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정창영태건

The Sign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정상영태건
작품등록일 :
2021.07.08 18:39
최근연재일 :
2021.07.13 15:16
연재수 :
5 회
조회수 :
127
추천수 :
2
글자수 :
25,647

작성
21.07.12 15:16
조회
18
추천
0
글자
12쪽

The Sign (4)

DUMMY

내 소설을 다 읽고도 아버지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뭐하는 거냐고 혼을 낼까봐 나는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만히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깔면서


“너는 천재였구나.”


라고 말했다.


중학생이 태어나서 처음 써본 소설이 그렇게까지 거창한 것일 리 없었지만, 나는 철없게도 그 말을 믿어버렸다.


아버지가 그런 반응을 보였던 이유를 추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떻게 봐도 좋은 글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지옥 같은 학창시절을 거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공감대가 있기는 했다.


그리고 그것 외에도 공감의 축이 하나 더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버지들의 세상에도 석구 같은 놈들은 있었다. 그런 놈들은 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공장 두 개를 가지고 있는 지역유지였지만,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시시때때로 명목도 없이 돈을 뜯기고 있었던 피해자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어디에서건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그렇다. 요즘은 사업자등록을 해놓고 돈을 좀 만지면 어떻게 알아냈는지 바로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전화가 온다고 들었다. 여러 해 전, 그런 종류의 일을 하나 맡아 처리해준 적도 있었다. 깨끗하게.


열심히 벌어봤자 정치인들에게 뜯기고 세금을 내고 나면 고만고만한 돈이 남았던 것 같다. 그런 아버지에게, 병호의 칼에 석구가 죽는 장면은 남다른 감회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이날 이후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내가 천재라는 사실에 한 점의 의문도 품지 않았다.


잔뜩 고무된 아버지가 지역신문사 사장과 직원을 집으로 초대했다. 저녁식사 자리였다. 신문사 사장은 아버지의 지인이었고, 그 직원은 내 노트를 애끓는 호소문으로 바꿔준 장본인이었다.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듣기로는 명문대 국문과를 졸업은 했지만, 민주화시위 전력 때문에 괜찮은 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지인 빽으로 지방신문사에서 꽂혀 박봉에 고생을 하고 있던 처지였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글을 대단히 잘 쓰는 편이었다.


거만하게 굴지는 않았으나 무심해보였다. 긴장하는 기색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집에 놀러왔던 다른 손님들처럼 호들갑을 떨지도 않았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친한 척을 하지도 않았거니와, 애가 똑똑하게 생겼다는 등의 아첨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너였구나. 고생 많았겠다.”


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단 두 마디 말을 했지만 눈이 따뜻했다. 나는 그를, 진심어린 연민으로 당시의 나를 바라봐준 유일한 사람으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말을 듣고 속에서 뭔가 울컥하는 느낌이 있었지만 애써 내색하지는 않았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었다. 고문후유증이 아닐까 하는 지레짐작을 해본 적은 있었지만 입밖에 낸 적은 없었다.


엄마가 열심히 저녁을 차리던 동안, 아버지는 내 원고를 보란 듯이 내놨다.


아마도 자랑하려고 그랬던 것 같다. 노트의 글을 호소문으로 바꿔준 것은 고맙지만, 어쨌든 얘는 이 정도 하는 애였다, 이런 심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원고를 읽어본 사장은 극찬을 했지만, 그는 잘 읽어보지도 않고 대강 종이만 넘기는 것 같더니 말이 없었다.


하지만 문학공모전에 내보라고 할 참이라는 아버지의 설명에는 고개를 갸웃했다. 예의상 그냥 가만히 있으려다가 공모전을 생각중이라는 이야기에 마음을 바꾼 것 같았다.


“이건 카프문학의 아류 정도에 불과합니다.”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기분이었다.


화가 나서 그랬던 건지 부끄러워서 그랬던 건지 몰라도 아버지는 얼굴이 시뻘개졌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했기 때문에 뭐라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어디에 내놔도 떨어질 겁니다.”


아버지는 잠시 말이 없다가 그 정도냐고 점잖게 되물었다. 이후로도 나는 가끔 그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감탄하곤 했다. 만약 거기서 아버지가 화를 냈더라면 이후의 일도 없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좋은 부분도 있으니까... 시간 두고 고쳐 쓰면 좋아질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눈치를 보던 신문사 사장이 끼어들었다.


“그럼 자네가 도와주면 되지. 일 끝나고 나서 잠깐씩이라도.”


그는 내 얼굴을 흘깃 쳐다보고는 말끝을 흐렸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결과까지 좋을지는 잘... 이쪽에는 기준이라는 게 아예 없습니다.”


마침 그때 저녁이 준비됐다. 어른들이 주방으로 사라진 뒤, 나는 원고를 집어 들고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 이상하게 몸이 떨렸다.


*


이후로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집에 들렀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내가 보기엔 가정교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선생님, 이라고 부르자 내게 꿀밤을 먹이고 웃었다.


“형이라고 해 인마. 몇 살이나 차이 난다고.”


하지만 알고 보니 나이 차이는 꽤 컸다.


소설 잘 쓰는 방법을 가르쳐 줄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대신 그는 사건에 대해서 온갖 것을 다 묻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난감했다. 기자의 인터뷰와는 달리 정해진 답이 없었다. 나는 그가 당시 상황을 진정으로 궁금해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런 어른은 처음이었다. 숨길 것이 있었던 나는 극도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강요하거나 윽박지르지 않았다. 내가 너무 긴장을 하거나 지루해하는 것 같으면 어떤 날은 아무것도 안 하고 같이 게임을 하고 놀았다.


이래도 되는 걸까 싶기는 했지만 그는 태연자약했다. 엄마의 눈치도 전혀 보지 않았다.


선생님은 워드프로세서를 잘 다뤘고, 나는 게임에 대해서 빠삭했다. 서로 아는 것을 가르치고 배웠다. 그렇게 진지하게 게임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어른은 이후로도 본 적이 없었다.


사건과 상황을 자세히 파악한 뒤에 수정작업에 들어갔다. 말이 수정작업이지 사실은 다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것이나 매한가지였다.


누가 대신 써주는 게 아니었다. 그는 나로 하여금 직접 소설을 쓰게 했다.


방향을 지시하거나 더 나은 표현을 정해주지도 않았다. 자신이 파악하고 있던 현실 속으로 자꾸 나를 내동댕이쳤다.


그건 어떤 미로 속에 실험쥐를 던져 넣고 빠져나오게 하는 것과 비슷했다. 악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나는 직접 단어를 고르고 문단을 완성해야 했다. 그건 굉장한 고역이었다.


내가 행간에서 허우적대고 있던 동안 그는 글 한 줄을 써주지 않았다. 대신 어떤 것이 더 나은지 끊임없이 선택하게 했다. 내가 칼자루의 지문을 지웠던 것처럼, 선생님 역시 그 글에서 타인이 도와준 흔적을 지우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대신 써준 것으로 의심할 수 없도록.


*


내게 재능이 없다는 사실쯤은 아마 진작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때 나는 그냥 선생님이 원고를 가져가서 대신 써주면 간단하게 끝날 일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글 쓰는 일을 성가셔 하고 있었던 거다.


만약 내게 재능이 있었다면, 나는 그가 제공하는 모든 안내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였어야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내게는 혼자만의 힘으로 스스로가 원하는 방식을 찾아내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다.


*


계절이 바뀌고 다시 동복을 입었다. 나는 바로 하복을 내다버렸다.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기도 했지만, 사실은 징그러워서였다.


그 동안 소설은 아예 다른 글이 되어있었다.


그 글의 주인공은 병호도 아니었고 석구도 아니었다. 물론 나도 아니었다.


군중이었다.


선생님은 당시의 내가 방관자들에게 품고 있던 증오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선생님 역시 침묵하는 다수를 목도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증오를 부추기지는 않았다.


“관조하면 충분해. 증오하지 마라. 그런 건 글 읽는 놈들한테나 던져줘 버려. 더 건조하게 바라보고 제시해야 돼.”


그렇게 말하면서도 선생님은 선생님이 원하는 온도를 내비치지 않았다. 결국 그 소설에는 나의 체온이 반영됐다.


소설이 다 되자 선생님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모전에 내게 하지 마시고, 신춘문예에 응모하게 해주세요. 거기서 소식 없으면 그때는 학생공모전에 보내보시고요.”


아버지는 크게 기뻐했다. 그 말에 첫 만남의 모든 악감정이 다 사라진 것 같았다. 주 1회로 넉 달 남짓 과외를 한 것치고는 꽤 후한 수업료를 지불했다. 엄마가 액수를 가지고 툴툴거리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


최종 퇴고는 선생님이 직접 해줬다. 생각보다 더 용의주도한 사람이었다. 소설 본문에 알리바이까지 만들어 넣었을 정도로 빈틈이 없었다.


선생님은 심사위원들이 대수롭지 않게 보고 넘어갈 만한 비문들과, 중학생이 할 만한 사소한 문법적 착오들을 일부러 본문에 삽입했다.


물론 본질에는 영향이 없었다. 그건 아주 훌륭한 글이었다. 그러나 보기에 따라서는 중학생이 쓴 글로도 보였다.


*


그 해 겨울 유명일간지 신춘문예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방학 중이었다.


전화로 수상소식을 알리려던 것 같았지만, 내가 어린애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신문사 직원은 내일 다시 연락을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잠시 뒤에 전화가 왔다. 심사위원들이었다. 특별시험이 진행됐다. 그런 절차를 겪어야 했던 수상자는 아마 나뿐이었을 것이다.


의심했던 것도 당연하다. 아는 사람들만 알겠지만, 소설 창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원은 작가의 경험이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설사 심사위원들이 납득했다고 해도, 누가 써준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계속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글이 만들어지던 동안 징글징글하게 고민했던 시간이 그때는 약이 되었다. 나는 한 번도 막히지 않고 묻는 말에 대답할 수 있었다.


마치 현실사건에서 나를 삭제해 소설을 썼던 것처럼, 소설이 만들어졌던 과정에서는 선생님을 지워버렸던 거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간단해졌다.


의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소설에 나온 사건의 당사자로 언론을 탄 적까지 있었다.


*


소년등과少年登科라는 말의 한 글자를 바꾼 소년등단少年登壇이라는 말이 일간지 1면에 새겨졌다. 신춘문예 결과가 신문 1면에 등장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졸업을 앞두고는 있었지만, 어쨌든 중학생이 등단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찬사일색이었던 심사평에는 슬그머니 ‘세계최초’라는 단어까지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비문과 문법적 오류들을 우려해 더 경험을 쌓을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기는 했다.


어쨌든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몸과 영혼이 계속 떨렸다. 드럼의 헤드처럼.


당연히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또 방송차가 와서 극성스럽게 마이크를 들이댔지만, 나는 별로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 대놓고 환희하기에는 양심에 찔리는 구석이 너무 많았다.


시무룩한 얼굴로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자 리포터들은 안달을 했다. 하지만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친구가 걱정된다는 내 변명이 나름 괜찮았던지 만족한 얼굴로들 돌아갔다.


그러나 내게 위로의 말을 해주거나 병호를 따로 취재해준 리포터는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The Sign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 The Sign (5) +1 21.07.13 17 1 12쪽
» The Sign (4) 21.07.12 18 0 12쪽
3 The Sign (3) 21.07.11 24 0 11쪽
2 The Sign (2) 21.07.10 28 0 11쪽
1 The Sign 21.07.09 40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