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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Yo 님의 서재입니다.

검왕의 제자는 기억속으로 회귀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씨요
작품등록일 :
2019.04.02 19:44
최근연재일 :
2019.04.24 23:28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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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6
추천수 :
74
글자수 :
91,604

작성
19.04.06 20:00
조회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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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03. 숲 너머 (1)

DUMMY

안개가 짙게 깔린 새벽 숲에 해가 비추기 시작하자 안개는 무서운 속도로 걷혀간다.


“이제야 그럭저럭 볼만하군.”


걷혀가는 안개 속에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방금까지 열심히 움직였던 나에 대한 스승님의 평에 더 이상 가시가 돋아있지 않자, 슬쩍 미소를 그렸다. 그런 나에게 스승님은 뭐가 못마땅한지 여전히 뚱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제 눈살 찌푸리는 수준을 면했거늘, 뭐가 그리 좋아서 웃느냐?”

“스승님의 입에서 그 정도면 칭찬이니까요.”

“배운지 얼마나 되었다고 내 언사를 구분하느냐. 건방진 것.”

“밤 새 욕먹다가 그 정도면 칭찬이죠, 뭐.”

“속 편해서 좋겠군.”


스승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움막집으로 걸어갔다. 나도 뒤따라 들어가려고 했지만 스승님이 손을 펼쳐 오지 말라는 뜻을 내비쳐서 그저 움막집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분명 이유가 있으시니 따라오지 말라고 한 것이겠지.


“뭐엇―!”


조용하던 움막집에서 얼마 가지 않아 숲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르는 아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저렇게 반응하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나를 제자로 삼았다는 말을 전해들은 게 분명하다.


쾅! 움막집의 문이 부서져라 열리더니 아린이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걸음걸이나 잔뜩 구겨진 표정으로 보나 곧 나에게 닥칠 미래가 훤히 보인다.


“야, 머저리.”

“머저리라니, 누가 스승님 시종 아니랄까봐. 말하는 본새 하고는.”

“···허?”


아린은 이런 사태를 전혀 예견하지 못 했을 것이다. 어제 그렇게 무참하게 깨뜨린 남자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 있어선 할 수 없는 상상이었을 것이고, 참을 수 없는 도발이겠지.


스승님의 제자가 된 것은 좋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스승님에게서만 인정을 받은 것이지, 나는 아직 앞으로 동행하게 될 다른 이에게서 인정을 받은 적이 없다.


그 인정을 받는다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어제 내걸었던 조건의 연장선. 아린은 나를 제압하기 위해 움직이고, 나는 그런 아린의 공격을 3분 동안 버텨낸다.


물론 차갑게 굳은 아린의 얼굴을 보면 제압 수준의 공격만 해올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조건에 부합한다. 내가 그 공격을 모두 견뎌내면 그때서야 아린이 나를 인정해 줄 테니까.


어쩌면 지나친 자만일수도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턱과 복부를 단 한 번씩 때리는 것으로 나를 무릎 꿇렸던 상대를 도발한다는 것은, 그렇지만 그러지 않고서야 그녀와 내가 싸울 일은 없다.


아린의 성질을 건드려야지만 비로소 성립되는 싸움.


스승님도 그걸 알기에 아린이 화가 날만한 말을 해준 것이다. 이 미래는 분명 스승님이 염두 해놓은 미래일 테니 그에 맞춰 행동을 하는 것이 제자 된 도리가 맞다.


나는 그렇기에 좀 더 아린을 도발한다.


“내가 아니꼽겠지, 밤새 무슨 말로 구워삶았기에 네 주인이 넘어 갔나 궁금 할거야, 그치?”

“······.”

“너에겐 눈엣가시겠지만, 네 주인한테 있어서 나는 하나 뿐인 제자거든? 어제까지야 난 단순한 숲에 사는 사람이고 네 주인은 내 식객인 관계였으니까 적당히 넘어갈 수는 있지만 이젠 아니란 말이지.”


욹그락 붉그락 시시각각 변하는 아린의 표정이 도발에 서서히 넘어오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 열 받아라 더욱 더 열 받아라.


“난 저 분을 스승님으로 모시고 있고, 넌 저 분의 시종이잖아. 분수를 알아야지, 시종이면 시종답게 주인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어?”


거기까지 말을 마치고 살짝 후회를 하는 그 때, 주변의 기운이 그녀의 몸 안으로 훅 빨려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 힘의 크기가 생각 이상이라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키며 나도 힘을 끌어 모았다.


퍼억!


순식간에 휘둘러지는 팔을 목검을 들어 막았지만 목검은 맥없이 부러져 나갔다. 자연의 힘까지 불어넣어 쉽게 부러질 리가 없었을 텐데, 그걸 나뭇가지마냥 부러뜨리는 그녀의 힘은 내가 쉽게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죽여 버리겠어.”


···너무 도발했나?


“내장을 다 입으로 게워내게 만들어 주겠어. 죽어야지 다시는 하이츠 앞에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

“그거 되게 살벌하네. 야, 눈 그렇게 희게 뜨지 말고 침착 좀 하지?”


빠드득, 연이은 도발에 이를 악무는 소리가 소름끼친다. 명백히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아린을 상대하기 위하여, 나는 밤새 받았던 새로운 가르침을 풀어놓기 위해 전신에 자연의 힘을 가득 머금었다.


“실컷 발버둥 쳐 봐, 그대로 짓이겨 줄 테니까.”

“그래, 난 발버둥 칠거다. 하지만 말이야, 내가 너를 상대하는 건.”


아린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어간다.


“검이 없어도 충분해.”


부러진 목검을 버렸다. 어차피 지금의 나에게 검은 필요 없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다른 것이 아닌 어젯밤의 기억이다.


[검의 기본은 무엇이더냐?]


나를 제자로 받아들인 직후, 스승님이 물었다.


[검술을 펼치는 자신의 몸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검을 동반한 움직임을 익히기 전에 앞서 검이 없는 자신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내가 처음에 말했던 검에 대한 마음가짐을 배워가기 위한 것과 같은 이치니라. 너 자신의 몸을 검처럼 다뤄야 하고 검을 너 자신의 몸처럼 다뤄야 한다.]


스승님이 내 옆에 나란히 섰다. 그리고 천천히 허리를 굽히고 자세를 잡는다.


[자기 몸도 못 다루는 놈은 평생 제대로 된 검을 다룰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오늘 밤새 너에게 검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몸을 검처럼 쓰는 법을 가르칠 것이다.]


옆에서 서서히 몸을 움직여 가는 스승님. 그 몸짓은 검법으로 보이지 않았다.


스승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동작 하나 하나를 그대로 따라했다. 그녀의 행동이 마치 자신을 따라하라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기에 나는 거기에 이끌려 나 자신이 검이 되는 검법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따라했다.


“그 자세는···!”


배운 것을 떠올리며 잡은 자세를 보고 주먹을 떨던 아린은 스승님에게 소리쳤다.


“하이츠! 너, 지금 외부인한테 가문의 기술을 가르친 거야!?”

“외부인이 아닌 제자다.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스승님의 가문인 재클린 가에 대대로 전해지는 검법 중 하나인 맨몸으로 펼치는 검법, 그 처음을 풀어가는 준비식이다.


스승님은 특별한 검식 외에 모든 자세에 마땅한 이름은 없다고 했다. 검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데 굳이 거창한 기술명은 필요치 않다고 했다.


“하, 하하.”


아린이 허탈하게 웃는다.


“같잖은 흉내는 집어치워!!”


자연의 힘을 담아 도약한 아린이 빠르게 쇄도했다.


힘을 운용하지 않고 도약했던 어제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 비록 어제는 그 속도를 눈 끝으로도 잡을 수 없었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어제 밤새도록 스승님께 배웠던 것 중 하나.


아검식我劍式


첨중鑯重


스승님은 이 검식을 연이어 펼치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검식을 이루는 뜻을 깨닫기 위해 정진하고 또 정진해라. 자신이 무겁고 굳건하면 어떠한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검을 떠나 모든 무술인에게 있어 이것은 기본. 반드시 유념해야할 법칙이다.]


스승님의 말을 떠올리며 달려드는 아린을 맞이한다.


“아검식···!”


역시나 스승님의 시종답게 기술을 알아본 아린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속도를 높인다.


“속성 교육으로 배운 걸 지금 누구한테 자랑하는 거야!”


콰앙! 그녀의 공격과 나의 방어가 맞닿자 그 여파로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공기가 찌릿찌릿 울렸다.


그 안에서 나와 아린은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그녀는 얼이 빠진 당황한 표정을, 나는 한껏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다.


“막았어···?”

“방어기니까 막았지. 뚫릴 줄 알았냐?”


내 몸을 양단할 것처럼 휘둘러진 그녀의 팔은 나의 양팔에 의해 막혔다. 원래는 한 팔만으로 막아보려 했지만 밀고 들어오는 거력을 견딜 수가 없어서 급히 다른 팔을 덧대어 간신히 막아냈기에 우쭐해 할 수는 없지만, 그것만으로 아린의 충격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몇 시간만에···!”

“열심히 배운다면 못 할 것도 없지.”

“이건, 이건···.”


아린의 공격을 받아내고 깨달았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다.’


여러 번 받아낼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처음의 공방, 그 공방에서 나온 믿을 수 없는 결과에 그녀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승부를 봐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후로 나는 그녀에게 반드시 패배한다.


눈앞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부정에 빠진 그녀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팔을 부드럽게 밀쳐낸다. 그리고 나는 뒤이어 출수할 검식을 위해 팔을 뒤로 길게 뻗었다.


쿵, 크게 한 발을 내딛는다.


팔이 더 큰 힘으로 휘둘러지기 위한 도움닫기. 그 도움닫기를 이용해, 나는 그녀에게 혼신의 공격을 가한다.


“그만.”


턱! 내 공격이 아린에게 향하하려는 순간 내 팔은 저지당했다.


어느 순간 내 앞까지 다가온 스승님의 팔이 내 팔을 가로 막은 것이다.


“왜 막으셨어요? 절호의 기회였는데.”

“상대방이 전의를 상실한 걸 기회로 여기느냐?”

“아···.”


솔직히 아린에게서도 인정받고 싶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일관성 있게 나를 무시하는 그녀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틈을 만들었고, 그 틈을 파고들어 그녀를 무릎 꿇리려 했다.


하지만 그게 잘못이었다는 것을 스승님의 말씀에서 알아챘다.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다 보이는구나, 검식에 힘이 가득 실렸더군.”

“···그녀라면 막을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진짜로 그렇게 보았느냐?”


스승님의 날카로운 눈빛이 나를 관통한다.


“칸.”

“네, 스승님.”

“넌 드문 심성을 가졌다. 배움에 목말라하고, 순수하니라. 가지고 있는 욕심 역시 추하지 않지. 하지만 그건 지금의 너에 한해서이지, 너는 얼마든지 추악하게 성장할 수 있다.”


한 방을 먹이고 무릎을 꿇린다는 생각을 돌이켜보면, 순수하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가 아닌 복수심이 내정되어 있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그녀는 내 배움을 막으려 했었고, 내 스승을 채가려고 했다. 절실히 목말랐던 사람에게서 물을 앗아가려고 했다. 그 감정이 내 안에 싹을 틔워 추악함을 피워나가고 있던 것을 스승님께서 눈치채주고 뽑아준 것이다.


난 절대 그런 모습의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이제야 눈이 깨끗하구나. 그렇다면 이제 패자에게 할 말이 있지 않겠느냐?”

“무, 무슨 소리야 하이츠! 잠시 믿을 수 없었던 것뿐이라고! 비켜! 이제 묵사발을 내버리게!”


아린 역시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나에게 달려들 틈을 보고 있었지만 스승님의 중재에 그녀 역시 가로막혀버렸다.


“그대로 이 녀석의 공격에 맞았으면 아무리 너라도 상처를 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럴 리가 없어! 고작 밤새 배운 아검식으로 나를 이긴다고?”

“실제로 그러할 뻔했지.”

“···쳇.”


반론의 여지가 없는 말이기에 아린은 혀를 차고는 침묵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해야 할 말을 한다.


“미안해, 내가 말이 좀 심했던 것 같다.”


내 사과에 대답도 없이 뚱한 표정을 짓는 아린.


스승님은 일단락된 사건에서 만족스런 표정을 짓고 등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이 녀석도 데리고 가겠다. 불만은 없겠지?”

“그, 그건 아니지! 내가 진 건 진거지만 같이 나가는 건 얘기가 다르잖아!”

“믿을 만하지 않느냐, 너를 무릎 꿇렸는데.”

“무릎 안 꿇었어!”


스승님의 단독 결정에 아린이 펄쩍 뛰었지만 이미 그녀의 예기는 한풀 꺾인 뒤였다.


“칸.”

“네, 스승님.”

“숲을 나갈 준비를 해라. 너에게 보다 많은 걸 가르칠 것이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하이츠, 야! 내 말 무시하지마―!”


등 뒤로는 아린의 고함만이 숲에 메아리쳤다.


작가의말

오탈자 지적 환영합니다 :)


재밌게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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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왕의 제자는 기억속으로 회귀한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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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글은 오후 8시에 올라옵니다 19.04.02 117 0 -
20 07. 딛고 나아간다 (3) 19.04.24 65 0 10쪽
19 07. 딛고 나아간다 (2) +1 19.04.23 57 0 11쪽
18 07. 딛고 나아간다 (1) +2 19.04.22 64 1 12쪽
17 06. 후회는 눈물로 얼룩진다 (4) 19.04.19 59 1 9쪽
16 06. 후회는 눈물로 얼룩진다 (3) 19.04.18 76 1 9쪽
15 06. 후회는 눈물로 얼룩진다 (2) 19.04.16 65 1 10쪽
14 06. 후회는 눈물로 얼룩진다 (1) 19.04.15 71 2 8쪽
13 05. 파먹는 자 (3) 19.04.13 71 3 8쪽
12 05. 파먹는 자 (2) 19.04.12 83 3 8쪽
11 05. 파먹는 자 (1) 19.04.11 76 2 9쪽
10 04. 괜한 간섭 (3) 19.04.11 82 3 8쪽
9 04. 괜한 간섭 (2) +1 19.04.09 82 4 9쪽
8 04. 괜한 간섭 (1) 19.04.08 111 4 12쪽
7 03. 숲 너머 (2) 19.04.07 113 6 9쪽
» 03. 숲 너머 (1) 19.04.06 129 5 12쪽
5 02. 처음을 배우다 (2) +2 19.04.05 167 6 16쪽
4 02. 처음을 배우다 (1) 19.04.04 161 5 13쪽
3 01. 처음으로 본 사람 (2) 19.04.04 182 8 8쪽
2 01. 처음으로 본 사람 (1) 19.04.03 271 10 13쪽
1 plo. 신탁 +2 19.04.02 380 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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