조용했기 때문이다. 나 몰래 폰이라도 만지고 있는 건가?

“뭐, 뭐라도 도와줄까?”

···어째서인지, 고개를 돌리자마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무안해하는 게 눈에 선하게 드러났다. 내 폰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는지 내가 탁자 위에 올려둔 그대로였다.

“아뇨. 오늘따라 조용하셔서요.”

“에···, 그야 밤이기도 하고, 킨도 쉬고 있으니까 조용히 해야 할 것 같아서.”

“뭐, 그렇겠네요. 생각해보니까 야밤에 뭐 끓여보기도 처음이고요.”

“헤헤···. 그렇지?”

안젤라가 맥없이 웃었다. 그녀가 저렇게 웃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오히려 내가 맥이 빠질 것 같았다.

강아지가 그려진 머그컵에 담은 코코아를 쟁반에 올렸다. 멋들어지게 양손에 내 잔이랑 안젤라의 잔을 들고 가기엔 내 오른손이 성치 않았다.

“드세요. 뜨거우니까 혀 조심하시고.”

쟁반을 탁자에 내려놓고 코코아가루를 더 넣어 평소보다 조금 더 진한 코코아를 안젤라 앞에 내려놨다.

“아, 고마워. 잘 마실게.”

역시 어색한 목소리로 감사인사를 하며 안젤라가 잔을 입에 댔다. 어? 잔을 너무 기울였는······.

“아 뜨뜨!”

“괜찮으세요? 뜨거우니까 조심하시라고 했잖아요.”

그 뜨거운 코코아를 식히지도 않고 입 안에 들이부으려 했으니. 혀끝이 꽤나 쓰라릴 것 같았다.

“괜찮아!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차마 혀를 부여잡진 못한 안젤라는 손으로 입을 부여잡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은데.

“혀 데인 것 같은데. 찬물이라도 가져다드릴까요?”

“글쎄 괜찮다니까 그러네! 괜찮으니까 멀뚱멀뚱 서있지 말고 너도 앉아.”

안젤라가 앉은 자리에서 옆으로 비켜줬다. 나는 그녀가 비켜준 자리에 앉아 잔을 기울였다. 흠, 역시 꽤 뜨겁네. 이걸 입에 그냥 들이부었으니 안 그래도 고양이 혀면서 조심성 없이 뜨거운 걸 마시려 하다니.

“쓰으으···, 그나저나 진짜 뜨겁네. 왜 이렇게 칠칠치 못한 건지···.”

“뭐, 그럴 수도 있죠. 저도 가끔씩 혀도 데이고 그래요.”

“그럴 수 있겠지···. 코코아에 혀를 데이는 것 정도는···, 누구나···하지만···.”

내가 한 짓은 아니겠지. 아마 이러지 않았을까?

말을 잇던 안젤라의 목소리 점점 작아졌다. 고개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푹 숙인 채, 손은 가만히 두지 못하고 머그컵만 만지작거렸다.

달빛에 비춰진 안젤라의 모습은, 너무나, 가련했다. 침전된 분위기가 어깨를 타고 흘렀다. 안젤라의 모습과 가라앉은 분위기가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뭔가 나서서해야하긴 할 것 같은데 대체 뭘 어떻게 먼저 시작해야할지 앞길이 깜깜했다.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있어야 대처법이라도 알 텐데, 아는 여자라곤 죄다 절망이나 슬픔은 개나 줘버린 괄괄한 여자밖에 없어 여성의 예민함이나 감수성에 어떻게 다뤄야할지 감이 안 잡혔다.

끙, 내 주변의 여자가 얼마나 여성성이라곤 없는지 새삼 깨달았다.

“휴. 뭘 그렇게 꽁꽁 싸매고 있으세요? 그냥 속 시원하게 말씀하세요.”

“···.”

“씁, 대답은 안 들을 테니까 듣기만 하세요. 에, 오늘 일어난 일이 좀 심각했던 건 알아요. 킨이 다치고, 전 손모가지 날아갔죠. 이렇게요.”

내가 오른팔을 들었다. 안젤라는 힐끗 내 팔을 보더니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죄인마냥 고개를 더욱 푹 숙였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 영혼이 저랑 융합될 때, 아마 그때 제가 변한 것 같아요.

듬성듬성 기억나는 걸로 봐선 말이죠. 전 통제되지도 않는 힘으로, 안젤라님 당신을 죽이려 들었고, 킨을 반 정도 사지로 몰아넣었죠.”

“···그랬지.”

안젤라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서 그녀의 죄책감이 느껴졌다.

“게다가 전 하마터면 그 영혼한테 몸까지 뺏길 뻔했죠. 뭐, 손이 반쯤 날아가긴 했지만.”

“···.”

“아마 그 영혼이 킨을 쓰러뜨렸다면, 곧바로 안젤라님을 죽였겠죠. 저한테 계속 그런 사념을 보냈으니까요.”

“···할 말은 그게 다야?”

무릎 위에 얹어진 그녀의 주먹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의 울분이 담긴 그 미동. 그녀의 입술은 울분을 못 참고 억세게 물어 파르르 떨렸다.

진작 터졌어야 할 그녀의 울분은 죄책감과 섞여 희석돼 그녀의 마음속에 고였다. 그녀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죄책감과 죄악감이 있는 한, 그녀가 터뜨려야할 울분을 억지로 틀어막을 것이다.

“아뇨. 아직 더 있어요.”

“그럼 빨리 해···. 어차피 흥분해서 실수나 해된 내가 무슨 변명거리가 있겠어.”


·········.


“···그런데 말이죠, 그런 거 가지고 너무 너무 죄인처럼 굴지 마세요. 그런 건 안 어울려요, 안젤라님한텐.”

“···뭐라고?”

안젤라가 내 말에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을 본 난, 카디건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며 얼른 고개를 돌렸다. 결국 새어나온 듯했다.

“안 어울린다고요. 그런 거.”

“···그럼 나보고 평소처럼 버럭 소리라도 지르라는 거야?”

“와, 안젤라님도 자기 성격이 어떤지 알고 계시네요?”

“하던 말이나 계속해. 말 돌리지 말고.”

“알겠어요. 보채시긴. 본론만 말하자면 모두가 살아있다는 거에 의의를 두자는 거죠. 저하고 킨이야 언데드니까 젤로 수복공사 좀 하면 되잖아요? 하는 김에 튼튼하게 말이죠.”

“하지만 그건 단순히 자기위안밖에 안 돼. 아무리 너희가 언데드라지만, 잘못하면 너희들이라도 죽는단 말이야. 그런데, 나보고 너희는 언데드니까 내가 다시 고쳐줄게 하면서 얼렁뚱땅 넘어가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 아무리 내가 입이 좀 험하고 흥분하면 막무가내지만 양심이 없는 건 아니야. 난 너희를 가족처럼 생각한단 말이야. 그런데···, 그런데···.”

보이진 않았지만 안젤라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시작된 그녀의 눈물에 나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하도 말하는 센스가 없다보니까 위로해주는 것도 수월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하다 끝끝내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묘안이라기엔 조금 거창하지만, 딱히 생각나는 것도 없으니.

“흑···. 나도 미안했단 말이야. 흐흑···,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던 건 고작 도망치는 것뿐이었는데. 정작 불을 지펴놓은 사람은 나였는데. 흐흑···, 나도 안다고···. 내가 얼마나 한심했는지···.”

“···쉬잇. 더 이상 말하실 필요 없어요. 안젤라님이 얼마나 미안해하셨는지 잘 알아요.”

나는 안젤라를 살포시 품에 안았다.

“그리고 그건 한심한 게 아니에요. 현명하신 거죠. 만약 안젤라님이 크게 다치셨으면 킨이 얼마나 슬퍼하겠어요? 그거 알아요? 킨은 제가 방을 나가기 전까지도 안젤라님 걱정뿐이었다는 거? 부상자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말이죠.”

안젤라의 소리 없는 울음이 가슴을 적셨다. 그녀의 가녀린 손이 내 등을 억세게 껴안았다. 나는 그런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줬다.

“그러니까 지금 안젤라님이 죄책감이랑 죄악감에 고개 숙이시지 말고 평소 저희한테 해주시던 대로 해주셨으면 해요. 킨이랑 저는 괜찮은데 안젤라님이 괴로워하시면 저희도 덩달아서 괴로워져요. 그냥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나세요.”

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전부 해줬다. 빈정거리긴 했지만 진심으로 위로해줬고, 미숙했지만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줬다. 여자를 위로해본 적이 없어 이게 맞는 행동인진 모르겠지만, 이걸로 그녀가 괜찮아진다면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난 한참이나 그렇게 안젤라의 등을 토닥여줬고, 그녀는 그런 내 품에서 속에 쌓아뒀던 슬픔으로 내 옷을 물들였다.


작가의말

3일나 늦다니, 글쓴이 이 놈 돌은 거 아니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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