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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의 서재입니다.

대본 삼키는 배우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박석
작품등록일 :
2024.07.02 21:07
최근연재일 :
2024.07.05 22:20
연재수 :
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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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추천수 :
8
글자수 :
20,611

작성
24.07.0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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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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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빙의라도 된 것처럼 ㅡ (3)

DUMMY

한 PD가 코웃음을 쳤던 이유.

그는 한번 제대로 무너진 사람이라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고 믿는 쪽이었다.

실제로 연예계에서 작고 큰 사고에 휘말렸던 사람들······그들 중 태반이 다시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 보기 힘들기도 했고.

게다가 어떻다고 할 만한 커리어가 있는 주도산도 아니었기에.

그런 중에도 박 감독의 차기작, 「구더기」의 대본 리딩은 계속됐다.


― 이번에 받을 돈만 다 받으면, 이 일도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힘들어서 못하겠다.

― ······형님? 지금 그 말씀은.

― 너희들 몫은 섭섭하지 않게 챙겨줄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 그나저나 오늘은 얼마나 받아왔지?

― 가만 보자······.

― 클릭을 딱 하면 바로 딱딱, 나와야지. 이 일 하루 이틀 하는 놈도 아니면서. 내 말이 틀리냐?


사실상, 주도산은 영화 속 ‘용수’에 빙의된 거나 다름없었다.

‘주도산’으로 살 때와는 전혀 다른 얼굴, 말투, 몸짓까지.

조감독의 말마따나 정말 사채업자 한 명을 데리고 온 것만 같았다.


“조금 쉬었다 가죠-.”


박 감독의 말에 10분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그 시간에 흡연을 하는 사람들은 잠깐 자리를 떠났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은 물이나 커피로 목을 축였다.


“저기-.”

“아, 예. 선배님.”

“에이, 그렇게 막 안 그래도 돼요. 편하게, 편하게.”


주도산은 잠깐 자리를 비운 쪽에 속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흡연이 목적이라기보다는······함께 영화 작업에 임하게 될 대부분의 배우들이 담배를 피웠기에.

그들과 말이라도 좀 섞기 위함이었다.

주도산에게 다가와 먼저 말을 걸었던 사람.

그는 주도산과 함께 영화 「구더기」에서 주연을 맡게 된 황성규였다.

전형적인 박 감독 라인.

이전부터 박 감독의 여러 작품에 출연을 한 바 있는 배우였다.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형이라고 해도 돼요.”

“음, 그래도-.”

“정 불편하면 어쩔 수 없······.”

“형, 성규 형.”


황성규는 주도산의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오래전부터 형 팬이었어요.”

“나?”

“네, 박 감독님 팬이기도 했고요.”

“박 감독님이야 그렇다고 해도. 나는 왜?”


주도산은 차마 ‘연기를 잘하니까’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건방져 보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형이 출연했던 박 감독님 영화들. 그 영화들을 보면서 형 연기를 봤고. 많이 배웠거든요.”

“그래? 근데-.”

“······?”

“너도 잘하잖아?”


황성규는 하얀 거짓말을 못 하는 쪽이었다.

박 감독과 마찬가지로 가슴이 시키는 대로 말을 하는 스타일.


“아니에요, 아직 많이 부족하죠. 배울 것도 많고요.”

“솔직히 이번 영화에서 대사 양만 봤을 때. 네가 압도적으로 제일 많은데. 리딩 하면서 한 번이라도 버벅거리는 걸 보지도 못했고. 아까 슬쩍 보니까 대본을 아예 안 보고 리딩을 하는 거 같기도 하던데.”

“아-.”

“얼마나 대본을 달달 외웠으면. 근데 그렇다고 해서 뭔가 기계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아니고. 묘해. 뭔가 너한테 묘한 구석이 있어.”

“감사합니다.”

“나 마음에 없는 말, 못 하는 사람이야. 처음에 박 감독님이 너를 ‘용수’ 역에 캐스팅했다고 하길래. 반신반의한 마음이 컸는데. 이젠 왜 박 감독님이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겠어.”


주도산은 몸 둘 바를 몰랐다.

이전부터 황성규의 팬이었기에.

그런 사람한테 칭찬을 받으니 어쩔 줄을 몰랐다.


“아무튼,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예, 형. 제가 잘 부탁드립니다.”

“······참 묘한 녀석이란 말이야.”


황성규는 피우던 담배를 지져 끄고, 다른 한 손으로 주도산의 어깨를 몇 번 툭툭, 두드렸다.

그러다 멈칫-.


“아, 교통사고 당한 사람한테 실수했네.”

“하하, 괜찮아요. 정말 멀쩡합니다.”

“혹시라도 아프면, 나중에 치료비 청구하고. 그럼 들어가자-.”

“예!”


황성규의 말에 주도산은 두 눈을 똑바로 뜨며,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


*


박 감독의 차기작, 영화 「구더기」의 전체 대본 리딩이 끝난 후.

미리 예약을 해 둔, 근처 한 고깃집에서 작은 회식이 있었다.


“다들 오늘 너무 고생 많으셨고, 술은 적당히, 알아서 드시는 걸로-.”

“고생하셨습니다-!”


주도산은 황성규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제가 고기 구울게요.”

“어허, 어디 환자가. 내가 할게.”

“저 정말 괜찮아요, 환자도 아니고요. 그러니까 제가-.”

“내가 예전에 고깃집에서 알바를 오래 했거든. 그래서 고기 하나는 기가 막히게 구워.”


황성규는 주도산을 비롯해 다른 배우들이 나서려고 해도, 굳이 자기가 굽겠다며 집게를 들고 있었다.


“그나저나 너는 술 못 마시지?”

“아니요, 마실 수 있어요.”

“정말 마셔도 되는 거 맞아?”

“제가 먼저 한 잔 따라드릴게요, 형.”

“그래, 대신 너는 조금만 마셔.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가 너 건강 신경 쓰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고. 막상 영화 촬영 들어갔는데.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후-. 생각도 하기 싫다.”


본래 주도산은 맥주가 아니라 소주를 즐기는 편이었지만.

동료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걱정시키기 싫었고, 술에 잔뜩 취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맥주를 홀짝이는 걸로 대신했다.


“뭐야, 두 사람. 벌써 말 놓은 거예요? 방금 도산 씨가 형이라고 한 거 들은 거 같은데.”

“내가 말 편하게 하라고 했어.”

“그럼 나도 이참에 도산 씨랑 더 친해져야겠는데!”


수십 명이 함께하고 있는 자리였지만.

단연 최고 관심 대상은 주도산이었다.


“메소드 연기란 게 이런 건가, 싶었을 정도니까······.”

“과찬이십니다.”

“아니다, 그러기에는 지금은 완전히 딴 사람이니까. 메소드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네. 아무튼-.”


같이 자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또다시 의아했다.

처음에는 그가 주연으로 캐스팅된 게 의아했다면, 이번에는 다른 면에서였다.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지금 여기에서 보면 욕 한마디 못 할 것 같은 사람인데.”

“그러니까요. 근데 아까 대본 리딩할 때는 얼마나 욕을 찰지게 하던지. 팬티 갈아입을 뻔?”

“그건 너무 갔고-.”


주도산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말들에도 살짝 미소만 머금을 뿐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도, 말할 필요도 없는 본인만의 비밀.


“우리가 계속 이러면 너무 부담스럽겠다. 자자, 이제 고기 먹어도 되니까. 다들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짠-!”


그렇게 영화 「구더기」에 함께 일하게 될 사람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던 중.

다른 테이블에서 누군가가 주도산에게로 다가왔다.

메가폰을 잡게 될 박 감독이었다.


“도산 씨-.”

“네, 감독님.”

“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었는데. 나도 그렇고, 조감독도 그렇고.”

“편하게 말씀하세요.”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담배 한 대 피워도 되냐고 했던 거 기억할 텐데. 실제로 우리 앞에서 태우기도 했고. 그 씬은 담배 피우는 씬이 아니었는데.”

“물론 기억합니다.”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그랬었는지. 그게 궁금해서-.”


주도산은 박 감독의 물음에 길게 고민도 하지 않고 답을 내놓았다.


“그렇게 하면 좀 더 ‘용수’라는 캐릭터에 몰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몰입?”

“거친 욕설을 퍼부으면서 누군가를 압박하는 장면이다 보니까. 제 생각에 담배 한 대를 피우면 더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좀 더 실감나게 연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예.”


주도산이 내놓은 답에 박 감독은 놀란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신인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아직 어떻다 할 만한 커리어가 있는 배우도 아닌데.

그런 배우가 자신 앞에서 그런 생각을 했고, 그걸 행동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얘기는 처음 듣는데? 감독님 앞에서 담배 피우면서 연기를 했었다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 감독님 앞에서?”


바로 앞에서 주도산과 박 감독의 대화를 다 듣고 있던 황성규.

그는 물론, 다른 사람들도 기가 차 헛웃음을 터뜨렸다.


*


드라마 「이혼하고 인생역전」의 마지막 촬영이 끝난 후.

모든 출연진들과 제작진들이 한자리에 모여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이제 겨우 1차인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사람들도 꽤 보였고.


“우리 김 작가님 덕분에 시청률도 대박 나고.”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다른 분들이 수고가 많았죠.”

“한 잔 드릴까요?”

“아뇨, 저는 이제 마실 만큼 마신 거 같아서.”


첫 방영 때부터 꾸준히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 「이혼하고 인생역전」.

한 PD는 입이 귀에 걸린 채로 김 작가를 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환한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불과 몇 분 뒤,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안녕하십니까-.”

“······주도산 씨가 여기에는 왜.”


그토록 그가 비웃었던 주도산이 눈앞에 나타났던 게 이유였다.


“제가 불렀어요.”

“김 작가님이요······?”

“본래 우리 드라마에 출연하기로 했었는데. 안타까운 사고로 그러지 못하게 됐었으니까. 혹시 시간 괜찮으면 잠깐 올 수 있냐고.”


다른 사람이면 몰랐겠지만.

김 작가가 불렀다고 하니, 한 PD는 쉽게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비록 제가 일방적으로 사고를 당했던 거지만. 그래도 죄송한 마음에 인사도 드릴 겸, 잠깐 들렀습니다.”

“지금 몸은 괜찮아요?”

“네, 걱정해주신 덕분에. 제가 혼수상태에 있었을 때도 작가님께서 두 번이나 병원을 찾으셨다는 걸 할머니께 들었습니다.”

“그거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던 거고요. 그리고 미안한 마음 가질 필요 없어요. 도산 씨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으니까.”


애초에 주도산을 「이혼하고 인생역전」에 캐스팅하고 싶었던 건 김 작가였다.

드라마 대본을 쓸 때부터 그리고 있던 이미지.

그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게 주도산이었다.


“그럼 저는 인사드렸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제가 오래 있을 자리는 아닌 거 같아서요.”

“그래요, 아참. 최근에 기사 보니까 박찬오 감독님 차기작에 들어가신다던데.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한 PD는 눈에 가시인 주도산 탓에 연거푸 술만 들이켰다.

그런 주도산이 인사를 하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했고.


“드라마 잘 된 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다음에 또 볼 일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조심히 들어가고요.”


주도산은 모두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당당히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후-, 저기 김 작가님.”

“무슨 문제라도? 한숨을 왜 이렇게 길게 쉬는 거죠?”

“아니, 문제라기보다······이런 일이 있으면 저한테 미리.”

“제가 한 PD님한테 하나, 하나 다 허락을 받아야 하는 존잰가요?”

“······!”

“주도산 씨를 보고 유독 불편해하는 거 같네요. 이상하리만큼 말이죠.”


드라마 대본만 썼다고 하면 대박이 나곤 하는 김 작가.

그런 김 작가에게 감히 대들 수 없는 한 PD는 애써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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