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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태건

The Sign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정상영태건
작품등록일 :
2021.07.08 18:39
최근연재일 :
2021.07.13 15:16
연재수 :
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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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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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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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13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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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The Sign (5)

DUMMY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그간의 일들이 언제 어떻게 폭로될지 모르는 처지였던 만큼 나는 은밀히 가슴을 졸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자신의 지분을 주장하지 않았다.


아버지 말로는 추가로 준 사례금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일는지를 가지고 아버지는 고민을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돈이 부족해서 더 달라고 눈치를 주는 건지, 아니면 다른 원하는 것이 있어서 그러는 건지.


고심 끝에 아버지는 선생님을 다시 저녁에 초대했다. 감사인사를 하는 내게 선생님은 평소처럼 무심하게 말했다.


“누가 해준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다 네 경험을 가지고 만든 거니까.”


여자의 육감이었는지, 그 동안 선생님을 내내 못마땅해하던 어머니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며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갔다.


그 다음 달에 선생님은 내게 어딜 간다는 말도 없이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서울에 더 좋은 직장을 구했다는 소문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당장 다음 글부터가 문제였다. 돌연 앞일을 장담할 수 없게 되고 보니 불안하고 비참했다.


그 불안 속에서 나는 내가 그 방면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게 일말의 재능이라도 있었다면, 선생님 없이도 해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믿고 크게 동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현실이 녹록할 리는 없었지만, 그때 혼자 힘으로 뭐든지 해보기 시작했더라면 정말 작가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은 되돌릴 수 없다.


*


1심 판결이 확정됐다. 병호의 정당방위가 인정되기는 했지만, 그건 석구를 죽인 것까지만이었다.


석구가 칼에 찔린 것을 본 다른 공격자들이 폭행을 멈췄음에도 다른 두 명을 더 찔렀던 데 대한 살인미수 혐의와, 도망치는 놈들을 굳이 쫓아가서까지 위협적으로 칼을 휘두른 특수폭행 혐의가 인정되었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사건이 되다 보니 세상의 이목이 집중돼 있었다. 더군다나 대통령이 개입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건이었으니 사법부로서도 어지간히 조심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재판부는 단기 3년 장기 5년의 징역형을 내렸다.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상당히 관대한 판결이었다.


병호의 변호인은, 그런 정치적인 정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소하지 않았다.


소년범이었기 때문에 일반교도소에 수감되지는 않았지만, 고등학교에는 다닐 수 없었다. 그래서 병호는 고등학교를 구경도 해본 적이 없다. 이후로도 그때 잃어버린 시간을 돌려받지 못했다.


분식집 아줌마는 관리소홀로 인한 과실치사 혐의를 인정받아 유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형 집행은 유예되었다.


나는 세상이 전혀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그리고 그 불공정이 내게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내 죄는 어디에도 기소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심판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살아남은 가해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면죄를 받은 것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내 죄책감을 감경해주었다.


나는 위안을 느꼈다. 그놈들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내가 직접 재판정에 가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소식을 전해 들었을 뿐이다. 그때는 너무 바빴고, 준비할 것들도 많았다.


*


대통령이 나와 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했기 때문이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대통령에게 있어 그 사건은 정치적으로 상당히 좋은 선전거리였다.


중학생이 신문에 올린 호소문을 보고 철저한 재수사를 명했던 대통령의 선견지명을 빛내주는 사례였다. 기념하려는 것도 당연했다.


청와대 홀에 나란히 서서 대통령이 입장하기를 기다리던 동안, 나는 잠시 한눈을 팔았다. 석연치 않은 그림자가 멀찍이서 느껴졌다. 눈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직감으로 느껴졌다.


소각장에 있던 그놈이었거나, 혹은 다른 녀석이었던 것 같다. 그날 내게 말을 걸었더라면 알 수 있었겠지만, 어떤 말도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어느 쪽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고개를 다시 돌려보니 대통령이 눈앞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무슨 마술쇼를 보는 것 처럼. 나는 깜짝 놀랐다.


대통령은 말없이 활짝 웃어 보이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얼결에 그 손을 잡고 악수를 하는데 갑자기, 이유도 없이 울음이 터졌다. 지금도 심히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는 일들 중 하나다.


대통령은 허허, 소리 내어 웃었다.


“긴장한 모양이구만 그래.”


대통령은 집에 놀러왔던 손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달랬다. 인자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손이 내게 와 닿던 순간 어쩐지 온몸의 솜털이 다 곤두섰다.


인터뷰를 하러 왔던 리포터들의 사전교육 덕분에 제대로 인사치레를 할 수 있었다. 처음에 광고를 냈을 때부터의 일들을 참 길게도 감사했다.


물론 대통령이 듣고 성에 찰만한 미사여구는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눈물을 흘렸던 덕에 잘 넘어갔던 것 같다. 영락없는 어린애로 보였을 것이다.


대통령이 덕담 몇 마디를 하기는 했지만, 기억에 남는 말은 없었다. 그보다 음식이 맛있었다. 뭘로 만든 건지 궁금해질 정도로.


하지만 나중에 아버지는 그날 음식 맛이 어땠는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내가 너무 뚱한 얼굴로 앉아있었던 탓에 식은땀이 흘렀고, 긴장한 탓에 음식 맛도 못 느꼈다는 거였다.


그 외에 다른 일은 없었다. 금일봉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모르기는 해도 과외비로 선생님에게 줬던 돈과 비슷하거나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


대통령에게도 좋은 기회였지만, 나에게도 그랬다.


나는 대통령이 공인해준 문학천재쯤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내 소설이 실린 신춘문예 수상작 문집은 전에 없이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천재, 문단의 총아, 개천에서 난 용. 어처구니없는 말들이 따라붙었다.


출판사 사장들이 집에 공짜 책을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다음 소설을 계약하자고 애걸을 했다.


집밖에 나가 돌아다니기만 해도 사람들이 나를 알아봤다. 옷 대신 자루를 뒤집어 쓴 것처럼 거북했다.


아버지는 여기 저기 불려 다니면서 술을 마셨다. 취하지 않고 집에 들어오는 날이 드물었다.


지금도 나는 거기까지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러다 말았으면. 적당히 유명하고, 적당히 돈을 벌고, 적당히 돈을 찔러 주고, 적당히 굽실대고 적당히...


대통령을 만난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던 아버지는 엉뚱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잔뜩 취한 채로 그전까지는 들어본 적 없었던 단어들을 호기롭게 입에 올렸다.


그 당시 나는 공천, 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텅 빈 하늘을 말하는가 싶어 공허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국회의원 선거는 3년 뒤였다. 그 3년이 아버지의 거의 모든 것을 갉아먹었다.


*


청와대에 다녀온 뒤로 한 달 정도가 지난 뒤에 정권이 바뀌었다.


그해 겨울은 사건사고들이 많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반향이 있었다. 안 좋은 방향으로였다. 그냥 재미로 만들어내 써넣었던 글 몇 줄로 인해 끔찍한 사건이 터졌다.


사실 석구는 동성애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마치 동성애적 성 착취를 자행해왔던 것처럼 묘사했던 것은, 악역들을 더 악랄하게 설정해 상황을 더 비극적으로 만들고 싶어서였다.


어쩌면 놈들을 동성애자로 만듦으로써, 죄 없이 두들겨 맞았던 분풀이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완전히 평정을 잃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일이 꼬이려니 나와 함께 소설을 여러 번 같이 읽었던 선생님도 그 부분을 편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거였다.


병호 사건과 별건으로 추가 수사가 진행됐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피해자 보호 차원에서였는지 내게는 가장 늦게 조사가 들어왔다.


수사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에도, 수사관은 보복이 두려워 그러는 것이 아니냐며 몇 번을 고쳐 물었었다.


하지도 않았던 짓을 추궁 당했으니 억울했을 만도 하다. 그런데 가해자 중에는 조사를 받다가 거짓 자백을 한 놈이 둘이나 있었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수사를 했던 건지 지금도 궁금해질 때가 있다.


죄가 없으면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였다. 가해자 중 한 명의 아버지가 고위급 경찰이었지만, 검찰과 경찰은 엄연히 몸이 달랐기 때문에 별 소용도 없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내 말 한 마디에 달려 있었다. 나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냥 계속 누명을 씌워 놈들이 종래에는 전부 다 거짓 자백을 하게 만들 수도 있었고, 사실을 말해 놈들을 빼내 줄 수도 있었다.


그때 마음이 이상하게 요동쳤다. 동정심이 생겼다. 스톡홀름 신드롬 같은 게 아니었던가 싶다.


나쁜 놈들이기는 했지만, 나와 직접적인 원한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석구가 끌고 온 졸개들에 불과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수사관이 무심코 던져놓은 ‘후환’이라는 말도 무서웠다.


나는 생각보다 더 비겁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것들을 풀어줬던 거다. 방송에 얼굴이 나오고, 유명인사가 되고, 천재 소리를 듣고, 장래까지 안정된 것 같았으니 아주 구름 위에 붕 떠 있었지.


그날의 일로 고마움이라도 느꼈던지, 아니면 수사기관에 끌려 다니며 시달렸던 탓에 어지간히 겁을 먹었던지 놈들은 이후로 내게는 대놓고 눈도 못 마주쳤다.


그 정도면 괜찮게 끝난 것 같았다. 거기가 끝이라고 생각했다. 어리석게도.


수사는 혐의 없음으로 끝났지만, 놈들은 조리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내가 방관자들에게 당했던 것보다 더 심한 일들을 당했던 것 같다.


소설이 나오기 전까지는 같은 편이었던 놈들이 더 지독하게 굴었다고 들었다.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말했겠지만, 군중들에게 있어 사실 여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놈들 중 하나는 아버지에게도 버림받은 것 같았다. 놈의 아버지는 시골구석에서 경찰서장을 해먹다가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타지로 자리를 빼냈지만, 아들을 데려가지는 않았었으니까.


모르겠다. 일종의 거래 같은 게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궁금히 여겼던 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 됐다. 흐흐흐.


*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놈들과 마주쳤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길 양쪽에 서있게 되었는데, 길을 건너려던 듯싶던 놈들은 나를 보더니 발걸음을 돌려 횡단보도를 지나쳐 버렸다. 바쁘게 걸어 나에게서 거리를 뒀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겁 먹고 물러선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날 그놈들은 그냥 길을 지나간 것뿐이었다. 그날 거기에는 생면부지의 중년남자도 하나 서 있었는데, 그놈들이 지나가자마자 “호모새끼들...” 이라고 욕을 하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러다가 나를 발견한 뒤에는 어지간히 대견해하는 얼굴로 말없이 웃어보였다. 그 태도변화가 너무 급격해 소름이 끼쳤다.


가해자들은 지역사회 전체의 증오를 받고 있었다. 놈들의 학원폭력의 가해자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소설 속에서 급우들을 유사강간하고 옥상으로 끌어내 입에 남근을 쑤셔 넣었던 동성애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소설 속의 호모들이어서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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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ign (5) +1 21.07.13 1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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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e Sign (3) 21.07.11 2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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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Sign 21.07.09 4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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