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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eness - 작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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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입니다
작품등록일 :
2016.03.16 01:36
최근연재일 :
2016.05.31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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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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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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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2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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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덴티티, 그리고 적응 - 3

DUMMY

안젤라와 킨이 내 맞은편에 앉아 다정하게 점심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킨은 가방을 내려놓은 홀가분한 몸으로 안젤라와 대화를 나누며 식기를 놀렸다.


“정말 오랜만이다. 킨 네가 사냥을 나갈 동안 네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넌 모를걸?”


“최대한 빨리 돌아오려 했지만, 중간에 애를 좀 먹인 영혼이 있어서요. 그 영혼을 처리하는데 시간을 많이 지체했어요.”


“세상에. 너를 애를 먹일 정도의 영혼이라고? 그 영혼 굉장히 기가 강한가 보네?”


친근하게 건네는 대화 한마디, 한마디마다 애정이 깃들어있었다. 그만큼 서로가 아끼고 있다는 말이겠지. 덕분에 두 사람 사이에 내가 낄 자리는 없었지만. 그만큼 내가 끼지 못할 정도로 두 사람만의 끈끈한 연대가 있기 때문이겠지.


나는 냉수를 한 잔으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그 후 안젤라와 킨이 다정다감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걸 옆에서 가만히 듣기만 했다. 경우에 따라선 누군가에게는 지금 상황이 섭섭하게 느껴지겠지만, 안젤라와 킨이 아주 특별한 사이라는 걸 알기에 섭섭하거나 하진 않았다.


“네. 그래도 생포하는 대 큰 지장은 없었습니다. 보여드릴까요?”


“그래? 한번 볼까?”


안젤라의 말에 킨이 식기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식탁 다리에 기우려둔 가방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참 가방 안을 분주히 뒤적거리더니 마침내 원하는 걸 찾았는지 분주하던 손이 멈췄다.


“찾았어?”


“네. 읏차. 여기 있어요.”


킨이 가방에서 꺼낸 건 금빛으로 빛나는 물체를 담아둔 병이었다. 병 안에 든 물체는 밝은 빛을 뿜었는데, 만약 주변이 어두웠다면 사위를 밝힐 것 같은 세기였다.


킨은 가방에서 꺼낸 병을 안젤라의 앞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안젤라는 킨이 가져온 병 안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진심어린 짧은 감탄사를 뱉었다.


“오. 황금빛 영혼이네.”


“네. 게다가 최상급까진 그에 준하는 정도의 영혼이에요.”


“영혼에도, 등급이 있는 건가요?”


처음 듣는 소리에 안젤라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는 직업병이라도 돋은 것인지 병 안을 관찰하기 바빴다. 아무래도 당장은 그녀에게 대답을 구하긴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살며시 고개를 돌려 킨을 바라봤다. 킨은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내 눈동자를 똑같이 직시하며 내가 안젤라에게 했던 질문의 답을 대신해줬다.


“네. 기본적으로 최하급부터 최상급이 있습니다. 그 등급을 매기는 기준은 영혼의 질에 따라 변동되는데, 영혼이 살아생전 가졌던 능력이나 인성, 품행 같은 것들이 영혼의 질을 좌지우지 하죠. 그리고 그 품질은 이렇게 띄고 있는 생각에 따라 가시적으로 1차적인 판별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등급이 높을수록 좋은 영혼이야?”


“아뇨. 그렇다고 등급이 높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닙니다. 아무리 높은 등급을 가졌더라도 인성이나 품행이 올곧지 못한 사람의 영혼이라면 악령이 되기 쉽거든요. 그런 영혼은 네크로맨서가 다루기에도 너무 위험하죠.”


오호. 이건 또 색다른 이야긴데?


킨의 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그런 악령은 특별한 연구를 위해 사용되는 걸 제외하면 대개 신전으로 보내져서 정화의식을 하거나 봉인하게 돼있어요.”


“음? 신전?”


“사제나 홀리 같은 빛 계열과 관련된 곳이라고 말씀드리면 이해가 쉬울까요?”


“엥? 그렇다는 건, 네크로맨서랑 사제가 교류를 한다는 거네? 그게 가능해?”


내 판타지 상식에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을 모시는 사제, 프리스트와 영혼과 시체를 다루는 네크로맨서. 그 어느 책에서도 이 둘은 절대 공존하진 않았다. 물론 소설 속의 이야기라지만,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도 굳이 사제가 아니더라도 영혼이나 시체를 다루는 칙칙한 네크로맨서를 곱게 볼 리 없었다.


“물론 가능합니다. 예전에는 드레이크님이 아시던 것처럼 적대관계였지만, 지금은 네크로맨서와 신전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신전이 네크로맨서를 반기는 추세입니다.”


“흠, 싫어했다가 좋아하는 놈들 꿍꿍이가 그렇게 좋진 않을 텐데….”


“저도 그 의견엔 동의하지만, 당장 추세는 화의적인 분위기이기 때문에 네크로맨서들 중 몇몇은 불만을 품고 있지만 일단은 신전의 태도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사제들이 네크로맨서를 반긴다니. 꽤 신박한 소리였다. 내 판타지 상식선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라 더욱 새롭게 느껴졌다.


“신전에선 여러 가지 일로 바빠 악령이 돼버린 영혼들의 관리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보니 악령포획까진 손을 쓸 수가 없는 시국입니다. 게다가 최근엔 내부에서 교파들의 내부분쟁이 더 심해서져 더더욱 그렇죠. 그래서 네크로맨서들이 영혼을 채집하는 동안 포획하게 된 악령은 무상으로 신전에 이송시키거나 일정량의 현물을 지급받고 이송시키는 식으로 악령을 받습니다.”


“악령을 판다니. 모든 게 돈이 된다지만 악령을 팔기까지 하는구나.”

아직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은 걸 느끼게 되었다. 역시 소설은 믿을게 못됐다. 하기야 그 사람들이라고 상상으로 지어내는 건데 한계에 있을 수밖에 없으려나?


“흠…. 신선하네. 이런 건 처음이야. 좀 더 자세히 연구해볼 필요가 있겠는데?”

대화를 뚫고 지금까지 침묵을 고수하던 안젤라가 입을 열었다. 다만 대화에 끼기 위함이 아니라 단순히 혼잣말이었지만.


“꽤 희귀한 타입인가봐요?”


“뭐랄까…. 그냥 봐서는 잘 모르겠고. 세밀하게 연구하면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그게 뭡니까…. 잔뜩 기대만 부풀리고. 김빠지게.”


“뭐래! 됐고, 난 이제 다시 연구하러 가볼 테니까 레이크 넌 뒷정리 잘 해놔. 킨, 나중에 보자.”


“예, 예. 제가 알아서 해놓겠습니다.


“네. 열심히 하세요 주인님.”


휴, 드레이크로 부르든 레이크로 부르든 하나로만 불러주면 좋겠건만. 가끔씩 헷갈린단 말이지. 차라리 이자룡일 때가 편했는데. 전부 야, 너로 통일됐으니까.


안젤라가 병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는 짜증이 한가득인 얼굴로 삿대질을 하고 킨에게는 살갑게 웃어주며 손을 흔들어주더니 곧장 연구실로 달려가듯 뛰쳐나갔다. 웬만해선 저런 식으론 안 뛰는데. 아무래도 이번에 킨이 가져온 영혼에 꽤나 관심이 쏠리는 듯했다.


“그렇게 좋은가?”


“주인님이야 어리셨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으셨죠. 어리셨던 나이에도 눈에 밟히시는 것들은 전부 연구해보실 정도였으니까요.”


“게다가 자존심도 굉장히 세지.”


위신 지킨답시고 다른 차원에 있는 날 소환할 정도면 말 다했다.


슬쩍 킨의 접시를 보니 킨도 식사를 끝낸 것 같았다. 그럼 나도 이제 내 본문에 충실해져야 할 시간이 된 것 같다.


“도와드릴까요?”


자리에서 일어나자 킨이 같이 일어났다. 날 도울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일하다가 온 사람에게 일을 시킬 만큼 난 무뢰한이 아니었다.


“아냐. 넌 네 방에 가서 쉬고 있어. 지금은 내가 점거하고 있긴 하지만. 뭐, 이 정도 집안일은 너 없을 때도 잘 해냈으니까 심려 말고. 먼 길 갔다가 온 건데 편하게 있어야지.”

시체긴 하지만, 몸에 피로가 쌓이는 건 변함없었다. 그건 내가 체감하고 있기 때문에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설거지랑 밀린 빨래만 끝나면 늘 하던 걸 해야 하니까 조금이라도 쉬고 있어.”

이게 킨이 쉬어야하는 가장 큰 관건이었다. 안젤라가 없는 지금이 가장 킨의 위한 ‘특별한 교육’을 하기에 시기적절한 상황이다.


“아, 그렇군요. 드레이크님이 하시는 교육은 체력을 많이 소모하니까요. 아직 안젤라님은 모르시는 거죠?”


“그래, 체력 참 많이 소모하지. 그리고 안젤라한테는 아무 말도 걱정 마. 그러니까 방에 가서 쉬고 있어. 설거지는 금방 끝나니까.”


“네. 그럼 먼저 올라가 있겠습니다.”


내 설득에 수긍한 킨이 이번에도 공수경례로 허리 숙여 공손히 인사하더니 큰방을 나갔다. 그녀도 올라갔으니 이제 내 일만 끝내고 올라가면 나와 킨만의 ‘특별한’ 일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에휴. 빨래는 나중에 해야겠다. 밀리면 감당 못하는데. 저녁 자유시간까지 상납해야하나?”






“이, 이렇게 하면 되는 겁니까?”


“아니. 그렇게 하면 안 되지. 근육을 약간 느슨하게 풀어주면서 천천히.”


“그러면, 이렇게 하면?”


“좀 더.”


“이게 제 최선입니다. 이 이상은 저라고 할지라도 무리입니다. 더 이상은 조금, 부끄럽달, 까….”


“흠….”


킨이 어떻게든 시키는 대로 해보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그녀는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문제는, 그녀가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내 마음엔 영 차진 않았다는 것이었다. 노력하는 기색을 봐서라도 넘어가주곤 싶었다. 하지만 이건 킨이 자발적으로 부탁을 해온 이상 철저하게 짚어줄 생각이었다.


처음이라 그런지 굉장히 어색해하는 킨에게 손을 뻗었다. 본인이 교정하기 힘들다면 내가 직접 교정해주면 될 노릇이었다. 그게 나한테도 편하고 좋았다.


“으…!”


“뭐야? 갑자기.”


내가 손을 뻗자, 혼자서 안간힘을 쓰던 킨이 흠칫했다. 약간 놀란 눈치였다.


“드, 드레이크님이야 말로 왜 갑자기 손을 뻗으시는지?”


“부드럽게 한다는 게 뭔지 직접 알려주려고 그러지. 이런 식으로 했다간 날밤을 지새워도 너나 내가 원하는 데는 발치에도 못 닿을 같아서.”


“그, 그렇게 부족합니까?”


내 지적에 킨이 적잖이 당황해했다. 아마 그녀는 자연스럽게 행동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어째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 분발해야해. 힘내라고. 너도 분명 좋아질 거야.”


“네.”


내 격려에 킨이 자신감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고자하는 의지는 확실히 다진 것 같았다.


그녀는 다시 결의를 다졌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다시 손을 뻗었다. 이번엔 그녀도 거부하지 않고 피부로 전해지는 내 손길에 의식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런 느낌으로 한다고 생각하면 돼. 별로 어렵지 않지?”

눈을 살며시 감은 킨을 매만지며 나직이 말했다. 킨은 한참이나 의식을 피부로 전해지는 감각에 집중했다.


“음….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서포트에도 킨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진전이 없다면, 나로서도 방도가 없었다.


“휴. 오늘은 그만하자. 나도 이제 지친다.”


벌써 이 짓만 2시간째였다. 성과는 전혀 없었다. 성과 없는 되풀이에 나는 물론이고 킨도 지쳐갔다.


“죄송합니다. 아직 서투르다보니.”


“아냐. 서투르다고 말하긴 좀 그런 게, 억지로 웃는다고 해서 웃어지면 그게 더 웃긴 거지. 웃는 걸 강제할 순 없는 일이니까. 이으으윽!! 계속 앉아있었더니 여기저기가 찌뿌둥하네.”


미안해하는 킨을 위로하며 앉았던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같은 자세로 2시간이나 앉아있었더니 관절이란 관절은 전부 쑤셨다. 쑤시는 관절과 딱딱하게 굳은 근육을 풀려 기지개를 펴자 찔끔 눈물이 나왔다.


눈가에 고인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진전이 없는 갑갑한 심정에 머리를 긁적였다. 손가락으로 입매를 치켜들어 올리는 다소 억지스러운 짓까지 했는데도 그녀의 무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이게 마지막 남은 조치였는데.


“그나저나 일주일이나 지났는데도 전혀 차도가 없네. 역시 교육한답시고 억지로 하는 걸로는 한계가 있는 건가?”


“역시, 표정을 공부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 걸까요?”


“정확힌 표정연기를 한다는 편이 맞겠지. 표정을 공부할 순 없으니까.”


표정이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표현수단 중에 하나였다. 기쁠 땐 웃음을 짓고, 화가 날 땐 얼굴을 찌푸리고, 초조해면 입술을 깨무는 모든 표정들 하나하나가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본능적인 방법이었다. 표정은 공부를 하는 게 아니었다. 공부를 한다면 그건 연기에 불과할 뿐이었다. 표정은 숨길 순 있어도 배울 순 없었다.


“그렇겠죠….”


무덤덤한 말투였지만 킨의 어투에서 작은 실망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간의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 일을 시작한지 일수로 따지면 일주일, 즉 킨이 영혼채집을 나갔다 돌아온 모든 기간 동안 하루에 2시간가량 정도를 그녀와 표정연기를 위해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장장한 시간동안 킨은 내게 표정을 연기하는 법이랑 자잘한 표현방법들을 배웠다. 그녀는 정말 내가 진이 빠질 정도로 열심히 했다. 눈에 보일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도출된 결과처럼, 앞으로의 과정이 그리 순탄치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실망해하는 킨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를 해줬다.


“실망하지 말라고. 그래도 넌 나하곤 다르게 영혼이란 게 있잖아? 영혼이 있는 한 노력하다보면 꼭 결실을 맺을 거야. 너무 낙담하진 마.”


영혼은 모든 정신적인 능력을 담고 있다. 마나를 담는 그릇이기도 하며 지금처럼 감정을 표현하는 감정의 그릇이기도 했다. 킨이 영혼이 있는 한 언젠간 그녀 또한 자연스럽게 표정을 지을 날이 올 것이다. 그저 그 때가 언제 올 지가 문제일 뿐.


그러나 킨은 그것마저도 성에 안 차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매번 주인님이랑 대화를 할 때마다 주인님에게 너무 죄송스러운 걸요. 주인님은 제 말에 놀라시기도, 웃어주시기도 하시는데 저는, 주인님의 말씀에 전혀 웃어드릴 수 없어요. 평범하게도 부응해드리고 싶은데. 오늘도 또 그랬고요.”


킨이 죄책감에 고개를 푹 숙였다. 내겐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그녀에겐 꽤 큰 문제인 것 같았다. 그녀는 단순한 부하라는 굴레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좀 더 가까운, 안젤라의 말벗이 되고 싶은 듯했다.


이토록 킨이 노력해가면서까지 표정연기에 몰두하는 이유를 안다면 안젤라도 분명히 기뻐하겠지. 오직 자신만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그녀가 싫어할 리 없었다. 아마 이 사실을 알게 됐다간 분명 ‘상관없어! 난 지금의 킨도 좋으니까!’하면서 또 껴안으려 들겠지.


“안젤라는 그런 건 별로 신경 안 쓸 것 같은데? 안젤라는 네 본연의 모습을 좋아하잖아. 굳이 킨 네가 힘들여가면서까지 표정에 공들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아뇨. 주인님이 괜찮으시더라도 제가 용납할 수 없습니다.”

킨이 주먹을 억세게 쥐며 단호히 말했다. 뭔가 그녀를 억누르는 압박 같은 게 있는 것 같았다.


“주인님은 절 다시 살려주신 데다 새로운 몸까지 주신 은인이세요. 게다가, 제가 죽기 전부터 제 주인님이셨고요. 그런데, 그러신 분에게 저는, 그저 시키는 일밖에 할 수 없는 수준밖에 되지 못해요.”


“너 정도면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못하는 사람이 세상엔 수두룩하다고.”


이제껏 봐온 킨의 안젤라를 향한 충성심은 그야말로 상상이상이었다. 아무리 시체에서 부활한 언데드라지만, 여타 다른 언데드처럼 자유와 의지가 네크로맨서에게 억압받지 않았다. 한마디로 킨의 충성심은 순수한 킨의 의지였다.


그런 킨이 적절한 보상도 없이 몇 칠 간 외지를 돌아다니며 영혼을 수집하고, 악령을 신전에 넘겨주며,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해 표정연기를 공부해가며 오직 안젤라만을 위해 혼신을 다했다. 내 생각으론, 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충분히 소화해내고 있었다. 본인은 불만족스러운 듯 했지만.


…잠시 그렇게 긴 침묵이 흘렀다. 나도, 킨도. 입에 지퍼를 채운 것처럼 굳게 입을 다문 채였다. 그녀는 자신만의 고민에 빠져 사색에 잠긴 것 같았지만, 그녀의 침묵은 내게 너무나도 불편했다.


뭔가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려야할 것 같은 기분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대로 불편한 기류 속에서 멍청하게 앉아있는 것보단 훨씬 나겠지.


그렇다고 괜히 어설프게 화제를 바꾸는 것도 곤란했다. 바꾸는 것도 바꾸는 거지만, 킨이 자연스럽게 바뀐 분위기에 맞춰서 장단에 맞출 수 있도록 하는 게 관건이었다.

장고한 심사숙고 끝에 나는 킨이 관심을 가질 만한 요소들을 간추렸고, 아직도 자책감에 빠져있는 킨을 불렀다.


“어이, 킨. 이렇게 생각만 해서 해결되겠어? 너무 생각만 하면 과열돼가지고 오히려 잡생각만 더 들걸? 지금도 그렇지?”


“…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그래. 자고로 머리를 굴릴 때는 쉬엄쉬엄해야 하는 거야. 과부하 걸리면 그때부턴 답 없거든.”


“….”


킨은 내 제안에 입을 다물고 있기만 했다.


“여하튼 그냥 기분전환이나 하자는 말이지. 그러면 다른 해결책이 생각날 지도 모르잖아?”


“아, 기분전환이요?”


드디어 킨이 고개를 들어 날 바라봤다. 목소리로 듣건대, 내 제안은 그녀에게 있어 뜻밖이면서도 획기적인 제안인 것 같았다.


“그래. 머리도 식히고, 몸에 활력도 불어넣어줄 겸 말이야. 몸을 움직여야 뇌가 활력을 얻지.”


시험을 앞둔 수험생에게는 쉬기 위한 좋은 변명거리지만 지금의 킨과 내겐 활력소 재충전을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내 설득에 킨은 잠시 멀뚱멀뚱 내 모습을 지켜보더니 이내 작게 숨을 토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네요. 지금 혼탁한 머리로 고민하느니 차라리 드레이크님이 하시자는 대로 몸을 움직여 보는 게 좋겠네요. 하지만 뭘 하면서….”


관건은 이거였다. 과연 무엇을 하면서 기분전환을 하는가. 주변에 있는 거라곤 산이랑 유희시설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이 촌구석에서 기분전환으로 남녀 한 쌍이 어울려 할 만 한 건 희박하다 못해 없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문화를 경험한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나 통용되는 이야기다. 킨에게는 그녀만의 특별한 방법이 따로 있었다.


“내가 하나 생각해둔 게 있긴 한데. 근데 그게 네 도움이, 좀 많이 필요해.”


“제 도움이요?”


킨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킨의 갸웃거림에 맞춰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네 도움. 일단 밖으로 나와. 자세한 얘기는 밖에서 해줄게.”

킨보다 앞서 방을 나가자 그녀도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히 내 뒤를 따라왔다.


작가의말

작가 친구: 야, 너 요새 글 쓴다며?

작가: 어. 근데 왜?

작가 친구: 아니, 네가 글 쓴다니까 신기해서.

작가: 그게 왜 신기해? 쓸 수도 있지.

작가 친구: 근데 너 글 더럽게 못 쓰잖아?

작가: 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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