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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名夢 님의 서재입니다.

백가제해(百家濟海): 1. 형제의 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완결

無名夢
작품등록일 :
2017.12.01 22:32
최근연재일 :
2019.04.10 00:13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17,523
추천수 :
114
글자수 :
339,531

작성
17.12.05 00:24
조회
847
추천
6
글자
9쪽

3. 무덤들: 다가오는 죽음

DUMMY

욱리하를 북쪽으로 바라보는 한성의 서쪽, 어두컴컴한 평야에는 수백 개는 되어 보이는 돌무덤들이 늘어서 있었다. 백제왕과 왕족이 묻혀온 고분군은 주로 돌을 정사각형으로 쌓아 층층이 올린 크고 작은 적석총들이었다. 이들은 고구려 왕족의 무덤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북쪽의 무덤들과 닮아 있었다. 동쪽에서 흘러오는 불빛이 평소보다 크게 돌무덤들을 비추었다. 고구려군의 공격으로 한성의 북성에 피어올랐던 불은 이제 남성에서도 솟구쳤다.


이 불빛에 의지하여 말 두 마리가 쉬고 있었고, 백제왕 부여경은 선대왕인 비유왕(毗有王)의 무덤 앞에 꿇어앉은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도망친 왕을 혼자 보좌한 다친 장수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왕에게 재촉했다.


“어라하. 어서 일어나시지요. 이대로는 추격당하고 말 것입니다! 어라하!”


부여경은 움직임 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선왕 폐하... 모후 전하... 소자가 이렇게 나라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땅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기병대의 말발굽이 느껴질 찰나였다. 돌연 불화살 하나가 날아와 돌무덤 앞 풀숲에 꽂혔다. 장수가 외쳤다.


“어라하! 괜찮으십니까!”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 화살이 날아온 쪽을 바라봤다. 말발굽 소리가 커졌다. 고구려 갑옷을 입은 장수 한 명과 횃불을 밝힌 수십의 경기병들이 칼을 빼들거나 활을 겨누고 순식간에 둘을 에워쌌다.


두 사람은 적장을 노려보았다. 다친 장수가 칼을 빼들었다.


“너 이놈들! 누구냐!”


왕은 적장을 알아보았다.


“너는.... 재증걸루!”


“역시 여기 계셨군요. 어라하! 다른 모습은 음흉하기 그지없었었지만 효심이 깊다는 건 기억하고 있지요, 하하하!”


재증걸루는 말에서 내리고는, 왕에게 정중하게 절을 올렸다. 그는 곧 다시 일어서서 부여경을 한 동안 노려보았다. 그 눈에는 불꽃이 튀었다.


“열 네 해 만인가요? 옛 주군에 대한 예는 올렸으니...”


재증걸루는 부여경에게 다가와 얼굴을 맞댈 듯 바라보았다.


“이제 적장으로서 대우해드리겠습니다... 퉤!”


재증걸루가 갑자기 왕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폐주를 묶어라!”


고구려군 기병들은 말에서 내려 왕과 장수를 꿇어앉힌 뒤 묶었다. 왕은 황망한 표정으로 외쳤다.


“네 이놈! 재증걸루! 반역을 하고 도망가더니 이젠 거련이 놈의 주구가 다 되었구나!”


재증걸루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그는 묶여 꿇어앉은 왕을 내려다보며 침을 두 번 더 뱉었다.


“뭐? 반역? 훗. 퉤! 이건 반역자의 부인이라 해서 비참하게 목이 잘려 저 세상으로 간 내 아내! 퉤! 그리고 이건... 오래전 왜국까지 가서 불타 죽은... 내 딸의 몫이다!”


부여경은 말없이 재증걸루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재증걸루는 주먹을 쥐고 떨면서 외치고는 명했다.


“내 너를 당장이라도 참하여 원한을 갚고 싶지만... 목을 잘라도 태왕폐하께서 보시는 곳에서, 모두 보는 곳에서 잘라야겠지! 끌고 가라!”


고구려군 기병대는 왕과 장수를 끌고 갔다. 왕이 그토록 호소했음에도 수백 개나 되는 어두컴컴한 돌무덤들은 두 사람이 끌려가는 광경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밤이 깊은 시각, 아단성 아래 아리수 강변을 바라본 언덕 밑에는 횃불들이 사방을 비추는 가운데 고구려군의 군막 여러 채가 펼쳐져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군막 앞 높은 왕좌에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센 장수왕 거련이 갑주를 입고 앉았다. 상기된 표정으로 왕좌 앞의 양 옆으로 늘어선 고구려 장수들과 대신들 사이로 재증걸루가 포박당한 개로왕을 끌고 와 꿇어앉혔다.


재증걸루가 무릎을 꿇으며 거련왕에게 고했다.


“태왕 폐하! 드디어 백잔(百殘)의 왕을 생포해왔나이다!”


새하얀 머리와 수염이 83세의 나이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거련왕의 체구는 당당했고 낮은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그는 부여경, 개로왕의 얼굴을 한 동안 살펴보다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대가 부여 경... 백잔의 왕이군. 그대가 왜 이렇게 잡혀왔고, 왜 벌을 받아야 하는지는 알고 있을 테지.”


개로왕은 고개를 들어 장수왕을 노려보며 외쳤다. 그의 입가는 웃음을 띠고 있었다.


“당신이 박적(狛狄)의 왕 거련인가! 얼마나 많은 군사와 백성들의 피를 마셨길래 이때까지 저승에도 안 가고 짐을 욕보이는 건가! 여든도 넘었다고 들었는데! 크하하하! 하하하하...!”


거구의 고구려 장수가 뛰어나와 개로왕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이런 무엄하기가 끝이 없구나! 박적? 거련? 뭐 짐? 내가 누군지는 알겠지? 고이만년이다! 내가 너에게 가진 원한은 네가 가장 잘 알겠지. 폐하! 제가 베겠습니다!”


거련왕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고이만년은 씩씩거리며 칼을 거두어 물러났다. 거련왕의 낮고 또렷한 목소리가 진중(陣中)에 퍼졌다.


“이보시게 부여경... 짐의 부왕이셨던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께서는 백잔과 삼한을 모두 완전히 토벌하고도 하늘의 자비와 성은을 베풀어 형제의 연을 지키도록 하셨고, 그대의 선조들은 영원한 노객(奴客)이 되겠다고 맹세했지. 그런데... 그대들은 노객은 고사하고 동생으로서 의도 지키지 않았다... 3년 전, 그대가 북위(北魏)에 보낸 국서를 기억하는가?”


부여경은 여전히 입가에 비웃음을 보이며 이죽거렸다.


“흥! 그 때 짐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 후회될 뿐이다! 아니, 천추의 한이라고 해야겠지. 말 그대로다. 천년 동안의 저주를...”


고이만년이 달려와 부여경을 발로 찼다. 개로왕은 아픔을 참지 못하고 웅크렸다.


“윽!”


거련왕이 계속 말했다.


“그 국서... 짐도 보았지. 북위에 비굴하게 손을 벌려? 얼마나 야비하고 치욕적인 내용인지 헛웃음이 날 지경이었네. 타브가치의 힘을 빌려 형제를 치겠다? 고구려와 백잔이 같이 부여에서 나왔다고 국서에도 써놓고서? 그대는 그대가 주장하는 삼한의 진왕(辰王)이 될 자격이 없네.”


거련왕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고, 개로왕은 고통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형제라... 너희 고구려 박적과 우리는 100년이 넘게 싸워왔다. 그런데 형제라 할 수 있겠는가. 하긴 형제가 남보다 못할 때도 있지. 싸움이 길기도 하구먼. 큭큭...”


장수왕은 개로왕을 응시하며 말했다.


“진왕의 인장(印章)이 있다고 들었네... 이제 우리 고구려는 하늘의 명을 받들어 삼한의 대통을 이을 것이니, 그대는 진왕의 인을 바치도록 하게나.”


개로왕은 장수왕을 노려보며 킥킥거렸다.


“뭐라? 큭큭... 결국 그것이었나? 삼한은 작은 나라만 수십 개이고, 도장 하나로 다스려질 나라가 아님을 알고 있을 텐데? 하늘의 명이라니... 그런 게 있기는 했는가? 흥, 내가 인장을 가지고 있지도 않지만... 하하하!”


재증걸루가 부여경을 윽박질렀다.


“어디서 태왕 폐하를 능멸하려 하는 게야! 진왕의 인을 당장 바치지 못할까? 있는 곳을 말하거라!”


개로왕은 정색하며 주위를 노려보았다.


“내 수중에 없다아! 삼한을 쏘다니면서 다 쓸어버려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하하하하!”


장수왕은 말없이 개로왕을 한참 바라보았다. 정적 끝에 그의 낮고 강한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알겠네... 자비를 베풀 생각도 있었네... 하... 짐을 부왕보다 못하게 하려는 일은 성공한 듯 하군. 잘 가게나...”


장수왕은 좌중을 돌아보다 굳은 표정을 지으며 나지막이 명했다.


“처형하라!”


재증걸루와 고이만년을 비롯한 장수들이 장수왕에게 호소했다.


“폐하! 진왕의 인이 있는 곳을 알아내어야...”


그러나 장수왕은 말을 끊고 다시 명했다.


“처형하라! 짐의 명이다.”


고이만년이 나섰다.


“제가 베겠습니다. 폐하!”


장수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개로왕을 응시했다.


고이만년은 검을 치켜들고 개로왕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개로왕은 눈물을 흘리며 악을 쓰기 시작했다.


“짐이 죽는다고 망하지 않는다, 망하지 않아! 내 수십 개의 머리를 가진 독사가 되어... 너희 박적들을 물어 숨통을 끊을 것이다~!”


고이만년의 잘 벼린 칼날이 번뜩였다.


“이야앗!”


개로왕은 쓰러져 눈을 감았다. 피가 흐르고, 고구려 군영에 적막이 감돌았다. 장수왕을 비롯해 장수들 모두 말을 하지 않았다. 고이만년과 재증걸루의 득의양양한 표정만이 고구려의 승리와 적장의 처형을 기뻐하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었다.


작가의말

<주석>

* 욱리하: <삼국사기>에 기록된 한강의 옛 명칭


* 아리수: <광개토태왕비>에 기록된 한강의 옛 명칭


* 백잔(百殘): 고구려에서 백제를 낮춰 부르던 비칭


* 박적(狛狄): 백제에서 고구려의 흉악함을 강조하여 부르던 비칭


* 타브가치: 탁발선비(拓跋鮮卑). 곧 북위(北魏)


* 진왕(辰王): 마한 맹주국의 왕이 맡으며 본래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三韓)을 대표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신라왕과 가야 연맹을 제외한 백제왕에 가까운 의미로 변화한 것으로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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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제해(百家濟海): 1. 형제의 전쟁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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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새 천군(天君) 17.12.08 761 5 7쪽
» 3. 무덤들: 다가오는 죽음 17.12.05 848 6 9쪽
2 2. 큰 솟대와 마지막 굿 17.12.05 1,291 8 11쪽
1 1. 두 성(城) +4 17.12.01 2,191 1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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