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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연금술로 던전 정복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3.05.15 20:27
최근연재일 :
2023.07.0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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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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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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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 기일

DUMMY

삐삐삐삣. 삐삐삐빗. 삣.


오래된 디지털 시계의 알람을 끄고 부스스 일어났다.

얇은 커튼 틈새로 새벽 어스름이 방안 가득 새어들어왔다.

검푸른 빛을 띄는 잡동사니들이 잠깐 마법 물품처럼 보였다.

크게 하품하며 일어나 곧장 화장실로 들어갔다.

수도꼭지를 돌려 뜨거운 물을 콸콸 틀고, 그로부터 약 30분 뒤.

나는 깔끔한 상태로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오늘은 어머니 기일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어릴적에 돌아가셨다.

세살 때였나, 네살 때였나. 잘 기억 안난다.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물론 기억 안난다.

말투나 목소리, 생김새까지.

사진으로 본 얼굴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어머니니까.’


어색하게 양복을 빼 입고 넥타이를 맸다.

내가 형이 쏜 총에 맞아 죽던 그 날.

어머니의 환영이 나타나 내게 속삭였다.

그게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주마등이겠지.

내가 과거로 돌아온 일과 무관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렇게 칼같을 수 있나.

어머니가 날 도와준 덕분에, 내가 목숨을 구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모처럼 힘좀 써 보기로 했다.


‘음. 잘 안 되네.’


넥타이와 30분동안 씨름한 끝에 겨우 맸다.

그런다음, 어제 미리 준비한 술을 챙겨들고 방을 나섰다.

서늘한 새벽 바람이 부드럽게 머리를 어루만졌다.

숙소 계단을 내려와 거리를 걷다보니 길고양이 몇 마리가 후다닥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그대로 아무도 없는 버스 정류장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10분정도 기다린 뒤에 새벽 버스가 도착했다.

기사에게 인사를 건네며 카드를 찍고, 텅텅 빈 버스의 구석 자리에 앉아 멍하니 창문 밖을 내다봤다.

헌터 학원 간판이 상가 건물 여기저기에 어지럽게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거기다가 헌터용품을 수리해주는 대장간, 헌터용품을 판매하는 상점도 길 건너 한군데씩 자리잡았다.

이런 곳에서 취급하는 물건은 대부분 별 보잘것 없는것 투성이지만, 그럭저럭 장사가 잘 되는지 가게는 번듯했다.

던전이 열린 뒤로 온 서울이 헌터 천지였다.

돌아가신 엄마한테 이 이야기를 해 주면 재미있어 하시려나.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정신차렸을 때는 이미 종착역이었다.


**


어머니의 무덤은 거의 산꼭대기에 있었다.

여기가 좋은 자린지 나쁜 자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찾아갈 때마다 고역이다.

한번 올라가려면 등산 장비라도 챙겨야 할 판이다.

덤으로 산에는 모기가 들끓고, 재수없으면 벌들이 붕붕대거나 멧돼지와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이쯤되면 내가 성묘를 하러 왔는지, 밀림을 탐험하러 왔는지, 아니면 던전에 들어왔는지 헷갈린다.


“휘유.”


하지만 오늘은 의외로 손쉽게 도착했다.

전에 마신 능력 강화 포션 덕분일까.

두 시간쯤 걸려 올라올 거리를 30분만에 주파했다.


‘나도 꽤나 성장했구나.’


손등으로 이마를 쓱 훔치고 잠시 숨을 골랐다.

이런 꼴로 인사드리긴 싫었으니까.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툭툭 닦은 다음, 즉석에서 포션을 한병 만들어 꿀꺽꿀꺽 삼켰다.

이온음료처럼 푸른 빛을 띄는 포션이 시원하고 상쾌했다.


“어우 좋다.”


순식간에 지친 체력이 회복됐다.

등산할 때 기력 회복 포션을 마셨다고 어디가서 말하면, 사람들이 날 미친놈 취급할거다.

한 병에 십만원도 넘는 포션이니까.

그런 포션을 이렇게 쉽게 마실수 있다니.

연금술사가 대단한 클래스긴 하다.


‘이제 쉴만큼 쉬었으니까.’


대충 땀도 식히고, 흐트러진 매무새도 다듬은 뒤, 무덤 앞에 섰다.

그대로 천천히 절을 두번 올렸다.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때 절 구해주신게 맞다면······.’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하며 생각했다.


‘고맙습니다.’


“쯧.”


난데없는 소리에 화들짝 허릴 펴고 돌아봤다.

나무뒤에서 강선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사적으로 손을 등 뒤로 감추면서, 조용히 화염 폭발 포션을 하나 융합했다.


“형?”


“그래. 나다.”


“형이 왜 여깄어?”


“왜냐고?”


강선재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밤하늘의 어둠보다 더 검은 권총이 섬뜩하게 번쩍였다.

찰칵 하는 소리가 나더니, 권총 리볼버의 탄창이 툭 튀어나왔다.


“어머니 기일이니까.”


강선재가 탄창에서 총알을 비웠다.

그는 빈 탄창을 집어넣고, 권총을 주머니에 넣은 다음 무덤에 다가왔다.


“여기선 아무것도 안 해. 긴장 풀어.”


강선재가 하는 말은 도무지 믿음이 안 간다.

그는 탄환 대신 마력을 총알처럼 쏠 수 있다.

탄창을 비운 퍼포먼스가 날 방심시키려는 전략이라면?

내가 여전히 한 손을 등 뒤에 숨긴채 그를 노려보고 있으니까, 강선재가 작게 한숨쉬었다.


“넌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아. 비켜.”


“형이 여기 오는거 한번도 못 봤는데.”


“너 보기 싫어서 너랑 다른 시간에 왔으니까. 평소에는 오후에 오더니, 너야말로 왜 오늘은 이 시간에 온거야?”


“내 마음이지.”


내가 버티고 섰더니, 그가 한숨쉬며 무덤 옆쪽에 비스듬히 섰다.

그러고는 냅다 바닥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그도 나처럼 두번 절을 올린 다음 허리를 깊이 숙였다.

그대로 몇분이나 가만있었을까.

한참 뒤에야 강선재가 서서히 허릴 폈다.


“너때문이야.”


“뭐가?”


“비키라고 했잖아. 너 때문에 올해는 어머니 영전에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어.”


나는 그제서야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강선재는 뚱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넌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아.”


“쓸데없는 생각 같은건 없어.”


타앙—!


빛처럼 빠른 속도로 강선재가 총을 뽑아들어 쐈다.

순수 마력으로 이루어진 총알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제서야 강선재가 한 말의 의미를 파악했다.


‘반항해봤자 소용없다는 뜻이었구나.’


나는 전혀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강선재는 권총을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고 무덤가의 바윗돌에 걸터앉았다.


“계속 있으려고?”


“아니. 내려갈거야. 난 바쁘니까.”


“빨리 내려가는게 좋을걸. 아버지라도 만났다간 어색할테니까.”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그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아버지도 여길 와?”


“매년 오시지.”


“몰랐는데.”


“너한테 이야기 한적 없으니까.”


“왜?”


갑자기 울컥 치밀어서 반항적으로 강선재를 노려봤다.


“왜 형도, 아버지도 항상 나만 따돌려?”


“그건 네가.”


강선재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길고 천천히. 거미가 거미줄을 뽑듯이.

거의 영원에 가까울만큼 느린 숨이었다.


“우리들한테서 빼앗아 갔으니까.”


“난 훔쳐간거 없어.”


“있잖아. 바로 저기에.”


강선재가 무덤을 돌아봤다.

나도 그를 따라 무덤을 봤다.

어머니의 무덤이었다.


“엄마가 죽은게 나 때문이라고?”


“이제 그만 가 봐.”


“아니, 그게 어떻게 나 때문이야? 형도, 아버지도 말도 안되는······.”


“선호야.”


강선재가 위압적으로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그만 내려가 봐. 어머니 앞에서 널 쏘기는 싫다.”


“......알았어. 이것만 올리고.”


가져온 술을 꺼냈다.

종이컵을 하나 꺼내 술을 따라 무덤에 바쳤다.

강선재는 말없이 물끄러미 나를 보기만 했다.

조용히 술을 올린 다음 일어서려니까, 강선재가 말했다.


“어머니는 술 안 좋아하신다.”


“미리 알려주지 그랬어.”


“남은 술은 가져가. 여기 놔두면 야생 짐승들이 와서 난리 피우니까.”


나는 주섬주섬 남은 술을 챙겼다.


“조심해서 내려가라. 이런데서 너 죽으면 나도 손해니까.”


“걱정도.”


걱정아닌 걱정을 들으며 털레털레 산길을 내려갔다.

여긴 차도 못 오는 험한 길인데, 언제 도착했데?

심지어 강선재는 지친 기색이 나만큼도 없었다.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땀 한방울 이마에 없었다.


“괴물같은 놈······.”


그 괴물같은놈이 내 형제다.

동시에 나를 죽이려는 사람이다.


“어머니 무덤 앞인데, 꼭 총까지 쏴야 했나.”


형이라는 작자의 행동이 떠올라 치가 떨렸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게 지금은 없었다.

강선재의 마수를 벗어나려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강해질 방법은 던전에 있다.


‘11층 선발대로 뽑혔으니까, 새로운 재료를 제법 구할수 있을거야.’


산자락으로 내려왔을때는 이미 일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두번째 능력 강화 포션도 준비해야지. 아, 나온 김에 성준이 형도 보러갈까.’


나를 구해주다가 강선재의 총에 맞아 쓰러진 김성준.

병문안을 안 간지도 꽤 오래됐다 싶었다.

오늘 모처럼 차려입고 나온 김에 잠깐 들러볼까.


‘성준이형 살려줄 엘릭서 재료도 모아야 되는데. 보자······.’


거기다가 길드도 키워야 되고.

이사도 가야하고. 아직 할일이 많았다.

마음을 촉촉하게 적셨던 감수성은 새벽 어스름이 햇볕에 지워지듯, 내 마음에서 금새 씻겨 나가버렸다.

메마르고 조금은 비정한 현실이 내 앞에 우뚝 서 있었다.

그래, 일단은 이것부터 처리하고 생각하자.


**


강선재는 산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는 닳고 닳은 사냥꾼같은 표정으로 동생 강선호가 산을 내려갈 때까지 응시했다.

강선호가 산자락을 벗어나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뒤에야, 그는 권총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휙 돌아섰다.

그대로 무덤 앞을 성큼성큼 가로질러서, 그는 나무 뒤에 쓰러진 남자의 멱살을 붙잡아 거칠게 나무에 몰아세웠다.


“넌 누구지?”


아까 강선호를 빗맞힌 총알이 남자의 어깨를 관통했다.

총상에서부터 피어오른 시커먼 연기가 사슬처럼 남자를 속박하고 있었다.


“가, 강선재 의원, 이런 짓을 하고도······.”


“네가 누구냐고 물었다."


철컥.

무정한 금속음을 듣고 남자가 허둥지둥 대답했다.


“휘스퍼! 휘스퍼 길드에서 나온······.”


“휘스퍼로군. 여긴 무슨 일로 찾아왔지?”


“저, 저는 그러니까······.”


강선재가 총구를 남자의 머리에 들이밀었다.


“네가 노린건 어느쪽이지? 강선호?”


이번에는 총구로 자신을 겨눴다.


“아니면 나?”


“가, 강선재 의원님의 동생을 미행하고 있었습니다.”


“강선호를 미행해서 뭘 얻으려고?”


남자가 입을 꾹 다물었다.

강선재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총구로 그의 뺨을 톡톡 치다가, 총을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었다.


“됐다. 뒷이야기는 휘스퍼에서 듣지.”


“그럼 전 살려주시는 겁니까?”


강선재가 남자를 물끄러미 보다가, 거의 집어던지듯 남자의 멱살을 놓았다.

그는 켁켁거리면서 비틀비틀 일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강선재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재빨리 총을 꺼내 쐈다.


퓩—


빛의 탄환이 소리없이 남자의 머리를 관통했다.

도망치려던 그는 그자리에 털썩 엎어져 죽어버렸다.

무정한 눈으로 시체를 바라보면서 강선재가 휴대폰을 꺼냈다.


“난데. 김 기자. 시체좀 치워야겠어. 1시간 이내로. 그리고 전원 양복에 구두 차림으로. 중요한 자리거든.”


그는 휴대폰 너머의 아우성을 무시하고 전화를 끊은 다음, 바로 또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나다. 강선재 의원. 첩자를 보냈던데, 휘스퍼 길드 마스터는 잘 있나?”


휴대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래. 내가 이미 처리했다. 협회 전체를 적으로 돌리기 싫으면 발뺌할 생각 마라. 나도 일 크게 키울 생각 없으니까. 그래. 대신 일을 하나 맡기려고 한다.”


강선재는 휴대폰을 든 채 싸늘하게 식어가는 남자의 시신을 노려봤다.


“던전 11층 첫 원정을 망쳐놔라. 끊는다.”


전화를 끊어버린 강선재는 어머니의 무덤 앞에 정면으로 섰다.

뭐라 표현하기 힘든 표정들이 그의 얼굴을 스쳐갔다.

하지만 마지막에 남은 표정은 조용한 분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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