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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학우 여러분. 저는 학생 대표로서, 이 자리에 서게 된. 최윤선이라고 합니다.】
넓게 열린 강당 안.
1학년 300명을 소집한, 이 공간 안으로.
단상 위, 마이크를 잡은 소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좀 있을 열릴 신입생 환영회의, 연례행사를 하기 위해. 예행연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단상 아래 학생 여러분들은, 지시에 따라 예행연습을 시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상 위 마이크를 잡은, 소녀의 정체.
그녀는, 성적 최우수자에게만 부여되는, 학생 대표로서.
올해 300명이 넘는 신입생들 중에,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인재였다.
2006.
전국 석차. 1%에 달하는 그녀의 존재란.
꼴통 학교로 유명한 이곳에서.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교장까지 직접 나서.
이번 신입생 환영회에서. 대표로, 상장 수여식까지 열 예정이었다.
그런 인재이거늘···
【아! 아!! 친애하는 학우 여러분! 예행연습을 끝 맞춰야 하니! 끝날 때까지 잠시만 집중해 주십시오!! 여러분! 여러분!!】
하지만 어째선지.
그런 마이크에 서려 있는 건. 답답함에 소리치는, 소녀의 갑갑함 뿐이었다.
그야 당연했다.
"야!! 어떤 개시끼가! 내 머리에 지우개 던졌냐??" "너 오늘 학교 끝나고? 뭐할 거냐??"
"끝나고 PC방가서 서든 한 판 땡길까?" "어! 너도 이 학교냐?"
"철희야! 니 몇 반 배정받았냐?" "쓰발! 실내화 깜빡하고 안 들고 왔네!"
"여기 급식 먹을 만 하데??" "아 존나 기네. 다리 아파 죽겠는데? 언제까지 서 있으라는 거야."
단상 아래.
소란스럽게 떠들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은.
차라리, 도떼기시장 안에 질서가 더욱 잡혀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난잡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학우 여러분!! 여러분!!! 애들아? 애들아??? 야!!!!】
무질서함의 극치.
단상 위, 그녀의 존재가. 상위 1%이던. 전국 1%이던.
그런 건 이들에게 안중에도 없는 사안일 뿐이었다.
지금 밟고 서 있는, 이곳이 어디던가?
중구 시내 바닥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꼴통 중의 꼴통들만 모인 곳이.
바로, 이 '화타고'가 아니었던가.
그래. 문제아들의 집합소.
그런 문제아들이 모인, 이 무법지대는.
가히, 약육강식이 살아 숨 쉬는, 동물의 왕국이라 말하기 충분한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역시···
-콰다당!!!-
"으아아!~"
삼백 명의 학생이 어지럽게 줄지어 있는 그곳에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때아닌 소란이 일기 시작한다.
"아오! 니 뭐냐? 어디 족보도 없는 새끼가 뒤질라고~"
갑자기 터진 비명 소리에, 시선을 돌리니···
그곳엔.
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을 흘리고 있는 신입생 하나와.
바로 그 앞에서.
험악한 공기를 흘리며 무게를 잡는 아이가, 서 있는 게 아닌가.
"싸움이다!!" "와! 뭐야 뭔데!!"
"비켜봐!! 뭔데? 나도 좀 보자고!"
"쟤. 회연 중 이우천 아니야??"
관중이 몰리기 시작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여기 모인 관중 모두가 알 것이다.
"족보? 까고 앉아 있네! 좀 있음 털릴 새끼가!!"
"털려? 누가? 내가? 지랄! 나 회현중 이우천이야!!!"
그래. 맞짱이라 불리는 그것.
중학교마다, 으르렁거렸을 들개들을.
한 자리 안에 풀어놨으니, 싸움이 안 나고 배길 리가 없었다.
【야!! 너무 소란스럽잖아!! 가만히 좀 있어 봐!!! 선생님 내려오시기 전까지 연습 끝내놔야 한다고!!!】
이 순간.
강당, 저 위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소녀의 애달픈 외침은, 일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좆 까! 씨발 새꺄!!"
"들어와 새꺄!! 내가 누군지 보여줄 테니까!!!"
아니. 그녀가 아니라.
선생이 직접 온다 하여도, 이들의 폭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싸워라! 싸워!!" "와아아아아!!!" "아무나 이겨라!!"
"이긴 놈한테 남은 3년 다 건다!!" "쫄지 마!! 가버려!!"
"우천아!! 회연 중에 저력을 보여줘 버려!!!"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화려한 신고식에.
앞서 진쟁하고 있던 따분한 환영식 따위는, 잊혀진 지 오래였으니까···
***
"하아··· 조선생님 요번 아이들 상태는 좀 어떨 것 같습니까?
저번처럼 괜히 학생들끼리 싸움 좀 했다고. 경찰차나 또 들락날락거리고 그러진 않겠죠?"
※『박무재』
직급: 교감※
잘 정돈된 서책들 아래.
쇼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는 중년 남성의 얼굴은, 오늘도 실로 심란했다.
당연했다.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이 반푼이 직함에.
한숨이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으니까.
교감이란 직함이 무색하리만큼.
이 화타고에서. 그의 입지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가족끼리 다 해 처먹는 교육 실정에.
교장 눈치 보랴, 이사 비위 맞추랴, PTA 학부모 협회 신경 쓰랴.
진땀이 절로 났기 때문이었다.
"헤헤. 교감 선생님? 그 문제에 대해선, 크게 심려치 마시지요. 이제 지위도 있으신데. 이런 사사로운 문젯거리는, 손 놓으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제가 또, 문제 될 놈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쫙 꿰고 있으니. 그 걱정은 염려 붙들어 매셔도 되실 겁니다."
※조기동
직급: 생활지도 부장※
그런, 그에게 그나마 위안거리가 있었다면···
이렇게.
교감이란 직함 앞에, 고개 숙여.
간이건 쓸개건 다 빼줄 듯, 아첨을 떨어오는 아랫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하하하~ 그래요~ 그래~ 언제까지 얘들 일에 골머리를 쓰고 있을 순 없겠죠~
그럼 전. 기동 선생님만 믿고, 한시름 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암~
그것 하나만을 바라보고, 그 더러운 꼴 다 보며, 하인처럼 살아왔던 것인데.
암만, 즐길 땐 즐겨야겠지.
"아!. 그전에. 올릴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교감 선생님께서도, 이거 하나만큼은, 꼭 짚고 넘어가셔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러던 도중.
고개 낮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던 조기동 선생이.
갑자기, 안색을 바꿔, 말을 꺼내오기 시작한다.
대체···
"그게 뭐죠?"
"혹시? 작년에 학교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맞다이 당구장 집단 난투극 사건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아! 그거!!"
그가 끄집어놓은 말 하나에. 그만.
머릿속에 쿵! 하고 충격이 스쳐 지나가고야 만다.
그래.
맞다이인지, 맞세이인지. 암튼···
한창, 교육평가 실태로, 골머리를 쓰고 있던, 이 화타고에.
때아닌, 폭풍이 몰아닥친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2006년도에 발생한 당구장 집단 난투극 사건이었다.
그 사건이 이토록 화자가 된 이유는···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내 그것 때문에 얼마나! 이사장님 식구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는지! 기동 선생님도 보셔서 잘 알지 않습니까??
아니 백주 대낮. 그것도 그런 공공장소에서, 학생이란 놈들이 난투극을 벌이다뇨!"
"그냥 같은 고등학생들끼리 난투극을 벌인 정도였다면 차라리 다행이었을 겁니다.
그때 당시 우리 학생들을 그렇게 만든 놈들이. 인근 중학교 학생들이라는 얘기가 돌자마자.
삽시간에, 인근 일대에 학생들 사이에서 발 빠르게 퍼져나갔으니까요···"
그렇다.
단순, 순찰차 몇 대가 학교에 들락날락한 것도 모자라.
발 빠르게 퍼져나간 악소문에, 기자들 앞에서 입장표명까지 하게 된, 이 사건은.
화타고의 명예는 물론이고,
고등학생으로서의 자긍심까지 짓밟힌 대사건으로서.
당시.
화타고 남학생 십 수명을 병원에 드러눕게 한, 이들이.
고작···
-척!-
"그게 바로! 이놈들입니다!!"
어느 순간.
척! 하고 테이블 위에 얹어진 사진들에.
교감의 두 눈은 휘둥그레지기 시작했다.
"기동 선생! 대체 이게 다 뭡니까??"
"사건의 중심 배후들! 인근 학교에서 악랄하기로 소문난 놈들이! 죄다~ 이 학교로 몰려왔다, 이겁니다!!"
"뭐요!#!!!"
***
-쿠다타당!!!-
"으윽···"
강당 한가운데.
쿵! 하고 떨어져 내린 소년의 몰골은, 참으로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터진 입 주변에서부터 새어 나오는 핏기에. 얼굴 전체가 떡이 된 그는.
간신히,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는 것이 한계였으니까···
그리고···
"으아아!!! 이 씨발 놈들아!! 좆 같으면 어디 다 덤벼 봐라!! 이 이우천이! 다 처발라 줄 테니까!!!"
과도한 흥분감에 취해버린 소년 하나가.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채, 주위의 공기를 매섭게 짓누르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이 행동이, 자신을 제외한, 이 강당 안에 모든 이들에게.
적개감을 심어주는. 미련한 짓이란 걸···
하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바로 앞에, 피떡이 된 채 떨어져 나간, 녀석의 몰골을 보고도.
용기 있게, 나설 수 있는 놈들은 없을 테니까···
실제로도···
"저것 봐. 쟤 크게 다친 것 같은데···" "누가 쟤 좀 말려봐. 가만두면 큰 일 나겠어···"
"이우천을 말리라고? 쟤 성격 몰라서 그래? 말만 하지 말고, 니가 가서 한번 말려봐라···"
"그러면 그냥 저대로 두라고?" "아 몰라. 곧 있으면 선생님들 올 테니까. 때 되면 알아서 정리되겠지···"
그의 적개심 짙은 난동을.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음에도, 말리기는커녕.
앞으로 한 걸음조차 기어 나온 놈이, 한 명도 없지 않은가.
그래.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렇게, 더욱 대놓고 활기칠 수 있었다.
"니들도 앞으로 깝치지 마라!!"
하지만, 그는 몰랐을 것이다.
아직, 서열조차 확립되지 않은, 이 울타리 속에서.
이빨을 드러낼 수 있는 들개는,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이내 곧···
"깝치다 걸리면 확! 죽여버리···"
-빠아아악!!!!!!-
"게엣!~끼!엨···"
빡! 하는 소리와 함께.
장내에 있던 삼백 명에 아이들의 눈이 번쩍 떠지고야 말았다.
"!헉!!" "헑업!!!" "커업!!!!"
그것은 일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과도하게 분출된 아드레날린에, 흥분감을 주체 못 하던 녀석의 뒤통수에.
손바닥이 빡! 하고 내려앉은 것이었으니까.
-철퍼덕!!-
너무나 강력했던 것일까?
그저 손바닥 후리기 뿐이었을, 그 가벼운 공격에.
그는 그만 앞으로 철퍽! 하고 나자빠지고야 말았다.
"으아!!! 어떤 씨발 새끼가!!"
일순간.
확! 하고 뻗친 분노에. 그는.
획! 하고 고개 젖혀, 뒤를 돌아보았다.
아주, 상대를 아작내버릴 작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래! 나왔다 새꺄!! 근데 뭘 꼬라보고 있냐? 눈 착하게 안 뜨냐?? 확! 마~ 상판을 뒤엎어버릴라~"
※『정만규』
써클: 에이스.
통칭: 척추 클리닉 (회연 중 No.1)
기술: 유도. 매치기※
"허얿!!"
눈앞에 들어찬, 거대한 산에.
그는 내뱉으려는 말조차, 도로 삼킨 채. 입을 꾹 다물어 버리고야 말았다.
그래.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누구인지···
"이 강당에 니 혼자 전세 냈냐!! 거 새끼. 아까서부터 되게 쫑알쫑알 시끄럽네~ 강냉이 갈아버리기 전에~ 그 입 다물어라? 알겠냐??"
※『조대섭』
써클: 에이스
통칭: 헌혈의 집 (남산 중 No.1)
특기: 강냉이 털기. 원 펀치.※
또한···
1년 전. 친구들과 함께 갔었던 당구장에서 봤던.
그때의 충격과 공포를···
"애들아!! 뭐 하고 있냐?? 여기 계속 이러고 서 있을 거야?? 환영횐지~ 나발인지~ 좀 후딱후딱 끝내고~ 교실 좀 들어가 보자~ 이 소중한 친구들아!! 쫌!!!"
※『노도형』
써클: 에이스
통칭: 중구 폭격기 (명성 중 No.1)
특기: 현란한 발기술. 태권도 유단자.※
"어!!" "어 그래!!" "빨리 끝내야지. 암 그럼~"
"그래. 교실 들어가야지. 날씨도 쌀쌀하던 참인데~"
"대표야!! 연습 좀 빨리 진행해 줘!! 시간이 너무 지체됐잖아!!"
그리고···
그런 이들을, 아무렇지 않게.
졸개처럼 끌고 다녔던, 그의 얼굴이 무심코 떠올라.
온몸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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