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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Yo 님의 서재입니다.

검왕의 제자는 기억속으로 회귀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씨요
작품등록일 :
2019.04.02 19:44
최근연재일 :
2019.04.24 23:28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2,365
추천수 :
74
글자수 :
91,604

작성
19.04.24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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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07. 딛고 나아간다 (3)

DUMMY

“빛나리? 넌 여기서 왜 나오냐?”

-난 네 기억과 감정에 기생하고 있다니까. 그때 내 말은 뭐로 들은 거야?

“헛소리로 들었지.”

-뭣! 헛소리! 이게 도와준 은혜도 모르고!


발끈해서 시끄럽게 떠드는 빛나리를 무시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 다니는 공사현장 한가운데, 나는 서있었다.


시끄러운 그라인더의 소리, 불꽃 튀는 용접기. 고함뿐인 사람들. 그 광경에 기억이 단편적으로 떠오른다.


“···나, 건설 현장에서 일했었지.”


저 멀리 심각한 표정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걸까, 궁금해서 다가가 보려고 했지만 주변의 시선이 신경쓰였다.


-괜찮아, 가도 돼. 아무도 너 못 봐.


빛나리가 등을 떠밀며 설명을 덧붙인다.


-여기는 네 기억을 토대로 재현된 또 하나의 차원이야. 이 차원 자체만으로 보자면 완벽하지만 어디까지나 네 기억으로만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른 차원과는 간섭할 수 없어.

“그럼 난 여기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야?”

-인과율을 뒤틀 수는 없어.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은 널 보지 못하는 거지.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

“그럼 그냥 보기만 해야 된다는 거야?”

-엉.

“시발···.”


벌컥 성질을 내보지만 빛나리 녀석은 모르쇠 딴청을 피며 나에게 멀어진다. 말만 하면 다인가, 성의없는 놈 같으니.


어쨌든 빛나리도 멀어졌고,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겠다. 이 곳의 나에게 접근해서 나의 후회, 나의 치부를 마음껏 들춰봐야겠다.


“안 됩니다! 저는 안 돼요!”


다가가자마자 격한 반대의 의견을 내보이는 이 세계의 나.


“저 안 갑니다, 아니. 못 가요! 거기 가면 출근하는 데만 4시간 걸리는데 어떻게 갑니까!”

“아, 그래도 ■ 씨 말고는 갈 사람이 없어요. 호진 씨는 여기 용접부 총책임자고, 동연 씨도 집에 애들만 있잖아.”

“저도 집에 어머니 혼자 계신다고요!! 아프셔가지고 제가 병원도 자주 모시고 가야 하는데 저 내려가면 병원 다니기도 힘드십니다!!”

“아 그건 ■ 씨 사정이고. 그래서, 못 내려간다는 거예요?”


예,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었다. 기억난다.


회사에서는 지방에 새로 잡힌 건설현장에 본사의 인원을 내려 보내기를 원했었다. 나는 돈이 절박한 인턴이었고, 그런 나는 회사에서 얼마든지 쳐낼 수 있는 대체용품이었다.


돈이 필요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그냥 돌아가신 것도 아니라 큰 교통사고를 내고 돌아가셔서 사회에 나간 적 없던 어머니와 아들이 감당하기에는 무거운 빚이었다.


힘들게 살았다.


좁은 집에서 낑낑거리며 아등바등 살았다.


그렇게 살았던 결과는 건설업체 인턴.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이제 빚을 갚아가며 살아가는 일만 남았구나 싶었던 때에.


어머니가 아팠다. 그것도 아주 크게 아팠다.


자주 복통을 호소하시는 통에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지원해주는 건강검진을 어머니와 함께 받았는데.


위암을 판정받았다. 그것도 중기.


기술이 많이 좋아져서 중기 정도의 위암은 수술과 치료를 병행하여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었지만, 돈이 필요했다.


더군다나 어머니가 체력이 약해 수술을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다고 의사가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전근까지 가버린다면 과연 수술이 잘 이뤄질 수 있을까.


“다시 봐도 엿같네.”


나는 이를 악물었고, 이곳의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도 이 답답함을 어디에도 풀어낼 수 없었던 나는 그날 밤, 걱정해주는 어머니께 되려 화를 내버렸다.


분명 서로에게 버팀목이었지만 내면에 쌓여가는 피로는 외면하기 힘든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랬으면 안 됐는데, 나도 모르게 어머니를 걸림돌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완전 불타는 효자다.


“씨발···!”


이 세계의 내가 짙게 욕지거리했다. 끼고 있던 장갑을 거칠게 벗어서 바닥에 패대기 치려는 모습. 근데 패대기치는 각도가 좀 이상한데.


퍽!


“어?”

“어?”


장갑이 패대기쳐지는 소리와 함께 나와 또 다른 나는 동시에 말했다.


내팽개쳐진 장갑이 몸을 투과하지 않고 그대로 부딪혀 바닥에 떨어졌다.


“뭐, 뭐야? 여기 뭐가 있나?”


그가 내 쪽으로 손을 뻗어오자 나는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래, 사람이 날 보지는 못해도 사물에는 간섭할 수는 있었네.


괜히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은 빛나리가 원망스러웠지만 내가 이 세계에 간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이제 오늘 밤에 있을 일을 내 후회를 막을 수 있으니까.


-안 돼.

“어디 가 있다가 이제 와서는 안 된데. 너 내가 무슨 생각한 줄 알고?”

-무시하지마, 이래도 전능한 몸이야.

“전능하긴, 지랄은.”

-야!


가볍게 중지를 치켜들고 또 다른 나를 뒤따라갔다. 분명 지금 고민으로 머리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겠지.


결국 나는 그때 집에서 출퇴근을 하기로 마음먹었었다.


4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오고간다는 건 미친 짓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너무나도 걱정되는 마음에 그런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렸다.


정신 나간 결정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걸 멈추기 위한 브레이크는 걱정으로 모두 막혀버려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옆에서 도와줘야지.”


종이와 펜을 슬쩍했다.


별 다른 말은 쓰지 않았다.


간단하게 한 마디만 써놓고,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언제나 핸드폰을 넣어놓던 주머니에 곱게 접어서 넣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러면 인과율이 뒤틀린다고!! 빨리 빼!

“아니.”


원래 있던 일이 잘못된 일이었던 거야. 나는 그걸 바로 잡을 뿐이고.


-야!!


계속해서 빛나리는 떠들었지만 나는 무시했다.


귀를 닫고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의 뒤를 밟았다.


-어휴, 난 몰라.

“이제 왔니?”


현관문이 닫히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들어가서 보고 싶었지만 저 좁은 집에 나까지 들어갔다가는 바로 들켜버릴 지도 몰랐기에 이렇게 문 밖에서 듣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저녁은 먹었니?”

“···.”


나는 대답이 없다. 원래라면 여기서 한 마디 쏘아붙였어야 했는데, 내가 해준 말이 효과가 있는 걸까.


“어머니.”

“왜 그러니?”

“놀라지 말고 들어요.”


크게 한 숨 들이쉬는 집 안의 나.


“저 전근가요.”

“뭐···?”


나는 작은 종이에 별 말을 쓰지 않았다.


[솔직해져.]


내가 나에게 하는 말.


나에게 저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나도 저 상황에서 계속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지 어머니가 충격을 안 받을까, 혼자 살아가는데 불편하지는 않으실까, 내가 옆에 없는데 수술은 잘 될까.


혼자서만 끌어안고, 혼자서만 해결하려고 하니 당연히 해답을 나올 리가 없었다.


내가 저기에 있었어도 한결같은 반응을 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게 다를 리는 없으니까.


다만, 생각을 바라보는 시점이 바뀌고, 시간이 흐르다 보니 좀 더 직관적으로 현명하게 이 어려움을 해결해 나갈 방법이 보였다.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냥 솔직해지면 된다.


나는 분명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부양하게 되었고, 생계를 책임지게 됐다.


하지만 모든 게 변해도 단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내가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것. 둘은 서로에게 버팀목이라는 걸.


혼자 꼿꼿이 서려고 하니 버팀목은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분명 나는 버팀목에서 집안을 지키는 기둥이 된 줄 알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버팀목이었고. 어머니 역시 나를 버티고 있었다.


버팀목은 서로 기대어야 한 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전화 자주 할게요,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가면 돈도 더 많이 벌 거예요.”

“그래, 회사에서 그렇다면 그래야지···. 그래도 걱정되는구나. 밥은 잘 챙겨먹을 수 있겠니?”


나는 웃었다.


그래, 당장은 힘들겠지만. 변해버린 집안 환경이 낯설겠지만.


서로에게 기대서 버티면 돼.


“이거면 됐어.”


만족하고 발을 돌렸다.


어머니께 상처 안 준 것만으로도 만족인데, 이 이상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줄은 몰랐다.


역시 나다.


-인과율이··· 인과율이···.

“그만 찡찡대. 나도 참고 있으니까.”

-너 이게 대수롭지 않은가본데··· 이거 굉장히 중요한 거거든? 너의 기억은 세계를 구축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하.”


콧방귀를 낀다. 좋은 놈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철면피다.


“그럼 애초에 이런 일을 안 벌였으면 됐잖아.”

-뭐?

“나를 왜 지금 있는 세계에 불러놓은 건데?”


빛을 노려봤다.


빛 역시 나를 마주한다는 느낌이 든다.


“나를 안 불렀으면 이런 일은 없잖아.”


지금 있는 세계는 분명 내가 원래 있던 세계가 아니다. 눈으로 생생히 본 나의 기억이 그것을 말해줬다.


내 감정, 내 기억. 이 둘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이 녀석이 내 기억의 세계를 안내한다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겠지. 이 빛은 꿈에서 나를 스승님께 인도한 적이 있으며, 내가 모든 기억을 잃고 숲에 떨어졌을 때 유일하게 기억했던 것이 바로 이 놈이었으니까.


“왜 그랬어?”


빛을 다그친다.


“왜 그랬냐고!!”


잘 살고 있는 나를 왜!


아픈 어머니를 두고!


-···.


빛을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따지고 들었지만 아무 말도 없던 놈은 돌연 어둠에 삼켜지기 시작한다.


“이 치사한 새끼! 야, 야!”


-걱정하지 말고 다음 기억을 찾아.


사라져가는 빛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시발!”


오늘따라 나는 유난히 욕이 잦았다.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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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07. 딛고 나아간다 (2) +1 19.04.23 57 0 11쪽
18 07. 딛고 나아간다 (1) +2 19.04.22 64 1 12쪽
17 06. 후회는 눈물로 얼룩진다 (4) 19.04.19 59 1 9쪽
16 06. 후회는 눈물로 얼룩진다 (3) 19.04.18 76 1 9쪽
15 06. 후회는 눈물로 얼룩진다 (2) 19.04.16 65 1 10쪽
14 06. 후회는 눈물로 얼룩진다 (1) 19.04.15 71 2 8쪽
13 05. 파먹는 자 (3) 19.04.13 71 3 8쪽
12 05. 파먹는 자 (2) 19.04.12 83 3 8쪽
11 05. 파먹는 자 (1) 19.04.11 76 2 9쪽
10 04. 괜한 간섭 (3) 19.04.11 82 3 8쪽
9 04. 괜한 간섭 (2) +1 19.04.09 82 4 9쪽
8 04. 괜한 간섭 (1) 19.04.08 111 4 12쪽
7 03. 숲 너머 (2) 19.04.07 113 6 9쪽
6 03. 숲 너머 (1) 19.04.06 128 5 12쪽
5 02. 처음을 배우다 (2) +2 19.04.05 167 6 16쪽
4 02. 처음을 배우다 (1) 19.04.04 161 5 13쪽
3 01. 처음으로 본 사람 (2) 19.04.04 182 8 8쪽
2 01. 처음으로 본 사람 (1) 19.04.03 271 10 13쪽
1 plo. 신탁 +2 19.04.02 380 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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