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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의 서재입니다.

대본 삼키는 배우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박석
작품등록일 :
2024.07.02 21:07
최근연재일 :
2024.07.05 22:20
연재수 :
5 회
조회수 :
309
추천수 :
8
글자수 :
20,611

작성
24.07.02 22:20
조회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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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빙의라도 된 것처럼 ㅡ (1)

DUMMY

― 사상자 총 31명······사망 17명, 부상 14명.


주도산은 의식을 차린 뒤로,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경차, 중형차도 아닌······대형차 한 대가 속도 붙은 그대로 버스에 박고 말았고.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만 17명.

부상자들 중에서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 셋.

의사들의 말마따나 다시 눈을 뜰 수 있었던 게 기적으로 보였다.

아직 사경을 헤매고 있는 사람만 셋이나 됐기에······.


“몸은 좀 어때요?”

“······생각보다 괜찮아요.”

“천만다행입니다. 주도산 환자 같은 경우에는 강한 충격에 뇌에도 영향이 간 걸로 보이는데. 이렇게 말씀도 잘하시고, 회복 속도도 빠르시고. 기적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주도산이 또 관심을 보인 게 있었다.

사고가 났던 시점에서 며칠만 지나면 있었던 드라마 첫 촬영.


― 배우 주도산 씨가 교통사고로 인해······.


비록 주연이 아닌 조연이긴 했지만.

너무나도 간절히 바랐던 배역이었다.

그렇지만 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었던 사이, 그 자리에 다른 배우가 들어가게 되었고.


― 첫 화부터 심상치 않은 시청률.


본래 자신이 출연할 예정이었던 드라마는 꾸준히 높은 시청률을 찍으며, 순항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도산은 억울했다.

자신이 사고를 낸 것도 아니었고, 일방적으로 사고를 당한 것이었기에.

직접 발로 뛰며, 오디션을 보러 다녔던 게 떠오르기도 했다.


“우리 집안에 무슨 마가 꼈나. 네 엄마, 아빠도 교통사고로 그렇게 갔는데······홀로 남은 손주도 교통사고를 당하고.”


의사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빠른 회복을 보이고 있던 주도산.

그런 주도산의 옆을 지키던 할머니는 가끔 눈물을 훔치시곤 하셨다.

주도산은 음주운전에 당했고, 주도산의 부모는 역주행 차량에 치여,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

“오야.”

“이제 여기 안 있어도 돼요. 저 혼자서 다 할 수 있으니까.”

“그게 무슨 말이가. 너 퇴원하는 거 볼 때까지는 집으로 못 내려간다!”

“저 때문에 매일 잠도 제대로 못······.”

“나야 살날이 얼마 안 남았지만. 넌 창창한 나이 아니겠나. 잠 좀 덜 잔다고 문제 될 거 하나도 없다. 오로지 너 건강에만 신경 쓰거라.”


주도산은 할머니가 뻗은 손 하나를 꼭 잡았다.

그러며 생각했다.

이번 생은 덤이라고.

분명 꿈에 그리던 드라마에 출연하지 못하게 된 건 아쉽고 억울했지만······하마터면 저세상으로 떠났을 수도 있었던 게 이유였다.


*


“이제 퇴원을 하셔도 괜찮아 보입니다. 다만, 너무 무리는 하지 마세요. 교통사고 후유증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으니까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주도산은 퇴원을 하고 나서야, 할머니를 다시 집으로 보내드릴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퇴원할 때까지는 옆을 지키시겠다던 할머니.


“조심히 내려가세요. 자주 연락드릴게요.”

“그래, 아가. 어서 집에 가서 쉬거라.”

“할머니, 제가 버스 타는 거 보고······.”

“나 혼자 잘 갈 수 있다! 됐고! 네가 빨리 집 가서 쉬어주는 게 나를 도와주는 거다. 알았제? 돈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고.”

“······할머니!”


할머니의 만류에도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같이 가려 했지만, 잠깐 틈을 보인 사이······인파 속으로 사라진 할머니였다.

주도산은 괜히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지만, 겨우 꾹 참고 집으로 향했다.


“저번 달 월세는 안 내도 돼요, 그런 큰일을 당했는데. 내가 어떻게 월세를 받아.”

“그래도요, 받으실 건 받아야······.”

“아니야, 아니야. 이건 아니에요. 다음에 배우로서 성공하면! 그때 한번 사인이나 해 줘요! 그럼 돼요!”


교통사고로 인해 버스 트라우마가 생겨, 주도산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고.

살아서 돌아온 게 고마울 따름이라며, 월세를 받지 않겠다던 집주인의 말에 또 한 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던 것도 잠시.


― 「이혼하고 인생역전」


컴퓨터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드라마 대본이 보였다.

그 대본을 보곤, 주도산은 몸을 일으켰고.

비록 출연은 하지 못하게 됐지만, 아쉬운 마음에 오랜만에 대본이라도 한번 훑어보려 했다.

그렇게 대본에 손을 댔던 순간.


“······!”


찌릿, 하는 감각이 느껴짐과 동시에 대본 내용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입력되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놀란 나머지, 주도산이 황급히 대본에서 손을 뗐지만.

그래도 달라진 건 없었다.


“······뭐야.”


평소 대본 외우는 것에 제일 많은 시간을 쏟았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처럼 보였다.


*


박 감독은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시나리오는 다 써놨지만, 주연 자리 하나가 비는데, 그 자리에 어울리는 배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박 감독이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내뿜고 있던 사이.


“감독님-.”

“······어, 무슨 일이야?”

“담배 너무 많이 태우시는 거 아니에요?”

“내 속이 더 타들어 가는데······.”

“사실은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뭔데?”

“오디션을 보고 싶다는 배우 한 명이 있어서요. 좀 전에 연락이 왔어요.”

“오디션? 누군데?”

“주도산 씨라고······.”


박 감독은 조감독의 말에 커다란 두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리곤 누군지 떠올랐다는 듯.


“내가 아는 그 주도산 씨?”

“네, 얼마 전에 크게 교통사고 당했던.”

“그 사람이 오디션을 보고 싶다고 했다고? 우리 영화에?”

“안 믿기시죠? 저도 안 믿기네요. 그렇게 큰일을 당했던 사람이 기적같이 살아난 것도 신기한데. 우리 영화 오디션을 보고 싶다고 하니까.”

“내가 알기로는 원래 드라마 하나에 조연으로 캐스팅됐던 걸로-.”

“지금 인기 많은 그 드라마잖아요. 「이혼하고 인생역전」이라고.”

“······참. 별일이 다 있네.”


박 감독이 생각에 잠기자, 담배는 빠르게 타들어 갔고.


툭, 툭-.


피우고 있던 담배 한 대를 손가락으로 튕겨 불을 껐고.


“어차피 밑져야 본전인데. 한번 만나보기나 할까요?”

“흠-.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어떤 면에서······?”

“일단 한번 보자고 해.”


박 감독은 의구심이 가득한 얼굴로 또다시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


주도산은 쉽게 믿기지 않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조연으로 출연을 할 예정이었던 드라마 대본.

그 드라마 대본 말고, 다른 대본에 손을 대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대본들이 머릿속에 쫙 입력되는 걸 넘어······마치, 대본 속 캐릭터에 빙의라도 된 것처럼 느껴졌다.


“뇌 손상이 있었다더니······미쳐버린 건가.”


뭐든 좋았다.

뇌가 어떻게 된 것이든, 아니면 정말 미쳐버린 것이든.

억울하고 분했던 마음을 녹이기에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게 됐던 터.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주도산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영화 오디션 하나.

비록 저예산 독립영화이긴 했지만······박 감독이라는 사람의 작품들을 즐겨봤던 주도산에게는 그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실력 있는 감독과 함께 작업을 하며, 하루라도 빨리 배우로서 나아가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주도산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박 감독의 부름에 오디션을 보게 되었던 주도산.


“일단 오디션 보기에 앞서서······몸은 괜찮은 건가요?”

“네, 멀쩡합니다.”

“사고를 크게 당한 걸로 아는데.”

“지금 당장은 아무 문제 없습니다.”


여전히 주도산에 대해 의구심이 가득한 박 감독이었다.

잘못됐으면 이 세상에 없었을 수도 있었던 사람.

그런 사람이 자기 작품 오디션을 보겠답시고 와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흠, 그럼 일단 한번 보죠. 사전에 대본 받으신 거 있죠? 고작 몇 줄 대본이긴 했지만.”

“네, 근데 하나 양해 좀 구해도 될까요?”

“어떤?”

“담배 한 대 피우면서 해도 될까요?”

“담배요?”


박 감독은 적잖게 당황했다.

주도산에게 보냈던 몇 줄 대본에는 담배 피우는 장면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편한 대로 하세요.”

“그럼-.”


틱, 틱-.


박 감독의 허락이 떨어지자, 주도산은 품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였고.


― 야이······씹새야. 지금 아구찜 처먹고 있을 때냐?


대본 속 캐릭터 하나에 빙의한 듯.

주도산은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연기를 펼쳐나갔다.


― 확 씨발, 아구를 돌려벌라. 내가 그랬지. 넌 돈 갚기 전까지 나한테서 못 벗어난다고. 근데 이 새끼가 태평하게 아구찜을 처먹고 있네. 어!


주도산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쭉 연기를 이어 나갔다.


― 하, 씨발. 됐고. 그냥 오늘 너 새끼 죽이고 끝내련다. 쓸만한 것들은 팔고, 다른 것들은 그냥 바다에 버려버리고. 야-야! 이 씹새끼 잡아.


주도산은 단순히 암기한 것들을 내뱉고 있는 게 아니었다.

정말 대본 속의 캐릭터가 된 것처럼, 완전히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박 감독에게 깍듯했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날것.

박 감독은 날것 그대로 연기를 펼치고 있는 주도산의 모습에 입이 살짝 벌어졌다.


“이상입니다-.”


주도산은 준비한 연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담뱃불을 지져 껐다.

그 사이, 둘 사이에 미묘한 침묵이 흘렀고.

박 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벌어졌던 입을 다물고, 주도산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잘 봤어요.”


주도산의 연기에 놀란 건 단연 박 감독만이 아니었다.

함께 오디션에 임하고 있던 다른 스탭들도 마찬가지였다.

조감독은 마음 같아선 박수를 치고 싶었지만, 박 감독 눈치를 살피느라 그럴 수는 없었다.


“허허, 참-.”

“······?”

“주도산 씨, 혹시 누구한테 돈 받으러 가본 적 있어요?”

“그 말씀은-.”

“한번 해 본 말이에요. 아무튼 오늘 고생했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주도산은 자리를 뜨기 전, 마지막까지 같은 공간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깍듯했고.

허리 숙여 인사까지 하고 나서야, 박 감독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기, 감독님.”

“네가 무슨 말 할지 알아.”

“예?”

“원래 저 정도로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나?”

“솔직히 저도 좀 놀랐네요. 저 정도는 아니었던 걸로 아는데. 그나저나 진짜 사채업자 한 명 데리고 온 거 같았네요. 연기하는 걸 좀 더 길게 보고 싶었을 정도였으니까······.”

“담배 한 대 피우러 가자.”


박 감독은 조감독과 함께 담배 한 대를 피우러 나가는 길에, 자꾸만 미소가 지어졌다.

감추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정도로······대물 하나를 건졌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고 보니까 담배 피울 생각은 또 어떻게 한 건지-.”


박 감독의 뒤를 따르던 조감독.

그도 혼잣말을 내뱉으며, 박 감독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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