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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태건

The Sign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정상영태건
작품등록일 :
2021.07.08 18:39
최근연재일 :
2021.07.13 15:16
연재수 :
5 회
조회수 :
124
추천수 :
2
글자수 :
25,647

작성
21.07.09 15:16
조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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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The Sign

DUMMY

하늘은 빛나고 있었다.


날이 뜨거웠다. 하복은 반팔 옷이어서 칼을 품속에 숨길 수 없었다. 칼을 신문지에 싸서 손에 들어야 했다.


머리와 폐가 터질 것만 같았다. 폭풍이 일고 있었던 나의 내면과는 달리, 사방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다. 시골 중학교 주변은 원래 그러기 마련이었다. 매미들이 울어대기도 전이었던 모양이다. 너무 평화로워서 가증스러워질 지경이었다.


나는 학교 담을 안으로 끼고 밖을 돌고 있었다. 학교보다 조금 더 큰 동심원을 그리고 있었던 건데, 그래서인지 그 시간은 수학처럼 징그러웠다.


물론 학교 담을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한 손에 칼을 들고도 넘을 수 있을 만큼 낮은 담이 좀체 나오지를 않아서였다. 안에서 밖으로 넘어갈 때와는 높이가 또 달랐다.


나는 너무 어리고 어설펐다. 학교 담을 넘어본 건 그날이 생전 처음이었다.


담 밖에는 수풀과 덤불들이 무성했다. 걷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고달파도 교문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나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야 했으니까.


다행히 담에는 짙은 나무그늘들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그늘을 징검다리 삼아 어둠에서 더 깊은 어둠으로 건너갔다. 달렸다. 금방 종이 울릴 것 같았다.


반팔교복 밖으로 드러나 있던 팔에서도 땀이 흐르고 있었다. 땀은 차가웠다.


억지로 달리던 나는 부러진 잡목에 걸려 넘어졌다. 칼이 돌 위에 떨어졌다.


카칵!


크지 않은 소리였는데도 아찔했다.


김밥가게에서 훔쳐온 칼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인간이 자연에게서 훔쳐낸 장물이었을 것이다.


칼자루가 그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민트색 플라스틱으로 돼 있었다. 그 색을 민트색이라고 한다는 것을 나는 얼마 전에야 알았다.


분식집 아줌마는 그게 일본에 사는 맏사위가 보내준 거라며 자랑을 하곤 했었다. 갈지 않아도 날이 잘 든다면서 늘 자랑을 하면서도, 단단한 것은 썰지 않고 김밥만 썰었다.


그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더라면 나는 그 칼을 생각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계획대로 철물점에 가서 돈을 주고 칼을 샀을 것이고, 그렇게 했다면...


내가 대신 수갑을 차게 됐을까? 아니면...


모르겠다.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 칼은 살인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살인을 원했던 것은 언제나 인간이었다. 칼은, 철광석이 되어 도로 지하로 들어가려는 것처럼 땅에 달라붙어 나를 엿 먹였다. 나는 칼을 집으려다 한 번 더 넘어졌다.


과연 한국산 식도보다 더 날이 묵직하고 튼튼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났다. 날과 자루에는 으깨진 밥풀과 김 찌꺼기가 붙어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칼날에 모래를 뿌렸다. 그러자 손잡이의 지문을 지우지 않았다는 것이 기억났다.


지금이야 상식이 돼있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 정도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미국추리소설 중에서도 최신작만이 지문에 관한 묘사를 넣곤 했다.


공교롭게도 소각장 쪽의 담이 낮았다. 그곳은 약속장소였지만 그날 이후에는 사건현장이 되었다. 한 손에 칼을 든 채로 위태롭게 담을 넘었다.


타는 냄새가 났다. 지옥의 입구 같았다.


소각장에는 쓰레기를 태우는 자체 소각시설이 있었다. 지존파 사건이 터지고 난 뒤로 학교에서 소각장을 없애는 추세였지만, 학교가 너무 외져서 쓰레기 수거가 어려웠던지 아니면 주민 반발이 별로 없었던지 아무튼 그대로 놔두고 있었다.


수돗가에서 신문지에 물을 적셔 칼자루의 지문을 지웠다.


그러는 동안 누구도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지금도 믿기 어려운 일이다.


진짜 문제는 지문을 지우고 난 다음부터였다.


소각장 어느 구석에 칼을 숨겨놔야 좋을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막막했다. 생각해보니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칼은 반드시 병호의 손에 들어가야 했다.

안 그래도 수적인 우세를 점한 놈들의 손에 들어가거나 발견되면 모든 게 허사였다.


뒤늦게 난감해하던 그때 그것이 내게 말을 걸었다. 속삭였다.


분리수거함 밑―


사람의 말소리가 아니었다. 놀라서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오감이 예민해져 있었기 때문에 잘못 들은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소리를 다시 귓전에서 이명처럼 울렸다.


쓰러지다가 거길 손으로 짚을 테니까


나는 그게 뭔지 몰랐다.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기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멈칫하고 있던 사이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조그맣게 웃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자 어쩔 거지?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칼을 대강 던져놓고 교실로 달렸다. 겨우 십 분 조금 넘는 동안 벌어진 일들이었다.


책가방을 챙겨 메고 책상을 빼 청소함 옆에 놨다. 남는 책상인 것처럼 보이려던 것이었지만, 어떻게 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 누군가 불퉁하게 물었다.


“야. 어디 가게?”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교실을 나섰다.


도망쳤다. 모든 일을 병호에게 다 떠넘긴 채로.


사정을 아는 놈들 몇이 나를 벌레 보듯 쳐다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거기 있던 놈들 중 나를 비난할 자격이 있는 놈은 없었다. 쓰레기 같은 새끼들이었다.


다시 담을 넘었다. 착지하다 발을 헛디뎌 대자로 넘어졌다.


하늘이 빛나고 있었다. 칼빛처럼,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환하게.


*


그건 범죄라고 할 만한 게 아니었다. 물론 사람이 죽을 것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건 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미신이나 저주 같은 거였다면 모를까.


그러니까. 그건.

그날 벌어진 일들은.

내 잘못이 아니었어.


*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그 뒤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고 있었다면 나는 소각장에 칼을 숨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 칼로 놈을 죽였어야 했다. 교주가 되기 전에.


*


그날 아침 신웅이가 화장실에서 석구에게 얼굴이 엉망이 될 때까지 맞았다. 그게 그 모든 사건들의 발단이었다.


신웅이는 게임을 좋아해서 집에 가끔 놀러오던 애였다. 슈퍼패미콤을 같이 하면서 논 적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그 광경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화장실 앞에 애들이 잔뜩 모여 있길래 뭐냐고 물었더니 싸움이 났다고 하길래 슬쩍 기웃거리다 교실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그게 싸움이 아니라 일방구타였던 거였다. 옆에서 오줌을 누고 있는데 자기 걸 쳐다봤다는 게 이유였다. 무슨 콤플렉스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신웅이는 정말 안 봤는데 때렸다고 엎드려서 펑펑 울었다. 그렇지만 선생에게 가서 말하지는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석구는 학교에서 제일 악랄한 놈이었다.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다들 방관자였다. 나 역시 그랬다. 그때까지는.


*


하필 1교시가 국어였다.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출석을 부르다 이상을 감지한 국어가 무슨 일인지 캐묻기 시작했다. 그 해에 부임한 초짜여서 뭐가 뭔지 모르고 그런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맞은 놈 본인조차도.


국어는 돌아서서 누구 본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그런데 국어는 제법 예뻤다. 그게 문제였다.


원래 남학교에서야 치마만 두르면 다 예뻐 보이게 마련이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꽤 괜찮았던 것 같다. 좋아했던 게 아니라고 하기 어렵다. 그런 걸 연애감정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몇 번 내가 졸업을 한 뒤의 일들을 상상하곤 했었다.


어떻게 해서든 눈에 들고 싶었다. 거짓말을 했다.


사실 나는 때리는 광경을 제대로 목격했던 건 아니었다. 다 끝난 뒤에 석구라는 놈이 그랬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몰려 가서 구경들을 했는데 설마 나 말고도 본 놈이 더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 역시 사태를 완전히 잘못 파악하고 있었던 거다.


손을 든 놈은 나 하나뿐이었다. 석구가 때렸다는 걸 내게 말해준 놈도 눈깔을 바닥에 처박고 있었다.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지만 도로 물릴 방법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국어와 함께 단 둘이 교무실까지 걸었다. 복도의 시선이 집중됐다. 나는 설레고 우쭐해했다.


밀고의 대가로 거창한 것들이 주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 국어는 학생주임에게 나를 데려가더니 간단한 상황설명을 하고 나를 넘겼다. 그러더니 자기 책상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게 끝이었다. 내가 그리고 있었던 모든 그림들이 한 순간에 다 박살나버렸다. 한 발짝 앞이 지옥이었다.


학생주임은 운동부 감독교사였고, 석구는 운동부였다. 탈출한 노예를 다시 노예상인에게로 돌려보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학생주임은 누가 그랬다는 건지 묻지도 않았다. 다 알고도 그냥 넘기려던 중에 훼방꾼을 만난 모양이었다.


그보다 두려웠던 것은, 학생주임이 내 속을 꿰뚫어보고 있는 듯싶었다는 점이었다. 내가 국어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비웃음. 그 얼굴이 이상하게 악마적으로 보였다.


죽든가 죽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이었다.


학생주임은 교실로 돌아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뭘 기다리라는 건지 그때는 알 수가 없었다.


*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석구가 애들을 다 끌고 교실에 쳐들어왔다.


무서운 놈이라는 말만 들었지 대면한 것은 처음이었다. 고작 뺨 몇 대를 맞았을 뿐인데 온몸이 떨려서 서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수모를 당한 끝에 멱살을 잡혀 끌려 나갈 참이었다.


그때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러더니 기척도 없이 석구와 내 사이에 끼어들어 멱살 잡은 손을 떼어냈다.


힘으로 뜯어낸 게 아니었다. 내가 보기엔 석구가 어이가 없어서 손을 놓은 것 같았다.


“나 체육복 좀 빌려줘.”


석구와 다른 놈들이 아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병호였다.


*


병호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아이였다. 부모 없이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말을 약간 더듬는 편이어서 말을 잘 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대화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술 취한 사람처럼 중언부언할 때가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수업시간에도 아무 이유 없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비를 맞으며 걸을 때가 있었는데, 나중에는 선생들도 말리지 않게 되었다.


몸집이 마르고 약한 편이었다. 중학교 때는 조회를 하다가 간질 발작을 일으켜 모두 보는 앞에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던 적도 있었다.


어떤 때는 바보스럽고 미련해보였지만,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다 보니 모두 조심하는 편이었다.


화가 나서 눈이 한 번 뒤집히고 나면, 나중에는 기억도 하지 못할 끔찍한 짓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


석구가 그런 사정까지 다 알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석구는 찔끔 하고 움츠러들었다. 어떤 육감 같은 게 아니었던가 싶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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