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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회귀자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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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마솥
작품등록일 :
2023.08.08 22:22
최근연재일 :
2024.03.2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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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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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3,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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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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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만반진수

DUMMY

종환의 사업 준비는 본격적이었고 또 조심스러웠다.


종환이 기범이 며칠 동안 모아 둔 자료를 보고 있었다.


‘대충 느낌은 알겠단 말이야.’


종환이 먼발치에 앉아 있는 기범을 불렀다.


“기범아.”

“예.”


“아니 오지 말고 그 자리에서 뭐 좀 묻자.”

“말씀하셔요.”


“우리 컴퓨터 사업 정리하면 돈 얼마나 될 거 같냐?”

“...”


기범이 조용히 있자, 종환이 다시 물었다.


“어? 기범아?”

“뭐 정리한다고 곧바로 정리가 된답니까?”

“그러니까 천천히 보면서.”

“...”


“됐다. 못 들은 걸로 해라. 너 컴퓨타 하고 싶은 거 다 아니까.”


역시 사업을 크게 하려니 발목을 잡는 건 돈이었다.


‘지금은 여유가 없는데.’


종환이 지금 잔뜩 들고 있는 건, 말 그대로 쉽사리 움직일 수 없는 돈. 부동산이었다.


“전략은 다 나왔는데...”


종환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기가 막힌 접근 방법이 있었다. 이제 이를 힘 있게 추진할 자금력만 확보하면 되는 거였다.


“종환아 오늘 좀 일찍 8시 전후로 마무리하고 술이나 먹으러 가자.”

“예? 알겠습니다. 한번 정리 빠르게 해보겠습니다.”



종환은 조금 속도를 늦추기로 했다.


‘급할 것도 없다. 아직 10년 고대로 남아 있는 거야.’


물론 마음 같아서는 그랜저 엑셀을 밟듯 쭉 나가고 싶었지만, 또 그 그랜저 차 같이 한번 뒤로 덜컥인 다음에야 크게 나갈 법도 했다.


‘이름이 중요한데, 그랜저 마냥 세련될 필요는 없지만 듣자마자 신이 나고 활기가 차는 거라...’


골초 종환이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또 사무실을 희뿌연 연기로 가득 채울 셈이었다.


‘술은 어디로 먹으러 갈까.’


아주 중대한 결정 속에서도 늘 그렇듯 아주 작고 친근한 고민들도 함께였다. 종환이 회귀를 했든 안 했든 결국 사람이 하고 사람이 사는 거였다.


“기범아 어디로 갈까?”


“술집이요?”

“그래, 백화수복 가지고 갈까?”


“아직 집에 안 갖다 놓으셨어요?”

“자꾸 까먹어서.”

“가져가서 여정이랑 드세요.”


“여정이랑은 미주앙 갖고 가 마시면 되지.”


종환이 갑자기 생각났는지 와인잔이 든 상자를 책상 위에 얹어 났다. 그리곤 말했다.


“거의 일주일 동안 계속 까먹어서 말이야, 좀 꺼내나야지 생각해서 안 까먹고 가져가지.”


“요새 완전히 그 신사업 생각한다고 정신이 없으셨잖아요.”

“아휴 말도 마라, 좀 천천히 가볼 생각이야.”


이미 거기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힘은 다 종환이 썼는지 별로 그쪽에 대해서는 쥐꼬리만큼도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기범아 있다가 어디를 갈지 모르겠는데 수복 이거 챙겨서 나와라.”

“가게에서 싫어하지 않을까요?”


“아이 상관없어, 안 팔아서 갖고 가는 건데 뭐. 고작 한 병에 우리가 이거 말고 술 더 안 팔아 주겠냐?”

“어디로 가시는데요?”


“어디가 좋겠냐? 네가 한번 정해봐라.”

“닭내장탕 먹으러 가요.”


종환이 기범의 그 말에 진절머리를 쳤다.


“아 이놈. 그 닭내장탕 타령은, 술도 결국 안주 빨이라니까. 녀석. 야야 그래 놓고 또 술 안 맞는다고 하지 말고 다른 거”


“사장님 이번에는 닭내장탕 먹으로 가요.”


웬만해서는 종환 말을 듣는 기범이 다시 한번 말했다.


“뭔 닭 내장 못 먹고 죽은 귀신이 꼈나, 네가 무슨 여우 귀신이라도 되냐? 요새 왜 이렇게 닭내장탕 타령이야?”


“안 간 지 꽤 됐잖아요. 그 맛이 그리운 걸 어떻게요.”



종환이 회귀를 한 후, 중계동 쪽에서 여러 번 부동산 거래를 성공시키면서 회사에 여유 자금이란 게 처음으로 생겼었다.


그래서 종환은 이제 그런 건 별로 사주고 싶지 않았다. 이제껏 내색은 안 해도 마음이 많이 갔었다.


“야, 기범아. 소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 거다. 시장 가서 돼지 부속 고기만 먹다보면 사람이 거기에만 맛이 들리는 거야.”


“사장님, 제가 요 근래 사장님처럼 돈 많은 사람들이랑 밥은 못 먹어 봤어도, 돈 있는 사람들도 다 소고기도 먹고 돼지고기도 먹고 하더랍니다.”


서류를 정리하며 기범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보던 서류 하나를 집어 철제 캐비넷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다 어차피 사람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냥 저는 오랜만에 먹고 싶습니다. 먹던 맛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 가. 그럼.”


종환이 조금은 거칠게 알았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았지만 그래도 사장 마음이란 게 있었다.


종환은 자신의 동기이자 기범의 학교 선배만 믿고 자신의 회사에 와준 기범이 고마웠다.


“야 기범아”

“예?”


“이번 것만 하고 다음은 너 하고 싶은 컴퓨터 하자. 크게”

“에이.”


기범이 종환의 말을 반농담으로 들었다. 그리고 회귀까지 한 종환은 그 말을 허투로 할 성격이 아니었다.



***


“가자”


오후 8시를 좀 넘겨 종환과 기범은 회사 사무실을 나갈 생각을 했다.


“밥도 안 먹었는데 진짜 닭내장탕 먹으러 가냐?”

“예. 그럼요. 먹고 싶다니까요.”


“가, 그럼. 술 챙기고”


습관적으로 차량 열쇠 쪽으로 몸 방향이 갔던 기범이 아차 싶어 술병을 챙겼다.


“하”


종환이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우리가 이쪽 건물 제일 먼저 와 불 켜 놓고 끄기는 또 제일 늦게 끄네. 괜찮지? 기범아”


“뭐 나쁠 게 있습니까?

“다 잘 될 거야.”


“그럼요.”



둘은 얼마 걷지도 않아서 가까운 닭내장탕을 주메뉴로 파는 점포 앞에 왔다.


“기범아 중자 하나랑 무침 하나 시켜놓고 나와라, 나와서 담배나 하나 피자.”

“예.”


입구에서부터 기범을 본 주인아줌마가 반갑다는 듯이 기범에게 말했다.


“아이구?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 요즘 일이 잘 안돼?”


기범이 허허실실 웃으며 말했다.


“일이 너무 잘돼서 문젭니다. 바빠서 술 한잔 걸칠 시간이 없네요?”

“어이구 사장님은? 혼자 왔어?”


기범이 입구 바로 앞에 선 종환을 가리켰다.


“저 밖에 계시잖아요.”

“자주 좀 오자고 해.”

“안 그래도 제가 오자고 했어요. 내장탕 중자 하나랑 골뱅이 무침 하나 내주세요.”


기범이 담배를 꺼내 들어 보였다. 밖에서 담배를 피고 들어오겠다는 거였다.


가게 주인이 말했다.


“안에서 피지?”

“갑갑하잖아요.”


***


벌써 담배를 거진 다 핀 거 같은 종환이 오는 기범을 보고 말했다.


“기범아”

“예.”


“난 자꾸 조바심이 난다.”

“조바심이요?”


담배 연기를 뱉어낸 종환이 말했다.


“그래 조바심. 지금도 원체 빨리 간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그래도 밤에 누워있으면 마음이 급해.”

“...”


“심장이 뛰어서 잠이 잘 안 온다. 뭐든 다 좋은데 뭔가 지금을 놓쳐버릴 거 같은 거야.”


“사장님 어디 한약 잘못 드신 거 아닙니까?”


기범이 아는 심장이 벌렁거리는 거라곤 보약을 잘못 먹어 그런 거밖에 없었다.


그 말에 담배를 더 깊게 빤 종환이 그와 동시에 꽁초를 바닥으로 튕기며 말했다.


“피고 들어와.”




“크”


아직 덜 끓은 닭내장탕의 국물을 떠먹은 종환이 속이 깊게 타는 소리를 냈다. 종환과 기범이 이쪽 가게에서 받는 닭내장탕은 다른 상에 나오는 닭내장탕보다 곱절이 매웠다.


항상 그렇게 남들보다 맵게 조리된 닭내장탕에 술잔을 기울였었다.


기범이 술병을 쥐고 나르는 가게 사장님을 보고 말했다.


“아우 사장님 더 매워진 거 같아.”

“고춧가루가 매운 고춧가루라. 너무 매워요?”


“아 딱 좋습니다.”


종환이 말했다. 한번 휘저어 주지 않아서였는지, 아무래도 수북이 올랐던 고춧가루 중 덜 국물에 담긴 녀석들이 있었던 것 같았다.


칼칼한 생 고춧가루의 맛도 강하게 났다.


“아, 기범아 여기 잘 왔다. 시원하네.”


그럼에도 유난히 그날의 닭내장탕은 종환의 입맛에 맞았다. 절로 기침이 나게 하는 고춧가루였다.


“한잔씩 하자.”


종환이 먼저 기범의 잔에 술을 줬다. 기범이 잔을 받더니 수복 병을 들더니 물었다.


“이걸로 드릴까요?”

“아니다. 기범아. 저 소주로 줘라. 네 말이 백번 천번 맞다.”


기범과는 늙어서도 소주를 먹었었고 그게 종환 입에 맞았다. 쓴 술도 먹다 보면 모르는 것처럼 종환의 그 인생도 살다 보면,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쓴지 몰랐다.


“술 잘 들어가네.”


술잔에 더해 안주 국물을 연신 퍼먹은 종환이 말했다.


“오늘 좀 마시자.”

“예.”


술친구도 있겠다, 나이도 이제 서른 언저리겠다. 종환은 술이 좀 들어가니 조급함이 좀 가셨다.


주량에 비해 술을 몇 잔 들이키지도 않았는데도 켜 놓은 불과 분위기에 종환의 눈이 꽤나 풀렸다.


“사장님 술은 잘 들어가는데 오늘 술은 안 받으시는 거 같은데요?”

“자식아. 잔말 말고 마셔. 골뱅이도 좀 집고.”


잠깐 가게 벽을 보던 종환이 말을 이었다.


“달라, 다르다. 기범아.”

“오늘은 더 맵게 주셨네요.”


“아니 인마, 냄새가 다르잖아.”

“비리세요?”


기범이 눈을 좀 크게 뜨고 물었다.


“아니 이거는 맛있지. 맛있고말고.”


종환이 건더기를 한 움큼 해 퍼 입에 넣었다. 그리고 오물거렸다. 그 오물거리는 입으로 말했다.


“정취가 다르다.”

“정취요?”


“80년대는 집에는 못 들어가도, 밖에 이 사람들 정취를 좀 봐라.”


가게 안이 북적북적했다. 뭐가 좋은지 다 회사 사람들이 나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이 언제까지 술을 마실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짧은 잠을 청하고 그들의 일터에서 다시 아무렇지 않게 만날 사람들이었다.


“기범아.”

“예?”


“나는 이 폭주기관차 같은 사람들이 그리웠다. 그리고 그렇게 밀고 나가면 됐던 세상이 그리웠던 거야.”

“...”


잠시 침묵한 기범이 잔에든 소주를 입에 다 털어 넣고는 조금 흘린 술에 입을 쓱 닦았다. 그리고 골뱅이무침에 튼실한 골뱅이를 집어 씹었다.


그리고선 물었다.


“사장님 대체 사장님이 살아봤다는 미래는 어땠는데요?”


“좋았지. 좋았어. 다 잘 살았지.”

“그래요? 사장님 말 들어보면 다 코 배어 가는 서울 순 사기꾼들만 사는 줄 알았는데 또 그렇진 않았나 보네요.”


“근데 그리움이란 게 있더라 기범아.”

“그리움이요?”


“그래. 그리움. 자 마셔.”


종환은 기범에게 더 설명하지 않았다. 종환 역시 더 설명할 방법을 몰랐을뿐더러, 그건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냥 마음 한켠에 있다 문득 깨어나 발현되는 작은 소용돌이 같은 거였으니까.



“참 잘 왔다. 여기. 아주 잘 정했어.”

“참 사장님도. 이번 래모나 자료 힘들게 찾은 건 아무 말도 안 하시고는.”


“그것도 잘했다야. 어? 최고야 아주.”

“한 잔 받으시죠.”



둘은 충분히 한껏 취할 자격이 있었다.


<만반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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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취식지계 장원지계(4) 24.01.04 32 0 10쪽
26 취식지계 장원지계(3) 24.01.03 35 0 11쪽
25 취식지계 장원지계(2) 23.12.28 37 0 10쪽
24 취식지계 장원지계(1) 23.12.27 47 0 11쪽
23 양강의 이름(2) 23.12.22 48 0 12쪽
22 양강의 이름(1) 23.12.21 56 2 10쪽
21 천리행룡(2) 23.09.04 80 3 10쪽
20 천리행룡(1) 23.09.01 97 2 12쪽
19 노래하는 알바트로스(3) 23.08.31 97 2 10쪽
18 노래하는 알바트로스(2) 23.08.30 102 2 12쪽
17 노래하는 알바트로스(1) 23.08.29 116 2 12쪽
» 만반진수 23.08.28 131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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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취금찬옥(1) +1 23.08.22 15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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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안목소견(2) +1 23.08.18 160 4 10쪽
9 안목소견(1) +1 23.08.17 198 4 12쪽
8 밀운불우(2) +2 23.08.16 225 5 12쪽
7 밀운불우(1) +2 23.08.15 273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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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화가거(2) +1 23.08.10 490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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