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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얼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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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전시얼
작품등록일 :
2022.05.09 13:26
최근연재일 :
2022.06.09 09:13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5,891
추천수 :
264
글자수 :
122,125

작성
22.05.10 09:16
조회
376
추천
6
글자
9쪽

<2> 고양이의 보은

DUMMY

며칠이 지나고 해 질 녘, 막 식사를 마친 할머니는 귀찮은 표정으로 싱크대로 향했다.


그때 갑자기 들리는 핸드폰 벨 소리에 발걸음을 돌린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렸다.


“전화 올 데가 없는데···.”


안방으로 들어간 그녀는 침대 옆에 놓인 핸드폰의 화면을 보고 두 눈을 깜빡이며 전화를 받았다.


“시우니?”


「할머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어, 뭔데?”


「제가 갑작스럽게 밤에 일이 생겨서 오늘은 못 가게 됐어요. 죄송해요.」


“아···, 알았어.”


「음, 아니면 지금이라도 가서 고양이 밥을 제가 줄까요?」


“어? 아니야, 됐어. 내가 하지, 뭐.”


「무릎이 안 좋으시잖아요.」


“괜찮아, 운동 삼아서 나가면 돼.”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그래, 신경 쓰지 마.”


「아니면 제 친구라도 대신 보낼까요?」


“괜찮다니까? 오랜만에 애기들도 보고···.”


「네, 그러면 어두워지기 전에 천천히 다녀오세요.」


“응.”


전화를 끊은 할머니는 곧바로 눈이 마주친 침대 위의 고양이에게 다가가 앉았다.


“쁘리야, 네 친구들이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지? 엄마가 대신 확인하고 올게.”


고양이는 자기의 머리와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집사의 손길이 기분 좋은 듯 야옹거렸다.




***




한동안 착한 청년 ‘도시우’ 덕분에 수고스러움을 덜 수 있었던 할머니가 집을 나섰다.


그 수고란 것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을 조금 돌아다니며 고양이들의 밥을 챙기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현재 그녀의 무릎에 적신호가 와서 그것마저 매일 다니기가 버거워진 상태였다.


조금 어둑해진 하늘 아래, 그녀는 사료와 물이 담긴 배낭을 메고 골목을 걷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자기의 모습이 마치 30년 전에 처음 ‘캣맘’이 됐던 그때처럼 느껴졌다.


“진짜 눈을 몇 번 껌뻑이니까 이 나이가 됐구나···.”


작은 한숨과 함께 중얼거리던 그녀는 곧 첫 번째 고양이 급식소에 도착했다.


옛날에 비해서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여러모로 좋아진 덕분에 급식소의 관리도 수월한 편이었다.


“누가 밥을 주고 갔네.”


그녀는 이미 다른 캣맘이 사료를 가득 부어놓고 간 걸 보고 물만 새로 갈아준 후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마지막 급식소에 다다른 그녀의 얼굴은 오늘따라 눈에 띄지 않는 고양이들 때문에 섭섭해 보였다.


깨끗이 비어 있는 밥그릇에 사료를 가득 부은 그녀는 자그만 인기척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저편에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낯선 고양이를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어, 넌 못 보던 아이인데···, 누구니?”


털의 상태가 꼬질꼬질해 보였지만, 한눈에 봐도 품종묘였다.


고양이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가만히 지켜보던 그녀에게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결국 바로 옆까지 온 고양이는 급식소 안의 밥을 허겁지겁 씹어서 삼켰다.


“어머, 넌 집을 나온 거야? 아니면···.”


차마 버려진 거냐는 불길한 말을 내뱉을 수 없었던 그녀는 고양이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리고 거부하지 않은 채 밥만 먹는 하얀 털의 아이를 가여워하며 바라봤다.


곧 그녀는 또다시 낯선 기척을 느꼈다.




***




고개를 돌린 할머니의 눈에 보인 건, 저만치에 서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젊은 여자였다.


“공주야! 너, 여기에 있었구나!!”


순식간에 급식소를 향해 뛰어온 여자는 재빨리 고양이를 들어서 품에 안았다.


“어우, 이 녀석아! 얼마나 찾은 줄 알아?”


진한 화장과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지닌 집사의 목소리가 골목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런 상봉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할머니는 자리를 비켜주듯 걸음을 돌렸다.


“잠시만요! ···저기, 우리 아기를 돌봐주신 분인가요?”


집사의 말을 들은 할머니는 얼른 몸을 돌리며 답했다.


“아, 그게 아니라, 밥을 주고 있는데 옆에 오더라고요.”


“어쨌든 굶지 않게 밥을 주신 분이 맞잖아요. 정말 감사해서 어쩌죠?”


할머니는 감격한 상태의 집사와 엄마를 찾은 고양이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저었다.


“에이, 고마워하실 건 없어요.”


“아니에요. 며칠 전에 여길 지나가다가, 그것도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얘를 잃어버렸거든요.”


“아···.”


“글쎄, 병원에 가는 길에 하도 울길래 케이지에서 잠깐 빼줬는데, 열린 창문으로 도망갔지 뭐예요.”


할머니는 집사의 하소연에 어쩔 줄 모르다가 어두워지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 시간이 되시면 보답으로 제가 점을 좀 봐 드릴까요?”


뜬금없는 집사의 제안에 할머니는 당황한 채 두 눈만 깜빡거렸다.


“저, 이상한 사람은 아니니까 안심하시고요.”


할머니는 어딘가 능글맞으면서도 진지한 눈빛의 집사를 잠시 바라보며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




결국 집사를 따라서 어딘가에 도착한 할머니는 어색한 모습으로 차에서 내렸다.


앞장선 집사와 고양이가 먼저 들어간 곳은 도로 옆에 난 작은 골목에 있는 한 가게였다.


점을 봐준다고 했으니 점집이 분명했지만, 왠지 내부의 분위기는 ‘연구실’에 더 가까웠다.


“점집이 아닌 거 같죠?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할머니의 속을 꿰뚫은 점술가는 재밌다는 듯 미소 지으며 모니터가 놓인 책상에 먼저 앉았다.


“자, 앉으세요.”


할머니는 두리번거리다가 이끌리듯 맞은편의 의자에 앉았다.


“일단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어···, 노묘화요.”


“어머! 이름이 예쁘시다. 생년월일은요?”


그렇게 점술가는 할머니의 정보를 얻어낸 후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 사이 할머니의 눈은 점술가 뒤편의 꽤 큰 액자에 걸린 한 남자의 사진을 향해 있었다.


독특한 디자인의 한복을 입은 채 묘한 기운을 내뿜는 남자는 어딘가 점술가와 닮은 듯했다.


“닮았다고 생각하시죠?”


어느새 할 일을 끝낸 점술가는 할머니를 보며 진지한 미소로 물었다.


“어, 맞아요. 근데 친오빠의 사진을 저렇게 걸어놨을 리는 없고···.”


“어머, 예리하시다! 맞아요, 그럴 리는 없죠.”


할머니의 눈빛은 정답을 묻고 있었지만, 웬일인지 점술가는 모니터를 보며 화제를 돌려버렸다.


“이런···, 이게 웬일이야. 할머니, 오래전부터 사랑하는 사람이 계시죠?”


예상치 못한 질문에 놀란 할머니는 잠시 머뭇거렸다.


“예, 근데 그런 것도 점괘에 나오나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점술가는 모니터와 할머니를 번갈아 쳐다보며 뜸을 들였다.


“재밌네요. 어쩐지 낯이 익는다고 했더니···.”


“예?”


할머니는 알 수 없는 점술가의 말 때문에 호기심이 점점 차올랐다.


“아, 내 정신 좀 봐. 마실 것 좀 드릴게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점술가는 금세 유리병에 든 보랏빛 음료를 들고 나타났다.


“우리 공주를 도와주신 분한테 예의가 없었네요. 자, 드세요.”


“어, 단것보다는 그냥 물 한 잔만 줄래요?”


“이건 별로 달지 않지만···, 어쩔 수 없죠. 잠시만요?”


할머니의 반응에 조금 당황하던 점술가는 가져온 음료를 책상에 내려놓은 후 물을 가지러 갔다.


이내 물 잔을 건네주고 자리에 앉은 점술가는 할머니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할머니, 연세치고 젊어 보인다. 그런 말을 많이 들으시죠?”


“뭐, 좀.”


괜히 기분이 좋아진 할머니를 흥미롭게 쳐다보던 점술가는 뭔가 결정을 내린 듯 진지해졌다.


“혹시 저처럼 젊어진다면, 뭘 제일 먼저 하고 싶으세요?”


할머니는 역시 엉뚱한 점술가의 질문을 듣고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저, 할머니의 마음을 알 거 같아요. 아까 말했던 사랑하는 남자···.”


그때 갑자기 책상 위로 폴짝 뛰어 올라온 고양이 때문에 두 사람 모두 정신을 차린 듯 웃음 지었다.


“공주야! 엄마가 일하잖아. 이따가 놀아줄 테니까, 저리 가 있어?”


고양이는 말귀를 알아들은 것처럼 책상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할머니, 집에 컴퓨터 모니터가 있나요? 제가 좋은 걸로 하나를 선물해 드릴까요?”


할머니는 또다시 예상을 깬 점술가의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다가 손을 저었다.


“에이, 무슨 선물까지.”


“영화를 보는 걸 좋아하시잖아요. 엄청나게 크고 좋은 모니터인데, 싫으세요?”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점괘에 나와요?”


점술가는 신기해하는 할머니를 보며 미소만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선물을 거절하지 못한 할머니는 평범한 점괘 이야기를 좀 더 들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차로 데려다준다는 점술가의 제안도 거절하지 못했다.


이후 집에 돌아온 할머니는 신통한 것 같으면서도 엉뚱한 점술가의 언행들을 떠올리며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다 할머니는 꽤 오래 써왔던 컴퓨터 모니터 앞에 선 후 확실히 횡재했다는 기쁨을 느꼈다.


“이젠 더 큰 화면으로 그 사람을 볼 수 있겠구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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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유도된 만남 22.05.12 219 4 9쪽
3 <3> 체인지(change) 22.05.11 298 5 9쪽
» <2> 고양이의 보은 +2 22.05.10 377 6 9쪽
1 <1> 사랑하는 할머니 +2 22.05.09 682 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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