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한 아이 - 5
다음날 아침잠에서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했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엄마는 도시락을 싸주고, 그 사이 나는 양치질을 했다.
아~ 아무 고민 없이 이렇게 학교 가는 날이 정말 얼마만인가……. 일상 하나하나가 참 즐겁다.
양치질을 끝내고, 난 책가방을 쌌다. 시간표는 책상 위에 붙여져 있었다.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등……. 참 이런 과목에 이런 교과서들을 얼마 만에 보는지…….
방학숙제는 잘했나? 그림일기를 비롯하여, 이것저것을 챙기고 나니 가방이 조금 묵직해졌다.
근데 가방이 뭐 이따위냐……. 정확한 직사각형에 색깔은 남색, 똑딱이 단추 두 개가 달려있는 디자인이다. 내가 봐도 참 초딩틱하다. 이걸 메고 가야하는거야?
난 투덜거리면서 가방을 챙기고 옷을 입었다. 근데 옷은 또 뭐……. 멜빵바지다.
“젠장……. 아 쪽팔려.”
그렇게 나갈 준비를 다하고 한 손에는 도시락, 다른 한 손에는 실내화가방을 들었다. 문 앞에 나가서 신발을 신었다. 신발은 만화영화 ‘부메랑’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아티스 운동화!
이거 사면 잘 굴러가지도 않은 미니카도 준다고 광고해서 샀나보다.
“엄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내가 정말 초등학교 2학년 때 이런 인사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제부터라도 착한 아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 잘 다녀와.”
엄마가 웃으며 날 배웅해줬다. 웃음이 나오시겠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초딩 방학이 끝났는데……. 근데 우리 때 초딩은 08년도 초딩이랑 다르게 순수했었잖아?
학교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초등학교 때 기억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위치까지 까먹을까!
초등학생이 집에서 뛰면 3분 거리이니 말 다했다.
학교를 향해 길을 걸으니, 주변 곳곳에서 어느새 초딩 들이 몰려와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참 좋을 때지?”
난 흐뭇하게 그 광경을 쳐다보면서 등교했다.
교문 앞에 도착하니 학교 문패에는 ‘태안국민학교’라고 쓰여 있었다.
아……. 아직 국민학교구나 그럼 언제 초등학교로 바뀌는 거지?
학교에 들어간 나는 건물을 둘러보면서 내 반을 찾았다.
솔직히 어느 반 인지는 내 공책을 보고 알았다. ‘2학년 4반 이동우’라고 말이다.
반으로 들어가니 개학이 되어서 그런지 애들끼리 왁자지껄했다. 맘만 먹으면 충분히 만날 수 있지만, 초등학생이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마치 이산가족이 상봉한 것처럼 다들 반가워한다.
개중에는 나한테까지 와서 반가워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가만 보자……. 근데 누가 누구지? 08년까지도 연락하며 지내는 죽마고우면 어떻게 기억 좀 하겠는데, 이건 정말 누가 누군지 하나도 모르겠다.
우선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애들 이름부터 숙지해야 할 것 같다. 그전까지는 그냥 ‘야’라고 불러야지.
겨우겨우 내 자리를 찾고 그곳에 앉았다. 책가방을 풀고 실내화 가방이랑 도시락도 책상 옆에다가 걸어버리자 마자 학교종이 울렸다.
-띠리리리리리리리 띠리리리~(베토벤 엘리제를 위하여)
애들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조금 있으면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시겠지? 근데 누굴까? 보통 저학년 담임은 나이 좀 드신 분들이 아니었었나? 아무래도 저학년을 다루려면 스킬이 필요하니 말이다.
그때 나에게 오는 시선이 따갑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난 뭔가 해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내 짝 아이가 날 노려보고 있었다. 물론 여자아이다.
“왜?”
생긴 것도 억울하게 생긴 것이, 왜 이리 날 째려볼까? 여름방학하기 전에 내가 얘한테 뭐 잘못한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때 그 아이가 필통에서 연필을 꺼내더니 책상의 가운데(참고하자면 2인용 책상이다.)를 긁고 있었다.
“너! 여기 넘어오지 마. 넘어오면 다 내꺼다!”
아 생각난다. 추억의 선 긋기! 넘어오면 뭔 일이 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이리 우린 자신의 영역에만 관심이 많았던지……. 그래서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인가?
아무튼 난 그 아이의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단지 그 이유 때문에 그렇게 날 째려 본거라 이 말이지? 요것 하는 짓이 깜찍한데?
“그럼 네가 넘어오면?”
내 질문에 그 아이가 잠시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 그럼 네꺼 해.”
당황하는 모습조차 귀엽다. 생긴 건 안귀여운데 말이지……. 난 재미있는 장난감을 본 것 마냥 그 아이에게 흥미를 느꼈다.
“정말? 넘어오면 다 내꺼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지 뭐.”
그리고 내가 그 아이의 자리에 있던 연필 하나를 집어서 내 자리에 올려놓았다.
“어! 이거 내 자리로 왔네! 그럼 이거 내꺼다?”
“아니지!”
“왜 아닌데? 이게 내 자리로 왔잖아. 그럼 내꺼 아니야?”
그 아이가 내 말을 듣다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뭔가를 확신했는지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아니야.”
“왜 아닌데?”
“그전에 네 손이 내 자리로 왔잖아!”
그리고 그 아이는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했는지 미소를 띠웠다.
“그래? 그럼 내 손 가져.”
난 쿨한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그 아이 자리위에 올려놓았다.
“뭐?”
“그리고 내 발도 가지고…….”
이번에는 발을 그 아이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아예 그 자리위에 올라가 버렸다.
“날 가져! 날 소유하란 말이야!”
난 저돌적으로 그 아이에게 말했다. 그 아이가 당황했는지 표정이 얼어버렸다. 난 승리자의 미소를 짓고는 다시 내 자리에 앉았다.
“가지기 싫으면 말고.”
그리고 내 자리에 있던 그 아이의 연필을 들고 내 공책에 끄적이기 시작했다.
“야~ 이제부터 이건 내꺼다. 글씨 잘 써지네. 히히 가지고 싶지?”
난 그 연필을 흔들며 그 아이의 성질을 돋우었다. 내가 생각해도 한 대 까줄 것 같은 멘트였다. 점차 그 아이가 흥분을 했는지 호흡이 빨라지며 씩씩거렸다.
“그럼 이건 내꺼다!”
그 아이도 질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내 지우개를 빼앗아갔다. 근데 느낌이 왜 이러지? 이것이 내 승부욕을 발동시키다니!
“그럼 이건 내꺼!”
다시 내가 그 아이의 물건 하나를 집어 갔다. 그러면 그 아이도 질세라 내 물건 하나를 집어 갔다.
“이건 내꺼!”
그때부터 피 튀기는 경쟁이 시작되었다. 계속하여 우리들의 손은 상대의 영역에 침범했고, 같은 물건이 이리저리 반복하며 두 영역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성질난다. 솔직히 내가 이런 문제로 화가 날지는 몰랐다. 그리고 이 경쟁이 뜨겁게 가열될 때 문득 정리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왜이래? 아마추어같이!”
난 호흡을 정리하며 그 아이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아이도 행동을 멈추더니 멍하니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울음이 터져버렸다.
“으아앙!”
그 아이가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내가 조금 심했나? 그런데 주변에서 뭔 구경이 났는지 남자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야~ 희정이 운다!”
그렇게 다가온 남자아이들은 고개를 파묻고 있는 여자애의 얼굴을 굳이 힘으로 올려버리고는 질질 짜는 모습을 감상했다.
“키키키 희정이 운데요~ 희정이 운데요.”
주변 애들이 희정이를 놀리고 있었다. 이건 또 뭔 상황? 문득 내가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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