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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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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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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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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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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97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97화





3시간 전, 시온.


“그는 평범한 NPC가 아니야.”


세계의 말에 슬기 일행이 멍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못하자, 세계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는 바깥 세상과 이곳에 반반씩 걸쳐있는 존재야.”

“NPC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건 마치 우리처럼..”

“맞아, 그 표현이 정확해. 너희들처럼. 너희들처럼 그렇게 걸쳐있다고 보면 되겠네.”


그 설명에 광개토가 곧바로 질문했다.


“우리들이야, 현실에 진짜 몸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정신만 옮겨와 있는거지만.. 그럼 사부님도 따로 진짜 몸을 가지고 있다는 말?”

“너희들과는 조금 달라. 바깥에 몸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너희와 같은 접속방식은 아니야.”

“그 말은 아저씨도 어쨌거나, 사람이라는 말인거지?”


초롱하니 눈을 빛내며 슬기가 질문하더니, 곧 자문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NPC가 될 수 있지? 아저씨는 분명히 NPC인데?”

“그런 존재들이 이 세계에 13명이 있어.”

“13명?”

“원래는 바깥 주민이었지만, 나의 세계에 갇혀 버린 사람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야.”

“헉!”


세계의 말에 광개토가 뭔가를 깨달은 듯 놀란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리고 자신에게 시선이 몰린 것을 느끼고서 입을 열었다.


“저,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냥 도시 전설 같은 건 줄 알았는데 말이죠. 시온이 고위층의 사설 감옥 역할을 한다는 얘기입니다.”

“나도 들은 적이 있긴 한데, 그게 정말일까?”

“저도 그저 루머겠지 했는데 말입니다. 지금 세계의 얘기를 듣다보니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닌 말로, 강제로 접속시킨 다음에 못나가게 만들면 그게 바로 감옥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영원한 무기징역으로 말입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살아가려면 먹고 싸고 해야지. 감옥에도 변기는 있다구.”

“만약에 이미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라면요?”

“뭐? 어? 잠깐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 이미 죽인 다음에 뇌만 살려놓는다거나...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말입니다. 어쩌면 정말로 우리 사부님도..?”

“그럼 아저씨도 어느 고위층 인사의 미움을 받고서 여기 갇혔다는 말이야? 대체 누가? 왜?”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을 세계가 내놓았다.


“9개월 23일 12시간 7분전, 천마는 이 세계로 귀속되었다.”

“헐, 대박! 그런 걸 어떻게 다 알고 있어?”

“내가 바로 세계수이고, 세계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으니까.”

“짱이다, 너. 그럼 혹시 아저씨가 원래는 누구인지도 알아?”

“당연히 알지. 동일한 뇌파를 가진 존재가 이미 내세계에 접속한 이력이 있으니까.”


세계의 말에 슬기는 눈을 질끈 감고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오랫동안,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남몰래 있을 수 없는 일을 상상했던 그녀였다.

더욱이 세계는 방금 천마가 9개월 전에 처음으로 이곳에 들어왔다고 했다.

9개월이라면 그녀가 교통사고를 당했던 딱 그 시기였다.

마음에 만반의 준비를 갖춘 그녀가 물었다.


“누군데?”

“블랙, 대한민국 서울의 플레이어다.”


쾅-


세계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슬기의 머릿 속은 폭발하고 말았다.

만반의 준비랍시고, 마음을 다잡고 있었건만, 사실 전혀 준비가 안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큰 충격에 멍하니 공하한 눈빛을 한 채로 위태롭게 서있는 슬기를 광개토가 부축했다.

그 모습을 무심하게 쳐다보던 시온이 말했다.


“나는 이만 바깥 주민들을 만나고 와야겠어.”


그리고 자리에 앉아버리는 세계.

그의 의식이 바깥 세상의 시온 본사로 향하는 순간, 그 자리에는 세계의 껍질만 남았다.


세계가 그렇게 빈껍질만 남기고서 자리를 비우자, 이곳에는 슬기와 광개토, 실리엔, 그리고 세계처럼 역시나 빈껍질만 남은 천마가 남았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슬기는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 모습이 심상찮아 보였지만, 광개토는 일단 한발자국 물러서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멍하니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버린 슬기.

그런 슬기를 염려스런 눈빛으로 지켜보는 광개토.

그리고 그런 둘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실리엔.


그 풍경은 한 시간 가까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광개토가 슬기를 흔들어 깨웠다.


“누님, 괜찮아요? 정신 차리세요.”

“..개, 개토야.. 아, 아저씨가 그 사람이래. 아저씨가.. 오빠래.”

“네? 뭔소립니까, 그게? 설마하니 사부님이랑 원래부터 아는 사이였다, 뭐 그런?”

“맞아!! 진짜로 아저씨가 오빠였어!! 너도 들었지? 블랙이라잖아!! 그거 우리 오빠 캐릭터라고!! 9개월 전에 나만 놔두고 죽어버린 오빠라고!!”


갑작스런 슬기의 격한 반응에 졸지에 멱살을 잡힌 광개토는 캑캑거리면서도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그, 그러니까 누님의 애인이 사부님이다? 아니 원래부터 사부님은 누님의 애인 비스무리한거 아니었습니까? 아니지, 사부님의 전생이 누님의 애인이었는데, 알고보니 현생에서도 애인 비스무리하게 지내고 있었다! 뭐 이런거지 말입니다. 아, 어쩐지, 사부님이 이상하게 누님한테만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했었는데, 뒷 배경에 이런 놀라운 진실이 숨겨져 있었던거지 말입니다.”

“누가, 누가 우리 오빠를 이곳에 가둔걸까? 어느 새끼가 오빠를 죽은 것처럼 꾸미고서 여기에다가 영원히 가둬버렸냐고!”


슬기의 머릿속이 팽팽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은 상황을 파악한 순간,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것은 그저 알고 있는 정답을 피하느라 바쁜 것이었다.


“..할아버지야.”

“네?”

“우리 할아버지야. 최상위 고위층이면서, 오빠에게 악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 나를 속이면서까지 오빠를 영원한 감옥에 가둘만한 사람. 맞아, 틀림없어. 할아버지야. 할아버지가 그랬던거야... 오빠도, 나도 모두 할아버지가 그렇게 만든거였어.”


그제야 슬기는 진실을 깨달았다.

도훈과 그녀가 당했던 교통사고의 주모자는 바로 그녀의 할아버지인 임건호 회장이었다.

그리고 그 사고로 도훈은 살지도 죽지도 못한 상태가 되었고, 그녀 역시도 식물인간과 다름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슬기는 천마가 바깥 세상으로 기를 쓰고 나간 까닭을 깨달았다.


“..아, 오빠는 진실을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나간거야. 오빠의 성격이라면 틀림없어. 복수, 복수하러 나간거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크게 걱정이 되고만 슬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도훈에 대한 걱정과, 할아버지에 대한 염려가 마구 뒤섞여 갔다.

어느 누구를 응원하지도, 어느 한쪽을 지지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굳이 상황을 직시하자면, 결과적으로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도훈의 분노가 더 크고, 그의 편을 들어줘야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할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크지 않았다.

사실 할아버지는 항상 그녀의 편이었다.

그녀를 손녀로서 사랑해주었고, 그녀가 스스로 자수성가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누구보다 지지해주었던 분이었다.

그렇게 그녀를 지극히 사랑해주었기에, 도훈을 데리고 온 그녀에게 그토록 화를 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 분노가 끝내 파국을 초래해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슬기가 멍한 얼굴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쩌지? 둘 중 한명이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난 더 이상 살수 없을 거 같아.”

“그럼 나가서 말리십시오.”

“나, 난 못나가.”

“왜요?”

“나, 사실 바깥에선 몸을 못 움직여. 전신불수야.”

“네에?!”


슬기의 말에 광개토는 깜짝 놀랐다.

이 활달하다 못해 폭력적이기까지한 여자가 사실은 전신불수의 장애인이라고?

말도 제대로 못하고, 똥오줌도 제 스스로 가리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광개토의 놀람을 끝으로 둘 사이의 대화는 다시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광개토는 고민했다.


‘내가 나가서 도와줄까? 아니지, 당사자도 아닌 제삼자가 그러면 그건 그냥 오지랖일 뿐이지. 그런데 누님은 식물인간이라고 하고... 전신불수라고 하면 말그대로 몸을 꼼짝도 할 수 없다는 건데. 햐, 무섭네. 나도 주화입마에서 제대로 못벗어났더라면 최소 전신불수, 아니면 사망이었을거 아냐. 응, 잠깐. 전신불수? 어?’


놀란 얼굴로 슬기를 쳐다보고 있던 광개토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쩌면... 움직일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뭐? 어떻게?”

“그 망토.”

“망토? 뭐, 아저씨 망토?”

“네, 그거 말입니다. 아무래도 아주 신기한 망토지 말입니다. 어쩌면 그 망토를 끼고서 로그아웃하면 몸을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동안 제가 말을 안하고 있었던게 있는데 말입니다. 사실, 전 그 망토 덕에 큰 힘을 얻었지 말입니다.”

“..무슨 말이야, 그게?”

“현실에서 말입니다. 저, 여기서 만큼은 아니지만, 망토를 착용하고 수련을 하면서 꽤 큰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영화속의 웬만한 슈퍼 히어로들이랑 맞다이를 붙어도 안질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네 말은 망토에게 게임 안의 능력을 현실로 옮기는 기능이 있다는 거야?”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밖에서도 네가 여기서처럼 막 5미터씩 뛰어오르고, 기차보다 더 빨리 달리고 그런다는 거야?”

“정확합니다. 누님.”

“호호하하!! 너, 이 누님이 침울해하니까 농담해주는거야? 재밌다, 재밌어! 개토야! 정말 재밌어!”

“속는셈 치고 한번 해보시지요.”


하지만, 그녀의 반응에도 변함없이 진지한 광개토의 얼굴에 슬기의 얼굴도 함께 굳었다.

긴장한 표정으로 슬기가 말했다.


“..그, 그럼 정말 한번 해볼까?”

“제가 사부님에게서 망토를 챙겨오겠습니다.”


그리고 광개토는 곧바로 천마의 목에 걸려있던 망토를 빼더니 슬기의 등에 둘러주었다.

익숙한 청량감이 느껴지자, 슬기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그럼 이제 로그아웃 해보세요.”

“응, 알았어.”


지금 시온 곳곳에서 로그아웃이 되지 않는 건으로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슬기는 태연히 로그아웃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 순간, 현실과 가상을 연결하는 만겁돌파의 망토가 또다시 능력을 발휘했다.

세계수의 강력한 통제를 뚫고 만걸돌파의 망토의 능력에 힘입은 슬기의 정신이 다이브 속의 육체로 돌아갔다.



슬기는 천천히 다이브를 열고 몸을 일으켰다.


“아, 아가씨!!”


그녀의 침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간병인 아줌마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아줌마가 소리를 지르든 말든 슬기는 가만히 눈을 감고서 온몸을 타고 흐르는 생명력을 느끼는 참이었다.

그녀가 본래 가지고 있어야 할 생명력과는 다른 기운, 한 달여간 꾸준히 수련해왔던 소요공의 기운이었다.

그동안 만겁돌파의 망토를 통해 그녀의 현실 육체에 차곡차곡 쌓여가던 소요기가 드디어 그녀의 부름에 응답하여 활동하게 된 것이었다.


“나.. 움직일 수 있어. 으흑”

슬기는 그만 눈물을 터뜨리고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한 번 더 감격했다.

아줌마가 천정에 뚫린 구멍하며, 복도에 크게 난 구멍에 대해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열심히 변명했지만, 슬기는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눈에 익은 구멍들이었다.


“괜찮아요, 아줌마. 누가 그랬는지 알아요.”

“어머, 아가씨! 목소리도 어찌 그리 고우세요?”


슬기는 아줌마의 칭찬에 살짝 미소를 짓고는 다이브를 벗어나 구멍을 이용해 훌쩍 2층으로 뛰어내렸다.

아줌마의 짤막한 비명이 들려왔지만, 슬기는 개의치 않고, 할아버지의 서재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현실의 천마, 도훈을 만나고 말았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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