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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名夢 님의 서재입니다.

백가제해(百家濟海): 1. 형제의 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완결

無名夢
작품등록일 :
2017.12.01 22:32
최근연재일 :
2019.04.10 00:13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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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24
추천수 :
114
글자수 :
339,531

작성
17.12.05 00:09
조회
1,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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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1쪽

2. 큰 솟대와 마지막 굿

DUMMY

한성이 함락 당하던 서기 475년 음력 9월의 어느 날, 이 날은 노을이 유독 피처럼 붉었다. 높이가 80척은 되어 보이는 솟대의 그림자가 꼭대기의 새 모양을 품고 둥근 광장에 길게 드리웠다. 광장의 동쪽에 늘어선 큰 움막과 초가는 이미 어둠에 잠겼다. 초가 안에서는 한 노파가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세 명의 젊은 여인들이 작은 호롱불에 의지하여 곁을 지켰다.


한성의 남쪽, 걸어서 사흘 정도 거리의 서쪽 바다로 튀어나온 작은 반도에 있는 신소도국(臣蘇塗國)의 최고 샤만 자리에 오른 지 마흔 아홉 해, 천군(天君) 말금은 병석에 누워 천계(天界)에서 자신을 부르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신소도국은 3백 여 호(戶)의 백성만을 거느려 보통 2, 3천 호 크기인 마한(馬韓)의 소국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했지만 특별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으니, 마한의 국읍(國邑)이라 불리며 마한 연맹의 제사를 담당했기 때문이다. 백제국이 처음 마한 연맹의 맹주가 된 5백 년 전까지 천군은 세속 권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남녀가 모두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마한이 백제의 영향권에 놓이자 천군은 정치 권력을 놓고 천계의 일, 즉 제사와 예언 등 샤만의 본업만 담당하게 되었는데 오직 혼인하지 않고 신내림을 받은 여인만이 그 지위를 이을 수 있었다. 올해 이른 살의 말금은 여인만이 천군을 맡게 된 이후로 열두 번째 천군이었다.


스무 살 남짓인 세 명의 작은천군들은 말금의 곁에 둘러앉아 병수발을 들고 있었다. 침묵이 이어지고 있던 그 때 밖에서 아뢰는 소리가 들렸다.


“천군님께 올릴 약이옵니다.”


스물 두 살의 작은천군 봄낮이 거적이 드리워진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들이시게.”


천녀(天女) 달온이 거적을 들추고 약 사발을 들고 들어와 공손히 올렸다. 작은천군 노루가 받아 봄낮에게 전했다. 봄낮은 이를 받아 천군 말금의 입에 한 모금씩 떨궜다.


달온은 말금과 작은천군들에게 예를 표하고 다시 나갔다. 그 때, 말금이 눈을 뜨고 일어나려고 했다. 봄낮이 그를 부축했다. 말금은 간신히 입을 뗐다.


“콜록... 콜록... 달.. 달온이는..”


노루가 크게 눈을 뜨고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신이 드십니까!”


말금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고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달.. 온이는... 나갔는가... 후우.. 후우...”


작은천군 다래가 답했다.


“예, 나갔습니다.”


말금은 다시 눈을 감고 드러누웠다. 그가 잠들자 노루가 다래에게 작게 속삭였다.


“어째 천군님께선 정신만 드시면 달온이를 찾으시는지...”


다래가 소곤이며 답했다.


“미련이 남으신 게지... 후계자로... 예전에는 대대로 천군을 지낸 집안의 여식 아닌가. 이제 천군께서 천계(天界)로 가시면...”


봄낮이 눈을 흘기며 말을 막았다.


“어허!”


노루가 봄낮을 바라보면서 다래에게 말했다.


“이제 그게 가능하겠는가. 달온이는 스물이 다 되도록 신내림을 받지도 못하고 평범한 천녀로만 있으니...”


그는 미소를 지으며 봄낮에게 물었다.


“덕분에 형님이나 우리 작은천군들 중에 다음 천군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봄낮은 답하지 않고 말금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하지만 눈빛에는 아주 미세한 기쁨이 서려 있었다.


말금이 누워있는 초가의 입구 밖에는 천녀 달온이 쪼그려 앉아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달온은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그래? 난 하나도 아쉽지 않아. 천군 따위... 그런 거 안 되는 게 좋아. 얼마 안 있으면... 그와 함께할 수 있어. 내 뜻대로 살 수 있다고!’


신소도국의 천군은 세 명의 작은천군과 열 세 명의 천녀를 거느리고 있었다. 선대 천군이 천계로 갈 경우 작은천군과 천녀 중 누구에서든지 천군이 나올 수 있었지만, 최소한 신내림은 받아야 했다. 지금까지의 열 두 천군은 모두 작은천군 중에서만 지명된 게 사실이었다.


세 작은천군 중에서도 다음 천군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여길 만했다. 작은천군 봄낮은 다섯 살에 신내림을 받았고 샤만의 능력 중에서도 중시되는 예언의 능력이 가장 탁월했다. 게다가 그는 본래 백제 왕실 출신으로 한성에서 살 때 신기(神氣)를 보여 천녀로 신소도국에 들어와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나 말금이 미련을 보이는 천녀 달온은 스무 살이 된 지금까지 열 세 명의 천녀들 중에서 유일하게 신내림을 받지 못해 후계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선대 천군의 천녀 중 신내림을 받지 못한 자는 후계자가 천군에 올랐을 때 평범한 마한 백성 자격으로 신소도국을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달온은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붉은 빛이 짙어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솟대광장의 남쪽에는 신소도국의 별군(別軍)이 훈련을 하는 연무장(練武場)이 있었다. 한 청년의 목검이 이곳에 드리운 석양을 갈랐다. 사람의 그림자 하나에 목검의 그림자가 붙어 길게 드리워 쉴 세 없이 움직였다. 신소도국 별군을 이끄는 스무 살의 별장(別將) 백가(苩加)였다. 갸름한 얼굴에 눈빛은 날카로웠지만 입가에는 어진 느낌이 묻어났다.


신소도국의 별군은 아홉 명이 한 부대씩 아홉 부대로 이루어졌으니 모두 81명으로 마한의 다른 소국 병력에 비해 매우 적었지만, 개별 병사들의 능력은 맹주국 백제를 포함한 마한 전체에서도 으뜸이었다. 백가는 신소도국의 9인대 하나와 별군 전체를 이끄는 수장이었고, 검술과 창술 모두 별군이 아닌 한 명을 제외하고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백가가 소도검법(蘇塗劍法)의 마지막 동작을 마쳤을 때 그의 눈앞에 단아하지만 뚜렷한 미모의 한 여인이 서 있었다.


“달온아!”


백가는 땀을 훔치며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달온은 조용히 웃었다.


“한 번 겨뤄볼까?”


백가가 달온에게 물었다. 신소도국의 별군 뿐 아니라 천녀와 작은천군들은 모두 기본적인 검술과 창술을 익혔기 때문에 달온도 대련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달온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해가 다 졌어.”


백가와 달온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해가 넘어간 가운데 두 사람의 그림자가 아직 길게 드리웠다.


해가 완전히 진 후 달빛이 드리웠을 때, 백가와 달온은 솟대광장에서 10리 쯤 떨어진 산속 작은 냇가 바위에 앉아 있었다. 이 곳은 두 사람과 소도 친구들이 어릴 때부터 같이 놀았고 둘이 서로에 대한 마음을 키워온 곳이었다. 신소도국의 어두운 분위기 탓인 듯, 두 사람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백가는 냇물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


“천군님께서는 좀 괜찮아지신 것 같아?”


달온은 또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달온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잠시 비치고는 무언가 작심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 가망이 없으신 것 같아. 아니! 그래야 해!”


백가는 눈을 크게 뜨고 달온을 바라보았다.


“달온아! 그게... 무슨...”


달온은 백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때가 되었어. 천군님은... 천계로 가셔야 해.”


백가는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넌 천군님께서 가장 아끼던 천녀야!”


달온은 다시 냇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천군님께서 가시면... 신내림을 받지 못한 그 소속의 천녀는 평생 혼인도 못하는 무녀가 아니라 보통의 여인이 되지. 그래야 내가 너와...”


달온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애틋한 눈빛으로 백가를 쳐다보았다. 백가는 달온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입을 떼었다.


“그건... 하지만...”


백가는 냇가 쪽을 보며 일어섰다.


“나는 이 신소도국의 방위를 책임지는 별장이다! 그렇게 된다고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 지금 우리나라가 의지하는 백제국의 한성이 위험해. 전쟁에 나가야 할지도 모르지!”


달온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서 백가를 마주보고 다가갔다.


“상관없어. 지금이야... 아주 좋은 때가 오고 있어. 내가 너와 정말로 함께할 수 있는...”


두 사람은 서로의 숨이 닿을 거리까지 다가갔다. 가을밤의 바람과 냇물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달빛만이 희미하게 두 사람을 비추었다.


신소도국의 천녀 한 명이 컴컴한 산길을 내달렸다. 솟대광장에서 1리 쯤 떨어진 냇가에 다다르자 달온과 백가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달온아! 달온아~!”


숨이 서로 닿는 거리까지 다가섰던 백가와 달온은 무안한 표정으로 흩어졌다. 천녀는 달온에게 달려와 붙잡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천군님께서.. 천군께서... 헉헉..”


달온이 물었다.


“무... 무슨 일이야!”


“천군께서... 깨어나셨어!”


달온과 백가는 크게 놀라 서로를 바라보았다.


“뭐?”


“그뿐만이 아니라...”


천녀는 솟대광장 쪽을 바라보았고 달온과 백가의 시선도 그를 따랐다. 멀리 밤하늘에 비치는 불빛과 함께, 청동방울소리와 북소리가 섞여 요란했다.


“둥둥둥둥둥, 둥둥... 둥둥둥둥둥, 둥둥...”


달온이 입을 떼었다.


“이건...”


천녀가 말을 보탰다.


“그래! 굿이야... 말금 천군님의.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달온아!”


천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온은 솟대광장으로 곧장 뛰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는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섞여 있었다.


‘정말.. 정말 때가 된 거야! 여기서 천군의 후계자가 정해진다. 그리고 나는 이제...’


백가와 천녀는 달온을 따라 달렸다.


“달온아~!”


세 사람이 솟대광장에 도착했을 때 80척 나무솟대에는 청동방울과 북이 여러 개 걸려 있었다. 횃불이 여러 곳에서 원형 광장을 둘러 밝혔고, 병색을 찾을 수 없는 표정의 말금이 천군의 관을 쓴 채 하얀 무복(巫服)을 입고 청동방울을 흔들며 무아지경으로 격렬히 뛰면서 춤을 췄다.


세 작은천군은 말금과 솟대를 가운데 두고 각자 청동방울이나 북을 든 채 삼각형으로 둘러섰다. 봄낮은 청동방울을 말금의 박자에 맞추어 흔들었고, 다른 작은천군 둘은 북을 두드렸다. 그 주위를 신소도국의 천녀들과 81명의 별군 병사들, 수많은 백성들이 둘러싸고 천군 말금의 춤을 지켜봤다.


“둥둥둥둥둥, 둥둥..”


북은 일곱 번 씩 두드려졌고 청동방울은 그에 맞춰 흔들렸다. 신소도국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일곱은 서역에서는 행운의 숫자일지 모르나 이곳에서는 천계로 감, 즉 죽음을 뜻했다. 말금의 마지막 굿이었다.


봄낮은 청동방울을 흔들며 천녀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달온은 열 세 명 천녀 대열의 거의 끝에 서 있었고 별군과 함께 있는 백가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말금보다는 달온을 지켜봤다. 이윽고 달온은 천군 말금을 주시했다. 희미한 미소가 입가에 감돌았다. 굿은 밤새 계속되었고 언제 끝날지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작가의말

<주석>

* 샤만: 무인(巫人)을 가리키는 샤만(shaman)이라는 낱말은 고대 알타이 및 시베리아 지역의 주술사를 가리키는 사만(saman)’이라는 옛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며, 따라서 흔히 오해하듯 최근에 형성된 영어 등 서구어 단어가 아니므로 이 소설에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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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무덤들: 다가오는 죽음 17.12.05 848 6 9쪽
» 2. 큰 솟대와 마지막 굿 17.12.05 1,292 8 11쪽
1 1. 두 성(城) +4 17.12.01 2,191 1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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