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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설 님의 서재일껄요?

열흘동안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SF

현설
작품등록일 :
2015.07.10 23:19
최근연재일 :
2016.01.13 09:00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46,384
추천수 :
704
글자수 :
258,063

작성
15.07.14 06:00
조회
979
추천
15
글자
8쪽

열흘동안(04)

DUMMY

연희가 또 몰랐던 것이 있었다. 공기가 너무 흔해서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문명의 고마움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어젯밤 추운 비닐하우스에서 벌벌 떨면서 노지에서 잤다. 잤다기 보다는 거의 기절상태라고 봐야할 것 같지만. 연희가 평소에 누리던 생활들이 모두 사치였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고맙기도 했다. 좀비들이 없어질 때까지 문명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있을 때, 동우가 왔다. 보는 것만으로도 포근해 보이는 무릎담요도 가져왔다. 어디서 얼굴을 깨끗하게 닦고 왔다. 옷은 온통 피칠이지만 얼굴에선 비누향이 났다. 웬만한 향수도 그렇게 향기롭다는 생각을 못하고 살았는데, 동우에서 나는 싸구려 비누향이 어쩜 이렇게 상쾌하고 향기로운지 모르겠다. 동우가 차에 타자마자 남학생의 울음이 그쳤다.

“다 울었어?”

추운지 남학생은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다. 동우는 편의점에서 가져온 따뜻한 음료와 김밥을 건넨다.

“먹어.”

“연희야, 너도 어서 먹어. 호빵도 가져왔어.”

동우는 연희에게 빵과 음료를 주고는 자신도 허겁지겁 먹는다. 차 안에는 한 동안 허기진 위를 채우는 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췩”

무전기를 켜보았지만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동우는 무전기를 켜 둔 채 시동을 건다.

“이름이 뭐냐?”

동우의 질문에 남학생은 대답이 없다. 동우는 그런 남학생 얼굴에 담요를 휙 던진다.

“덮어!”

남학생은 담요를 감싸 쥐고는 얼굴에 덮는다. 자기 딴엔 소리가 밖으로 들리지 않게 숨죽여 울고 있지만, 두 사람 눈엔 다 보이니 처량하기도 하고 안됐기도 하고 짠한 마음뿐이다.


“어디 가는 거야?”

연희가 조용히 운전하는 동우에게 묻는다.

“얼마 전에 외골격 공격용 전투 슈트가 새로 나왔어. 좀비와 싸우려면 최소한 그게 필요해. 안전하기도 하고.”

“췩.”

무전기는 조용한 분위기가 싫어 가끔 형식적인 잡음을 내놓지만, 주인을 기쁘게 하지는 않는다.

“나도, 흐흑, 입을 수 킁, 있어요?”

한참 울던 남학생이 동우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동우가 백미러로 남학생을 보다가 웃는다.

“네 사이즈에 맞는 게 있을까 모르겠다.”

“아저씨는 그런 걸 어떻게 알고 있어요?”

“나 아저씨 아니다! 형이라고 해.”

“네. 형.”

“넌 어쩌다 우리 차 안에 있었어?”

연희의 질문에 남학생이 잠시 당황한다. 연희가 남학생의 표정에 그냥 웃는다.

“누나, 미안해요. 사실 뭐 훔치려고 했다가…….”

“이상하지? 평상시 같으면 굉장히 화나고 그랬을 텐데, 아까 트렁크 안에서 널 보자마자 너무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뻔했어.”

남학생은 뭐가 생각났는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고 있다.

“아가야! 지금 비상시에 전화가 되겠…….”

동우의 충고를 무시하는 신호음이 들린다.

“전화가 돼?”

동우와 연희가 동시에 놀라서 남학생을 본다.

“전화 안됐어요?”

남학생은 두 사람이 놀라자 자기도 놀라 똘망똘망 둘을 본다. 전화를 받지 않자 남학생은 다른 전화번호를 누른다. 신호음은 가지만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희도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지인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해본다. 친구, 친척, 동네 아줌마, 아저씨, 교수님, 조교님 그리고 112와 119. 모두 전화를 받지 않는다.

“췩.”

“무전기가 필요한 이유야!”

동우가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 응답바람.”

“이거 말하는 방법 모름.”

“대충 응답바람.”

“형! 그게 뭐에요. 쪽팔려!”

“우리 비웃을 사람이라도 만나면 좋겠다.”

“췩. 버튼 누르고 대답하면 됨.”

“알면 응답바람.”

“등신들이가 응답바람.”

“병신들이가 응답바람.”

동우의 목소리는 갈 수록 격해지고 있었다.

“또라이들아 응답바람.”

“개새끼들아! 응답하라고!”

“응답해!”

연희가 흥분한 동우를 말린다.

“동우야…….”

동우가 급정거하자 다들 몸이 앞으로 휩쓸린다.

“미안해.”

동우는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찬바람을 쐰다. 남학생과 연희가 그런 동우를 걱정스럽게 본다. 남학생은 두 눈에 두려움을 갖고 둘의 분위기를 살핀다. 연희가 조용히 묻는다.

“이름이 뭐니?”

“아, 저요?”

“어.”

“최경일이에요.”

“저 누나?”

“왜?”

“제가 모든 사람들한테 다 전화해 볼까요?”

“뭐?”

연희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경일이가 머리를 머쓱하게 긁으면서 웃는다.

“저 쬐금해요.”

연희가 경일이를 놀라운 눈으로 본다.

“정말?”

“헤헷. 네. 쬐금요.”

“근데 시간이 엄청 걸릴 거 같은데?”

“길바닥에 죽어있는 시체에서 휴대폰 가져와서 하면 시간이 얼마 안 걸릴 거예요.”

“그, 그렇겠다. 근데, 개인정보는 어디서 빼올 거야?”

“헤헤, 사실 너네은행 서버에서 빼낸 정보가 구름서버에 있어요. E4칩 고유번호도 다 있어요.”

“그걸 빼서 뭐하려고 했어?”

경일이가 연희의 눈치만 살핀다.

“그 좋은 머리 다른 데다 좀 쓰지.”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 할 겸 몇 군데 넣었는데, 다 떨어졌어요. 저보다 훨씬 못하는 놈들이 다 붙고요. 해킹해보니 다 어마어마한 집 자식이더라고요. 내가 온통 휘젓고 나왔는데도 못 잡았잖아요. 병신들.”

“설마 얼마 전에 뉴스에 나왔던 일들 말이니?”

“네! 못 잡으니까 남미에 사는 얼빠진 사람 범인으로 잡았다고 나오고요. 하하하. 참 웃겼어요. 그때.”

“그럼, 지금부턴 휴대폰 사냥해야겠다.”

“그렇죠.”

경일이 말을 하다 말고 밖에 있는 동우를 한번 본다.

“동우도 좋아할 거야. 네가 직접 말해봐.”

“오우, 싫어요. 누나, 누나가 말해줘요. 저 형 무서워요. 누나가 애인이니까.”

연희는 경일의 말에 상렬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무서운 비명도.

“흠. 나랑 동우는 친구사이야. 내 남자친구는…….”

연희가 풍기는 분위기에서 경일은 사태를 파악했다. 바로 수습에 들어간다.

“누나!”

경일이 뒤에서 연희의 어깨를 잡고 다독다독한다. 연희의 두 눈엔 그렁그렁 이슬이 맺히려고 한다. 하필, 이때 동우가 문을 열고 시트에 앉았다.

“뭐야!”

동우는 경일이 연희를 울렸나 싶어 성질을 팍 냈다.

“아네요. 형. 아네요.”

서슬 퍼런 동우의 괴성에 경일이가 바짝 얼었다.

“좋아서. 경일이가, 사람들하고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서 고마워서.”

연희의 말에 동우가 경일을 노려본다.

“정말이야?”

낮게 위협하는 동우의 질문에 경일은 오줌을 지릴 지경이다. 뭐 처음 지리는 것도 아니지만.

“근데, 형은 직업이 뭐에요? 왤케 무서워요?”

“경호학과 다녔어.”

“오~, 근데 무전기 사용법도 몰라요?”

동우가 경일을 날카롭게 보았다.

“놀러 다녔다.”

동우가 다시 시동을 건다.

“오늘 안으로 외골격공격용 전투 슈트 접수하고 안전하게 쉴 곳을 찾는다. 그리고 너 경일은 핸드폰 찾아서 사람들과 연락해봐.”

“걱정 마세요. 지금 누나 거랑 형 거로 먼저 하고 있어요. 신호를 보내서 안 받으면 3번까지 하고 다른 번호로 넘어가게 했어요. 핸드폰이 많아질수록 시간도 많이 줄어들 거예요.”

“똑똑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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