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소파앤피자 님의 서재입니다.

엘 누에보 문도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SF

완결

소파앤피자
작품등록일 :
2022.12.25 16:12
최근연재일 :
2023.05.26 06:00
연재수 :
150 회
조회수 :
6,150
추천수 :
158
글자수 :
804,680

작성
22.12.27 06:00
조회
157
추천
2
글자
11쪽

3화

DUMMY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차려놓은 요리들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더니, 노라는 상냥한 미소로 말했다.


“오랜만에 솜씨 좀 발휘했지. 많이 먹으렴.”


그 익숙하고도 다정한 미소 안에는 항상 사라지지 않는 짙은 염려가 들어있었다. 그녀는 오래전에 나가 살기 시작한 아들을 언제나 걱정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로단은 그런 노라가 안심할 수 있도록 전의 불편함을 티내지 않고 대답했다.


“맛있어 보여요.”


그러자 노라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일부터 로단을 위해 남겨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근에 들어 많은 식량을 보존해놓을 수 있었다. 때마침 로단이 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만해도 이만큼의 양은 해주지도 못했을 테니까.


나름 감동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는 로단과 다르게, 리암은 별 말도 없이 급하게 음식만 먹고 있었다. 심지어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입에 쑤셔 넣는다. 물론 저래놓고 몸이 아픈 적도 없어서 딱히 걱정이 되진 않았다.


에밀리는 그런 리암의 옆에 앉아서, 굉장히 추하게 먹고 있는 그에게 한심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제발 말 좀하면서 먹어.”


퉁명스럽게 내뱉는 것과 달리 그녀의 얼굴에도 숨길 수 없는 즐거움이 서려있었다. 가족 전부가 모인 저녁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게다가 간만에 제대로 된 고기요리는 그녀를 더욱 기쁘게 만들었다.


에밀리가 그렇게 갈망하던 사과와 맛있는 저녁식사는 기대했던 만큼 훌륭했고, 식후에 다 함께 한동안 미뤄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밖은 완전히 어두컴컴해져있었다. 리암은 이미 대화의 중간에서 빠져나가 방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그때 노라의 제안이 들려왔다.


“오랜만인데 자고 갈 거지?”


이 집을 떠난 지 오래였지만, 아직까지 그의 침대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게다가 노라의 제안은 왠지 부탁하는 듯한 어조였다. 그래서 차마 그걸 거절하지 못했던 로단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주무세요.”


먼저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일어서니, 아까부터 졸음을 참고 있던 에밀리는 크게 하품을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노라의 팔짱을 끼고 그들의 방으로 들어갔다. 로단은 그들과 반대쪽으로 몸을 틀어 낯익은 방문으로 향했다.


이미 리암은 낡은 침대 위에 누워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 사용해온 오래된 침대였고, 유리도 없이 뚫어있는 창에는 그 위로 여러 종류의 자잘한 천을 이어 만든 초라한 커튼이 함께 달려있었다.


정말이지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났다. 비가 오면 얼굴과 상체가 다 젖어서 꼭 반대로 자야 했다. 그럼 바지가 축축해졌지만 적어도 새벽에 잠에서 깨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아직도 에밀리가 그걸 보고 둘 다 바지에 오줌을 쌌다며 충격을 받던 게 생각났다.


로단은 그와 비슷한 침대에 누우면서 물었다.


“뭘 그렇게 봐?”

“그냥 밖에. 이러는 거 오랜만이네.”

“뭐가 오랜만이야?”

“여기서 같이 자는 거? ...이렇게 말하니까 좀 이상하게 들리네. 우웩.”


리암이 목소리는 여전히 장난으로 가득했고, 로단 그런 그가 익숙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그 발언은 역겨웠으나 순순히 넘어갔다.


“내가 나가 지낸지가 몇 년은 됐으니까, 오래되기는 했네.”

“...자주 좀 오고 그래. 이젠 우리가 여기에 같이 살기는 했는지도 헷갈린다고.”


아직 가벼운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미미하고도 뚜렷한 서운함이 깔려있었다. 그 감정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던 로단은 리암을 힐끗 바라봤다. 그리고 퍽 진지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피가 섞이진 않았어도, 다 내 가족이야.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평소에 감정표현을 잘 하지도 않으면서, 이런 상황일 때에는 또 제대로 했다. 그걸 잘 한다고 해야 할지, 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리암은 로단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알아.”


그 대화를 시작으로, 그들은 마치 십년 전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 난생처음 개구리를 본 일, 몰래 밤에 빠져나왔다가 노라에게 들켜 함께 혼났던 일, 리암이 실수로 쌓여있던 노라의 옷에 불을 붙여서 로단이 편을 들어줬던 일, 에밀리와 셋이 위험지역에 있는 동네로 놀러갔다가 난생처음 노라의 엄청나게 무서운 모습을 본 일까지.


어린아이들처럼 한참 대화를 나누다가, 어느새 자연스럽게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



로단보다 먼저 잠에 들었던 리암이 커튼 틈새로 강하게 쏟아지는 뜨거운 햇빛에 인상을 구기며 눈을 떴다.


“으으- 이 미친 침대... 부숴버리고 싶다.”


좋지 않은 침구로 인해 삐걱거리는 몸을 이리저리 풀면서, 자연스레 로단이 누워있던 침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 후 짜증어린 신음을 흘렸다.


“X발,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신경질적으로 웅얼거리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크게 하품을 하며, 허전하게 비워져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그 위에는 덩그러니 쪽지 하나만 놓여있었다.


[일 때문에 먼저 일어난다. 어머니랑 엠한테 대신 인사 전해줘. 곧 다시 올게.]


그것을 끝까지 읽은 리암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피식 웃고선 방을 나섰다.


노라와 에밀리에게 이 쪽지를 보여주며 로단의 부재를 말하고, 서운해 할 그들을 달래주기위해서.



***



최근에 받은 의뢰는 A지역의 기자로부터 제안 받은 호위임무였다.


전쟁으로 인해 많은 것이 파괴된 이 후로 C지역 끝자락에서 접할 수 있는 매체는 오직 신문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신문은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유일한 정보통이었고, 그만큼 기자에 대한 C지역의 인식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로단도 이런 의뢰의 내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A지역 인간들은 C지역 출신의 용병을 고용하는 걸 많이 꺼려했지만, 기자는 달랐다. 다만 유일하게 특이했던 점은, 그가 무려 천 젠트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보통 기자들이 내미는 시세를 생각하면 보상이 너무 큰 편이었다.


비록 그런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나, 그 기자가 이 주변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을 확률도 있었다. 그런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아니면 그저 자신의 몸을 끔찍이 아끼는 돈 많은 기자일지도 모른다.


로단은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만 가진 채, 일단 약속했던 장소에 나와 그를 기다렸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멀끔하게 차려 입은 중년 남성이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약간 통통한 체격과 선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는 친절하지만 다소 경직된 상태로 물었다.


“저기, 혹시 저와 만나기로 한 로단씨가 맞으십니까?”

“네. 그 기자입니까?”

“맞아요. 아, 저는 노아 퍼셸이라고 합니다.”


로단은 예의바르게 악수를 청하는 손을 마주 잡고 가볍게 흔든 다음,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어디까지 호위하면 됩니까?”


그 단호한 태도가 마음에 들은 노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환해진 표정을 하고 입을 열었다.


“F지역으로 같이 가주시면 됩니다.”

“...F지역이요?”


로단이 자신도 모르게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의아하게 물었다.


이 의뢰자는 지금 말도 안 돼는 장소를 언급하고 있었다.


위험지역인 F지역으로 일부러 가는 경우는 아주,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 어느 누구도, 심지어 노아 퍼셸과 같은 기자들조차 쉽사리 가지 않는 곳이다. 혹 그곳에 가는 기자가 있더라도, 오직 프레스코로 인해 파견된 바옌시나의 단단한 보호를 받으며 들어가는 극소수의 경우뿐이었다.


역시 보상이 비싼 이유가 있었네.


그와 노아를 이어준 중개인은 의뢰자가 아직 장소를 정하지 않았다고만 했다. 아마 수수료를 든든히 채우고 싶어서 한 거짓말이었을 터였다.


전부터 바꿔야겠다고는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꼼수를 부리면 곤란했다.


로단의 의심쩍은 표정을 읽은 노아는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위험지역인 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많은 돈을 제안했던 거고요. 로단씨도 알다시피 워낙 위험한 곳이니까요! 그리고 또-...”


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 초조해보여서 오히려 더한 의심만 안겨주었다.


그는 로단이 자신의 의뢰를 거절할 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로단의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어젯밤 에밀리가 자신에게 단순한 소문이라며 이야기 했던 바이러스가 문득 떠올랐다.


본능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은 그는 바로 얼굴을 구기며 다소 공격적으로 되물었다.


“제가 듣기로는 그곳에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던데, 그것에 관련된 일입니까?”


그러자 노아의 얼굴이 눈에 띄게 창백해지더니 곧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걸 대체 어떻게?’라고 글자 그대로 적혀있는 것 같았다.


다른 기자는 표정관리도 잘 하던데, 이 남자는 가식에 형편없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반응에 자신의 말이 사실임을 확신했다. 왜 그가 천 젠트가 되는 거금을 의뢰비로 제시했는지도 더 잘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무언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세한 사정과 상황을 말해주지 않으면 이 거래는 없던 일이 될 겁니다. 위험할지도 모르는 일에 무턱대고 관련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C지역의 끝자락은 관리를 넉넉히 받기 힘든 지역인 만큼 큰 위험을 부담하는 일은 스스로 걸러내야 했다.


당연히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 또한, 위험을 거르는 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사실 머릿속에서는 아직도 천 젠트가 떠나지 않았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지민의 한 달 평균 생활비가 약 200젠트라는 것만 보더라도 그가 제시한 금액은 꽤 상당한 거액이었다. 무엇보다 그 200젠트 또한 이곳에선 꽤나 부유한 축에 해당하는 생활비였다.


그렇기 때문에, 목숨과 연결된 위험한 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가족이 친절한 이웃에게 받은 그 정체모를 작은 고기를 나눠먹으며 기뻐하는 대신, 질 좋고 커다란 닭고기를, 그리고 만약 운이 더 좋다면 돼지고기까지 먹을 수 있다.


때문에 로단은 타당한 이유만 있다면 이 임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조용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가만히 그런 그의 눈치를 살피던 노아는 결국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리고 유약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꽤 강단있게 대답했다.


“...여기는 듣는 귀가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 조용한 곳에서 말씀드리죠.”


그렇게 말한 후 노아는 그들의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그 움직임은,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누가 들을까봐 걱정하는 것 보다는, 누가 그들을 쫓아올 거라는 두려움에 가까웠다. 두 사람은 아직 위험지역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다음 로단을 향해 그를 따라오라는 것처럼 가볍게 손짓했다.


로단은 이상하리만큼 서두르는 노아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 무슨 소리를 하나 들어보고, 그 후에 결정할 생각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엘 누에보 문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30화 23.01.23 50 1 11쪽
29 29화 23.01.22 49 1 12쪽
28 28화 23.01.21 55 1 11쪽
27 27화 23.01.20 53 1 11쪽
26 26화 23.01.19 54 1 11쪽
25 25화 23.01.18 60 1 11쪽
24 24화 23.01.17 59 1 11쪽
23 23화 23.01.16 65 1 11쪽
22 22화 23.01.15 65 1 12쪽
21 21화 23.01.14 62 1 13쪽
20 20화 23.01.13 63 1 11쪽
19 19화 23.01.12 64 1 11쪽
18 18화 23.01.11 67 1 12쪽
17 17화 23.01.10 64 1 11쪽
16 16화 23.01.09 67 1 11쪽
15 15화 23.01.08 68 1 11쪽
14 14화 23.01.07 69 1 12쪽
13 13화 23.01.06 68 1 12쪽
12 12화 23.01.05 71 1 11쪽
11 11화 23.01.04 71 1 12쪽
10 10화 23.01.03 77 1 11쪽
9 9화 23.01.02 76 1 11쪽
8 8화 23.01.01 87 1 11쪽
7 7화 22.12.31 93 2 11쪽
6 6화 22.12.30 90 2 11쪽
5 5화 22.12.29 100 2 12쪽
4 4화 22.12.28 123 2 11쪽
» 3화 22.12.27 158 2 11쪽
2 2화 22.12.26 218 2 11쪽
1 1화 22.12.25 539 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