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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얼 님의 서재입니다.

출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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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전시얼
작품등록일 :
2022.05.09 13:26
최근연재일 :
2022.06.09 09:13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5,888
추천수 :
264
글자수 :
122,125

작성
22.05.09 13:33
조회
681
추천
9
글자
9쪽

<1> 사랑하는 할머니

DUMMY

쌀쌀하면서도 따뜻한 봄바람을 맞으며 밤 골목을 걷던 한 청년이 어느 집 앞에 다가섰다.


대학생의 풋풋함이 가득한 그의 얼굴에 피식 웃음이 스쳤다.


‘불금에 내가 온 곳은··· 여기구나.’


미소를 머금은 그는 짧은 한숨을 내쉰 후 현관문을 조용히 두드렸다.


별 기척이 없자 미간을 찌푸리던 그는 지난번에 집주인이 알려줬던 번호키의 비밀번호를 떠올렸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간 작은 집 안엔 익숙한 소리부터 어둠을 뚫고 들려왔다.


또 시작이라는 표정의 그는 거실 겸 부엌의 형광등을 켜며 집주인을 불렀다.


“할머니, 주무세요?”


곧바로 침실로 향한 그는 조금 열려있는 문을 밀어서 안을 들여다봤다.


예상대로 불이 꺼진 방 안엔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든 집주인이 보였다.


청년이 할머니라고 부른 그녀는 그가 일종의 봉사 활동으로 돕는 독거노인이었다.


그의 등장에 침대에 누워있던 그녀는 두 눈을 번쩍 떴다.


올해 71세인 그녀는 염색하지 않고도 흰머리가 하나도 없는 흑발 때문에 훨씬 젊어 보였다.


“어, 왔어?”


몸을 일으켜 앉은 그녀는 침대에 걸터앉는 청년이 마치 손자라도 되는 것처럼 친근하게 미소 지었다.


“끄고 주무시지, 또···.”


잔소리를 하던 그는 한창 클라이맥스로 달려가는 컴퓨터 모니터 속의 영화를 바라봤다.


“자기 전엔 그래도···.”


말끝을 흐리는 그녀의 얼굴에선 묘한 수줍음이 느껴졌다.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는 그는 못 말린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보고도 또 보고 싶어요? 벌써 수천 번은 봤다면서요.”


아직 소녀 같은 분위기의 예쁘장한 할머니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저것만 보면 말을 안 해. 저 사람의 영화를 죄다 반복해서 보잖아요.”


청년은 영화 속의 남자 주인공을 쳐다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음 지었다.




***




두 사람 사이에 자주 오고 갔던 대화라서 그런지, 할머니는 청년의 잔소리에 익숙해 보였다.


오히려 화면 속 짝사랑의 존재감을 재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런 할머니를 보던 청년은 의심을 품은 채 잔소리를 이어갔다.


“근데 ‘고유룡’ 저 사람 때문에 지금껏 혼자 산 거, 진짜예요?”


그녀는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는 영화 속 젊은 남자에 흐뭇한 시선을 보내다가 청년을 바라봤다.


“못 믿겠지만, 그렇다니까.”


진심을 느낀 그는 잠시 당황하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30년이 넘었다고 그랬죠? 와, 요즘 시대에 할머니 같은 정절도 있나 보네요.”


정절이란 단어에 괜히 수줍어진 그녀는 말없이 영화만 보고 있었다.


“지금까진 농담인 줄 알았는데···. 배우로서가 아니라 남자로서 좋아했다는 걸 인정해야겠네요.”


그때 이불 속에서 털 뭉치 같은 뭔가가 밖으로 나오자, 청년의 눈이 반갑게 동그래졌다.


“어, ‘쁘리’야, 거기에 있었구나?”


두 사람 사이에 등장한 고등어 태비(tabby)의 고양이는 하품한 후 다시 ‘식빵’을 굽기 시작했다.


덕분에 분위기가 전환이 됐지만, 곧 방 안엔 침묵이 흘렀다.


집주인과 손님 모두 결말에 다다른 영화에 집중했다.


청년은 남자 주인공이 선보이는 현란한 무술 장면에 완전히 빠져들었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랑 같은 또래 같네.”


할머니는 청년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맞아, 저 영화를 찍을 땐 ‘시우’ 너보다 한두 살 정도 많았어.”


“그렇구나, 근데 스턴트맨이 없이 직접 저렇게 하는 거예요?”


“음, 정확히는 모르지만, 직접 한 게 맞을걸?”


“젊으니까 펄펄 나는구나. 고유룡, 지금은 완전히 할배가 됐겠네요.”


순간 그녀는 작은 한숨과 함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젠··· 나랑 같은 또래지.”


끄덕거리던 시우는 뭔가가 떠오른 얼굴로 변했다.


“그럼, 지금이라도 가능하다면 고유룡과 만나고 싶어요?”


뜻밖의 질문에 살짝 당황했던 그녀는 묘한 미소를 띠며 답했다.


“뭐, 당연히 영광이긴 한데···.”


시우는 말끝을 흐리는 그녀를 보며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 혹시 지겹도록 돌려 보는 저 영화 속의 고유룡한테 빠진 거였어요?”


정곡을 찔린 그녀는 창피함에 물든 얼굴로 머뭇거렸다.


“아참, 넌 고양이 밥이나 주러 가.”


시우는 화제를 돌려버린 그녀를 보고 짓궂은 미소를 짓다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에이, 맞는구나? 여자는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소녀라더니.”


갑자기 그녀는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버리며 슬쩍 눈을 흘겼다.


“너, 오늘따라 말이 많구나?”


“할머니, 역시 귀여우셔.”


그녀는 계속 키득거리는 그에게 결국 꿀밤을 날렸다.


“아! 왜요, 제가 틀린 말을 했어요?”


“자꾸 기어오르니까 그러지! 말은 그만하고 애들 밥이나 주러 가.”


“쳇, 궁금한 걸 어떡해요. 황혼까지도 잊지 못한 특별한 짝사랑이잖아요.”


“넌 오지랖이 참 넓구나? 뭘 더 알고 싶은 건데?”


“아까 말했잖아요. 저 영화 속의 저 남자를 좋아하는 거냐고요.”


시우는 드디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영화를 흘끗 보다가 다시 할머니를 바라봤다.


이젠 체념한 듯한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언성을 높였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됐니?”


“아···, 그게 다예요?”




***




할머니는 뭔가를 더 알아내려는 시우에게 기가 찬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 난 저 시절의 유룡 씨를 제일 좋아해. 그래서 매일 밤 그 사람의 영화라도 보는 거야.”


그녀는 꽤 진지하게 듣고 있는 시우를 보며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그렇게 매일같이 영화라도 봐야지 그 사람을 만나는 거 같고, 꿈에서라도 만날 수 있을 거 같아서.”


이번에도 시우는 말없이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부질없는 사랑으로 보이겠지만, 남들이 어떻게 느끼든 내 감정이 중요한 거잖아. 안 그래?”


그녀의 진지한 독백이 이어졌다.


“나도 왜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수십 년을 그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지가 의문이야. 하지만···.”


그녀는 시우의 호기심에 가득 차 있는 얼굴을 보고 고백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답을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그냥 한 번뿐인 인생, 계속 그 사람을 사랑하다가 죽을래.”


잠시 정적이 흐르자, 두 사람 사이에서 식빵을 굽던 고양이는 기지개를 켠 후 침대 밑으로 내려갔다.


“죽는다뇨. 할머니는 아직 건강하신 편이고 연세치고 젊어 보여요.”


그녀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장난스럽게 말하는 시우를 보고 피식 웃기만 했다.


“지금도 주변에서 반려자를 찾는 거, 안 늦었어요. ···그게 할머니한테도 좋잖아요.”


그녀는 감정이 상한 것처럼 미간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


“뭐? 지금 와서 다른 사람을 만나라고? 그럴 거면 진작에, 30년 전에 그랬겠지!”


“참, 할머니도 특이하신 분이네. 하긴 오래도록 묵은 그 고집을 누가 말리겠어요!”


그녀가 말없이 시무룩해지자, 시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 그러면 저는 냥이들에게 밥을 주러 갑니다. 집에서 뭘 더 도와드릴 건 없죠? 무릎은 아직 안 좋아요?”


그는 여전히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녀를 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런 마음 상태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 못 할 짓이 아니겠어?”


뒤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고백에 시우는 방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며 귀를 기울였다.


“너라면, 상대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깊게 자리 잡고 있는데 괜찮겠냐고.”


말문이 막힌 그는 자기의 어설픈 연애 경험을 떠올리다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할머니도 지금 하고 있듯이 짝사랑도 사랑이잖아요. 버틸 수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녀는 의외의 대답에 놀란 눈빛으로 변하며 생각에 잠겼다.


“아, 지금이라도 반려자를 찾으라고 말씀드린 건 제가 귀찮아서 그런 게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고요.”


장난스러운 시우의 말투에도 침묵하던 그녀는 영화가 끝난 검정 화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 모습을 흘끗 쳐다보던 그는 걱정되는 표정으로 조용히 방을 나섰다.


“자, 나에겐 불금이란 없다! 이제 미션을 시작해 볼까?”


그는 최근에 무릎이 안 좋아진 할머니를 대신해서 동네 길고양이의 밥을 주는 일까지 떠안게 됐다.


어느새 길에서 데려온 고양이 쁘리에게 정이 든 그는 알아서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다.


부엌에서 물을 마시고 있던 고양이가 다가오자, 그는 아빠 미소를 지으며 무릎을 꿇어앉았다.


“쁘리야, 난 네 친구들에게 밥을 주러 갈 거니까, ‘노묘화’ 씨를 좀 잘 지켜봐 줘.”


고양이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그에게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야옹 소리를 냈다.


“아이, 착하다. 네 집사가 오늘 기분이 별로니까 좀 풀어주고, 알았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서둘러 고양이 사료와 물을 챙긴 후 밖으로 나갔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출구가 없다'의 작가 전시얼입니다.
먼저 관심 가져주시고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본 작품의 장르는 SF로맨스판타지이며 타임슬립 회춘물입니다.
따라서 독자에 따라 인물 또는 배경 설정 등이 황당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판타지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니 감안하시고 읽어주심 좋겠습니다.
또 본 소설은 주인공들의 삼각관계를 주로 다루게 됩니다.
쉽게 말해 극 초반과 후반이 SF 판타지 느낌이라면,
그외 대부분의 내용은 과거 세상으로 간 여주인공과 그곳의 남주인공의 로맨스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삼각관계의 자세한 묘사로 인해 전개 속도가 다소 느린 점 참고 바랍니다.
이런 느낌과 설정에 끌리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며
재밌으시면 추천/좋아요/댓글 많이 남겨주세요!
그럼 앞으로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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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 그의 거짓말 22.06.05 52 3 9쪽
25 <25> 떨리는 밤 22.06.04 58 3 9쪽
24 <24> 두 번째 방문 22.06.03 51 3 9쪽
23 <23> 불행과 행운 22.06.02 47 3 9쪽
22 <22> 필연적인 폭발 22.05.31 48 3 9쪽
21 <21> 두 남자의 충돌 22.05.30 53 3 9쪽
20 <20> 본격적인 삼각 구도 22.05.28 51 3 9쪽
19 <19> 묘한 신경전 22.05.27 52 3 9쪽
18 <18> 천사와 악마 22.05.26 61 3 9쪽
17 <17> 곤란한 미녀 22.05.25 59 3 9쪽
16 <16> 엄청난 제안 22.05.24 58 3 9쪽
15 <15> 대단한 뒷북 22.05.23 65 3 9쪽
14 <14> 의혹과 은폐 22.05.22 64 3 9쪽
13 <13> 조건 없는 사랑 22.05.21 80 3 9쪽
12 <12> 그의 스타일 22.05.20 76 3 9쪽
11 <11> 피곤한 매력남 22.05.19 71 3 9쪽
10 <10> 그녀에게 두 남자는 22.05.18 79 3 9쪽
9 <9> 꿈같은 현실 22.05.17 89 3 9쪽
8 <8> 그녀의 예언 22.05.16 98 2 9쪽
7 <7> 구슬 속의 운명 22.05.15 109 3 10쪽
6 <6> 돌아갈 궁리 22.05.14 120 3 10쪽
5 <5> 사장과 알바생들 22.05.13 147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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