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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태건

The Sign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정상영태건
작품등록일 :
2021.07.08 18:39
최근연재일 :
2021.07.13 15:16
연재수 :
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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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수 :
25,647

작성
21.07.1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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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The Sign (2)

DUMMY

하지만 모두가 보는 앞이었다. 그것만 아니었더라면 석구도 적당히 끝내고 갔을지 모른다.


잠시였지만 기이해 보일 정도로 주춤했던 석구는 손상당한 위신을 보상받기 위해 더 지독하게 굴기 시작했다.


나는 발길질 한 방에 쓰레기통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일어설 수 있었지만 일부러 쓰러져있었다. 비굴하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나이를 먹고 난 뒤에는 실컷 두들겨 맞고 합의금을 뜯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그 시절에는 그게 왜 그렇게 두려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운명이라는 덫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던 것은 석구였다. 그 자신이 짜놓은 올무였다.


병호는 나 대신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밟히고 얻어맞았다.


다른 반에서 몰려온 구경꾼들이 복도 밖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놈들을 전부 다 죽여 없애고 싶었다.


“끝나고 소각장으로 와라. 둘 다.”


어지간히 당한 것 같았는데도 더 남은 게 있다는 말에 나는 절망에 빠졌다. 죽을힘을 다해 결승점을 통과했더니만 또 다른 고난의 경주가 예정되어 있었던 거다.


병호는 별 일 없을 거라는 듯 내 어깨를 손으로 툭 치고 끝내 체육복을 빌려갔다. 하지만 벌겋게 변한 얼굴이 부어오르고 있었다. 뭘 믿고 그렇게 겁이 없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병호는, 폭풍은 언젠가 그치기 마련이라는 삶의 지혜를 이미 깨우치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고립을 의미했다. 함께 고초를 겪었던 병호조차도 내 마음을 몰라주고 있었던 거다.


모르고 있었다. 내 속에서 미친바람이 일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누구도.


*


위로를 해주는 놈도 하나 없었다. 시기심 때문이었는지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지금도 알 길이 없다. 다들 고개를 처박고만 있었다.


덕분에 나는 완전히 냉정을 잃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임당할 거라는 망상에 빠졌다. 혹시 소각장에서 만난 그 소리가 그때도 나를 조종했던 것은 아닐까.


그날 오후 수업시간에 누가 들어와서 어떤 소리를 지껄였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수업시간 내내 석구를 죽일 궁리만을 했다.


결국 나는 초등학교 시절 병호가 큰 사고를 쳤던 날을 기억해냈다. 꼭 내가 모르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던 병호의 얼굴과 그 손에 들려있던 필기구. 사람 얼굴에 필기구를 꽂은 뒤 아예 쑤셔넣던 그 손에 칼이 들려진다면 어떨까.


소각장에 칼을 하나 숨겨 놓으면?


물론 멍청한 계획이었다. 영화 대부에서 알 파치노는 화장실에 숨겨놓았던 권총으로 아버지의 원수를 갚지만, 그건 총을 쏠 사람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칼이 병호의 손에 들어갈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칼이 있는지 아예 알아차리지 못할 공산도 컸다.


그럼에도 나는 바로 다음 쉬는 시간에 학교 담을 넘었다.


사람 없는 골목을 골라 달렸다. 철물점은 너무 멀었다. 나는 금방 지쳤다.


분식집 앞에서 나는 멈춰 섰다.


분식집은 가게이기도 했지만 한 가족이 사는 살림집이기도 했다. 비좁았다. 그래서 만두를 찌는 솥이 아예 가게 밖으로 나와 있었다.


솥 뒤에는 섀시와 강화유리로 된 벽이 있었고, 그 유리 너머에는 김밥을 말아 써는 도마와 칼이 놓여 있었다.


어디 배달이라도 나갔는지 아줌마가 보이지 않았다. 날이 더워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가까운 곳엘 가 있어서 그랬던 건지 몰라도 출입문까지 활짝 열어놓은 채였다.


가게는 비어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열린 문을 향해 다가갔다. 등 돌리고 앉은 것들 뒤로 다가서는 고양이과 맹수처럼.


민트색 칼자루 때문이었다. 그게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 만일 칼자루가 다른 색이었다면? 물 건너온 칼이라고 평소에 자랑을 해대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까. 아니, 잘 모르겠다.


나는 열린 문을 통해 가게 안으로 오른팔만 밀어 넣었다. 차마 가게 안으로 몸까지 밀어 넣지는 못했다. 죄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몸은 밖에 그대로 놔둔 채로 칼을 훔치려니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안으로 들여놓자마자


“엄마야?”


라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지만 가까스로 서 있었다. 분식집 가장 내측에 있던 방에서 난 소리였다.


방 안에 사람이 있었다. 가게 문뿐만 아니라 방 문까지 다 열려 있어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분식집 막내딸이 앉은뱅이책상을 놓고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가만 보니 선풍기를 틀고 앉아 공부를 하고 있다가 등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물어본 모양이었다.


뽀얀 볼과 목이 예쁘고 고왔다. 그 딸을 보기 위해 일부러 분식집에 가는 놈들이 있을 정도였다.


나와 동갑이었던가 한 살이 어려서 같이 중학생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해서 그 시각에 가게에 있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말없이 거기서 더 몸을 더 들이밀고 칼자루를 잡았다. 급히 칼과 몸을 분식집에서 빼냈다. 한 순간이었지만 몸과 칼이 하나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이 분식집 막내딸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기억됐을지 지금도 나는 모른다. 그대로 계속 공부를 했을지, 뒤를 한 번이라도 돌아봤을지, 아니면 가게 입구까지 걸어 나와 주변을 살폈을 지의 문제가 이제야 궁금하다.


어쨌거나 잠시나마 검신일체의 경지를 맛본 나는 칼을 품에 안고 바로 뒤돌아섰다. 그러나 하복은 반팔이어서 칼을 숨길 수 없었다.


나는 무가지 함에서 신문지를 꺼내 칼을 감췄다.


교복차림이었고 백주대낮이었다. 정말 아무도 그 광경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물론 거창한 상가가 들어서 있던 것은 아니었고, 고작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장사를 하는 분식집 중국집 문방구 체육사 정도가 있었던 곳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곳에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까? 정말로?


교복차림으로 분식집에서 칼을 훔쳐 나오는 중학생을 누구 한 명이라도 수상하게 생각했다면? 그 애를 붙잡아 사정을 물었다면? 잡아놓고 타일러서 집에 보냈다면?


내 삶은 지금과 달랐을까.


아니. 소용없는 망상이다.


애초에 이유 없이 두들겨 맞은 신웅이를 보고도 못 본 척을 했던 것부터 일이 시작됐으니 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나도 방관자들 중 하나였다. 나 역시 똑같은 악이었던 거다.


*


소각장에 칼을 숨기고 나서 도망친 나는 버스정류장으로 갔지만 버스를 타지 못했다.


자가용을 타고 지나가던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고 차창을 내렸다.


우태의 아버지였다. 왜 하필 그 사람이었는지 모르겠다. 당시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어딘가 시간 때울 곳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이 아파서 조퇴하려고 한다는 내 말을 믿고 나를 태워 집까지 데려다줬다.


생각보다 너무 간단하고 편하게 집에 도착했다. 나는 정원이 있는 양옥 2층 내 방 침대에 푹 쓰러져 가슴을 졸였다.


휴대폰이라는 게 없던 시절이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나 집은 늘 그랬던 것처럼 안락해졌다. 그때까지의 일들이 전부 다른 세상의 일 같았다.


*


내가 내 방 침대에 누워 설핏 잠이 들었던 그 시간,


소각장에서 집단구타를 당하던 병호가 바닥의 칼을 집어 들고 석구를 찔렀다.


열네 번을 찔렀다고 했다.


석구는 현장에서 즉사했고, 다른 놈 두 놈이 더 찔려 병원으로 갔다.


병호는 피 묻은 칼을 들고 파출소까지 걸어가 자수했다.


칼로 찌른 놈은 제 발로 파출소로 갔고, 찔린 놈들은 공중전화로 119를 불렀다.


학교에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


병호는 그날 수업이 끝나고 난 뒤 나를 데리러 교실로 왔었다. 같이 도망가자고 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내 자리가 치워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 혼자서 소각장으로 달려갔다.


교실에 있던 놈들 중 아무도 내가 진작 무사히 도망쳤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았던 거다.


*


내 예상과는 달리 뉴스에는 병호의 일이 나오지 않았다. 대서특필될 줄 알았던 나는 이곳저곳을 다 찾아봤지만 소용없었다. 아예 이야기 자체가 없었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큰 변화는 없었다. 학생주임에게 끌려가서 입 꼭 다물고 있으라는 엄포를 들은 것 말고는 별 일이 없었다.


교장 교감이 수업 중에 자꾸 교실 뒤에 와서 돌아다녔다. 담임은 조회 종례를 할 때마다 내 눈치를 봤고, 국어는 내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병호의 일은 그 다음 주가 되어서야 기사화됐다. 조그만 기사였다.


현실이 완전히 왜곡돼 있었다.


병호는 급우와 다투다 분을 참지 못하고 칼질을 한 정신병자로 매도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석구하고 같이 병호를 두들겨 패고 있던 놈들 중에는 경찰서장 아들이 있었다.


CCTV가 없던 시절이었던 데다 다들 겁을 집어먹고 몸을 사려 목격자도 나오지 않았다. 원하는 대로 꾸며대기 좋았다.


*


괴로웠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나는 일의 전말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일의 경과를 분명히 해서 어디에든 알리고 싶었다. 아버지에게도 도움을 구했다.


마침 아버지의 지인 중에 지역신문사의 사장이 있었다. 노트가 그리 흘러들어갔다.


*


다음날 그 지역신문에는, 한 면을 다 차지한 전면광고가 실렸다. 학원폭력에 시달리다 불가항력으로 살인을 하게 된 친구를 구해달라는 글이었다.


내가 노트에 정리했던 사실관계들은, 몇 사람을 거치는 동안 전혀 다른 글이 되어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게 내가 쓴 글이 아니었던 줄 알았다.


나는 노트에 글을 적는 동안 대통령을 언급하지 않았던 것은 물론, 대통령 생각도 하지 않았었는데, 신문에 실려있던 글은 한 시골 중학생이 대통령에게 올리는 애절한 호소문이었다.


지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그 일로 인해 나는 여러 차례 교무실로 불려갔지만, 아버지 친구였던 변호사가 시키는 대로 대답을 했더니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않게 되었다.


같은 반 애들이 대놓고 나를 따돌렸던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 재판을 받게 된 병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것 같아서 다소 죄책감이 옅어졌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한 동안 잠잠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가다가 그냥 지나가버릴 줄 알았다.


*


병호의 사건을 왜곡 보도했던 신문사와 경쟁관계에 있던 일간지가 그 사건을 기사화했다.


유명일간지 전면광고에는 꽤 큰돈이 들었지만, 아버지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그 돈을 다 부담했다. 병호는 집에 몇 번 놀러온 적은 있었어도 아버지와는 일면식도 없는 처지였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뒤늦게 병호의 얼굴이 뉴스에 나왔다.


대통령이 호소문에 응답을 했다.


일이 너무 커지고 있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두려움이 느껴졌을 정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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