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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세기말 악의 조직의 말단조직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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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10.28 18:46
최근연재일 :
2022.12.25 10: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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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3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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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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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1장. 나는야 말단 조직원-6

DUMMY

“그런데 선배, 대체 무슨 일이에요? 원로님께서 갑자기 저를 부르신다니... 여태 이런 일은 없었잖아요.”


나는 광원 선배가 이상함을 느끼기 전에 최대한 동요를 가라앉히고 이 갑작스런 호출에 대한 연유를 물었다.


이제 이 만남은 더 이상 달갑기만 한 기회가 아니었다.

아무리 독을 먹는다면 접시까지라지만, 독인 든 성배마저 먹을 순 없지 않은가.


하지만 선배는 생각에 잠긴 듯 입을 열지 않았다.


‘분명 그동안의 일 중에 단서가 있을 거야.’


내가 선배와의 친분을 이용해 원로와의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니다.


‘내가 은연중에 그런 낌새를 보였던가? 원로와 만나고 싶다는? 아니야, 그랬다면 광원 선배가 직접 날 제거했겠지.’


그는 처형인... 원로를 향해 반기를 들거나 조직에 해가 되는 이들을 제거하는 처형인이다.


또한 간부가 되면 사상교육도 면제받기에 시작부터 간부였던 그는 세뇌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강현 원로를 향해 변치 않는 충정을 보내는 인물 중 하나.


그 충성심이 단순 얼굴이 닮았을 뿐인 내게도 조금은 내려왔는지 그는 처음부터 내게 무척 호의적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게 한 둘이 아니야. 선배가 하는 일이 적지 않을 텐데 내게 이 방을 배정해준 것도 광원 선배, 이 일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준 것도 광원 선배였어.’


물론 업무가 달라서 일을 가르쳐준 건 아니었다.

시간도 안 맞고.


하지만 아는 이가 없어서 혼자 끼니를 때우는 내 옆에 점심시간마다 같이 앉아 있어 주었다.

간부든, 원로든, 말단조직원이든 식사시간은 같으니까.


‘역시 감시가 목적인가?’


선배 덕분에 이 낯선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었지만 돌아가면 내 방에 도청장치가 있는지부터 확인해봐야겠다.


‘선배의 특성에 이미 당했다는 가능성도 고려해야겠어.’


광원 선배는 순혈 카피바라 수인인 만큼 카피바라의 종족 특성의 랭크가 상당히 높다.

거의 원종(原種)에 버금갈 정도...


동물계의 인싸라 불리는 카피바라의 특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탓에 그는 타인의 경계심을 낮추고 쉽게 호감을 사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방심하지 말자.’


그러니 결코 방심을 해서도, 이 이상 마음을 허락해서도 안 된다.


“??”


내 시선을 느꼈는지 선배가 다시 무구한 낯으로 말갛게 웃었다.

저 모든 게 거짓일 수 있다니... 솔직히 안 믿긴다.

아니, 그냥 믿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방심하지 말자...’


그래도 믿지 않을 수 없는... 믿을 수밖에 없는 사실은 선배가 전투도 전투지만, 탐색전과 정보전의 스페셜리스트라는 것.

그리고 그의 주 업무가 조직의 배신자를 처단하는 것이라는 것.


실제로 조직의 일에 회의감을 느껴 이곳을 벗어나려는 이들 중 상당수가 저 호감 가는 인상에 속아 자신의 탈주계획을 사전에 그에게 털어놓고 도움을 구하지만, 그 믿음에 대한 대가로 그들이 얻게 된 것은 ‘고통 없는 안식’뿐이었다.


‘내가 만일 선을 넘는다면... 내 심장을 터트리는 역할은 선배가 맡겠지.


하나의 대상을 향해 호의와 두려움이란 서로 상반되는 감정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가, 없는가.

그 오랜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은 느낌이다.


사람들은 보통 그것을 ‘경외’ 내지는 ‘신앙’이라고 부르는 것 같지만, 적어도 나는 그를 신앙하진 않았다.


“아, 죄송합니다. 딴 생각을 좀 하느라... 원로님이 방인을 호출한 이유를 물었죠? 아마 도련님을 만나게 됐을 때 실수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약간의 주의사항을 전달해주는 게 목적이라 생각합니다. 쿡쿡, 아무래도 방인은 전적이 있으니까요.”


빙의 첫날의 실수를 굳이 되짚으며 짓궂게 웃는 광원 선배의 말에 순간 귀까지 열이 올랐다.

손을 내 머리 근처에서 자꾸 멈칫하는 건 내 두개골을 부수고 싶기 때문일까?


“분명 이곳으로 발령받기 전에 사상교육을 받고 왔다고 듣긴 했습니다만...”


말끝을 늘이며 선배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쿠웅!


작은 모니터와 그에 연결된 헤드셋.

그 헤드셋은 함부로 고개를 돌리지도, 눈을 감지도 못하게 되어있어 중세 종교재판에서 피고인에게 씌웠던 형구(刑具)를 연상시켰다.


“무려 원로님의 호출이니 만큼 그분을 뵙기 전에 잠시 사상을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최근 방인의 동기들도 교육을 받았으니 시기도 적절하고요.”


간부가 아닌 이상 분기마다 의무적으로 받아야한다는 사상교육에 대해 선배가 언급했다.

이 교육에 대해선 정말 불만이 많았지만 감히 반발할 순 없었다.


이곳은 ‘신’에게마저 ‘교육’을 진행하는 미친 곳이었으니까.


물론 그들이 받는 것과 내가 받는 교육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존재할 테지만, 둘 다 세뇌와 다름없다는 것에선 다를 바가 없었다.


“저를... 의심하는 건가요? 이제 와서...?”


하지만 이미 정기적인 사상교육 날짜는 지났다. 지난 것이다.

하물며 이곳에 오기 전에 교육을 받았다면 더더욱 받을 필요가 없다.


나는 최대한 무해하게 웃으며 교육을 받기 싫다는 마음을 온몸으로 피력했다.


‘내가 발령받기 전에 있던 곳이 그렇게 의심스러운 곳이었나?’


고작 말단 조직원 불과한 이 몸의 과거가 이 정도로 깔끔히 지워졌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기에 나는 이를 중점으로 조사를 시작했고, 끝내 이 몸이 원래 다른 원로 밑에서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일을 많이 맡긴다 했더니...’


경력 있는 신입이었던 거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이곳에 발령받게 됐는지, 그 다른 원로가 누구인지... 부족한 정보가 너무 많았다.


‘조직의 원로는 총 아홉.’


새로 발령 받아온 이곳은 당연히 제외되니 남은 후보는 여덟이 된다.


‘조직의 역사는 무척 오래됐지.’


그 크기 또한 무척 거대하다.


재앙이 시작되고 세계를 삼분하는 거대세력이 되기 이전부터 조직은 이미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밀조직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조직의 최고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원로가 이 작은 반도에 묶인 이강현 원로 하나밖에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리라.


원로들은 모두 ‘탑’과 계약을 맺어 종의 한계를 뛰어넘은 ‘초월자’들이다.


그만큼 수명도 늘어나기에 원로들에게 있어 다른 원로의 존재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곁을 지켜주는 ‘동료’이자 승천(昇天)을 위해 서로의 지식을 노리는 ‘경쟁자’였다.


‘그동안 내 이전 상사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아도니스 원로였는데...’


이 몸이 클론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을 때는 아도니스 원로가 가장 가능성이 높았다.

각 원로는 조직에서 주력하는 분야가 다르고, 그중에서 IT 계열을 중점으로 맡은 원로가 바로 아도니스 원로였으니까.


이 몸의 특기가 해킹과 프로그래밍 관련임을 고려했을 때 가장 엮이는 게 많은 원로가 바로 그였다.


‘하지만 그쪽은 이강현 원로의 대표적인 정적이야. 지원을 보내줄 리가 없어.’


하물며 그는 클론을 만들 기술이 없다.

아니면 복제를 만들긴 했지만, ‘실패작’이어서 이 몸을 선물 명목으로 아도니스 원로에게 보낸 걸까?

실제로 조직의 실험체 중, 쓸모 있는 몇몇은 채용되어 조직을 위해 일하기도 한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의심받는 걸지도...’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인데 ‘실패작’이란 단어가 유독 아프게 다가왔다.


“의심이라니요, 그저 방인의 행보가 다른 조직원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느꼈을 뿐입니다. 괜찮습니다. 입사 초기엔 다들 그러지요. 이걸로 긴 방황이 끝나고 금세 편안해질 겁니다.”


부드러운 말투와 달리 그의 눈은 조금의 호선도 그리지 않았다.


‘제길, 진짜 아도니스 원로의 휘하였나? 뭐, 비밀 지령 같은 건 없겠지? 기억이 없다는 걸 들키면 곤란해지는데....’


그게 아니더라도 사상교육을 통한 세뇌에 걸린다면 따로 캐묻지 않아도 나 스스로 정보를 불을지 모른다.

여러모로 정체절명의 위기 상황.


치직~ 치지직!


‘이 잡음... 아니, 어느 순간이건 이성을 잃지 않게 해주는 이 특성을 믿는 수밖에.’


정해진 시기 이외에 강제로 사상교육을 받게 하는 건 일종의 가혹행위로 비춰질 수 있는 일이지만 아쉽게도 명분은 쥐고 있는 건 저쪽.


“아, 생긴 게 조금 흉흉하죠?”


내 망설임을 고작 비품의 흉흉함 때문이라고 오해했는지 선배는 궁금하지도 않은 설명을 늘어놓았다.


“아무래도 교육에 대한 기재(器材)들은 전부 ‘위원회’에서 관리하니까요. 비품이 남아있는 건 이 정도랄까요? 좀 오래 되긴 했지만... 성능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이 철저한 준비를 보니 아마 꽤 예전부터 벼르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이해한다.

그만큼 주인공에게 조직을 설명하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이니까.


주인공은 세 번째 재앙이자 세계의 기후를 바꿔버릴 영원의 겨울, 그 ‘신들의 황혼(Ragnarok)’의 전조 증상 중 하나인 ‘혹독한 겨울(Fimbulvetr)’에서 인류가 살아남게 해줄 가장 핵심적인 존재다.


그 정체는 바로 「인세에 남은 마지막 불의 신」


오직 주인공만이 세 번째 재앙, ‘영원한 겨울’에서 불을 피울 수가 있다.


그에게서 불의 씨앗을 받아 세상에 다시 불을 퍼트리는 것.

그것이 언젠가 주인공에게 조직에 대해 소개할 내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그... 원로님이 기다리실 텐데 교육은 다음에 진행하는 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맨 정신으로 세뇌를 받는 취미가 없었기에 어떻게든 하기 싫다는 내 의지를 온몸으로 피력했지만...


“지금 그분은 다른 업무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지금 가봤자 어차피 기다리기만 하겠죠.”


‘시간은 효율적으로 써야죠.’ 라며 말을 더하는 광원 선배에 나는 결국 수긍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선 넘네... 오늘은 일요일인데.’


역시 여기는 ‘악의 조직’이 맞는 모양이다.

사회로 향하기엔 아직 이른 나이, 나는 벌써부터 체념하는 법을 터득했다.


작가의말

시엘은 기계의 잔혹하고도 비정한, 말 그대로 ‘비인간’적인 결정주의로 방인의 휴일을 삭제시켰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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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장. 나는야 말단 조직원-8 22.11.05 139 9 14쪽
8 1장. 나는야 말단 조직원-7 +3 22.11.04 163 9 17쪽
» 1장. 나는야 말단 조직원-6 +2 22.11.03 182 7 10쪽
6 1장. 나는야 말단 조직원-5 +1 22.11.02 200 9 12쪽
5 1장. 나는야 말단 조직원-4 +1 22.11.01 262 14 16쪽
4 1장. 나는야 말단 조직원-3 +2 22.11.01 345 15 14쪽
3 1장. 나는야 말단 조직원-2 +4 22.11.01 482 18 13쪽
2 1장. 나는야 말단 조직원-1 +2 22.11.01 731 26 10쪽
1 0. Prologue. +8 22.11.01 716 49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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