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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eness - 작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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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입니다
작품등록일 :
2016.03.16 01:36
최근연재일 :
2016.05.31 03:50
연재수 :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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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5,996

작성
16.03.19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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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저는 하인입니까? - 3

DUMMY

나는 여자가 눈을 감고 잠깐 쉬는 동안 찬찬히 주변을 둘러봤다. 제법 큰 방이라 그런지 내가 눈을 떴던 방보다 훨씬 넓고 가구나 물건들의 개수도 많았다. 고풍스러운 벽난로. 다만 따뜻한 날씨 탓인지 안 쓴지 꽤 돼 보였다. 그리고 선반들 몇 개가 걸려있었는데, 그 위에는 이름 모를 액자라든지 모종화분 등 조그만 물건들이 잘 정리되어있었다. 의외로 깔끔한 구석이 있는 여자였다.


다음으로 눈에 띈 것은 여러 시약들이 든 비커였다. 삼각플라스크, 삼발이, 알코올램프. 그리고 각종 시약재료들을 담아둔 걸로 보이는 가죽주머니였다. 각 주머니에는 재료의 이름이 써진 하트모양의 메모가 달려있었다. 성질머리가 나쁘긴 해도 저런 걸 보니 여자긴 여자인가보다.


한동안 기다려주자 지끈거리는 골이 제법 괜찮아졌는지 여자가 자세를 가다듬었더니 다시 눈을 떴다.


“휴. 그래, 말하고 싶은 게 뭔데?”


“아, 이제 듣고 싶은 신가 봐요?”


드디어 말할 기회가 생긴 것 같았다.


“그래. 되도록 빨리 말해. 골 울리니까.”


“에, 일단 이름이나 좀 알려주세요. 서로 통성명은 해야죠.”


“설마 지금 그게 중요한 걸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


여자의 미간에 짜증이 어렸다. 워워, 진정하라고. 질문 잘못했다간 바로 골로 보낼 태세였다.


“일단 알고 가자는 거죠. 너무 까탈스럽게 굴지 마세요. 어차피 좋든 말든 그쪽 말이면 전 꼼짝없이 여기서 그쪽한테 평생 무보수로 일해야하는 것 같은데, 이름도 모르고 살 순 없잖아요?”


내 말에 여자가 살짝 인상을 찡그렸지만, 그래도 입 다물 생각은 없는 듯했다.


“안젤라 드리무어 바르샤노크 인크리아.”


···뭐가 저렇게 길어? 너, 외국인이냐? 근데 어째 한국어가 유창하다?


“···그냥 안젤라라고 불러도 되죠?”


“님 붙여.”


“···그럼 안젤라님. 여긴 어디입니까?”


“내 집.”


“···아니, 그게 아니라. 정확히 어디인지 알고 싶어서요.”


“예를 들면?”


“어느 대륙의 어느 나라, 어느 도시. 이런 식으로요.”


“너 바보냐? 시시콜콜 묻는 얘기가 고작 그거야? 넌 이 대륙에 나라가 몇 개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보다 너 대륙 수는 알고 있는 거냐?”


“···7개?”


땅덩어리야 크게 본다면 3개가 맞지만, 아시아,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유럽, 남극. 일반적으로 이렇게 나누는 게 정확한 대륙구분법이었다. 이 정도야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도 아는 상식이다.


“풉···!”


그런데 어째서인지 이 여자는 내 말을 듣더니 곧 웃음보가 떠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마 분위기를 봐서는 체통을 지키려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막고 참으려는 것 같았다.

약간 의문이 들었다.


“왜 그러세요, 안젤라님?”


“큭큭큭···. 어떡해 대륙이, 큭큭큭···. 7개? 그건 교육과정을 띠지 않은 아이들도 아는 상식인데.”


“···그러게요. 그래서 저는 안젤라님이 더 이해가 되지 않아요.”


왜 이 여자가 웃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기본적인 상식인데 안젤라는 대륙이 6개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설마 대양의 수랑 대륙의 수를 헷갈린 건가? 그런 게 아니고서는 뭐라고 종잡을 수가 없는데.


“큭큭큭. 그러면 나라는 몇 개야?”


“어디보자···. 꽤 많아서 좀 헷갈리는데? OECD는 경제협력개발기구이고, UN은 더 아니고. 그래도 정식으로 등록된 건 어림잡아서 200여 개 정도 되지 않나요?”


“풉! 하하하하하하하!!!!”


“???”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한 안젤라가 웃음보를 터뜨렸다. 웃음을 얼마나 참았던 건지 눈가에 눈물까지 고여 있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배까지 부여잡고 아주 자지러졌다. 대체 뭐가 그리 웃긴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지만 하도 격하게 웃어재끼니 머릿속으로는 말들이 떠오르는데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웃었을까? 제법 진정이 된 건지 안젤라가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나는 안젤라가 쉴 틈 없이 웃는 바람에 그간 풀지 못한 궁금증을 풀려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뭐가 그리 웃깁니까? 전 도통 이해가 되지 않네요.”


정말 진심으로 뭐가 웃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으로도 세보고 손가락으로 세어봤지만 대륙이 7개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것은 아직도 웃음기가 담겨있는 그녀의 비웃음이었다.


“뭐가 웃기냐고? 세상에, 내 인생 처음으로 너같이 무식한 놈은 처음 보는데 왜 안 웃기겠냐? 세상에, 어떻게 대륙이 7개라고 하는 놈이 있지? 무슨 드래곤 수 십 마리가 한꺼번에 대륙에 메테오 수 천 발이라도 쏜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러다간 드래곤 하트라도 마나가 바닥이 날 걸?”


“드래곤? 메테오?”


이건 그나마 좀 익숙한 단어들이었다. 물론 현실엔 없는 거지만.


몇 번 읽어본 판타지 책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판타지 중에서 몇 안 되게 마음에 들었던 책이라 읽었는데, 평생 쓸 일이라곤 없을 줄 알았는데. 설마 이런 자리에서 이런 잡지식이 도움이 될 줄이야.


“왜 그것도 처음 들어봐? 너 진짜 골 때린다.”


“아뇨. 그건 저도 익히 들어본 바가 있습니다만.”


“뭐, 그래도 완전히 골이 빈 건 아닌가 보네. 그런데 대륙 수랑 왕국 수를 모른다니, 이거 완전 어불성설인데?”


“드래곤이랑 메테오에 관련된 책을 읽었습니다. 집에 그런 거랑 관련된 게 몇 권 있거든요.”


“책? 너 설마 잘 사는 집의 자제였냐? 아니면 약소 가문 출신?”


고작 책 사서 보는 가지고 유난을 떠는 안젤라를 보니 약간 그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보된 인쇄술과 인터넷이 발달한 현대에서 책은 아날로그 식의 종이책은 물론이고 디지털 방식의 전자책도 적은 돈만 있다면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런데 겨우 책 좀 있는 거 가지고 가문 출신이냐는 등의 질문을 받으니, 점점 더 안젤라가 내 이해관이랑은 많이 동떨어진 세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겨우 책 몇 권 가진 거 가지고 너무 유난 떠는 거 아닙니까?”


“뭐. 사실 그렇기도 하지. 미안. 난 니가 어디 촌구석에 사는 농부 정도는 되는 줄 알았지. 무식해도 정도껏 무식해야 말이지. 그런데 제법 살았었나보다?”


“촌구석이라니. 저 이래봬도 꽤 이름 있는 대학교 출신입니다. 집은 좀 가난했지만. 그래도 학자금대출은 안 해도 될 정도는 됐거든요? 장학금도 몇 번 받았고요.”


“오. 의외인데? 그래, 그 잘난 대학이름이나 들어보자.”


안젤라가 처음으로 관심을 보였다. 그녀의 얼굴에 호기심이 어린 게 보였다.


“♡♤♧대학이요.”


명문까지는 아니지만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유명한 대학이었다. 물론 좋은 의미로. 인문계 대학교 치곤 평판도 나쁘지 않았고, 교수진이나 재학생들의 인성이나 실력도 제법 발군이었다. 신입생의 정원도도 매일 빈틈없이 꽉꽉 채워서 들어올 정도의 수준은 된다.


그런데 내 대답에 안젤라가 ‘무슨 헛소리냐?’라는 식의 표정을 지으며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엥? 그건 또 무슨 대학이냐? 그런 대학은 난생 처음 들어본다. 아니면 그냥 너희 동네에 있는 분교를 대학이라고 사칭한 건 아니겠지?”


안젤라가 의심이 깃든 눈초리로 바라봤다.


“멀쩡한 대학 맞거든요? 왜 남이 재학 중인 대학을 동네 학교로 치부하는 겁니까? 수도권은 아니지만 경기권에 속해있는 훌륭한 대학입니다.”


나름 대학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재학 중인 대학교의 명성이 깎여나가니 현재 재학 중인 학생으로서 안젤라의 발언은 용인할 수 없었다. 대학교 명성이 곧 내 명성이니까 말이다.


“수도권? 경기권?”


“설마, 모르시는 겁니까?”


안젤라가 수도권과 경기권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느님 맙소사, 이렇게 무식한 여자는 난생처음이다. 대체 얼마나 환상 속에 잡혀 사는 거야!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그것도 모르시면 어쩌자는 겁니까? 제가 보기엔 안젤라님이야 말로 무식한 사람으로 느껴집니다.”


“이게 어디서 막말을. 그보다, 대한민국? 그건 또 어디 동네야? 100명은 살고 있냐?”


“동네이름이 아니거든요? 대한민국을 100명도 안 사는 촌동네로 만들지 마세요.”


어째서인지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언어로는 통하는데 대화는 전혀 통하질 않으니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진지 처음 비웃던 태도는 싹 사라지고 얼굴엔 짜증과 답답함이 차 있었다. 대체 같은 나라에 사는데 왜 이렇게 말이 안 통할까.


“잠깐, 설마···.”


그러던 중 갑자기 계속 고개만 갸웃거리던 안젤라가 갑자기 안색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기고만장하던 그녀의 얼굴빛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파리해보이기까지 했다. 낯빛만 봐서는 악몽이라도 꾸고 일어난 사람 같았다. 아무리 그녀에게 악감정이 있다지만, 안색이 저 정도로 안 좋아지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낯빛이 그리 밝지 않습니다만?”


“으, 응?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야, 그것보다 너한테 잠깐 질문 좀 하자.”


안젤라가 애써 파리해진 기운을 떨쳐내며, 하지만 목소리에 남은 기운은 어쩌지 못한 상태로 내게 질문을 해왔다.


“뭐, 내키는 대로 하세요. 어차피 거부권도 없잖습니까?”


“꼭 말을 해도 싸가지 없게 말하네. 됐고, 너 말이야. 내 질문에 똑바로 대답해.”


“예, 예. 말씀만 하세요,”


어째 안젤라가 많이 긴장한 것 같았다. 뭐가 그리 그녀를 긴장되게 만드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샘솟았다.


잠시 고뇌에 빠진 것 같던 안젤라가 심호흡을 했다. 몇 차례 심호흡을 한 그녀는 마음의 준비라도 된 것인지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진중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너···, 혹시···. 이계인이냐?”




“···글, 쎄요? 아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계인. 굳이 한국어로 풀이하면 다른 세계의 인간. 그 정도면 적당할 듯싶었다.


데스볼, 마법사, 드래곤, 메테오. 이것들만 들었을 때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설마 진짜이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야 그런 것이 정말 말도 안 되고, 과학적으론 해명할 수도 없는데다, 내가 직접 겪고도 설명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래서 그저 단순히 안젤라의 망상이려니 치부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이계인이라는 단어에 호기롭던 태도는 사라지고 갑자기 돌변한 안젤라의 태도. 마지막으로 그녀가 내게 던진 질문. 이 모든 걸 종합해본다면, 한 가지 결과가 도출되고, 이 도출된 결과로 이젠 확신할 수 있었다.




나, 아무래도 이세계로 떨어진 것 같다.




또한 날 이 이세계로 부른 사람이 바로 내 앞에 있는 안젤라라는 것. 다른 건 몰라도 이 사실들만큼은 명백했다.


“똑바로 말해 이 멍청아! 어정쩡하게 말하지 말고! 현지인이면 현지인이다! 아니면 아니다! 제대로 말하란 말이야!”


“저기요, 저는 영문도 모르고 여기로 떨어진 거거든요? 오히려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어야하는 걸 나한테 물으니. 흠···, 어떻게 설명하면 좋으려나···. 아, 그게 있구나. 잠시 실례.”


“야! 어디가! 설명하라니까!”

안젤라가 다급하게 날 불러 세우려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진정시키며 차분히 설명해줬다.


“그러려고 이러는 거 아니에요. 뭐 좀 가지고 올 테니까 잠시만 차분히 기다리고 계세요.”


하도 다그쳐서 내가 이계인인지 아닌지 어떻게 설명할까 고심하던 차에 떠오른 간단명료한 해답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당장 그 해결방안은 지금 방 안에 고이고이 모셔져 있을 지도 모른다.


“있어야 할 텐데···. 밑져야 본전이니까.”


작가의말

그래요. 뭐든 해보는 게 좋습니다. 안 해보고 포기하는 것보다 훨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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