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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차남이 살아남는 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려개
작품등록일 :
2021.05.26 00:13
최근연재일 :
2021.06.08 21:25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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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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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7,445

작성
21.05.26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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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 소개

DUMMY

오늘이 진짜로 마지막이다.

새벽 기도를 올리는 어머니의 심정이 바로 이러했을까.

부디 오늘에야말로 전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길 바라며, 난 오늘도 마법의 단어를 외쳤다.


“상태창.”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평소와 같은 침대와 이불 그리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허공 뿐.


“어휴...”


한숨이 나온다.

막막해서.


‘이 짓도 이제 1년째인가.’


슬슬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

기도할 때 접싯물도 떠놓아 보고.

생전에는 무교였던 내가 신전 축사도 외워보는 등.


1년 동안 별 지극정성을 다해 빌었는데도 안 들어주시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이 세계의 신님께서는 내게 상태창의 은혜를 내려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데.

역시 이세계의 신님이기 때문일까.

우리 신님께선 그런 속담 같은 건 모르시나 보다.

아니면, 트럭이 아니라 총에 맞아 죽어서 그런 건가?


“망할 힙스터 새끼.”


게임 속으로 빙의시켜 놨으면, 최소한 상태창은 주고 빙의시켜야 놔야 하는 거 아니야?


빌어먹을.


“...됐다.”


나도 이젠 포기하련다.

어차피, 이젠 시간도 남지 않았다.

이제 믿을 건 진짜로 나 자신밖에 없다.


고개를 숙이고 중얼중얼 신님을 향한 불만을 내뱉고 있자.


-상태창! 상태창~!


옆에서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내 친구가 보였다.

백색과 푸른색이 섞인 색.

형태는 구체.

크기는 주먹만 한 정도.


“잘 잤나, 토니.”

-응! 응! 일리야도 잘 잤어?


토니트루스.

번개의 정령이다.

이름이 길어서 토니라고 줄여 부르고 있다.


정령.

판타지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그거 맞다.

보통 엘프가 다루는 힘의 근원으로 묘사되는 설정.

이 게임의 세계관도 그 설정을 충실하게 따라가기 때문인지.

정령 친화도를 가진 인간은 매우 희귀하다는 것이 이 세계의 설정이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정령을 보지도 못하며.

간신히 윤곽만은 볼 수 있는 사람이라도 목소리는 듣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


나는 달랐다.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고 심지어 목소리마저 들을 수 있다.


원작에서 일리야가 정령술에 재능이 있었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으니 이건 내가 가진 재능이겠지.

이 세계에 빙의해버린 내가 가진 유일한 희망이었다.


‘뭐 지금 당장은 무 쓸모지만.’


-?


토니가 갸웃거리더니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무심코 토니의 뺨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러자 토니가 눈웃음을 짓더니 내 손바닥에 볼을 부비부비해댄다.


치유된다.


빙의해버린 삶에서 유일한 청량제가 있었다면 바로 이 녀석이었다

사람이 힘들 때는 애완동물을 키우라던데 왜 그러라는지 알 것 같았다.


토니를 쓰다듬어주며 창밖을 보았다.

보이는 것은 우중충한 새벽안개.

마치 내 인생 같았다.


드디어 내일.

난 북부로 떠나게 된다.


가슴이 무거웠다.



***



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내가 빙의한 이 일리야란 놈이 게임에서 어떤 인물이었냐를 간단하게 설명해보자면.


사실 별로 설명할 게 없다.


그냥 판에 박힌 망나니 엑스트라다.


진짜 그게 끝이다.


게임 초반에 숙청당해 플레이어에게 사이다를 안겨주는 소모성 엑스트라.

그것이 바로 일리야 마이어란 엑스트라다.


아 물론, 망나니 속성을 가진 엑스트라답게 성격 또한 정말로 지랄 맞았다.

도저히 인간이라고도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잔혹한 짓거리를 어릴 때부터 서슴없이 저질러 왔던 게 바로 이 일리야란 놈.

처음 기억이 뒤섞였을 때는 아무리 나라도 토할 뻔했지.


괜히 이 게임의 주인공이 일리야의 친형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목을 날려 버린 것이 아니었다.


판에 박힐 정도에 전형적인 악인.

그렇기에 요즘에는 오히려 쓰이지 않는 구식 캐릭터.

그게 바로 일리야란 엑스트라다.


근데 그게 이제 나다.


하하하.


.....제기랄.


일리야 이 빌어먹을 망나니 새끼.


“합!”


이 모든 답답함을 담아 눈앞의 상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물론 진검이 아닌 목검이었다.

대련에서 진검을 사용할 순 없지 않은가.


눈앞의 기사가 내 공격에 맞춰 검을 휘둘렀다.


딱-


소리와 함께 손이 울린다.

목검과 목검이 부딪치며 나는 기분 좋은 공명음.

그러나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건 절대로 평화로운 풍경이 아니었다.


딱- 따닥-


막고.

찌르고.

베고.

피하고.

다시 막고.

다시 찌르고.


연습을 실전같이.

가문에서 삼고 있는 모토 중 하나다.

마이어 가문은 검으로 유명한 이른바 검술 명가라고 불리는 가문.

마이어 가문의 자식은 어려서부터 검을 배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그렇기에 나 또한 검을 배우는 것이 당연했다.


물론, 제대로 배움을 받기 시작한 건 이제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 망나니 새끼가 지금까지 제대로 훈련을 받았을 리가 없지.


뭐,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검술 명가의 자식답지 않은 어설픈 검술에 대해서 변명 거리를 만들 수 있었으니까.


만약 이 녀석이 성실하게 훈련을 받던 놈이라서.

그래서 일정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던 놈이었다면.

갑자기 어설퍼진 검술에 대한 의심을 피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대련 중에 딴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큭!”


순간.

잠깐 방심한 틈을 타 상대의 목검이 내 목검의 경로에 끼어들어 왔다.

제대로 완성되지 못한 동작이 도중에 무너져 내리며 동시에 내 자세 또한 무너져버렸다.


직후.

내 목덜미에 상대의 목검이 들이밀어 졌다.


“...졌다.”

“수고하셨습니다, 둘째 도련님.”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자 목검이 거두어졌다.


“제기랄.”


허탈한 심정과 함께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내게는 검의 재능이 없다.

그것이 가문의 교육자들이 내게 내린 평이었다.

일리야도 나도 검술에는 영 재능이 없나 보다. 이 비루한 몸뚱이 같으니라고.


내게 재능이 없던 것은 비단 검술뿐만이 아니었다. 이놈에게는 심지어 몸에 대한 재능마저 없더라.

몇몇 신관들이 말하길 내 몸은 근육이 붙기 힘든 체질이라고.


그 말은 수련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실제로 체감할 수가 있었다.

그래도 체력은 좀 늘어나는 것 같던데 아무리 훈련해도 근육은 영 붙지가 않더라.


심지어 본래는 형님이 먹었어야 할 영약까지 훔쳐 먹었는데도 별 효과가 없더라.

물론, 그렇게 중요한 기연은 아니었다.

게임에 조금만 익숙해지면, 오히려 얻기가 귀찮아서 안 먹는 약이었지.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최하급이라도 영약은 영약인데...


쓰읍.


이 몸뚱아리는 아무래도 약빨 또한 잘 못 받는 체질인가 보다.


개발자의 악의마저 느껴질 정도의 처참한 육체.

참으로 게임 초반에 퇴장당하는 소모성 엑스트라다웠다.


근데 이젠 그게 나네?

눈물 난다.


-뀨우?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내게 토니가 다가왔다. 정말로 너 없었으면 진즉에 외로워서 죽어버렸을 거야.


토니를 쓰다듬자 폭신폭신하면서도 찌릿한 게 기분이 좋았다.


진짜 정령 친화도라도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냐. 그럼 정말이지 답도 없는 난이도였을 거다.


“어휴.”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이 나온다.

한숨 쉬면 복 달아난다는데.

애초부터 남아있는 복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주변을 둘러본다.

공작가 차남의 수련장치고는 참으로 황량한 풍경.

있는 것은 나를 포함해 겨우 두 명 뿐이다.


망나니 차남이 다시 수련을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관심을 보인 기사들은 몇몇 있었지만.

내 재능이 금세 바닥을 드러내자 그들은 이내 흥미를 잃고 떠나갔다.


‘혹시나 했지만, 망나니는 역시 망나니군.’


‘사자의 핏줄인 것이 믿기지가 않는군. 어떻게 마이어 가문에서 저런 하룻강아지가 나왔는지.’


-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 아니, 일리야 이 새끼는 개차반 새끼였다.

그렇기에 기사도에 죽고 사는 기사들이 내게 가진 인상은 당연하게도 최악이었다.


‘제길, 생각하니까 또 빡치네.’


차라리 내가 진짜 일리야였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왜 내가 하지도 않은 일도 그따위 기분 나쁜 언사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오늘따라 심경이 복잡하신 것 같군요.”


방금까지 나와 대련했던.

막 신참 티를 벗은 기사가 나를 걱정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저 자는 가문의 기사 중에서 유일하게 내게 우호적인 기사였다.

왜 다른 기사와는 달리 저 기사만은 나에게 우호적인가.


별거 아닌 일이다.

저 기사가 아직 신참이었을 때.

그리고 내가 한창 이미지 개선에 힘쓰고 있었을 때.

아버님의 명령으로 함께 몬스터 토벌을 나선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저자의 목숨을 구해 주었을 뿐이다.

서로가 미숙했기 때문에 터졌던 사고.

그때 입은 흉터가 아직도 등에 남아있다.


“역시 북부로 가시는 것 때문입니까?”

“뭐... 그렇지.”


‘사실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자에게 내 진솔한 심정을 밝힐 수는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내가 빙의했다는 사실까지 말해야 하는데, 그런 걸 어떻게 밝혀.


믿어도 문제고 믿지 않아도 문제다.


내 침묵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몰라도, 기사의 얼굴이 점차 굳어가는 것이 보였다.

직후, 기사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본래는 저 또한 따라가야만 하는 일인데...”


공작가 둘째 도련님의 호위 기사.

그것이 이자의 직책이었다.

그렇기에 본래는, 나를 따라서 이자도 같이 북부로 향했어야만 했으나.


“됐다. 신경 쓰지 마라.”

“하지만...”

“내 배려를 무시할 셈인가? 네 아내와 자식을 생각해라.”


눈앞의 기사는 지난달 딸을 가진 아버지가 되었다.

막 딸을 얻은 가장을 험난한 북부로 데려갈 만큼 난 뻔뻔한 상사가 아니다.


가족이란 중요한 것이니.


“나중에 후회할 짓 하지 말고 지금에나 충실해라. 나 같은 망나니 따위보다 네 자식이 더 귀하지 않나.”

“...그렇지 않습니다.”

“뭐?”


뭔 소리야? 하고 돌아보니.

기사가 비장한 표정과 함께 자세를 잡는 것이 보였다.


“전 아버지인 동시에 일리야님의 기사니까요.”

“.....하.”


괜시리 코가 머쓱해진다.

이래서 기사들이란.


“기사일은 잠깐 휴업하고 당분간은 아버지로서만 전력을 다하도록. 그것이 내가 네게 내린 명령이다.”

“예, 주군의 명령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도련님의 배려가 무위로 돌아가지 않도록.”


당연히 그래야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가족은 중요한 것이다.

있을 때 잘해야 후회가 남지 않는 법이지.


“그럼 오늘 훈련은 여기서 끝마치도록 하지.”

“예, 정리는 제가 할 테니 먼저 들어가셔도 괜찮습니다.”

“그래, 부탁하겠다.”


평소라면 나 또한 같이 정리를 도와주었겠지만, 오늘만큼은 피곤해서 그런지 빨리 땀을 닦아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실, 북부로 향하는 것에 조금은 긴장하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이미 계획은 전부 세워났다 해도.

세상만사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이었다면, 삽질이란 단어가 탄생하진 않았겠지.


‘근데, 지금 와서 이러면 뭐해?’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이제 와서 북부로 가지 않겠다고 하면 그 뒤처리가 더 귀찮아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 망나니에 이어서 겁쟁이란 칭호까지 추가돼버리고 말겠지.


앞으로 가면 음모론이오 뒤로 가면 모욕이라니.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진짜 싫다, 내 인생.


“후...”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이 담긴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여니.


“어?”

“어라? 벌써 끝나신 건가요?”


수통과 젖은 수건을 들고 있는 한 소녀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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