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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의 서재입니다.

대본 삼키는 배우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박석
작품등록일 :
2024.07.02 21:07
최근연재일 :
2024.07.05 22:20
연재수 :
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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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추천수 :
8
글자수 :
20,611

작성
24.07.03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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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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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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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빙의라도 된 것처럼 ㅡ (2)

DUMMY

“차라리 잘된 일이었어.”

“어떤 게요?”

“주도산 씨가 우리 드라마에 안 들어온 게.”


드라마 「이혼하고 인생역전」의 회식 자리.

술에 얼큰하게 취한 한 PD가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이제 와서야 말하는 거지만. 난 처음부터 그 사람이 마음에 안 들었거든. 그런 거 있잖아. 이유 없이 싫은 사람. 근데도 작가님이 픽을 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캐스팅을 했던 거지.”

“그건 그렇죠.”

“뭐, 큰일 당한 건 안타깝게 생각한다만. 듣자 하니까 병원에도 오래 있었던 거 같은데. 이제 배우 인생은 내리막길이라고 봐야지.”

“내리막길이라······.”

“우리 드라마로 확 뜰 수 있는 기회를 놓쳤는데. 너도 알겠지만. 그런 기회가 쉽게 오는 게 아니거든. 아마 두고두고 아쉬워할 거다.”

“그건 그럴 수 있겠네요.”


한 PD는 주도산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을 했던 게 전부였던 그를 조연으로 쓰고 싶지도 않았었고.

솔직히 ‘주도산’이라는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이라고 하잖아요?”

“너 이 바닥 몰라?”

“아, 어느 정도는 알죠.”

“짬밥 먹을 만큼 먹은 놈이 그런 말을 하냐. 됐고, 두고 보면 알겠지. 술이나 한잔 따라 봐.”


한 PD는 내심 장담하고 있었다.

주도산은 배우로서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거라고.


*


박 감독은 큰 고민도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주도산이 연기하는 걸 지켜봤을 때.

그때부터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한 번 더 만나볼 필요는 있다고 판단했고.


“또 만나네요.”

“이렇게 또 뵙게 돼서 영광일 따름입니다.”

“주도산 씨, 혹시-.”

“예?”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서 대본 한 장을 주면. 즉석으로 연기해 볼 수 있겠어요?”

“이 자리에서요?”


이전의 주도산이었다면, 박 감독의 말에 잔뜩 위축이 됐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예, 해보겠습니다.”

“그래요-.”


박 감독은 주도산의 즉흥적인 연기를 보고 싶었다.

좀 더 솔직히는 그의 연기를 더 보고 싶었다.

박 감독의 말이 떨어지자, 조감독이 한 장면이 적혀있는 대본 한 장을 주도산에게 건넸고.

주도산은 그걸 건네받고······.


슥-.


대본에 손을 댔다.

그러자 이번에도 역시나 대본이 완전히 읽혔고.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숨을 한 번 고르고, 두 눈을 살짝 감았다가 뜨며 곧바로 연기를 펼쳐나갔다.


―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그건 알고 있을 거고. 이유나 한번 물어보자. 이번에는 왜 또 돈을 빌리려고 하는 건지.


주도산은 거리낌이 없었다.


― 어머님이 아프시다? 내가 그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야, 너랑 나랑 그래도 봐 온 정이 있어서 하는 말인데. 돈 앞에서는 친구고, 가족이고 없다. 아무튼 진짜 마지막이니까. 그렇게 알고. 만약에 제때 돈 못 갚으면. 그땐 네가 어떻게 될지 기대해도 좋을 거야.


사채업을 하는 ‘용수’가 마지막으로 친구한테 돈을 빌려주는 장면.

이내 ‘용수’의 지시 아래, 녀석 밑에 있는 하나가 돈을 건네고.

친구가 그 돈을 받고 자리를 떠나자······.


― 야, 저 새끼 아직도 도박장 들락거리냐. 후, 씨발······.


담배 한 대를 태우면서 끝나는 씬.

주도산은 대본에 적힌 대로, 담배 한 대를 피우기 위해 손 하나를 품으로 옮기려고 했는데.


“담배는 안 피우셔도 돼요.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희미하게 미소를 띤 박 감독이 주도산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워낙 돌려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

“솔직히 말해서 놀랍네요. 쉽지 않았을 텐데. 잠깐 대본을 보고 그대로 연기를 한다는 게. 그것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박 감독은 주도산이 더욱더 마음에 들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즉흥적인 연기를 보고 싶었던 이유는-. 제가 워낙 영화를 빨리 찍는 편이기도 하고.”


이전부터 박 감독의 팬이었던 주도산도 알고 있는 점이었다.


“저번에 봤을 때는 격앙된 걸 보고 싶었고. 이번에는 저번이랑 좀 다르게 덤덤한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건데. 잘해줬어요.”


박 감독이 좋다면, 다른 사람들도 다 좋았다.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만 좀 아직까지도 걱정인 게.”

“예.”

“방금 말했듯, 영화를 단기간에 몰아서 찍는 편인데. 주도산 씨가 체력적으로 괜찮을지. 그게 좀 걸리네요. 아무리 지금 괜찮다고 해도. 얼마 전에 큰 사고를 당했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

“자신 있습니다. 본래 사고 당하기 전부터 꾸준히 운동을 했었고. 지금도 틈틈이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운동을 하고 있다······.”

“맡겨만 주신다면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박 감독은 순간, 헛웃음이 터졌다.

주도산을 만나면 만날수록 그가 더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긴말할 것도 없이. 이번 작품, 같이 해보죠.”

“그 말씀은-.”

“앞으로 잘 부탁해요, 주도산 씨. 무엇보다 건강에 신경 많이 쓰시고요.”

“가, 감사합니다-!”


주도산은 기분이 너무나도 좋은 나머지, 목소리를 최대한 높이며 허리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제가 고맙죠. 아무튼 그럼 대본 리딩할 때 다시 보는 걸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박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도산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곤 손 하나를 뻗어 악수를 청했고.

주도산은 너무 약하지도, 너무 세지도 않게 그와 악수를 했다.


“감독님, 이런 적은 처음 아니신가요?”


주도산이 떠난 걸 확인하고 나서야, 조감독은 박 감독에게 말을 뱉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맞아, 이런 적은 처음이지.”

“그 정도로 마음에 드셨다는······.”

“어떻게 내가 딱 바라고 있던 사람이 나타난 건지.”


‘용수’를 연기할 사람을 뽑기 위해 수많은 배우들을 만났었지만.

박 감독의 마음에 쏙 드는 배우가 없었다.

그랬던 그에게 불현듯 나타났던 주도산.

박 감독은 하루라도 빨리 주도산과 영화 작업을 진행하고 싶었다.


*


― 배우 주도산, 영화 「구더기」에 주연으로 캐스팅!

― 해외 여러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박찬오 감독의 차기작!


저예산 독립영화들을 찍어왔기에.

박 감독의 작품들이 국내에서 많은 관객들을 동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작품성 하나만큼은 제대로 인정을 받았었다.

그랬기에 언젠가부터 ‘믿고 보는 박찬오 감독 영화’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많이 다뤘기에, 마이너한 장르를 좋아하는 팬들이 꽤 됐다.


― 주도산? 그 배우, 크게 교통사고 당했던 사람 아닌가?

― 사고 난 지 얼마나 됐다고 복귀하냐. 대단하네.

― 그 교통사고로 「이혼하고 인생역전」 놓친 걸로 아는데. 왠지 응원하게 되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도산의 복귀 소식에 의아해했다.

그럴 만도 했다.

자칫 잘못됐으면 생명을 잃었을 수도 있었을 사람이······말이 안 되는 시간 만에 복귀를 한다고 했으니.

게다가 박 감독의 차기작에 주연으로 캐스팅이 됐다는 점에 대해서도 그랬다.

그리고 그건 박 감독의 작품에 캐스팅이 된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본 리딩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이기 전까지는 그랬다.


“정말 말이 안 되는 회복 속도 아니에요? 사고 소식 접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여기에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소식을 접하지 않은 사람은 주도산 씨 보고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는 것도 모르겠어요.”

“아무쪼록 함께 작품을 하게 돼서 반갑습니다.”


주도산은 함께 영화 작업을 하게 될 배우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자신보다 나이가 적든, 많든.

그건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 주도산을 보면서도, 동료 배우들은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다.

단 두 번의 만남 만에 주연으로 캐스팅이 됐다는 주도산.

그의 연기력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다들 모이셨으니까. 슬슬 시작할게요-.”


박 감독의 주도 아래, 대본 리딩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러자, 괜히 긴장이 되기 시작한 배우들은 목을 가다듬거나, 물을 한 모금씩 마셨다.

그런 중에도 주도산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있었다.


“첫 씬부터 가보죠.”


이미 대본의 모든 내용과 상황들이 머릿속에 빠삭하게 입력되어있던 주도산.

대본 리딩은 주도산이 제일 먼저 대사를 치면서 진행됐다.


― 그러게 왜 갚지도 못할 돈을 빌리고 그러시나. 사람 귀찮게 여기까지 오게 하고. 후-.


영화 시작부터 주도산이 맡게 된 배역, ‘용수’는 채무자를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을 해야지. 이런 개새끼가. 아가리 없어? 내가 그 아가리 열어줘?

― ······며칠만 더 시간을 주시면.

― 며칠만 더, 며칠만 더. 그러다가 강산이 바뀌겠다, 이런 씹새야. 네 마누라랑 애들 팰 힘은 있고. 밖에 나가서 돈 벌 힘은 없냐? 하, 이 새끼 안 되겠네. 야, 뺀찌 줘봐. 금이빨이라도 하나 뽑아서 가게.

― 저, 정말 갚겠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 딱 일주일 준다. 그때까지도 돈 안 갚으면 살아있는 채로 땅에 묻어 벌라니까. 그리 알아.

― 무조건 갚겠습니다! 정말······!

― 그리고 이 씹새야, 세상에서 제일 개새끼가 마누라나 자식 패는 새끼다. 알았냐. 이런 버러지 같은 새끼야.


주도산은 단순히 대본에 있는 대사들을 읽고 있는 게 아니었다.

영화 속 ‘용수’에 빙의라도 된 것처럼.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 모습에 함께 대본 리딩에 임하고 있는 동료 배우들이 흘깃흘깃 주도산을 쳐다봤다.

연기력에 대해 의심을 했던 게 미안할 정도로, 주도산은 여유롭게 대본을 보지 않고 리딩을 하기도 했다.


*


같은 시간.

드라마 「이혼하고 인생역전」의 마지막 회 촬영을 앞두고 있던 한 PD였다.


“혹시 기사 보셨어요?”

“뭔 기사?”

“그······배우 주도산 씨 있잖아요?”

“그 사람이 왜.”

“박찬오 영화감독 차기작에 주연으로 캐스팅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뭐? 박 감독님 영화에?”


조연출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은 한 PD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진짜 박 감독님 영화에 주연으로 캐스팅이 됐다고?”

“정말이에요.”

“그 감독님 빡빡하기로 유명한데. 그 감독님이 굳이 왜?”

“그거까지는 저도 잘-.”

“실수를 하셔도 크게 하셨네.”


이내 한 PD는 코웃음을 쳤다.


“예?”

“아이고, 어쩌시려고. 실수를 하셔도 그런 실수를. 뒷감당 어떻게 하시려고.”


한 PD는 확신하고 있었다.

박 감독이 주도산을 주연으로 캐스팅한 걸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거라고.


“똥을 제대로 밟으셨어, 박 감독님. 허허.”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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