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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大虎) 님의 서재입니다.

마도공자는 사술로 살아남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대호(大虎)
작품등록일 :
2023.10.03 14:30
최근연재일 :
2023.10.09 16:09
연재수 :
9 회
조회수 :
532
추천수 :
14
글자수 :
48,685

작성
23.10.04 22:20
조회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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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3화 마라섭혼술

DUMMY

운기 중에는 외부의 자극이 있어선 안된다.

그건 무협소설의 초보자라도 알만한 설정이다.


그렇다면 내부의 자극이라면?


그것도 위험하다. 이번에야 깨달았다.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몰입이 흔들렸다. 


송곳 같던 내기가 형태를 잃고 전신의 세맥으로 모두

흩어질 뻔 했으나, 그것만은 겨우 막았다.


기운은 비정상적인 집중력이 만들었던 날카로움을 잃었지만 

이미 상단전을 뚫었으니,

운기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의식이 안정되고서야 나는 대꾸했다.


-너는 누구지?

-나는...무엇인가... 


질문을 질문으로 받으면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다. 


나는 말을 멈추고 머리를 굴렸다.


또다른 사술일까.

빠르게 한효월의 기억을 뒤져보았다. 


그러나 심장의 낯선 존재에 대한 기억조각은 없었다.

알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심장. 심장. 심장.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

어디선가 본 기억이···


‘설마, 이거?’


[흉혼괴절맥]

- 심장에 고대의 원령이 깃든 결과로 발생하는 절맥이다.

  원령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이 저주를 피할 수 없다.

  숙주의 감정을 먹고 자란 원령은 결국 숙주의 몸을 지배한다.


한효월이 가지고 있는 두 번째 절맥이자 일종의 저주다.


3회차에서 본,

전신에 노란동공이 돋아난 괴물이 되어버린 한효월의 모습.

그게 원령에 지배당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원령이 깨어나는 건,

한효월이 초중반의 죽음을 모두 피하고

가장 오래 살아남았을 때다.


지금처럼, 이렇게 빨리 등장하는 건

결코 게임에서 의도된 설정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무엇인지 모른다...기억하는 건 지금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뿐.


목소리는 때로는 웅얼거리는 듯 했고, 희미하게 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허기가 나를 밖으로 이끌었다. 나의 먹잇감이 모조리 바깥으로 빠져났기에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설정을 떠올리니 이해가 간다.

원령은, 한효월의 부정적 감정을 먹고 자라나는 괴이.


그러나 내가 중단전을 열면서 

한효월의 가슴에 맺혀있던 응어리를 밖으로 빼내자,

자신의 먹이를 쫓아 놈이 나온 것이다. 


-뭘 원하는 거지?

-머...먹이...먹이를 다오. 나의 둥지에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으니 나는 머물 수 없다.


‘너의 둥지’가 아니라, ‘나의 심장’이 바른 말이 아닐까싶지만

생각해보니 놈에게는 한효월이란, 

그에게 영양소를 공급하는 숙주이니 틀린 말은 아니기도 했다.


피부가 간지럽다 싶더니 심장 부근에서 노란눈알 하나가 돋아났다.

그리곤 눈알이 뒤룩거리며 주변을 살피더니,

내 몸 주변에 쌓여있는 검붉은 감정의 찌꺼기들에 초점을 고정했다.


-여, 여기 바깥에 내 먹이가 있구나.


놈의 흥분이 심장으로 전해졌다.

다음 순간 노란 눈동자의 정중앙이 쪼개지며 무언가 튀어나왔다.

가슴이 쪼개지는 고통에 나는 이를 악물어야 했다.


그것은 팔이었다.

곤충의 그것처럼 얇고도 검어서, 도저히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은 팔 한 쪽.


팔은 검붉은 감정의 덤불들을 빠르게 휩쓸었는데, 

손바닥의 정중앙에 달린 입이 게걸스럽게 찌꺼기들을 먹어치워나갔다.


사라진 건 순식간이었다.


-이제 만족하나? 그러면 이제 그만 사라져!

-그럴 수 없다. 안에는...이제 먹이가 없다. 나는 먹이가 더 필요하다. 그러니.


심장에서 튀어난 검은 팔이 순식간에 내 팔을 휘감았다.


-뭐하는 짓이냐!


몰입은 이제 깨어졌다.


나는 검은 것에서 내 팔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팔이 산산조각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놈의 검은 팔은 더이상 나를 압박하지 않았다.


그것은...스며들었다. 

도화지에 먹이 스며들 듯이, 빠르지만 부드럽게. 나의 팔 속으로.


먹물처럼 새까만 곤충의 팔이, 색을 잃고 샛노란 점액질이 되었다가

다시 팔 속으로 흡수되는 광경은 기이하다 못해 징그러웠다.


-그러니 내 입을 외부에 둘 것이다. 절망과 공포를 먹여다오. 그리해준다면 나도 기꺼이 너에게...


거칠지만, 아직 여물지 못한 것처럼 들리는 목소리는 차츰 작아지더니 곧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나는 홀린듯 왼손을 살폈다. 

지극히 멀쩡한 왼팔은,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손바닥의 정중앙에서,

입이 뻐끔거리듯,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검은 실금은

방금 전의 일이 꿈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었다.

  

*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대공자가 깨어났다!

철혈군림종 내부에서 하나의 소식이 말을 탄 듯 퍼져나갔다.


누군가는 아쉬워했고, 누군가는 분노했으며,

그리고 누군가는 다음 행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떤 조직이건 ‘정보’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조직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정보를, 적절한 시기에 알아야만

외부의 기회를 잡거나 또는 위험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혈군림종에서 정보를 다루는 삼비대의 대주 혈적운 비홍은,

종단에서 중요인물을 꼽는다면 늘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인물이었다.


“그 개차반이 정신을 차렸다고?”

비홍의 질문에, 조양이 여느 때처럼 웃는 얼굴로 답했다.

“네. 어제 대공자가 정신을 차렸다고 합니다.”

“쯧...차라리 영원히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철혈군림종의 개차반. 한효월.

어릴 때는 머리가 비상하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무공에는 우스울 정도로 재능이 없고, 

심지어 자기사람을 만드는 인덕도 없다.


늘어나는 건 스스로 만드는 원한의 굴레뿐.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약 한효월이 차기종주가 된다면 

철혈군림종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 확실하다.


그 약간의 불확실성마저 싫었기에

비홍은 한효월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심 정신을 차리지 못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명줄이 끊길 때가 아닌 모양이다.


“그럼, 어쩔 생각인가. 조양. 그동안 대공자 옆에 붙어서 그를 쥐락펴락한 게 자네였으니, 이번에도 자네 판단에 맡기지.”


비굴하게 웃는 얼굴에, 왜소한 체격을 가진 조양은,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시하기 쉬운 외양이다. 


하지만 정보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무시받는, 그의 비루한 외형이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 안다.


보통의 사람은 자신이 무시하는 사람에게

빠르게 경계심을 내려놓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존심 강한 무인이라면

하루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개차반과도

기꺼이 어울리는 유연한 비굴함마저 가졌다면!


그게 비홍이, 대공자 옆에 조양을 붙인 이유이기도 했다.


“헤헤. 감사드립니다. 대주. 계획은 그대로 진행할 생각입니다. 금산회의 여식은 내일 예정대로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러면 곧 이 소식이 철혈마에게 전달될 겁니다.”

“철혈마는 지금 어디있지?”

“지금 고산보(孤山堡)를 점령하러 갔습니다.”

“음. 이틀 정도 걸리겠군. 그러면... 결국은 끝을 보겠다는 것인가.”

“그런데 대주님. 만약 철혈마가 대공자를, 종단 안에서 죽인다고 해도...괜찮습니까?”

“흥. 무슨 상관인가. 힘이 전부인 시대인데. 종단 안에는 대공자를 비호해줄 사람은 없고, 종주마저 대공자에게 관심을 끊었으니 별 일 없을 걸세.”


잠시 후 조양은 삼비대의 건물을 나와 대공자의 처소로 향했다.

그의 죽음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니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이었다.


대공자와 정이 들어서가 아니라, 그동안 들인 자신의 노력이 아까워서다.


그런 미친놈의 비위를 맞추느라, 

얼마나 많은 멸시와 조롱을 참아야했던가.


‘너 같은 병신을 낳고도, 너희 어머니는 쌀죽을 드셨나’는 대공자의 말에는

분노를 참느라 얼굴에 경련이 일 정도였다.


그런 놈도 오늘로 끝이다. 

통쾌함을 마음에 품은 채 대공자의 방문을 연 조양은,

그러나 낯선 광경에 얼굴의 웃음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계집애야, 당과를 그렇게 많이 먹으면 너 금방 뒤룩뒤룩 살 찐 돼지가 될 거다.”


한효월의 비아냥대는 말에도, 소희는 접시에서 당과 하나를 집어드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힝. 잘 먹고 있는데 왜 그래요...그리고 잘 먹고 죽은 돼지는 때깔도 곱다잖아요. 이왕 돼지가 될 거면 잘 먹어서 때깔 고운 돼지 되고 싶어요”

“돼지가 아니라 귀신이다. 잘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가 바른 말이고. ”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지금까지 한효월의 방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은 조양 자신 뿐이었다.


밖에서야 대공자를 찾아올 사람이 없었고, 

안에서는 모든 하인들이 그를 두려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조막만한 여자얘는 대체 누구길래,

자기집 안방인 양 앉아서 당과를 먹고 있는 건가.

차림새로 보면 아무리봐도 하녀가 분명한데 말이다.


조양은 마음 속 의문을 품은 채 대공자에게 다가가 과장된 언동과 함께 말했다.


“아이고, 대공자님! 정신을 차리쳤습니까! 이 조양, 혹여나 대공자님께서 일어나지 못할까봐 그동안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천만다행입니다. 천만다행.”


*


작은 체구에, 비굴해보일 정도로 만면에 가득한 웃음.

흑호리(黑狐狸) 조양이다. 


한효월은 눈 앞의 이 녀석을 꽤나 믿었나 보다.

반가운 마음이 불쑥 치솟았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자기 편은 없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인물이라면,

필히 진정성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게다가, 이놈은...너무 수상하게 생겼잖아!’


게임에서 캐릭터의 외형이란 결국 신호의 총집합이다.


반전을 위한 네임드캐릭터가 아니라면

믿을 수 있는 캐릭터에게,

조양과 같은 생김새를 적용할 수는 없다.


야비한 캐릭터에게는 야비한 얼굴을,

무뚝뚝한 캐릭터에게는 무뚝뚝한 얼굴을 주어

게이머가 캐릭터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놈은 수상함 그 자체였다.


“조양...인가?”

“아이고, 공자님. 아직 완쾌되지 않으신겁니까? 저 조양입니다. 공자님의 영원한 충신 조양!”


조양은 자신이 말을 한 마디 할 때마다 의심을 더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래, 그런데 무슨 일이지?”

“공자님, 저희가 항상 무슨 일이 있어야만 오는 관계는 아니지 않습니까? 공자님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신 동안에도 저는 매일매일 발이 닳도록 방 문턱을 드나들었습니다.”

“소희야, 저 놈의 말이 진짜냐?”


신나게 당과를 먹던 소희의 눈이 땡그래졌다. 

그리곤 곤혹스러움이 물들어 갔다.


“네? 어...저...”


소희가 말을 못하자, 조양이 급히 윽박질렀다.


“어허. 어제도 내가 오시(午時) 경[오전11시 ~ 오후 1시]에 방문했지 않느냐! 공자님께 얼른 소상히 말씀드려라!”

“...전 몰라요. 모른단 말이에요. 힝.”


소희는 울상을 짓더니, 입에 물고 있던 당과도 떼어놓았다.

   

“그렇게 말하면, 공자님께서 오해하시지 않느냐! 이 년아!”


조양의 고함소리에 절로 미간이 찡그려졌다.


어제는 내가 멀쩡히 정신을 차리고 있었는데

저런 뻔뻔한 낯짝이라니···


“소희야. 조양과 지금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나가 있거라.”


내 말에 소희는 군말없이 방을 나갔다.

두 손에 당과 챙기는 걸 잊지 않고.


그동안 나는 책장으로 가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책을 펼쳐들며 조양에게 말했다.


“혹시 내가 전에 [역천강령술]에 대해 말한 적이 있던가?”

“네? 아뇨...처음 들어봅니다. 공자님. 강령술이라니 듣기만 해도 으스스하군요. 그런데 그건 왜...?”

“그럼 내가 사술을 익히고 있다고 말한 적도 없겠군.”

“...고, 공자님. 그게 대체 무슨.”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는지

조양의 하찮은 몸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나는 조양 앞으로 다가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곤 두려움을 머금은 조양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는 순간,

작게 속삭였다.


“이건 마라섭혼술(魔羅攝魂術)이라는 거네. 사술로 유명한 마라혈종의 섭혼술이지.”


내 동공에 핏물이 맺혔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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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8화 23.10.09 3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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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화 금산산 +2 23.10.05 57 2 12쪽
» 3화 마라섭혼술 23.10.04 59 2 12쪽
3 2화 역할적합도 23.10.03 80 3 12쪽
2 1화 죽음 플래그 23.10.03 83 2 12쪽
1 프롤로그 23.10.03 100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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