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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大虎) 님의 서재입니다.

마도공자는 사술로 살아남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대호(大虎)
작품등록일 :
2023.10.03 14:30
최근연재일 :
2023.10.09 16:09
연재수 :
9 회
조회수 :
531
추천수 :
14
글자수 :
48,685

작성
23.10.03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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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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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2화 역할적합도

DUMMY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강렬한 욕구는 생존욕구이다.


그리고 인간은 ‘위험’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하게 된다.


눈을 떴을 때, 내가 느낀 건 강렬한 생존욕구였다.


살기가 빛살처럼 뿜어져 나오는 이청의 눈빛은,

21세기의 평범한 시민인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식은 땀이 흐르고, 몸이 떨려오는 ‘위험’.


그리고 위험에 대한 반작용으로 솟구치는, 생존욕구.


이청의 마지막 말은, 내가 알지 못했던 죽음 플래그가 분명하다.



다음 날, 침대에서 눈을 뜬 나는 초조한 마음에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시간만 허비한다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리 죽을 가능성이 높다.


어떡하지. 뭐부터 해야하지.


일단은...

역할적합도부터 정확히 알아야 한다.

며칠 내에 죽고싶지 않다면.


[역할적합도] 

 -70/100


15에서 70으로.

수치가 엄청나게 올라갔다. 


마치 지난밤 마음대로 난리를 쳤으니

이제 한동안은 성질을 부리지 않겠다는, 그런 느낌이다. 


역할. 그리고 적합도라.


아마도 ‘악인’이라는 한효월 역할에, 

얼마나 적합한 행동을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수치로 보인다.


어제처럼 일정기준 이하로 떨어지면 

한효월이라는 캐릭터의 본래 성격대로 행동하도록 지정된,

일종의 잣대, 지표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절대 10 이하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


당장 무공이 강한 것도 아닌데 저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여기 세계관에서는 비명횡사하기 딱 좋다.


‘어제도 한효월의 집이 아니었으면, 이미 끝났을지도...’


어쨌든 중요한 건 이 수치가 올라가는 기준과 내려가는 기준을, 

정확하게 잡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급히 바깥의 하인을 한 명 불렀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방문을 여니까 늑대를 보는 토끼처럼,

얼어붙은 열 쌍의 눈동자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끙, 나 같아도 피하겠다.’


그러나 적합도를 알아내는 건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이 집에서 일하는 그들한테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나마 낯이 익은, 첫만남에 오줌을 싼 여자얘를 

방으로 불렀다.


간단하게 이름을 묻자,

여자얘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소희라고 답했다.

이미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함부로 달래주거나 할 수는 없었다.

내 생각엔...그건 한효월이 결코 할만한 행동이 아니었으니까.


*


소희는 이미 눈에 뿌옇게 습막이 맺히는 걸 느꼈지만 

차마 닦지 못했다.


혹시라도 자기 허락없이 움직였다는 이유로,

정신나간 대공자가 자신을 죽일 지도 모르니까.


‘엄마, 보고싶어.’


13살의 소녀가 받아들이기에는 가혹한 상황이다.


대공자는 진짜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행동했다.


소희에겐 그냥 자기 앞에 앉아 있으라고 하더니,

한동안 알아 들을 수도 없는 말을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리곤 소희를 바라보곤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음음. 휴. 자, 그럼.”


공자는 무언가 결심한 듯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갑작스럽게 소리쳤다.


“어제 내 방을 더럽혔지? 그따위 행동을 하고도 살기를 바라는 건 아니겠지?”


어색한 연극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부정적인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친 소희에게 중요하진 않았다.


그녀의 눈에 물방울이 맺히더니 아래로 떨어졌다.


대공자는 어제 오줌 싼 일을 기억하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제 실수의 대가로 자신을 죽이려는 거다.  


“어! 오른다.”


대공자의 눈동자가 허공을 헤매더니

또다시 혼자서 의미 모를 말을 지껄였다.


더 무서웠다.


“흑흑”

“엉? 아니, 잠깐만, 이봐. 진정해. 엇. 떨어졌네. 진정하라는 말 때문인가보네.”


이 사람은 정말 미친 게 확실하다. 


소희는 자신의 명줄이 오늘 하루를 넘기기 힘들 것 같아

하염없이, 구슬프게 울었다.


*


생각해야할 것이 태반인데, 

소녀의 멈추지 않는 울음이 집중력을 자꾸 끊는다.

실험 목적이긴 했으나, 내심의 짜증을 섞어서 소리쳤다.


“이 년, 울음을 그치지 못할까. 누구 앞이라고 질질 짜고 있느냐!”

“흐읍.”


욕설도 조금은 익숙해졌다.

아닌가. 말투는 여전히 어색한 것 같다.


그래도 나름대로 무서웠는지

소희라는 어린 소녀는 끅끅대며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었다.

미안하다. 조금만 참아주렴.


음. 역시 수치가 오른다.


생각보다 간단한 패턴이다. 


한효월의 성격대로 강압적이고 말투나 협박 등을 하면 수치가 오른다.

반대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거나 진정시키는 부드러운 말은,

수치가 떨어진다.


행동은 더 효과가 크다. 

어제 하녀에게 한 가벼운 목례가 순식간에 적합도를 10이나 떨어뜨렸으니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한효월답게 말하고 행동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의문이 다 풀린 건 아니다. 

만약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짜증나는군. 네 지저분한 눈물이 내 방바닥에 닿는 걸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그리곤 소희에게 비단손수건을 강제로 쥐어주었다. 


수치는 아까처럼 즉각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마치 생각하는 듯, 한 텀을 쉬었다가 슬그머니,

1점이 올라갔다.


만족스러운 결과다.


나는 이번엔 침상 머리맡에 두었던 당과를 소희 앞으로 가져왔다.


비단손수건을 쥐어줄 때 눈물이 그쳤던 소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당과를 보았다.


맥아를 달여 만든 당과는, 우리나라의 엿과 비슷했다.

원래 명절, 특히 춘절에 먹는 간식이며,

국가의 중요한 제사나 연회에서도 올라가는 값비싼 간식이었다.


심지어 당과의 적합한 점도와 당도를 유지하기 위해 장인도 있을 정도니

이 세계에서는 특권층의 사치품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걸 먹어라.”


착한 행동이다. 악당이 하지 않을 법한.

나는 수치가 변하기 전에, 빠르게 말을 이었다.


“당분덩어리에 영양소도 없는 이런 음식은, 저급한 너에게나 어울리는 것이지 내가 먹을 만한 게 아니다!”


역시나 느릿느릿 숫자가 하나 올랐다.


‘역시’


설령 착한 행동이나 말을 해도,

좋지 않거나 나쁜 의도가 있다는 개연성을 부여하면 

그것은 악한 행동으로 판정된다는 의미였다.


하기야, 먹을 걸 주는 행동 자체를 전부 착한 행동이라고 판정할 수는 없다.


독을 탄 따뜻한 차를 주는 행동이 착한 행동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대충 이해는 했다.

이해는 했는데 뭔가 앞으로 행동하기가 골치아플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기억에 깊게 새겨진 현대인의 상식과 매너는, 

언제든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올 수 있다.


역할적합도를 평소에 높게 관리하지 않는다면,

어제와 같은 일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


소희에게 당과를 들려서 돌려보냈다. 


방에선 계속 훌쩍거리더니 문을 나서자마자 뚝 그치는 걸 보니

그녀는 억지로 눈물을 짜냈던 게 분명했다.


어려도 여자는 여자인가.


어쨌거나 이미 죽음 플래그는 떴다. 

다음은...이 캐릭터를 강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나는 한효월의 기억을 빌려

철혈군림종의 독문내공 철혈군림공을 운기했다.


온 몸의 기맥은 군데군데 막혀있고, 단전은 뻣뻣하기 그지없었다.


삼류 수준의 내공이, 

제대로 뭉쳐치지도 않은 채 힘없이 겉돌고 있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망혼절맥]

- 하단전이 선천적으로 폐쇄되어 있으며

  차츰 전신의 기맥이 막혀  20세 이전에 사망한다.

    

두 가지 절맥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하단전을 선천적으로 폐쇄시켜버리는 

[망혼절맥]의 영향이 컸다.


그나마 마도문파의 대공자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각종 의술치료를 받고 값비싼 약초를 복용한 덕에,

죽지도 않고, 삼류의 내공이나마 가진 채 살고 있는 셈이다. 


‘무공을 제대로 익히려면 망혼절맥을 빼버리는 게 최상인데’


시도했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 없었다.


대신 내가 넣은 게 [태일회악신골]이란 특성이다.

그것의 효능은 ‘상단전의 선천적 개화’.


상단전이 쉽게 열리는 대신 하단전의 성장이 제한되기 때문에

다른 캐릭터에 들어가지 못한 특성이다.


이제와서 억지로 하단전을 회복하는 특성을 넣어봐야 

망혼절맥의 존재 때문에 남들보다 못할 뿐이다.


그럴 바에야 아예 상단전을 개화하고

무사가 아닌 ‘술사’의 길을 걷는 것이 낫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캐릭터의 성격을 봐도 그렇다. 


한효월은 기본적으로 예민하면서도 매우 감정적인,

예술가적인 기질이 있는 캐릭터.


이런 성격은 기본적으로 충분한 지능이 뒷받침될 때 발현된다.


시스템의 지능지수를 살펴보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지능이 높을 게 확실했다.


술사가 훨씬 더 적합한 인물이,

철혈군림종이라는 집안의 무게에 눌려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는 길을 놓쳐버린 것이 아닐까.


어쩌면 한효월의 영혼도 이를 자각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역천강령술과 사술이 적힌 몇 권의 이름 없는 책들을

보관하고 있었겠지.


실제로 역천강령술은 혼자의 힘만으로 성공했으니

그것만으로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그는 아버지의 인정을 갈구했다.

때문에 술법의 학습에 집중하기보다는

종단의 철혈군림공에 천착했다. 


...그 결과는 완벽한 시간낭비일 뿐이다.

 종단은 결국 무력한 그를, 금정도에 버렸으니까.


운기가 길어질수록 단전의 기운이 조금씩 말랑져갔다.

내 의념을 따라 기운을 움직이는 일이 수월해진다.


나는 그 기운을 최대한 끌어모아 상단전으로 보냈다.


그러나 하단전을 집으로 삼는 철혈군림공의 기운은

낯선 길이 영 어색했는지,

몇차례 올라가다가 아래로 되돌아오곤 했다.


어르고 달래며 열 번이 넘은 시도 끝에

기운은 인중, 상단전이 있는 위치까지 도달했다.


그곳에 벽 같은 게 느껴지기는 했으나

하단전의 굳어버린 돌덩어리보다는 훨씬 얇았다.

벽이라기보다는 조금 굵은 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망설일 필요는 없다.

실패할 리 없으니까.

이곳에서 체질이란, 변수가 아니라 고정된 상수였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 믿는 바가 있다면,

내가 집어넣은 [초집중체]라는 특성이다.


모든 일에서 집중의 중요성을 빼뜨릴 수는 없다.


집중이란 곧 몰입이다. 


외부로 향한 의식을 내면으로 끌어들여 

의식이 명료해지면

그 효율은 수배에서 수십 배가 증가한다.


극한이 된다면

시간의 한계마저 넘을 수 있는 특성이,

집중이었다.


집중할수록, 의식이 점점더 깊어지고 명료해진다. 


예리해진 내 의념을 따라, 

기운이 작은 송곳 같은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조각해나갔다. 


움직여라.


찔리면 피가 나올 듯한 송곳의 날카로운 첨단이, 

상단전을 감싼 막을 그대로 꿰뚫었다. 


머리의 중앙, 백회혈이 뻥하고 뚫린다.


동시에 머리를 뚫은 구멍과 

머나먼 하늘이 일직선으로 연결된 느낌이 들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것 같은

무제한의 느낌.


혹은 일체의 걸림이 없는

온전한 무애(無碍)의 느낌. 


무엇이든 좋다.


하늘부터 머리까지 이어진 느낌은

머리를 관통해서 가슴까지 이어지더니

하단전의 바로 위에서 딱 멈춰섰다.


그곳부터는 망혼절맥이,

여기부터는 자신의 구역이라고 거대한 돌벽을 친 것 같았다.


아쉽지는 않았다. 기대도 없었으니까.


그보다는 중단전 가운데로 반쯤 길이 열리는 현상에 집중했다.

작은 내공으로, 반이나마 중단전까지 열어버린 것은 예상못한 일이었다.


열린 틈으로 검붉은 것들이 새어나왔다.


울분, 분노, 결핍, 증오, 절망, 자기혐오, 슬픔, 비참함 등등 

온갖 부정적 감정들이다.


한효월이 평생 동안 받아온 상처들과,

거기에서 생겨난 갖가지 감정적 찌꺼기들. 


그는 어리석게도 자신의 감정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배출하지도 못했으며,

승화시키지도 못했다.

그저 가슴에 품은 채 한없이 괴로워했을 뿐이었다. 


‘쯧쯧, 한심하지만 원통할 만한 인생이구나.’ 


그 순간.


- 나의 먹이를 가져가지 말라.


작은 목소리가 심장 깊은 곳에서 내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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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화 마라섭혼술 23.10.04 58 2 12쪽
» 2화 역할적합도 23.10.03 80 3 12쪽
2 1화 죽음 플래그 23.10.03 83 2 12쪽
1 프롤로그 23.10.03 100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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