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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자 님의 서재입니다.

축구공 궤적을 손으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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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자
작품등록일 :
2024.07.2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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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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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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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원샷 원킬

DUMMY

사방이 새햐안 시공간.

우주처럼 무한하고 광활한 곳이기에 두려울 법도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너무나 편안했다.

게임 화면이 커다랗게 놓여있기 때문일까?

마치 잠에 들기 전에, 에어컨을 틀어놓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핑거 풋볼을 할 때처럼 안락했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공과 골대 만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요리해 줄까.”


현재 나의 슈팅 자세는 ‘인사이드’다.

발 안쪽 면으로 밀어 차는 자세라는 뜻.

몸이 골대 정면을 바라보고 있기에 골대 전체가 슈팅 가능 범위이긴 하지만-.

수비수의 위치와 골키퍼의 위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추가로, 골키퍼가 막아낼 수 있는 범위가 어느 정도일지 계산하는 것도 필수다.

보통 이것저것 고려하다 보면 골대 구석이 가장 보편적인 선택지이긴 하다.

흔히 ‘야신존’이라고 불리는, 알아도 못 막는 위치.


“오른쪽 상단 구석.”


종착지를 결정했다면 다음은 궤적의 종류를 결정할 차례다.

크게는 직선과 곡선 중에 선택한다는 의미이며.

선을 어떻게 그리는지에 따라 슈팅의 구질이 천차만별일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복잡한 궤적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겠지만-.

축구 역시 간결한 게 최고이니까.


스──윽


궤적을 한번 그렸다가 취소 버튼을 눌렀다.

실수로 골대에 부딪힐 것 같은 경로를 그렸기 때문이다.


스──윽


“됐다!”


손을 떼자마자 아까와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커다란 게임 화면 안으로 내가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 것이다.

눈을 단 한번 깜빡였을 뿐인데-.

나는 다시금 슈팅을 차는 현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현실에 돌아왔음을 눈치챘을 때에는 이미 슈팅을 차고 난 이후였지만.


뻐엉───철썩!


완벽한 궤적이었다.

피파 게임으로 치자면 ‘ZD 슛’.

밖에서 안으로 감겨서 오른쪽 골포스트 상단에 안착하는 감아차기 슈팅.

골포스트와 크로스바가 만나는 모서리 부분을 스쳐 지나가는 수준이었으므로 사실상 막을 수 없는 궤적이었다.

프로 키퍼가 와도 반응하기 어려운 궤적인데.

우리처럼 취미로 운동하시는 키퍼 분이 이걸 막을 수 있을 리가.

반응조차 못하는 지금의 모습이 현실이다.


“이걸 어떻게 막아!”


키퍼의 볼멘소리와 함성은 거의 동시였다.


우와아아아──!


친구들이 방방 뛰면서 내게 다가온 것이다.


“대박인데?!”

“오늘 뭐냐, 너?”

“지렸다, 진짜.”

“나이스, 진우!”

“진우가 나보다 더 잘 차는데?”

“축신 빙의한 거 맞네.”

“이게 맞나?”


미안하지만 제대로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나 스스로도 전율이 일어서 감당이 안 되는 상태였거든.


‘내가 이렇게 멋진 골을 넣다니.’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골 후보에 들어갈 것 같을 정도로 깔끔하고 완벽한 골이었다.

게임이나 영상으로만 접하며 화면 밖에서 감탄했던 그런 골을 내가 넣었다는 사실이 소름 돋게 좋았다.

애들 뿐만이 아니라 상대팀도 입을 틀어막는 모습을 보니까 짜릿함이 배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도저히 꿈인 것 같지가 않아.’


골을 넣기까지 모든 과정이 생생했다.

심지어 새하얀 시공간으로 이동했을 때의 감각도 이 손 안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꽈악──


꿈이 이토록 생생하다면 그건 더 이상 꿈이라고 부를 수 없지 않을까.

슬슬 실감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시야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저 ‘핑거 풋볼’ 화면이-.

장난이 아니라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꿀꺽!


‘한번 더 해보자. 그래야 확실히 알 것 같아.’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아까처럼 핑거 풋볼 화면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직후, 눈에 띄는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를 견제하기 시작했어.’


내 주변에 상대 수비가 많아졌다.

내가 움직이면 상대 수비도 움찔거리며 따라붙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팀이 공을 잡았을 때는 나한테 전담 수비가 붙기까지 했다.


“윽.”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방금 전 슈팅 실력을 봐놓고도 가만히 놔둘 리가 있겠나.

이 정도는 동네 축구 수준에서도 당연한 상식이다.

다만.

나로서는 이런 견제를 처음 받아봐서 당황스러울 뿐이다.


‘어우, 생각보다 빡센데?’


고작 한 명이 붙어있을 뿐인데 움직임이 상당히 제한되었다.

상대가 신경 써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은 뿌듯하긴 한데.

이렇게 되면 게임 화면을 보고 있더라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문제다.


‘몸싸움이 밀려. 박스 안에 들어가서 공을 잡기는 어렵겠어.’


내가 내린 답은 ‘중거리’였다.

치열한 몸싸움을 하지 않더라도 때릴 수 있는 슈팅이지.

문제는 거리감에 따른 난이도다.

때려서 다 들어가면 누가 굳이 박스 안에서 차겠는가.

그냥 잡자마자 후리면 그만인데.


‘하지만, 나한테는 그게 쉬운 일이니까.’


문제는 슈팅 찬스를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전담 수비가 붙어있는 상황에서는 슈팅 각을 만들어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딱히 달리기가 빠른 것도 아니어서 수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한테 플레이 관련 지식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핑거 풋볼만 하더라도 각각의 스테이지가 전술적인 노하우를 반영하고 있으니까.


‘내 위치에서 벗어나자.’


이 또한 핑거 풋볼 스토리 중에 하나였다.

스트라이커 자리에 있다가 미드필더 자리까지 일부러 내려가서 공을 받는 플레이.

보통 수비수는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따라 나올 수 있는 범위에 한계가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

나를 전담 수비하고 있는 상대는 중앙 수비수였다.

내가 대책 없이 자리에서 벗어나면 당황하며 다시 되돌아가겠지.

중앙 수비수는 뒷공간을 지키는 것이 제 1 의무이니까.


스스슥─


“?”


오케이.

자리를 벗어나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사실상 중앙 미드필더 자리까지 내려온 셈.

상대 골대와의 거리는 대략 40m 정도?


“여기! 옆에!”

“!”


파앙─!


친구가 내 쪽으로 패스를 보내줬다.

비교적 자유롭게 공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정면에 선수들이 얽혀있었기에 당장 슈팅을 때리기란 어려웠다.

때린다고 하더라도 뻔한 위치로 향하기에 키퍼가 쉽게 막을 수 있을 터.

그렇다면 조금이나마 위치를 바꿀 필요가 있겠다.


‘드리블 모드.’



[드리블 모드로 전환되었습니다.]

[공이 몸에 닿아도 궤적을 그릴 수 없습니다.]



나는 드리블 실력이 좋지 않은 편이다.

수비가 한 명이라도 붙는다면 조급하게 움직이다가 뺏기는 편이지.

하지만.

근처에 수비가 없다면 어느 정도 드리블은 가능한 수준이다.

그것조차 안 된다면 얘네들이 나랑 축구를 해줄 리가 없지.


톡─


‘두 걸음 정도면 돼.’


공을 받고서 드리블을 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패스할 거라고 생각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로 빠지며 패스 경로를 차단하려는 셈-.

우리 팀도 마찬가지로 패스를 받기 위해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딱 한 명 정도만 나를 압박하기 위해서 달려오는 중이었는데.

미안하지만, 그러는 동안에 슈팅 각이 열려버렸다.


‘슈팅 모드’



[슈팅 모드로 전환되었습니다.]



파바박!


슈팅 자세를 잡고 발등으로 후렸다.


틱!


공이 발등에 닿자마자 홀로그램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잔뜩 긴장했어서 그런지 아공간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휴~!”


한숨도 쉬고 체조도 해줬다.

물론, 그러면서도 화면을 응시했다.

궤적을 어떻게 그려야 35m 지점에서 골을 넣을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이건 직선이 맞겠다.”


직선과 곡선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

곡선이 유려한 감아차기를 가능하게 한다면-.

직선은 아무래도 속도나 파워가 월등하다는 강점이 있지.

분명 멀리서 차더라도 골대까지 빠르게 발사될 것이다.

하지만-.


“내 슈팅 파워가 그렇게 좋진 않을 텐데?”


궤적을 그리는 걸로 끝이 아니다.

슈팅 파워 같은 부분은 보정이 불가능하니까.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캐릭터의 능력은 한결같은데 상황이 점점 어려워져서 깨는 맛이 있었지.


“잠깐만. 그럼 내가 실제로 코어랑 하체 운동하면 슈팅 파워도 강해지나?”


확인하고 싶은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자세나 타이밍 같은 부분에 대해서도 궁금한 게 많았으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번 경기를 잘 끝내야겠지.

아니, 이번 슈팅부터 먼저.


“이건 그냥 직선으로 안 돼. 끝에 가서 살짝 꺾어줘야지.”


파워가 부족하다면 궤적으로 승부한다.

6,000 스테이지 이상 클리어했던 나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스으윽.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경기장 화면을 옆으로 놓고.

직선으로 이어지다가 박스 즈음에서 뚝 떨어지는 궤도를 그려 준다.

야구로 치면 직구로 가다가 급격히 떨어지는 포크볼 같은 궤적일 터.


“됐다!”


손을 떼자마자 현실로 돌아왔다.

역시 내 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움직였고.

발등에 맞은 공이 로켓처럼 쏘아졌다.


빠아앙!


명백히 무회전 슛이었다.

하지만 그건 여유로운 쪽의 시선일 뿐.

막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무회전인지 뭔지 알 턱이 없을 것이다.

저 봐라.

멋지게 다이빙을 하셨지만-.

키퍼분이 예상한 지점보다 훨씬 아래로 떨어져 박히지 않았나.


철썩─!

우오오오오!!!!


애들이 또 한번 격렬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상대팀은 전의를 잃은 것처럼 혀를 내둘렀고.

나는 일종의 확신을 얻은 채로 미소를 지었다.


‘이거, 진짜다!’


꿈이 아니었다.

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게 실제라는 확신 만큼은 가질 수 있었다.


두근두근두근두근───


그 이후로 정확히 14골을 넣었다.

20분 경기임을 감안하면 말도 안 되는 숫자였다.

마지막 5분은 일부러 수비를 했을 정도다.

상대팀 멘탈이 나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보여서.

나 같아도, 빈정 상해서 뛰기 싫을 것 같아서.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독배로, 도화축구장.

이곳은 인천에서 손에 꼽는 야외 축구장이었다.

조기축구나 아마추어 경기 말고도, 가끔 준프로 경기도 잡히는 곳이었다.

금일 또한 준프로 저녁 경기가 잡혀있는 가운데-.

해당 경기에 괜찮은 선수가 있는지 탐색하러 파견 나온 스카우터가 있을 법도 했다.


“흠, 너무 일찍 왔나? 다른 팀이 하고 있네.”


K리그1, 인천 유나이티드의 스카우터가 벤치에 앉았다.

일찍 도착한 김에 아마추어 경기나 보면서 시간을 보내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스카우터의 눈에 한 명의 선수가 들어왔다.


뻐엉─철썩!


“이야, 시원하게 잘 차네.”


우와아아──!


정확히, 이진우가 첫 번째 골을 넣은 시점이었다.

상당히 멋진 골이긴 했지만, 스카우터의 흥미를 자극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추어 중에서도 잘하는 사람이 널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저, 프로의 벽이 지나치게 높을 뿐.


“다들 덥지도 않으신가. 엄청 열심히 하시네.”


멍하니 경기장을 바라보던 스카우터의 눈에 의구심이 스쳤다.

아까 전, 좋은 슈팅으로 득점했던 선수의 움직임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아예 안 뛰는데?’


모두가 뛰어다니는 와중에 저벅저벅 걸어 다니니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있겠나.

뿐만 아니라, 주변을 살피지도 않은 채 걷고 있었다.

마치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처럼.


“이게 아마추어의 한계지.”


재미를 위해 뛰는 사람들은 살아남고자 뛰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

애초에 마음가짐부터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같은 선상에서 놓고 비교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어?”


빠아앙─────철썩!


믿을 수 없는 중거리 슛이었다.


우와아아아───!


몇십 년 간 쌓아왔던 상식이 깨져 버릴 정도로.


“말도 안 돼.”


심지어 슈팅을 찬 선수가 아까 그 선수였다.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 다니기만 하던 그 사람이-.

프로도 감히 시도하기 어려운 무회전 슈팅에 성공한 것이다.

무려 30m 바깥 지점에서.


“저기서, 어떻게···.”


턱을 괴고 있던 스카우터는 어느새 벌떡 일어난 채였다.

그 이후로 약 16분 간-.

그는 단 한번도 자리에 앉지 않았다.

아니, 앉을 수 없었다.


“······뭐지, 저 사람?”


이곳에 온 목적을 까맣게 잊을 정도로 충격적인 20분이었다.

단순히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이상한 지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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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공 궤적을 손으로 그림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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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사실상 술래잡기 +6 24.08.10 7,024 150 14쪽
12 SNS 계정을 새로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7 24.08.09 7,127 143 13쪽
11 스타성을 알아챈 응원단장 +7 24.08.07 7,176 141 12쪽
10 설마 나를 질투하는 건가? +7 24.08.06 7,215 142 13쪽
9 골키퍼에게는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5 24.08.05 7,369 137 13쪽
8 원터치 슈팅 훈련 +5 24.08.03 7,275 131 14쪽
7 부모님에게 기쁜 소식을 +6 24.08.02 7,405 146 14쪽
6 노력하기로 했으니까 +5 24.07.31 7,515 142 13쪽
5 원 터치로 가야지! 원 터치로! +6 24.07.30 7,763 152 15쪽
4 스카우터의 제안 +7 24.07.29 8,530 131 13쪽
» 원샷 원킬 +6 24.07.27 9,601 147 13쪽
2 궤적 그리는 게임이 현실로 +16 24.07.26 11,400 164 13쪽
1 프롤로그 +6 24.07.25 11,791 17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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