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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漫報) 님의 문피아 서재입니다.

Hazard 정리


[Hazard 정리] 크로세아 대륙사 02 - 204년~648년


●0206년

아반델트의 동벌장군으로 임명된 ‘아가임’이 아반델트의 명예를 걸고 강력한 세력 확장에 나선다. 헬바이드와 아반델트 사이에는 많은 소수민족과 국가들이 난립되어 있었으나 아가임의 활약으로 차근차근 아반델트에게 편입되기 시작한다. 약 400루일에 걸쳐서 이루어진 이 정벌로 대륙의 동서를 가르는 회색산맥 동쪽 지역까지 아반델트의 세력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0213년

헬바이드의 파돌1세는 신원기 시대에 존재하는 ‘고대 신들의 유적’에 대한 탐사를 명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과거 기록에 대한 정확한 물증과 연구를 위한 것이었으나 생각 외로 큰 진전이 없었다. 다만 덕분에 <신원기>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해석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고대의 신들은 우리 인간들과 함께 이 지상에서 살았다는 등의 민속신앙 같은 것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0214년

상당히 발전한 코슬란에 대한 이권분쟁이 불거져 나옴. 본래 헬바이드령이었다가 루비암 사태로 서부에 편입된 코슬란의 발전이 너무나도 눈부시다보니 이러한 분쟁이 시작된 것. 다행이 현명한 파돌 1세는 이런 분쟁을 말끔히 해소하기 위해 다시 한번 국가칙령을 내려 코슬란은 서부동맹 소속임을 선언함.


●0221년

파돌1세 사망. 역시 후계자가 없던 파돌의 동생인 라울이 등극, 라울 1세의 세기가 시작. 본래 문학파였던 라울왕은 왕가의 정치적 이념과 자신의 문화적인 소산이 어우러지는 세계지도의 완성을 위해 국가적인 정책을 펼친다. 이후 많은 문화시술정책에 힘입어 다시 왕권은 부흥을 이룬다. 다만 호전적이던 서산족들의 일부는 코슬란 분쟁으로 앙금이 남아 있다가 문약한 라울왕의 틈새를 노려 다시 헬바이드귀족들이 들고일어날 것을 경계한다.


●0223년

일부 정령족과 오크족의 전쟁 ‘레이크 오드’, 일명<호수전쟁>이 시작. 같은 대륙의 남동부에 본거지를 잡고 있던 두 종족간의 갈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헬바이드왕가의 무리한 행정구역정책을 발단으로 한 이들 두 종족의 구역구분은 ‘오드’호수를 중심으로 시작되어 결국 후에 ‘호수전쟁’으로 기록되는 분쟁이 시작된 것.


●0224년

아반델트 남동부 해안지방의 ‘금사르’와 그의 추종자들이 반란을 일으킴. 무력 확장에 여념이 없던 아반델트로서는 처음 맞이하는 내란으로 동벌장군 아가임에게 작전의 정지를 명하게 된다. 금사르와 그의 추종자들은 순식간에 세력을 확장하여 동부 아반델트의 1/8을 점령하는 사태로 발전하게 된다. 그와 함께 동남부의 사란․펠시아 세력도 봉기, 아반델트는 갑작스런 내란체재로 돌입 하게 된다.


●0226년

대륙 동부의 아반델트 패권을 놓고 분쟁을 벌이던 사란․펠시아의 세력이 헬바이드 영지 동쪽 끝으로 이민해 온다. 이들은 동방의 권술(拳術)과 기(氣)등을 대륙에 전파하기 시작했고 정통파 동풍족의 무술과 대치되는 새로운 방법들을 창안하기 시작한다. 이 세력은 651년까지 유지된다. 이 세력의 유지라는 것은 형식적인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후에 많은 분파와 합병으로 새로운 형태를 갖출 때까지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0234년

7천국가문의 드윈과 카이저 가문의 중재로 호수전쟁은 일단락. 다만 강경한 오크족의 손을 어느 정도 들어준 인간들의 결정에 정령족은 일의 발단도 결말도 결국은 인간들의 손에 의해 결정되는 세태를 보고 이 세상은 인간들이 지배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후로 정령족들은 인간들의 세계에 두문불출하면서 지내게 된다.

아반델트는 내란을 진압하는데 성공한다. 다만 내란의 주모자들은 모두 나라를 떠나 타국으로 이민해버렸기 때문에 손을 쓰지 못한다. 많은 국력을 상실한 아반델트는 나라의 국력을 보강하기 위해서 자치정책을 펼치기 시작한다.


●0236년

조금 억지스러운 면도 있었지만 민족간의 갈등과 이해에 대한 타협점을 찾은 헬바이드왕가는 세계의 문화적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세계지도의 완성에 대한 열의를 보였고 이에 많은 준비가 착실히 이루어지게 된다. 이때 남해족은 구전으로 내려오던 여러 가지 세계의 전설을 헬바이드 왕가에 제공하여 좀 더 확실한 세계의 구성에 대한 정리에 도움을 준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신원기>와 <세계 만물전>, <크로세아 고전사>를 통합한 <크로세아 세계사>이다. 다만 그 방대한 양은 시작으로부터 100여년이 지나야 완성이 되었다.


●0238년

라울 2세 등극. 그는 등극과 동시에 유친의 뜻을 이루어 세계지도의 완성과 문화발달의 위업을 자신의 대에서 완성할 것을 천명한다. 이에 약 3만에 달하는 세계 원정단이 만들어진다. 이 원정단은 문화와 정보를 기록하는 헬바이드 문화단과 이들을 호위하는 대륙원정군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0239년

헬바이드 대륙원정군이 동부의 아반델트 부족연합과 접촉. 아반델트는 본래 지명이름이었지만 부르기 편한 이름으로 정리하다가 결정됨. 이로서 역사에 공식적인 아반델트의 이름이 등장. 이해 겨울 1차 대륙전쟁 발발. 헬바이드와 남해족 일부세력, 서부 일부세력이 합한 이들은 거센 진격으로 마법을 모르는 무지한 그들, 아반델트와의 전쟁을 끝내려했다.


●0241년

1차 대륙전쟁 종결. 보급로가 너무 길었던 헬바이드 왕가는 여지없이 풍지박살. 라울왕은 사로잡혔다가 동생인 왕제 포러스를 볼모로 대신하여 풀려난다. 왕제 포러스는 본래 문학을 좋아하는 라울왕과 달리 무력에 관심이 많았고 활달한 성격으로 아반델트에서의 생활을 전혀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


●0249년

포러스 왕제의 사절단(문화교류단)이 헬바이드에 도착.

이들은 동풍족들에게 유행하던 무술이라는 문화를 전달하기 시작한다. 결국 이들은 전쟁을 통해 알려진 서로들의 문화를 교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0253년

세계사에 기록이 남은 최초의 대륙전쟁에 패배한 헬바이드 왕가도 선조들이 이룬 문화적인 업적덕분에 먹고사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이들의 뭉개진 자존심에 대한 회복은 상당한 시일이 소비되었고 이것이 꼭 올바른 방향으로 치유되지는 않았다. 그러한 가운데 민족적인 자존심회복과 왕권의 재확립이라는 명분 하에 결정된 ‘대신전 건축’은 많은 국민들의 피와 살, 땀을 착복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건축 안은 발표만 되었고 실행에는 옮겨지지 않았다. 아직은 뜻있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0256년

헬바이드 왕가의 강경파귀족들의 안에 따라 코슬란이 서부의 지역인 것은 맞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땅과 도로는 헬바이드의 것이기 때문에 사용료를 받아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결정이 채결된다.

물론 당시 국가 재상을 역임하고 있던 드윈가문은 홀리데이가문과 함께 이것을 반대하는 운동을 펼쳐 이것을 무마시켰지만 소문은 이미 퍼질 대로 퍼져서 결국 타 민족들에게 헬바이드 왕가에는 아직도 귀족우월주의의 극치인 금혈맹이 남아 있다는 소문을 신빙성 있게 한다.


●0264년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헬바이드 왕가의 수도는 문화적인 중심지로 확고부동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7천국가문의 인원들이 하나둘씩 수도를 빠져나가 각각의 본거지가 있는 지방으로 가버리는 사건이 발생. 헬바이드왕가의 추태에 대해서 이들이 포기를 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함. 그러나 연이어 벌어진 문화행사와 스포츠대회, 그리고 새로이 신설된 무술대회의 바람 속에 이들 7천국가문에 대한 헬바이드왕권의 추태는 잊혀져 간다.


●0271년

결국 헬바이드왕가의 대신 ‘레루오리스’의 강경한 정책결정회의에 입각해, 대신전 건축안이 통과되고 약 50년에 걸친 국가적 사업의 시작을 알린다. 이에 반대하던 7천국가문의 드윈가문과 시트란스 가문은 중앙에서 축출 당한다. 이와 같은 해 서부연맹의 일부국가들이 군사연합체 ‘하실리아’를 발족한다.


●0283년

세계의 동남부에 위치한 정령족들이 세상에 모습을 완전히 감춤.

덕분에 일반적인 사서와 고서에도 이들에 대한 이 불명의 시대에 대한 신화가 존재하게 되었다. 일부 정령족들이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기는 했지만 과거와 같이 이들이 대량으로 모여서 사는 모습을 인간들은 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들이 모습을 감추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이 있지만 가장 강력한 설로는 마왕의 제국(고대 제국이라고도 한다)이 세계침공을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0300년

대신전의 착공에 이어 많은 자원이 투입되었지만 부패된 행정관리의 행동 때문에 무리가 발생하자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마력이 강하기로 알려진 북마족, 시미리언의 강제투입이 결정됨. 전혀 국가적인 형태를 갖추지도 않았고 완전 독립된 부족군락 형태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던 이들 시미리언이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헬바이드인들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하고 동원됨.


●0302년

대신전의 일부가 일반인들에게 공개됨. 그 위용은 찬란하고 엄청난 것이라고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그 많은 자원과 인력이 투자되어 만들어진 것치고는 별 볼일 없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

결국 대신전의 건축안 뒤에서 살찐 귀족들이 있다는 평이 다시 퍼지기 시작했고 이에 반발한 대신들은 헬바이드군에 소문의 근원지인 정령의 숲을 정벌할 것을 명. 실제로 참가를 하지 않았으나 표면적으로는 7천국가문의 아텔리가문도 동반하여 정벌한 것으로 기록된 이 원정은 600여명의 무고한 생명을 세상에서 지우는 것으로 종결된다.


●0304년

‘오크베우의 난’ 발생.

남해족 출신 대상 ‘오크베우’는 헬바이드 왕가의 부패에 격정을 참지 못하고 7천국가문의 동조를 얻어 대신 레루오리스가 이끄는 헬바이드군에 정면 도전. 단 10일 만에 끝낸다. 오크베우는 무능한 왕을 교체시키고 아반델트에 볼모로 잡혀있던 왕족의 후손인 ‘라운드․헬바이드’를 데려와 정권을 교체시킨다. 후에 사서들은 과연 이것이 잘한 일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이 많았으나 결국 논설로만 끝나고 말았다.


●0313년

정식 왕권을 거머쥐게 된 라운드․헬바이드는 오크베우에게 예를 표하는 형식으로 남부 민족신쇼였던 라이아스교(敎)의 능력을 인정, 정식 공인(公認) 시킨다. 왕권 중심의 신성교단(神聖敎團)에 있어서 중부세력의 것이 아닌 타 지역의 교리가 공인된 것은 이것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0324년

라운드․헬바이드는 왕권에 도전해온 왕계 귀족들의 도전을 물리치는데 성공. 물론 오크베우의 힘의 크기는 했지만 왕으로서 확실한 위상을 세우는데 성공한 젊은 왕은 다시 헬바이드 왕가의 기상을 세우는데 성공을 했다.


●0325년

나이케의 교리회합.

수도 헬바이드의 북부에 위치한 신교리 도시 나이케에서 종교회의가 벌어지다. 다시 강력해진 왕권의 부활로 인해서 안정된 치안과 신에 대한 찬양이 유지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타 지역의 교리가 공인된 것에 대해서는 이레 저래 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천신에 대한 찬양과 교리로 많이 인식되어지던 라티나우스와 셀디카의 양대 교리파는 왕권 귀족들의 보호로 많은 영역확장을 해왔었다. 특히 기사도에 가까운 교리를 가진 라티나우스의 교리는 군 세력의 지지도 굉장한 것이었다. 반면 상권의 배경과 신왕의 지지를 받은 라이아스는 등장부터 강력하고 안정된 체재를 가지고 등장했기 때문에 많은 충돌이 예상되었다.

특히 이 신탁교리, 교권이 은행 업무를 보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던 이 시대의 풍습에 따라본다면 강력한 남부 상권과의 결합을 유지하고 있는 라이아스의 우세는 당연한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 교리권의 불안과 신 교권리의 우려를 화합시키고자 벌어진 것이 바로 이 나이케의 교리회합이다.


●0341년

시트란스가문은 소환술의 체계성립을 발표.

그리고 여기에 도움을 준 천궁사의 존재가 세계에 알려짐.

천궁사의 존재에는 수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체계가 공식화되면 많은 공식을 발표. 일부 사서에서는 이들 천궁사들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행위’를 자랑하고 다니는 것에 불만을 토했지만 새로운 문화형태로 이해된 천궁사의 수학은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다.

다만 너무나도 체계가 다른 학문의 형태에 널리 퍼지지는 못하고 결국 천궁사라는 이름만이 알려지게 되었다.


●0343년

셀디카 교리회동. 양대 교리로 군림하던 셀디카의 보수세력이 순순한 종교 활동과 시장정리의 능력만으로는 더 이상 확장되기 어렵다고 판단. 독자적인 생존수단의 방법을 고안하기로 한다. 이 방법 중에서 일부 원로들이 제안한 비밀결사와도 같은 구성이 은연중에 완성되어져 버리는데 이것이 나중의 ‘???’가 된다.


●0348년

헬바이드 왕가는 세계의 대표들과 원로를 모아 다시 한 번 정리, 완성한 <크로세아 세계사>를 발간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신원기>와 <세계만물전>, <크로세아 고전사>의 재 편찬이 이루어진다.

이로서 세계를 대표하는 4개의 역사서와 문화서가 완성된 것이다.

물론 이후에도 왕가의 지속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10여년에 한 두 번씩 개편이 되고 했지만 이 기록의 기초가 되는 완성형은 바로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0349년

북마족이라고 일컬어지던 시미리언들의 국가체계성립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 강력한 마법국가의 성립이라는 모습을 그린 헬바이드와 아반델트, 크로아델 동맹은 쌍수를 들어 환영만을 할 수는 없는 입장.

과거 그들을 이러저러한 이유로 고생시킨 장본인들이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반민족들과는 달리 지신(地神)을 주신으로 삼고 있는 그들이기에 문화나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아주 다른 것도 경외심의 일부였다. 결국 표면적으로 드러난 일은 아니지만 각 나라들이 이들 시미리언들이 완벽한 국가를 성립하는 것에 방해공작을 펼친다.


●0350년

시미리언들의 나라. <시미리언 황국>이 건설됨. 다만 이 황국이라는 것은 대지의 신을 황제로 모시는 의미에서 황국이다. 그러나 황국이라는 명칭에 걸맞지 않는 초라한 건국이라고 기록되어 있음.

본래 소수민족인 시미리언들의 대다수가 참여한다 해도 그렇게 큰 국가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지만 각 나라들의 비밀조작에 의해서 실제로 국가 성립 시 약 8,000의 국민과 1,200가량의 국가수비군정도로 구성되어진 것뿐이다. 다른 국가들은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내심 쾌재를 불렀지만 어찌되었든 이 나라는 성립이 되었고 그들은 이렇게 시작했다.


●0361년

라운드의 뒤를 이은 라운드 2세가 등극하다. 젊고 패기 넘치던 왕이던 라운드 1세는 아직 정정한 모습이었지만 왕위를 넘기고 은둔생활을 시작한다. 그가 부패한 헬바이드 왕가의 위신을 다시 세운 것은 크게 칭찬할 일이지만 빛의 길속에 감추어진 많은 어둠의 그림자를 2세가 물려받게 했으니 풍운의 세기는 이때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0367년

‘볼티아넌의 반란’ 반란이 일어난 것에 대한 정확한 근거는 남아 있지 않지만 남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의 사태가 곧 대륙전체를 전화로 휩싸이게 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초기에는 예상외로 진압에 시간이 걸리는 사건정도로 기록이 되어 있었으나 곧 이들이 가공할 무력집단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각 국가들은 대책마련에 고심하게 된다. 이들은 총령포를 가지고 있었고, 마도사급의 인원이 대량으로 포함된 반란군이었다.


●0370년

동방의 북부아반델트의 소수민족과 그 민족 영웅 유수한(兪秀漢)이 대륙 중심으로 이동. 이것을 영토 침범으로 받아들인 헬바이드 군은 대응에 나서지만 유수한의 뛰어난 전법에 대패를 한다. 중앙 관리를 맡고 있던 헬바이드 정치령은 이것에 대응할 2차 정벌군 결성을 추진하지만 도중에 취소. 유수한과 그들의 민족이 대륙 동북부에 위치하여 사는 것을 비공식으로 인정하는 형태를 취한다. 후의 사서에서는 전략에도 뛰어났던 유수한이 일부 정치귀족들을 매수하여 자신들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는 ‘볼티아넌 반란’의 여파덕분에 이득을 본 유수한 민족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사서에서 거론되지 않았다.


●0375년

유수한과 그들의 민족이 제법 풍족한 위치에 정착하는 것을 본 다른 소수 민족들이 은근 슬쩍 이에 동참하는 동향을 보인다. 중앙의 헬바이드는 ‘볼티아넌 반란’ 때문에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서부 소수민족이나 동북부의 민족들이 하나 둘씩 중앙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는 것을 그냥 묵인하는 형태가 된다. 본래 넓은 통치 지역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인구가 늘어나는 현상을 일으켜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지만 이들 자체가 헬바이드 인이라는 의식이 없었기에 차후에 정치적으로 많은 문제를 남기게 된다.


●0381년

라운드2세. 헬바이드 왕의 동생이던 발렌스가 <볼티아넌 반란 진압작전> 중에 사망한다. 중요한 보급로였던 애드리아 폴리스의 공성전에서 불운의 죽음을 맞이한 발렌스 때문에 심적으로 고통을 받은 라운드 2세는 이 반란이 길어지는 데에는 그동안 고통 받은 소수민족들의 애환이 서려있다고 판단. 조기종결을 위한 정치적, 경제적 수단을 강구하는 것을 입안시킨다. 이전까지 분쟁이 일어나면 정치적인 수단을 제외하고서는 무력적인 진압만이 일반적이던 헬바이드 행정권에 새로운 스타일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0388년

결국 20여년에 걸친 ‘볼티아넌 반란’은 막을 내린다. 다만 이들이 왜 그 난을 했으며 사건종결이후에 그 주모자들은 어디로 갔는가에 대해서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작은 반란사건은 21년이나 지속되었고 그동안 투입된 진압군의 90%에 달하는 19만 명의 사상과 엄청난 물적 자원의 손해가 기록되었다. 그들의 본거지가 볼티아넌이라는 해변의 작은 마을이어서 이 반란의 기록은 ‘볼티아넌의 반란’으로 기록되었지만 결국 주모자도, 이유도, 결과도 흐지부지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0389년

‘세계의 완성’이라는 이념 하에 시작한 헬바이드 왕가의 세계지도 완성사업과 이종족간 문화교류라는 사상 속에  시작된 왕가사업도 서서히 완결을 맞이하고 있었다. ‘오크베우의 난’ 이후로 친밀해진 아반델트와 헬바이드는 문화적인 교류에 아낌없는 배려를 나누었고 세계지도는 완성목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역시 지도의 ‘실측기준’이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헬바이드 왕실아카데미는 결국 이러한 각지의 자료들은 모두 각 국가나 지방민들에 의해서 조사된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진정으로 완전한 세계지도인가?’ 라는 의문점이 제기된 것이다. 결국 수개월에 걸친 재검토 끝에 각 국가의 문화사절단원들을 포함한 세계지도 편찬국 결성이 발표된다. 구성원이 된 약 1,000여명의 다국적 학자들이 직접 손과 발로 뛰어 다니는 것을 바탕으로 한 실측지도여야만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은 것이다. 기본 바탕이 되는 자료들은 이미 거의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바탕으로 한 세계지도의 완성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일이라고 모두가 장담했다.


●0392년

세계지도작업.

실제로 많은 난관에 봉착한 이 세계지도 팀은 일단 재구성을 결심.

학회에 수많은 보고가 있었지만 결국은 각 지방의 종족들과의 완벽한 이해와 교류가 없이는 세계지도의 완성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왕가는 여타 소수 종족회에 협조를 부탁하고 이 세계지도의 완성에 도움을 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한다.


●0395년

헬바이드 중부의 정치적 세력을 양분하던 로이드 파와 콘스탄스 파의 분열이 시각화되다. 이것을 계기로 수도권에는 동서로 분리된 보이지 않는 장벽이 생기기 시작한다. 라운드 2세는 이러한 상황을 깨닫지 못했고 충정어린 정치귀족들은 외부행정에 바빴기에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정치 행정 중심에 서있던 로이드 파에 비해서 왕의 외친이라는 배경을 가지게 된 콘스탄스 파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았으며 이들이 라이아스 교단과 친하게 지낸 것도 많은 정치, 종교적인 대립의 양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0400년

세계지도의 완성은 아직도 멀고 멀었지만 헬바이드왕가는 우선 왕국령에 속한 지역의 표기만으로 거의 완성된 지도를 편찬, 발간하는데 성공한다. 추정이기는 하지만 크로세아 대륙의 약 15% 이상이 표기된 것으로, 이상적인 세계지도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고는 해도 이것이 나옴으로 인해 수많은 문화 서적과 기술, 음식문화에 대한 교류, 새로운 역사해석 등의 등장에 기초가 되었다. 이때를 ‘문화의 부흥기’라고 말하기도 하고 ‘암흑시대 이전의 찬란했던 인간들의 세기’라고도 말한다.


●0401년

대륙 동북부는 예로부터 낮은 기온과 농사가 되지 않는 척박한 지형, 기온의 변화 때문에 도시가 성립되지 못했는데 이 때문에 인간들이 아닌 일반학적으로 몬스터로 분류되는 종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중에 대표적인 마을이 바로 부란스인데 이 부란스에서 인간형의 지적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것이 ‘세계지도 작성팀’에 의해 발견됨.

그리고 이 인간형 지적생명체는 언데드 계열인 것이 밝혀져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킴. 즉 불로불사의 존재가 생태학적으로, 분류학적으로 확립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같은 해 서부지역의 구 크로아델 동맹과 하실리아 연합의 충돌이 있어 이일은 잠시 잊혀진다.


●0410년

- 생략 -


●0415년

서부 분쟁이 끝나고 왕실 아카데미는 신의 존재와 더불어 이 세상에 영원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이론에 따라 별도의 연구팀은 구성하기로 결정. 이것은 14년 전의 언데드 계열 확인 이후로 가장 흥미를 끄는 부분이었다. 이 당시 인간들의 평균 수명은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약 120~160세였다.


●0416년

세계지도 팀은 영원의 생명을 연구하는 팀과의 학술적 교류로 대륙의 동북부로 진출할 것을 검토. 그러나 크로아델과 아반델트의 반발에 의해 일부 정지. 하지만 결국 헬바이드왕가는 공식적으로 세계지도 팀과 영원의 생명 팀을 발표한다. 갑작스러운 문화적 발전형에 따라 수많은 연구원들과 학자들이 대륙의 동북부로 향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0419년

헬바이드 왕가는 일반인 차원의 동북부지역에의 탐사를 금지시킴.

비공식 기록까지 따져서 약 7,000여명의 학자들이 가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헬바이드와 아반델트는 7천국가문에 공식적인 의뢰를 하고 싶었지만 7천국가문은 이것을 비공식석상에서 거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0423년

북부 시미리언 황국에 작은 분규발생. 과거 황국 건설시, 헬바이드나 크로아델, 아반델트의 협조를 얻어 황국건설에 참여하지 않고서 이익을 받아오던 이들의 원조가 크게 줄면서 이들에 대한 분규가 시작된 것이다. 헬바이드나 아반델트 등은 시미리언 황국이 예상이상으로 얌전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그들의 국가적인 존재가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 시미리언 내의 반 정치세력에 대한 원조를 중단한 것이 이 사태의 원인이었다.


●0425년

결국 시미리언내의 반 정치세력의 숙청이 시작되었다. 이에 대한 망명자나 도주자들을 받아들여준 헬바이드였으나 그 중에서 정치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 만한 인물들은 시미리언의 처사에 맡기는 형태를 취했다. 다만 이중에 드윈가의 소녀가 있었다. 정치적인 기록상에는 그 어떠한 것도 남아 있지 않아 그 결과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 생략 -


●0429년

- 생략 -


●0431년

- 생략 -


●0434년

7천국가문 중 가문의 규율이나 율법이 엄격하여 가문 내에서도 탈락자가 자주 발생하게 되었는데 카이저 가문과 홀리데이 가문을 제외하고서는 한두 번 씩 사건, 사고를 발생시킨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것에 대해 역사학자 ‘아돌프’가 쓴 ‘나의 기억’이라는 개인 사서에는 카이저, 홀리데이 두 가문을 제외하고서 이전의 7천국가문의 규범을 완벽하게 실천하는 가문은 없다는 진술이 남아있다고 한다. 다만 이 아돌프의 저서는 그가 사망하기직전에 발간했고 이후 몇 십 권 정도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0437년

서부지역에 천재지변발생. 대부분 신탁에 의해서 재앙을 회피해온 인간들에게 있어 그 어떤 신탁도 없이 일어난 천재지변이라 피해가 컸다. 일설에는 신들조차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거나 신들이 방만해졌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한다. 이 천재지변은 대륙 서북부에 ‘빙설의 초원’이라는 새로운 지형을 만들었다.


●0444년

하자드 등장 - 생략 -


●0450년

서부 군사조직체 하실리아가 국가형태를 가지다. 하실리아의 조식상층부가 언제나 헬바이드의 안색만을 살피는 서부동맹의 태도에 불만을 품고 군사조직으로서의 강경함과 서산족의 긍지를 살리기 위해 하실리아를 실질적인 서부지역의 군사국가로 성립시킨 것이다. 헬바이드로서는 껄끄러운 군사강국을 동서 양측에 두게 되어 상당히 입장이 난처했지만 이것을 내색하지 않고서 잘 넘긴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사서가 많다.


●0451년

- 생략 -


●0452년

대마왕 하자드. 대륙 북동부에 나타나다. 홀로 나타난 그는 심심해서였는지 세계지도의 모습을 바꾸어야 할 정도로 심한 천재지변을 일으킨다. 헬바이드령 지방소속의 영주 둘과 귀족 5명이 이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소멸된 것으로 기록됨. 후에 헬바이드에서는 강한 항의의 의사를 시미리언 황국에 전달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의견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0458년

- 생략 -

  

●0461년

- 생략 -


●0465년

- 생략 -


●0473년

아반델트의 뇌제(雷帝), 원정에 나서다.

헬바이드 왕가의 대륙 원정조사대와 충돌. 제 2차 대륙전쟁 발발


●0476년

- 생략 -


●0482년

2차 대륙전쟁 종료. 아반델트가 승리하나 뇌제 사망으로 원만한 교섭 후 평화협정. 이 원만한 교섭이라는 문구 때문에 후에 사가들은 사실 아반델트에서도 뇌제의 독선적인 정책에 반발이 있었지 않았겠느냐는 말이 있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다.  - 생략 -



●0483년

천신계의 신탁. 모든 신전에 ‘대륙을 가로지르는 참담한 전쟁은 인간들의 의지에 의해서 나온 것이지 신탁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는 공식발표가 있은 것이다. 대부분의 왕가들이 자신들의 전쟁을 신들의 가호라든지 신의 섭리라는 등의 신탁을 남용해서 활용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 해석하는 역사가들이 많으나 이 신탁은 말뿐이어서 정치적 야욕에 불타는 인간들에게 심도 있는 경종을 울리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 생략 -


●0485년

에덴사건.  - 생략 -


●0486년

- 생략 -


●0493년

천재 마도사 베르사니의 출현. 북마족의 높은 마도력에는 이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지만 베르사니는 그런 정도가 아닌 파격적인 실력을 발휘한다. 각 서클 마법은 물론 마법, 마도, 대마도의 단계별 마법을 거쳐 독자적인 마법세계관까지 구축 할 정도로 성장한다.


●0500년

- 생략 -


●0502년

- 생략 -

하실리아 남부연합과 잦은 전투 발생. 일설에는 해상로의 확보를 위한 하실리아의 견제로 풀이되나 7천국가문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에 각국의 왕가들도 묵인하는 상태. 그러나 그 상권을 바라보는 상인들과 귀족들은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상당히 고가의 용병단이나 암살조직들이 활약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0504년

- 생략 -


●0511년

천재 마도사 베르사니. 시공간 마법에 흥미를 가지고 천궁사라는 직업에 대한 강렬한 의문과 연구심을 불태우다.


●0515년

- 생략 -


●0518년

- 생략 -


●0520년

대륙 북동부의 부란스에서 원인모를 폭발과 대지진이 발생.

이것으로 이 주변에 거주하던 몬스터들이 타 지역으로 이동개시.

인간들을 비롯한 여러 종족들이 귀찮아 함.


●0523년

- 생략 -

‘천궁사전투’ 발생. 마도사들과 천궁사들의 결투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 이유나 결과는 불명. 다만 이후로 천궁사들의 모습을 일반적으로 불수 없게 된다. 이것을 천궁사와 마도사들의 ‘마법전쟁’, 또는 ‘천궁사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역사에서는 종결시킨다.


●0525년

헬바이드 왕가는 세계지도를 20%~25% 정도 완성시킨 새로운 버전을 발표. 이에 세계의 이상향에 한발 다가서는 느낌을 받은 것이 사실. 이것을 기념으로 각국들은 상당히 많은 환락문화의 도입을 허가한 것으로 각 사서들이 기록하게됨.


●0527년

- 생략 -


●0528년

- 생략 -


●0529년

- 생략 -


●0531년

- 생략 -

‘볼지아논 전투’ 시작. 남부연합의 몇몇 국가들이 결국 하실리아와 대결을 본격화. 남부의 소국가들은 최종병기로 숨겨둔 워터드래곤들을 동원, 전투에 투입시키면서 상당한 소모전을 전개. 덕분에 남서부의 해상로는 완전 폐쇄. 알게 모르게 물품의 희귀성이 발생. 적지 않은 인플레이션이 각국에 발생.


●0532년

- 생략 -


●0534년

‘피라지아트의 혈전’이 벌어지다.


●0535년

7천국가문 중에서 홀리데이와 아비데일, 카이저 3가문이 참관하여 ‘볼지아논 전투’를 종결시킴. 일부 무력행사도 있었다는 보고가 있으나 그 자세한 내막은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다.


●0544년

‘클로버 전쟁’ 발발. 헬바이드와 아반델트의 중립지점에 위치한 라기오스를 중심으로 전쟁발발. 그러나 이것은 최초에 국가간의 전쟁이 아닌 부란스 지역에서 떠돌다 흘러 들어온 몬스터들에 대한 견제형태로 시작된 전투.


●0547년

‘클로버 전쟁’ 중단.

이유 없는 전쟁을 몇 년씩이나 하게 된 것은 중앙관리 체계를 가지고 있던 헬바이드정부의 늦장대응과 워낙 험난한 지역 환경 때문이었지만 이것으로 피해를 본 양 지역 간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것을 계기로 하실리아는 헬바이드가 상당히 멍청한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0559년

하실리아. 헬바이드에게 코슬란에 대한 간섭을 중지할 것을 정식 요청. 이에 대한 작은 분쟁 발생. 이후로 약 20년간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진다.  - 생략 -


●0561년

헬바이드 국민들 무능한 왕가의 정치 행태를 비판하고 나섬. 그러나 학자, 학사, 아카데미 위원들의 대거물갈이로 이 사실을 침묵화 시킴.  - 생략 -


●0565년

하실리아 내부에서도 쓸데없는 전투를 벌인다는 공론이 형성되었으나 언제나 헬바이드인들과의 자존심 문제만 대두되면 넘어가는 형태로 국력소비. 그러나 양국의 집권층은 향유를 즐기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음.


●0568년

- 생략 -


●0578년

아반델트와 남부연합. 상권에 대한 이익확보에 대한 분쟁 시작.

해적이라는 이름을 걸친 양국간의 자존심 대결을 어느 나라도 묵인. 즉 서로가 당할 때마다 언제나 발표는 해적에게 당했다는 것이었다.

- 생략 -


●0583년

헬바이드 왕가의 파돌 3세는 북마족들이 비협력적으로 나와 세계지도의 완성이 늦어진다는 판단을 하고 시미리언 황국의 소속이 아닌 북쪽 지방의 원정을 결행. 이 원정은 아무런 저항 없이 끝나 무혈입성하고 말지만 시리리언군이 어떠한 생각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름.

- 생략 -


●0590년

- 생략 -

- 하자드 이야기 5부 외전 시작 -


●0591년

헬바이드 왕가의 밀명으로 아텔리가문의 두 사람이 북부지역의 루길라성으로 향함.

- 생략 -


●0593년

파돌3세 사망. 로이베․헬바이드가 왕권을 이어받음.


●0600년 - 카이라의 제국세기 원년 (고대)

갑자기 나타난 대마왕 카이라의 마왕군에 의해서 세계정복이 끝나다. 크로세아 세계는 하나의 세계로 통일되었다.

- 생략 -


●0610년 - 제국세기 11년

처음으로 인간들의 대규모 반란이 일어남. 단 3일 만에 진정됨.

이후 수십 차례의 크고 작은 저항이 있었지만 모두 평정됨.

- 생략 -


●0612년 - 제국세기 13년

과거 왕권귀족들과 상인들이 주축이 된 친선모임 ‘빛의 광장’ 결성.

- 생략 -


●0633년 - 제국세기 34년

카이라 대왕. 세계를 27마귀족에게 통치권을 맡김.

- 생략 -


●0635년 - 제국세기 36년

크라뮤 태어나다. 응갸.


●0643년 - 제국세기 44년

- 생략-

●0648년 - 제국세기 49년

카이라 사망. 이 때 크라뮤의 나이는 13살.

세상에는 ‘빛의 광장’을 주축으로 한 영웅군 설립.

크라뮤 여행을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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