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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은 하셨나요?

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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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연재수 :
400 회
조회수 :
15,953
추천수 :
1,480
글자수 :
2,061,634

작성
23.03.11 18:00
조회
138
추천
9
글자
12쪽

10. 하루1

DUMMY

평화롭다.

너무나 평화롭다.

텃밭에서 뛰노는 키토. 그리고 정겹게 밭일하는 세 사람.

호미로 솎아내고. 쟁기로 밭을 갈고. 소쿠리 안의 씨앗을 뿌리고.

장대비만큼 굵은 땀방울을 흘려가며,

노동의 참된 의미를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


그런데, 지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으아아아악!!! 못 해먹겠다!!!”


호미 잡은 손을 부들부들 떠는 현과장. 그는 자신의 화를 이기지 못하고, 이내 호미를 흙바닥에 내팽겨졌다.


“나 현과장이, 무진 코퍼레이션 영업맨 현 지인 과장이!! 지금 밭이나 갈고 씨앗이나 뿌리고 있다니!!!!”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냥. 어서 호미 집어라냥.”


묵묵히 밭을 갈던 어흥선생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서도 여실히 느껴지는 노동의 고단함. 그 고단함 안에는 수 일간 쌓여온 짜증도 가득 담겨 있었다.


“어흥선생, 여긴 어흥선생의 밭도 아니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비아냥과 서운함이 가득한 현과장의 볼멘소리에, 끝내 폭발하고 만 어흥선생. 그 역시 쟁기를 던지고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으아아아악! 내가 왜 할매 밭을 갈아야 하냥!!! 내가 왜!!!”


바로 그 순간, 키토가 어흥선생의 머리 위로 올라왔다. 그러자,


“현과장, 봤냥? 지금 키토님이 내 머리 위에 올라오셨다냥!”


하늘 높게 부르짖던 짜증은 어딜 가고, 금세 밝아진 어흥선생의 목소리. 심지어 그의 입가에는 기쁨의 미소가 활짝 폈다.


“나, 어흥선생. 오늘 좀 행복할지도.”


진지하다. 이 인간 무척이나 진지하다.

그의 입 주변에 활짝 폈던 미소가, 이젠 얼굴 전체를 뒤덮기에 이르렀다.

정말이지, 이 정도까지 귀여운 것을 좋아할 줄이야. 도대체 현과장 주변에는 제대로 된 사람이 하나 없다.


“모두 새참 먹고 할까~나~”


아니, 아직 한명 남았다. 호리호리한 몸매. 어여쁜 외모의 소유자, 바로 채야가.

채야는 머리 위로 새참을 이고, 사뿐사뿐 걸어와 텃밭에 앉았다.


“모두를 위해 고기도 좀 넣었다랄까~나~”

“고기? 채야는 채식주의자잖아.”

“스테미너 보충이랄까~나~”


황급히 달려와 새참을 바라보는 현과장.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칼국수 위에 고명으로 올린 고기가 그의 시선을 빼앗았다. 정말이었다.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분명 고기가 올라가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런데... 뜨거운 거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이랄까. 땀흘려가며 밭일을 했는데, 뜨거운 새참이라니.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짜증이 용솟음치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열불 터지는데 어떻게 뜨거운 걸 먹으라고,”

“먹고 말해 볼까~나~”


어린아이마냥 입술을 삐쭉 내밀며 반찬 투정하는 현과장에게, 그저 엄마미소로 칼국수를 내미는 채야. 현과장은 내키지 않았지만 칼국수 그릇을 들어 한 가닥 입에 넣었다. 그런데,


“아니, 이 왜... 차가워?”


차갑다. 아니, 시원하다. 활활 타오르던 전신을 단번에 식히는 듯한 냉기가 입안에 감돌았다. 시원한 국물은 오버히트 된 근육을 어루만져 주는 차가운 얼음찜질 같았다.

그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된 현과장. 그는 눈을 싹싹 비비고 다시 한 번 칼국수를 바라봤다. 그러나, 분명 차가운 음식인데도 불구하고, 칼국수에서는 여전히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게 무슨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음식이지? 이거 말이 안 되잖아!


“이거 뭐야. 펄펄 끊는 냉면이야, 뭐야?”

“현과장, 그런 거 좋아하냥? 난 뜨거운 건 좀 그렇다냥.”


어느새 자리를 잡고 앉아 칼국수를 흡입하고 있던 어흥선생. 이미 그는 한 그릇을 다 먹고 리필을 한 상태였다.


“뭐야, 왜 이렇게 빨리 먹어?!”

“현과장이 느린 거다냥. 빨리 먹고 키토님이랑 산책가야한다냥.”


어흥선생의 손놀림이 더욱 빨라졌다. 이에 질세라, 얼굴을 파묻고 칼국수를 들이마시는 현과장. 그 이후로 세 사람 사이에서 더는 대화가 오고가지 않았다. 오직 젓가락과 숟가락 소리만 요란히 들렸을 뿐.

한참동안 입 안에 면발을 들이붓고 있던 현과장.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이상한 감정이 싹을 텄다. 뭔가 찜찜하다, 아니 찝찝하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어색한 이 느낌. 현과장은 그 참을 수 없는 찝찝함에, 그만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왜? 다 먹었을까~ 나~”

“아니. 그런데 채야. 왜 이렇게 찝찝하지?”

“찝찝?”


현과장은 궁금증 가득한 눈으로 채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서서히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 급기야 그녀는 현과장의 시선을 살며시 피했다. 이 장면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그냥 먹어라냥. 어차피 끓이면 다 똑같다냥.”


다 똑같다고? 그럼 어흥선생은 이 찝찝함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말인가?


“어흥선생, 여기에 뭐가 들어간 건지 알고 있는 거야?”


현과장의 물음에, 그저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는 어흥선생. 어흥선생의 눈빛은 진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칼국수 안에 ‘무엇’이 들어갔는지를.

비통하게도, 현과장은 아직 그의 사인을 해석하지 못한 것인지 답답하다는 듯 어흥선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현과장, 현과장이 왜 여기서 밭일을 한다고 생각하냥?”

“그야, 키토님 채소 재배...”


단호히 고개를 젓는 어흥선생. 그의 행동에 채야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


“고양이! 헛소리만 지껄여봐!”


채야의 목소리가 아주 앙칼지게 튀어 나왔다. 잠깐, 이런 장면 어디서 본 거 같은데.


“텃밭일은 채야 혼자도 충분하다냥. 나도 있고. 그래, 현과장의 역할은 뭔 거 같냥?”

“나? 키토님 보호자?”

“그건 내가 할 거다냥. 귀여운 키토님은 내가 보호자 할 거다.”


말꼬리가 사라졌다. 이 남자, 진심이다.


“어, 어... 미안.”

“그래, 고맙다냥. 그럼 현과장, 언제 목욕했냥?”

“언제가 아니라 매일...”


어흥선생의 질문에, 반사적으로 입을 연 현과장은 그대로 그 자리에 굳어져버렸다. 덩달아 굳어진 채야. 둘의 다른 점이라면, 현과장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채야의 얼굴은 토마토처럼 붉어진 점이랄까.


“또! 또! 또! 날 다시마 취급한 거야?”

“다시마 취급이 아니라, 현과장은 다시마였다냥.”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현과장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생각했다. 분명 목욕물은 채야가 손댈 수 없게 전부 버렸는데. 도대체 어떻게 수집한 거지?


“도대체 어떻게...”

“채야는 마녀다냥. 아주 유능한 마녀.”

“고양이! 여물어!”


채야의 윽박에 어흥선생은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눈빛에 가득 담긴 진실을 향한 메시지. 그러나, 그런 걸 읽을 줄 아는 현과장이 아니다. 그는 그냥 대한민국 꼰대니까.


“아니 왜 넣은 거야?!”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될까~나~ 하고.”


수줍게 고개를 숙인 채야. 그녀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살며시 칼국수 그릇을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불행히도, 이 모습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던 현과장. 그는 또 한 번 채야의 육수 내용물이 된 것도 모자라, 그 육수의 시식단이 된 것에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심지어 그 음식이, 자신의 목욕물로 만든 그 칼국수가 맛있다! 자신이 최고의 육수 재료란 사실은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식은땀이 줄줄줄 흘렀다. 온 몸이 흥건해 질 정도로.


“내가 왜! 내가 왜!!!!!”


급기야 정신줄을 놓고 미쳐버린 현과장. 그는 주변에서 놀고 있는 키토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아무도 현과장을 말리지 않았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진.


“키토님~ 키토님은 왜 그렇게 귀여워?”


불쑥 내민 현과장의 손. 그 손은 그대로 키토를 끌어 앉았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알아차리지 못한 두 사람. 그들은 그저 눈앞의 칼국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키토님, 나 땀이 많이 났네~”


키토를 들고 얼굴에 흥건한 땀을 닦아내려는 현과장.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저, 저, 저 저게 미쳤나?!”


먹던 칼국수를 내팽개치고 단번에 날아온 어흥선생. 그는 현과장의 손에서 키토를 때어놓으려 했지만, 현과장은 완강했다. 무척이나 완강했다.


“키토님은 따스한 햇살님 냄새가 날 것 같네~”

“할멈! 그만 처먹고 와서 현과장 때어내!”

“할멈? 지금 할멈...?!!”


할멈이란 어흥선생의 말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채야. 그러나 그녀의 분노도 눈앞에 벌어진 끔찍한 광경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무슨 일??!!”

“말만 하지 말고 어서 와 때어내!!”


다급한 어흥선생의 외침에 그녀도 헐레벌떡 달려와 황급히 현과장을 붙들었다. 하지만, 어째서 인지 결코 키토를 놓치지 않는 현과장. 그의 얼굴에 점점 카토의 뽀송뽀송하고 귀여운 엉덩이가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에취!”


콧물이 흐른다. 다름 아닌 현과장의 얼굴에서.

그의 재체기 소리에 놀라 호아급히 떨어지는 두 사람. 그들의 눈동자에서 걱정과 안쓰러움이 여실이 나타났다.


“아... 나 재채기 한 거 맞지?”

“그런 거 같다냥.”


어흥선생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제야 그는 손에 안고 있던 키토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콧물을 닦으며 어흥선생과 채야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는 현과장. 키토가 그에게서 멀어지자 떠나자, 현과장은 개운한 얼굴로 어흥선생과 채야를 바라봤다. 마치 해탈한 듯한 그의 표정. 그의 얼굴에서 인생의 덧없음이 살며시 느껴졌다.


“여러분. 무슨 일이 있어도 정신줄은 놓지 맙시다. 안 그러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그대로 쓰러져 버린 현과장. 쓰러진 그의 주변으로 채야와 어흥선생이 천천히 다가왔다.


“왜 객기를 부리냥”

“안으로 옮길까~나~”


안으로 옮기자는 말에 의심쩍은 눈빛으로 채야를 바라보는 어흥선생. 그의 시선을 마주한 그녀는 뭔가 뜨끔한 모양인지 서둘러 어흥선생의 눈빛을 피했다.


“할매, 또 욕조에 넣고 육수 빼려고?”

“이래서 눈치 빠른 고양이는! 잔말 말고 옮겨!”


그렇게 현과장은 어흥선생의 어깨에 실려 채야의 집으로 옮겨졌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채야가 멀어지는 어흥선생을 바라보며 함박 미소를 지었다는 것, 그 정도일까. 나.


그렇게 세 사람과 한 마리는 모두 채야의 집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들이 사라자지, 숲 속 저편에서 서서히 움직이는 그림자. 바로 갓패치였다.


“잘들 노는 군. 제정신이야? 숲 주인이랑 같이 지낸다고? 모두 뒤져야 정신을 차리지.”


입에서 흘러나온 거친 단어들과는 다르게 걱정이 가득해 보이는 갓패치의 얼굴. 그러나 그의 불안감은 이내 부러움으로 점차 바뀌어 갔다.


“아무래도 내가 당장 나서야겠군.”


역시나 말과는 다르게 전혀 움직이지 않는 그의 발걸음. 오히려 그의 발은 채야의 집이 아닌, 마을 쪽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터벅거리는 걸음 안에 가득 찬 아쉬움. 그 감정은 어째서인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기에 왜 거짓말을 했어. 그러니까 얘들이 안 놀아 주잖아.


아무래도 다음 화부터는 갓패치도 나와야 할 거 같은데?

안 그러면 쟤 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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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현과장과 갓패치 - 2 +3 23.03.10 165 8 11쪽
8 8. 현과장과 갓패치 - 1 +3 23.03.09 196 9 12쪽
7 7. 나! 돌아갈래! +6 23.03.08 229 11 12쪽
6 6. 등장! 숲의 주인! +6 23.03.07 294 10 12쪽
5 5. 현과장 인 원더랜드 - 4 +5 23.03.06 352 11 11쪽
4 4. 현과장 인 원더랜드 - 3 +4 23.03.05 436 13 11쪽
3 3. 현과장 인 원더랜드 - 2 +6 23.03.04 678 12 12쪽
2 2. 현과장 인 원더랜드 - 1 +6 23.03.03 1,390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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