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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 속 하이브 마인드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SF, 무협

bamboowife31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3.07.24 00:47
연재수 :
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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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12,860

작성
23.05.1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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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에볼루션 컴플리트 (1)

DUMMY

그가 7살 때의 일이었다.


“운, 저 별을 보세요.”


창가에 앉은 여인이 다정한 목소리로 소년을 불렀다.


무심한 표정으로 서책을 넘기던 소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가 조용히 그 옆으로 다가갔다.


작은 유성이 가로 지르는 밤하늘을 저 멀리 있는 보라색 빛이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에겐 몇 번이나 봐도 똑같은 광경이었지만, 여인은 즐거운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저 별의 이름이 뭔지 아나요?”

“파천성(破天星)입니다, 어머니.”

“맞아요. 당신이 타고난 기운의 별이지요.”


여인의 상냥한 미소가 소년의 차가운 눈동자에 비쳤다.


“참 아름답지 않나요?”


어딘가 필사적인 그녀의 질문.


‘아, 그렇구나.’


여인의 의중을 알아차린 소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부자연스러운 억양으로 대답했다.


“소자가. 타고난. 기운의. 별을. 보고. 있자니. 감회가. 참. 새롭습니다. 어머니.”


자연스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어조.


마치 사람이 아닌 것이 사람 흉내를 어설프게 내는 듯했다.


그 불쾌한 모습을 보던 여인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세차게 흔들렸다.


“···. 운, 이리로 오세요.”


여인이 손을 그에게 뻗자 소년은 어딘지 모르게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나아갔다. 다가가기 무섭게 그녀의 치마폭에 감싸 눕혀진 그였지만, 여전히 표정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잘 모르겠을 때는 억지로 대답 안 해도 돼요.”

“···..”

“역시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나요?”

“네.”


결국 포기한 것인지 짧게 대답하는 소년의 모습에 여인의 고운 미간이 살포시 찌푸려졌다.


아이가 처음 한 세 마디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니었다.


‘따분해.’


별 뿐만이 아니었다.


서로 장난치기 바쁜 또래들 사이에서도.


온갖 기화이초로 가득한 천마전의 후원에서도.


십만교도 모두가 모여 신교의 위엄을 보이는 사열식에서도.


소년은 모든 것을 따분해했다.


그나마 흥미를 보인 것은 서책과 장기.


······ 그리고 아주 간혹, 후원의 가장 어두운 구석에서 작은 벌레들을—


“어머니.”


여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소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머니께서 보셨던 그건··· 더 안하기로 했습니다.”

“···.. 어째서죠?”

“···.”


아이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그러자 여인의 눈이 처음으로 밝게 반짝였다.


“다만 어머니가 또 그런 표정을 짓는 건 별로 보고 싶지 않아요.”


신색이 환해진 여인의 얼굴을 올려보며 소년은 며칠 전 후원의 구석에 있던 자신을 발견한 여인의 표정을 떠올렸다.


자신이 하고 있던 일을 목격한 후, 여인은 처음으로 성화신녀로서의 체통조차 내팽개치고 그를 와락 껴안았었다.


덜덜 떨리던 그녀의 교구.


고개를 묻은 자신의 어깨에서 느껴지던 축축한 습기.


그것이 서책에서 본 ‘슬픔’ 이라는 것임을 소년은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리고 아주 조금, 짜증이 났다.


짜증나니까 여인이 슬퍼하는 모습을 더 보고싶지 않았다.


그 뿐이었다.


“···. 운.”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아이의 머리를 따스하게 감쌌다.


그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여인의 무릎에서 소년은 아까 그녀가 가리켰던 보랏빛 별을 올려다보았다.


다소 어색한 이 분위기에 안 어울리게 참 밝게 빛나는 별이었다.


“당신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 될 거에요.”


여인의 고요한 음색이 그의 생각을 어루만졌다.


“무언가를 느낀다는 게.”

“···..”

“남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그것을 누리지 못하니, 아마 대부분의 시간을 따분함 속에서 보내겠죠.”


아. 그때와 같다.


마치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듯, 여인의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소년으로서는 따라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래서 이 어미는 그대가 조금이라도 안식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 안식을 찾으면 안 따분한가요?”


소년의 질문에 어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뇌만큼은 명석했던 소년에게 그것은 충분한 답이 되어 주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 속에서 하늘에 걸린 보랏빛 별을 바라보았다.


달의 밝기로 인해 그 빛이 서서히 줄어 들 때쯤, 여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운.”

“···. 네 어머니.”

“한 가지만 기억하세요.”


그녀가 아이의 머리를 잡고 서로 눈을 마주쳤다.


“누가 뭐라하던, 당신이 어떤 존재던, 당신은 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입니다.”

“···..”

“당신 조부의 피와 이름을 잇고, 제가 배 아파 낳은 아들.”


여인은 소년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고 속삭였다.


“그 점을 명심하세요.”

“···..”

“절대 잊지 마세요.”

“···.. 그럴게요.”


소년은 한 박자 느리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 무심한 목소리에서 그녀는 그 무엇보다도 단단한 진심을 엿볼 수 있었다.


“소자 그리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운.”


여인은 소년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그것이 소년이 마지막으로 느낀 어미의 온기가 되었다.




####




12년 전의 그 날과 마찬가지로 보랏빛 별이 저 멀리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둑한 밤하늘 아래 그 은은한 기운은 멀리 퍼지지 못한 채 사라졌고, 뒤이어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거친 노송(老松)들의 존재감에 가려져 버리고 말았다.


마치 지금의 자신을 보는 듯한 그 안타까운 모습을 보며, 이젠 청년이 된 소년은 무감정하게 눈을 껌벅였다.


“교주, 여기까지요.”


서릿발 같은 목소리가 지엄하게 선언했다.


“···..”


절벽에 서 있던 청년, 천마(天魔)는 말없이 몸을 돌렸다.


위태로운 절벽에 그를 몰아넣고 둘러싸고 있는 것은 한때 그의 권속이었던 자들이었다.


천마신교(天魔神敎).


이름 그대로 교주 천마를 신으로 모시며 그 말 한 마디에 목숨도 내던져야 했을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한 무리의 굶주린 이리떼가 되어 옛 주인의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천마의 시선이 그 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서 있는 6명의 인물을 향했다.


흑마(黑魔) 염태훈


음마(淫魔) 신소군


검마(劍魔) 황장훈


혈마(血魔) 목영위


광마(狂魔) 조극갑


그리고 그들 신마오장(神魔五長)를 이끌고 있는 것은···.


“··· 학사(學士).”


천마가 고저차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본좌에겐 교주의 자격이 없는 겁니까?”

“그렇소.”


한 때 그의 스승이었던 자는 교도들의 앞에서 가차없이 선고했다.


“본 교가 추구하는 바는 강자존. 신강(新疆) 오만 교도 위에 군림할 천마라면 응당 무의 극에 달해야 할 것이오.”


학사의 서늘한 시선이 이내 천마의 갸냘픈 신체를 훑었다.


품이 넓은 교주의 옷 너머로 언뜻 비치는 기골의 윤곽은 너무나 연약하고 왜소했다.


천산(天山)을 지배하고 중원 무림이 경계하는 천마신교의 교주라고 보기 어려운 그 모습에 학사의 눈쌀이 찌푸려졌다.


“그렇지 못 한 약자를 더 이상 만마의 종주로 받들 수 없는 바.”


그는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스스로의 약함 때문이니 우릴 너무 원망하지 마시오.”

“원망 안 합니다.”


천마의 칼 같은 대답에 학사의 얼음장 같던 표정이 잠시 꿈틀거렸다.


“학사가 본좌에게 가르쳤지요. 무란 단순히 무공의 강함이 아니라고.”


그의 시선이 눈앞의 배신자들 하나하나에게 향했다.


“약하더라도 강자를 속여서 굴복시키면 강한 것이고, 강한 자라도 속아서 굴복하면 약한 것이다.”


그 내용과 천마라는 이름값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드럽고 공손한 목소리였다.


“강해지는 것에 수단과 방법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결과라고.”


청년의 말에 몇몇 장로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 그대들이 본교의 가르침에 충실한 것 같아 오히려 기쁩니다.”


천마가 싱긋 웃었다.


죽음을 앞두고 짓는 웃음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편안한 미소였다.


보는 이의 마음마저 안도될 정도로.


그러나 학사의 표정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


그는 이내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등을 홱 돌렸다.


“학사.”


천마의 목소리에 그가 멈춰 섰다.


“그동안 가르침에 감사했습니다. 편히 살펴 가십시오.”

“······.”


분명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은 교주였다.


그러나 되려 자신을 배웅하듯 말하는 천마의 인사에 그는 끝끝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학사가 교도들 사이를 지나 사라지자 절벽에는 장로들과 천마만이 남았다.


“자 그럼,”


여전히 공손한, 그러나 묘하게 차가운 청년의 시선이 장로들에게 향했다.


“본좌를 베는 영광을 그대들 중 누가 가져가시겠습니까?”

“······. 교주.”


스릉.


거대한 도를 든 험상궂은 사내가 앞에 나섰다.


마치 곰을 연상시키는 덩치였지만, 동시에 여우와도 같은 교활함이 눈빛에 사려있는 장발의 사내였다.


“··· 황장훈 장로.”

“흐흐···! 전부터 그 눈빛이 맘에 안 들었어.”


검마 황장훈은 자신의 애병(愛兵) 멸나검(滅懦劍)을 들고 천마의 앞에 섰다.


“나약한 주제에 교주의 지위에 올라 날 내려다보던 꼴 하고는···.”

“항상 대전 어디선가 불손한 시선이 느껴진다 싶었더니 그게 당신이었군요.”


천마는 자신의 몇 곱절이나 되는 검마를 조용히 올려다보았다.


그 흔들림 없는 고요한 모습에 장로들 뒤의 몇몇 교도들의 시선이 흔들렸다.


나약한 교주는 오늘 죽는다.


그것이 약자는 살아남지 못하는 강자존, 이곳 천마신교의 법칙.


허나 그에게선 그 어떤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의 목숨이 경각에 달한 상황임에도 그의 목소리에선 지독한 무관심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 모습에 장로들의 시선이 서로 교차했다.


“나서지 마라!”


은밀히 합공을 준비하던 다른 장로들의 움직임을 느낀 검마가 고함쳤다.


“교주의 수급은 나의 것이다, 건드리지 마!”

“제가 전에 말했을 텐데요, 황 장로.”


그 때 천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로는 별호에 어울리지 않게 항상 검보다 말이 먼저 앞선다고.”

“큭···!”


검마의 눈이 휙 돌아갔다.


“그 입 다물어라!!!”


그의 대도가 순식간에 반원을 그렸다.


날붙이가 살을 가르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파슷!


“···!”


허공에 피가 튀기고, 교주의 신형이 뒤로 기울어 졌다.


그의 목에는 이미 가느다란 혈선이 그어져 있었다.


검마의 만면에 미소가 걸린 순간,


뻐끔.


천마의 입술이 움직였다.


- ···.. 본교는 강자존.

“···.!”

- 절 보고 그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교주 최후의 전음이 귀에 울리자 절벽에 모인 이리떼들은 한순간이나마 전율했다.


그와 동시에 청년의 목이 옆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졌다.


“엇···?!”


당황한 혈마 목영위가 손을 뻗기도 전,


파하—


뿜어져 나오는 피분수 속에서 천마의 신형이 절벽 뒤로 넘어갔다.


검마가 내려다보자, 교주의 목과 머리 잃은 몸뚱이가 절벽 밑으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




죽음을 앞둔 탓일까.


[새로운 표본 확보. 분석 완료.]


환청이 들려왔다.


[개체명 천마. 전두엽과 측두엽 발달 미비. 감정 이입 능력 약함. 개별 의식에 이입할 위험 없음.]


처음에는 단 한 명이 속삭이는 줄만 알았다.


[군체 의식 속 자아 유지 가능성 높음. 무리의 생존을 위해 필요.]


그러나 이어지는 소리는 한 사람이라기 보단 여럿이 입을 모은 합창에 더 가까웠다.


그것도 단 하나의 불협화음도 없는, 완벽하게 일치된 합창.


[위험. 생명징후 위독. 항상성 유지 실패 임계점 임박. 조치해야 함.]

[기존의 육신. 바이오매스 부족. 재구성 불가능.]

[두부. 절단면 깔끔. 손상 경미. 두뇌 온전함. 무리의 목적. 여전히 달성 가능.]


희한하게도 그 수많은 목소리 중 그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수복 불가능한 기존의 몸체 폐기. 바이오매스로 재활용.]


우두둑!


그 목소리가 사라지기 무섭게 무언가 으깨지고 절단되는 듣기 거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촤아악—


뒤이어 날카롭고 예리한 도구로 결이 나 있는 무언가을 가르는 섬뜩한 소리가 이어졌다.


혹시 환청이 아닌 걸까?


[두뇌와 발성기관을 포함한 두부만 보존. 캐터필러의 몸에 이식.]

“찌이익!”


그 때 단 한번도 듣지 못한, 기이한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얼핏 들으면 쥐 같기도, 또 얼핏 들으면 새 같기도 한 울음소리.


[유전자 결합. 거부 반응 최소화. 뉴런 및 시냅스 연결 개시.]


마지막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끝으로 침묵이 이어졌다.


거짓말처럼 사라진 소음에 천마는 그제서야 자신이 죽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생각을 그만두려던 순간, 그것이 다시 속삭였다.


[···.. 변이. 완료.]


작가의말

스1 하신 분들은 모두 익숙하실 그 소리....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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