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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행마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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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행마
작품등록일 :
2012.09.17 16:36
최근연재일 :
2013.01.21 15:04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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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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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7
글자수 :
68,422

작성
12.06.0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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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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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글자
9쪽

권달문(拳達門)-2

DUMMY

"이제부터 네게 나의 전부를 넘겨주도록 할 것이다. 이것을 위해 그 동안 내게 기본적인 수련만 시켰고, 바탕을 만드는데 주력했었다. 원래라면 일년 정도는 더 다듬었어야 했는데, 아쉽구나. 많이 고통스러울 테니 마음 단단히 먹거라. 네 녀석이라면 충분히 견디어 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천수엽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진지한 태도로 장진권의 등 뒤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이내 장진권의 웃옷을 찢어내듯 벗겼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장진권은 낯선 천수엽의 행동에 어리둥절했다. 무공을 가르칠 때와도 같은 무거움이 느껴졌다.

수련 시간 외에는 언제나 뭔가 하나쯤 빠진 것처럼 행동하던 사부였다. 지금의 분위기는 무공을 가르칠 때보다도 더 진지하고 경건한 느낌이 들었다. 비장감 마저 묻어나는 천수엽의 목소리에 장진권은 왠지 모를 불안감이 생겨났다.

"시작할 것이다. 절대로 정신을 잃어서는 아니 됨을 명심하거라."

천수엽은 오른손과 왼손의 장심을 각각 장진권의 정수리와 등 뒤의 명문혈에 갖다 대었다.

'우욱!'

장진권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허리 어름에서 느껴지는 극렬한 고통 때문이었다. 마치 불에 달궈진 쇠못이 살과 뼈를 부수며 찔러 들어오는 것 같았다. 허리뼈가 통째로 뜯겨나가는 듯한 아픔이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정수리에 얹어진 천수엽의 손바닥을 통해, 끔찍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머릿속을 직접 손으로 주물러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괴롭겠지만, 참거라. 넌 이제부터 우리 권달문의 정통 후계자다. 좀 더 수련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시간이 없구나. 내 이야기를 잊지 말고 기억하도록 하여라. 우리 권달문은..."

천수엽은 장신권의 백회혈과 명문혈에 진기(眞氣)를 주입하며 말을 이었다. 장진권은 극렬한 고통을 참아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천수엽의 이야기가 머리에 각인되듯 귀를 파고들었다.

권달문의 시조는 하남성에 살던 건달이었다고 한다. 우연한 기회에 다 죽어가는 소림승을 구해준 답례로, 몇 수의 권각술과 내공심법을 전수받았다고 했다.

그것을 계기로 권달문의 시조는 하남성의 밤거리를 장악할 수 있었으나, 부하들의 배신과 사파고수의 암수에 걸려 도주했다는 것이다. 학문에 밝지 못했던 권달문의 시조는, 망가진 몸뚱아리에 좌절하고 말았다.

그러나 복수를 다짐한 권달문의 시조는 위험한 와중에도 기어이 챙겨온 패물을 팔아, 고아들을 데려다 무공을 전수하게 되었다. 무공의 전수는 이루어졌으나, 도주할 당시에 입었던 내상으로 인하여 권달문의 시조는 그렇게 맥없이 죽었고, 그때부터 권달문의 무공은 겨우겨우 명맥만 유지했다는 것이다.

우스운 것은 그럼에도 여느 문파 못지않게 긴 역사를 가졌다. 권달문의 이름은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강호에 알려지지 않았다. 특별히 자질을 따져 제자를 고르는 것도 아니었으며, 무공자체도 신공(神功)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없었던 까닭이다. 그러면서도 불굴의 투지를 요구하는 무공이었으니, 대부분의 권달문 계승자들은 평범한 삶을 살다가 갔다.

천수엽의 경우는 아주 특이한 경우였다. 나이 삼십에 전대 권달문의 계승자를 만나 무공을 전수 받았다고 한다. 10년간의 고된 수련을 마치고 강호에 나왔지만, 실력은 겨우 삼류를 벗어난 정도였다. 너무 늦게 무공에 입문한 탓도 있었지만, 건우심공의 특성이 문제였다.

수련할수록 세맥으로 기운이 숨어드는 기이한 무공.

그랬기에 천수엽은 수많은 무인들에게 도전했다. 세맥에 숨어든 잠재된 기운을 이끌어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 대가로 천수엽은 필패왕이라는 명예스럽지 못한 별호를 얻었다.

"... 이렇게 이어진 거란다. 이게 우리 권달문의 역사다."

천수엽은 긴 이야기를 끝내며 장진권의 몸에서 손을 거두었다. 지독한 고통을 안겨주던 천수엽의 손이 떨어져나가자, 장진권의 얼굴이 서서히 펴졌다.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단전에 자리잡았던 손톱만한 내단이 주먹만하게 느껴질 만큼 커졌다. 자세히 알 수는 없어도 사부인 천수엽이 자신에게 힘을 전해준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무공의 경지가 낮았던 장진권이었지만, 몸 속에 차오른 커다란 힘이 그것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당최 사부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인에게 내력이란 생명과도 같은 존재다. 그런 내공을 물려주었다는 것은... 장진권은 왠지 불안한 느낌이 증폭되었다.

온몸이 욱신거렸지만, 억지로 몸을 돌려 사부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몸을 통제하던 점혈이 풀려있었다. 천수엽은 쪼글쪼글하게 늙어있었다. 흰머리가 가득했지만, 피부만큼은 젊은 사람 못지않게 탱탱하던 사부였다.

그러나 장진권의 눈 앞에서 힘없이 주저앉아 숨을 고르는 천수엽의 얼굴은 다 죽어가는 80대 노인의 모습이었다. 고통스러운지 얼굴까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사부... 제게 뭘 한 겁니까?"

"후후후... 나의 진원진기(眞元眞氣)와 내공을 넘겨주었느니라."

천수엽은 힘이 다 빠진 음성으로 별것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그러니까 왜요!"

장진권은 정말 화가 나서 소리쳤다. 사부가 죽어가고 있었다. 무공을 익힌 사람들은 이변이 없는 한 오래 산다. 내공의 힘 때문이다. 그런 내공을 모두 전해 주었으니 천수엽의 육체가 급격하게 늙었다.

언제나 괄괄한 음성으로 호통을 치던 사부가 힘없이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장진권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사부가 죽어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싫었다.

"어차피... 어차피 오래 살 수 없는 몸이란다. 저, 저기... 상자를 가져오거라."

천수엽이 가늘게 떨리는 손을 들어 선반을 가리켰다. 장진권은 사부의 힘없는 명령에, 나무로 만들어진 상자를 선반에서 내렸다. 제법 묵직한 무게였다.

"여, 열어 보아라."

"네, 사부."

헐떡거리는 천수엽의 말에 장진권이 조심스레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두텁고 낡은 한 권의 고서와 한쌍의 비갑(臂甲)이 들어있었다. 고서의 표지에는 '건우(健愚)'라고만 적혀있었다.

사부 천수엽이 그 동안 가르쳐준 무공들이 기록된 권달문의 무공서가 분명했다. 한 쌍의 비갑은 약간 특이한 모양이었다. 반 뼘 정도의 길이를 가졌고, 뱀의 껍질과도 같은 이상한 무늬의 가죽으로 만들어졌다.

끈으로 묶어 팔에 고정시키는 형태였는데, 팔목 부근에는 두 치 반정도 길이의 손가락 굵기만한 금속 막대기가 장식처럼 달려있었다. 막대기가 달린 반대편은 돌돌 말려있어, 마치 만들다 만 물건처럼 보였다.

"우리 권달문의 신물이다. 이 못난 사부가 네게... 부탁이 있구나."

"뭐든 말씀하세요."

장진권은 힘이 다 빠져나간 듯 한 사부의 말에 슬픈 눈으로 대답했다.

"집에 가고 싶겠지만, 이, 일년만 더 무공을... 수련해라. 제, 제대로 수련을 해야… 궈, 권달문의 무공이... 쿨럭!"

천수엽이 기침을 하자, 붉은 피가 입에서 주루룩 흘러내렸다.

"사부!"

"괘, 괜찮다... 어차피 오래 살 수 있는 몸... 이 아니었다. 마, 만약에 싸울 일이 있거든 오른손을 사용할 때... 한번 더 생각을 하거라. 권달문의 무공은... 생각보다... 강하단다... 쿨럭! 쿨럭!"

천수엽이 말을 끝냄과 동시에 격렬하게 기침을 해대었다. 맑은 핏물이 입에 가득 고여있었다.

"사부!"

장진권이 앞으로 꼬꾸라지려는 천수엽의 몸을 받아 안았다.

"네... 네 녀석을 마, 만나... 즐거웠구나... 내 전철을 밟지 않기... 를 바란다.... 부디... 부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힘겹게 말을 이어가던 천수엽의 눈에 초점이 사라졌다. 뭐가 그리도 아쉬웠는지 눈을 뜬 채였다. 다물어지지 못한 입가로 피가 넘쳐 흘렀다.

"사부! 사부우!"

장진권은 고함을 지르며 천수엽을 흔들었다. 그러나 이미 생명의 불꽃을 다한 늙은 몸은, 장진권의 손길이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릴 뿐이었다.

"사부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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