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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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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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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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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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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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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94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94화





기묘한 문양과 무늬가 가득한 광경이었다.

그냥 쳐다봐도 어지럼증을 불러일으킬 만한 그 광경이 미칠 듯한 속도로 좌우로 회전하고, 아래위로 요동쳤다.

한동안 지속되었던 그 혼란스러우면서도 역동적인 광경은 어느 순간 갑자기 새까만 한 점 속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주변은 잠잠해졌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만이 남았다.

문득 말할 수 없는 갑갑함을 느낀 천마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리고 깨달았다.

그는 현실에 도착했다.

팔을 들자, 본체의 느낌과는 다른 이질적인 기운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동안 그의 육체를 타고 돌며, 힘의 근원으로 작용했던 천마기는 간 곳 없고, 그저 미미한 뇌기가 팔을 움직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손끝에 딱딱한 벽이 느껴졌다.


“음?”


팔을 움직여 이곳저곳을 만져보던 천마는 이내 현실을 깨달았다.

그는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

천마는 팔에 잔뜩 힘을 줘, 앞의 벽을 밀었다.

미미한 뇌기가 머리로부터 시작돼 어깨와 팔을 거쳐 손바닥에 이르더니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앞을 막고 있던 벽이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들.

그리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홍운 길드의 시온 작업장 관리를 맡고 있는 간부, 왕문은 갑작스런 변고를 듣고 상하이 제3 작업장에 막 도착한 상태였다.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부하에게 대략적인 얘기를 듣긴 했지만, 정작 온통 빨간 불이 들어온 시온 다이브 30대를 보자, 그는 또 다시 흥분했다.


“무슨 일이야, 이거? 야, 여기 관리하는 새끼 어딨냐?”

“여기 있습니다. 대형.”

데리고 온 부하 조직원 네 놈 중 한 놈이 가장 안쪽에 위치한 다이브를 살펴보더니 즉각 보고해왔다.


“그 새끼, 꺼내.”

“네? 지금은 꺼낼 수가 없는데요?”

“이 새끼, 내가 말하는데 토를 달아?”

“아닙니다. 바로 꺼내겠습니다.”


하지만 급한 부하의 마음과 달리 개폐버튼은 작동하지 않았다.

이에 남은 세 부하가 달려들어, 강제 작동 설정을 이용해 억지로 다이브를 열어버렸다.

그러자 그 다이브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려나왔다.


삐삐삐삐삐삐-


“헉, 형님? 이 새끼 상태가 이상한데요?”

“숨을 안 쉽니다. 형님!”

“죽은 거 같습니다. 형님!”

“뭐? 원래 죽어있었다고?”

“네? 원래라니요? 아, 그게... 그랬던 거 같습니다. 형님.”


억지로 꺼내진 관리자의 상태가 이상함을 알아차린 네 부하들이 하나같이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러면서 그 와중에도 대형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그들은 진실을 호도했다.

관리자 녀석이 이미 다이브를 열기도 전에 그 안에서 죽어있던 것이라고 믿기로 한 것이었다.


그때, 갑자기 그 다이브의 세칸 옆에 세워져있던 다른 다이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건들지 않았는데, 열리는 걸 보아 다이브 안쪽에서 문을 연 것이었다.

관리자 외에 다른 누군가가 이 작업장에 있는 걸로 판단한 왕문이 지시했다.


“저기 누구야? 데리고 와 봐.”

“넵!”


한달음에 열리고 있는 다이브로 다가간 부하는 그 안을 쳐다보고는 그만 깜짝 놀랐다.


“어? 이게, 어떻게?”

“뭐해, 인마! 빨리 안 데려오고!?”

“아니, 그게. 사람이 아니라..”


그때, 누가 봐도 인공 의체임이 분명한 존재가 다이브에서 걸어 나왔다.

마네킹처럼 미끈한 대머리에, 그 존재의 피부는 비록 사람의 것과 유사하긴 했지만 한눈에도 그 차이를 알아볼 만큼 이질적이고 인공적이었다.


“어? 뭐야?”

“저, 저게 어떻게 걸어 나오지?”

“저건 작업장용 인형인데요?”


이들은 작업장을 관리하는 위치인 만큼, 단번에 다이브에서 나온 인공 의체의 정체를 알아봤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들의 머리에 든 의문은, 대체 인공 의체가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는 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것이었다.

항상 다이브에 누워있던 인공 의체만 본 그들에게, 스스로 걷는 인공 의체의 모습은 대단히 충격적이면서도 공포스러웠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인공 의체는 더욱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였다.

말을 한 것이었다.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는 걸 보아, 정말로 중국이구나. 상하이, 상하이 맞지?”


인공의체, 그러니까 천마가 상하이를 몇 차례 반복적으로 말하며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자, 멍한 표정의 부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 상하이. 맞아요. 상하이..”


그리고 그 멍청한 부하들의 모습에 간부, 왕문이 분통을 터뜨렸다.


“이 새끼들, 뭐하는 거야!! 저거 잡아!”

“네, 넷!!”


낯선 것으로부터 오는 공포감보다 왕문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던 네 부하가 일제히 천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달려드는 넷을 보며 천마는 코웃음을 쳤다.

감히 박투의 대가인 본좌에게 덤벼든다고?

그것도 맨손으로? 웃긴 놈들이로구나!


하지만, 현실은 천마의 의도와 다르게 돌아갔다.

그걸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적의 주먹을 쳐내기 위해 팔을 든 순간이었다.

팔을 들던 천마는 그동안 그의 몸을 강맹하게 휘감고 돌던 천마기가 완전하게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그의 온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라고는 오직 미약한 뇌기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겨우 걷는 행위 정도나 할 수 있을 법한,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기운이었다.

방어를 하려고 쳐든 그의 팔은 적의 주먹질에 맥없이 튕겨났다.

그리고 그대로 적중당한 턱.

천마는 휘청하며 뒷걸음칠 치더니 나왔던 다이브로 도로 밀려들어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먹질과 발길질.

다행히도 다이브로 들어온 탓에, 한 번에 들어오는 적의 공격에는 한계가 있었다.


퍽-


턱을 맞고,


퍽-


옆구리를 차였다.

천마는 공격을 받으면서 생각했다.


‘세계, 이놈!!! 나를 속였구나!!’


천마는 본신의 힘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연약한 육체에 크게 분노했다.

이딴 몸으로는 복수는 차치하고 당장의 위기도 벗어나기가 요원했다.

당연히 본신의 힘을 가지고, 초인적인 모습으로 임회장을 응징할 것으로 예상했었던 천마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천마의 분노와 별개로, 사실 세계는 천마를 속이지 않았었다.

세계가 천마에게 약속했던 것은 그저 바깥으로 보내 주겠다는 한가지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천마가 본신의 힘을 가지고 갈 수 없을 거란 건 알고 있었던 세계였지만, 천마가 묻지 않았으니, 세계도 말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튼 일개 폭력조직의 졸개들에게 구타를 당하며 천마는 분노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갖게 된 몸도 정상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일단 사람이 아니었다.

천마의 눈에 자신의 밋밋한 팔 다리와 관절부의 금속파트가 보였다.


‘뭐지, 이건? 마네킹인가? 로봇인가? 그런데 로봇치고는 너무 약한데? 로봇이라면 뭔가 특별한 힘이라도 있어야지! 주먹이 날아간다거나, 가슴에서 빔을 쏜다거나!’


이런 와중에 천마는 어처구니없게도 로봇이라면 껌벅 죽는 보통의 남자답게 로봇에 대한 로망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도 천마는 조금씩 인공 의체에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부족한 힘에 느린 움직임은 여전했지만, 천마의 노련한 기술이 부족한 것들을 점차 메워나갔다.

천마는 팔을 들어 조직원들의 주먹질을 조금씩 흘려내기 시작했고, 슬쩍 몸을 움직여 데미지도 최소화했다.

몇 차례 그런 일들이 반복되자,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조직원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이놈, 왠지 조금씩 강해지고 있는 거 같은데?”

“맞아, 나도 그런 느낌이었어.”

“더 이상해지기 전에 팔다리를 끊어놓자.”


네 놈은 모두 등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칼을 휘둘러오니, 겨우 몸에 적응해가던 천마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비껴내려고 하자, 칼이 피부를 긋고 지나갔다.

몸을 비틀어봤자, 칼의 공격 범위는 그보다 훨씬 길었다.

순식간이었다.

천마의 팔다리 인공피부가 너덜해졌고, 집중 공격을 받은 양팔과 양 무릎의 금속 관절은 고장이 났는지 움직임을 멈췄다.

궁지에 몰리자 천마의 분노는 더욱 커져갔다.


‘이 세상으로 넘어오자마자 이런 꼴을 당하다니!!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이렇게 날려먹는다고?! 이렇게 끝난다고?!’


더 이상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된 천마를 보고, 왕문이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천마의 인공의체가 왕문 앞에 무릎 굻려졌다.


“너, 정체가 뭐냐?”

“...”

“대답 안 해!?”


왕문이 소리를 지르며 발길질을 하자, 발에 차인 천마의 몸이 맥없이 뒤로 나자빠졌다.

그리고 두 부하가 다시 천마를 왕문 앞으로 무릎 꿇렸다.

왕문이 천마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스스로 움직일 리는 없고, 분명히 어디서 조종을 하고 있을 텐데?”

“네? 어디 연결된 곳도 없는데요?”

“와이파이, 무선 데이터 망! 그런 거 있잖아!”

“아, 맞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하! 너 현대인 맞냐? 멍청한 새끼.”


부하의 멍청함에 왕문이 탄식하는데, 천마는 잠깐 들린 말 중에 ‘와이파이’와 ‘데이터’에 생각이 꽂히고 말았다.


‘나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거지? 이 몸을 어떻게 컨트롤 할 수 있는 걸까? 그래, 나의 생각과 본체는 아직도 시온 안에 있어. 나는 아직도 시온과 연결되어 있는 거야. 그렇다면 어떻게?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와이파이도 없고, 데이터 망도 없는데 말이야!’


천마의 정신이 이 상황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시온을 관리하는 세계수의 힘이 이 현상을 가능하게 했을까?

물론 상당 부분 기여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왠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곱 신의 권능?

충분히 강력한 능력이긴 했지만, 그 능력들은 어디까지나 시온 안에서만 통용되는 능력이었다.

그럼, 나에게 작용하고 있는 또 다른 힘은 없을까?

와이파이처럼, 데이터처럼 나에게 신호를 쏴주고 있는 또 다른 힘은 없는 걸까?


그때, 천마는 어떤 실체적인 환각을 느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마치 정말로 존재하는 듯한 그 감각.

마치 정말로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등에 망토의 감촉이 느껴졌다.

만겁 돌파의 망토였다.


그 순간, 천마가 환각처럼 만겁돌파의 망토를 인식하는 그 순간!

시온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천마의 본체, 그 몸에 착용되어있는 만겁돌파의 망토가 정말로 만겁을 돌파하여 현실의 천마에게 닿았다.


-원본 데이터가 존재합니다. 데이터를 복사하시겠습니까?


난데없이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천마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천마의 수락과 동시에 눈앞에 길다란 게이지 바가 나타났다.


-복사를 시작합니다. 5%..20%... 60%...


그때 왕문을 비롯한 조직원들은 천마의 ‘그래’라는 말 한마디에 다시 한 번 당황해하는 중이었다.


“허걱! 또, 또 말을 한다!”

“진짜로 누가 조종하는 모양입니다!”

“이 새끼, 너 누구야!! 누구냐고!! 정체를 밝혀!!”


그때 천마가 일어섰다.

망가져서 움직일 수 없게 된 관절이었는데도, 마치 망가진 적이 없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깜짝 놀란 부하들이 다시 칼을 휘둘렀다.

하마터면 왕문이 맞을뻔 할 정도로 어딘가 긴급해 보이는 칼놀림이었다.


하지만 천마는 이제 더 이상 한낱 인공 의체에 갇힌 천마가 아니었다.


“억!? 뭐야!!”


휘두르던 팔이 돌연 허공에 멈춰버리자, 조직원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신의 팔을 쳐다봤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인의 손아귀에 꽉 붙잡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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