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인형지주
활빈당 무리들이 족자를 이용하여 태백산으로 단숨에 이동하는 모습을 보며 다시금 감탄했다.
카르마를 다량으로 사용하지만 매우 편리한 이동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란 말이 있었지. 이러한 인과 때문에 이동 기술로 한반도에 한에서 그들을 뛰어넘는 자는 없으려나.`
그들과 함께 태백산에 단숨에 도착한 나는 신라 신궁을 설치하기 전 복원궁을 얻으러 다시 태백산을 나갔다.
신라 신궁은 일종의 통신탑이었고 신전으로 사용할 것은 복원궁이었기에 그것을 얻어야만 빠르게 종교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 있으려나···.`
다소 걱정하며 복원궁이 있는 개성에 도착했는데 많은 자들이 내가 정체를 밝힌 순간 인사를 하거나 황급히 떠나갔다.
왠지 모를 찝찝함에 단말기를 통해 자유게시판을 확인해보았다.
`과거와 다르게 리젠은 좀 떨어지는 것 같고···.`
초당 수십 개씩 글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과거의 10%도 되지 않았다.
단말기 접속 시간에 따른 카르마 소모.
글을 쓸 때마다 양에 따른 카르마 소모.
글에 담긴 정보량에 따른 카르마 소모.
이러한 점 때문에 과거와 다르게 사용자가 줄고 있었고 개벽이 진행됨에 따라 소모량이 더욱더 늘어 약자들은 이용하지 못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자유게시판 쪽은 점점 사장되고 있었고 특정 커뮤니티와 정보 게시판 쪽만 성장하고 있었다.
`내용은···. 아···.`
내용 몇 개를 확인하는 순간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내가 유럽 쪽에서 심상세계 구현한 일들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영상으로.
- 인간은 100% 아님.
- 고대부터 살아온 이종족? 아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건 좀 심한 것 같은데···.
- 초월자가 환생한 것이 아닐까? 저런 미친 짓을 태연하게 저지르는 것을 보면 전생 초월자가 분명해!
- 악마에 1표.
- 악마는 표면에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음. 마왕이 더 현실적일 듯.
- 이걸로 수백만 죽었다는데 사실임?
ㄴ 희생자는 알 수 없고 집 잃은 사람은 최소 수천만이라고 함···. 이러다 전쟁 나겠음···.
ㄴ 유럽은 전쟁이 일상인데 새삼스럽게 뭔 전쟁임?
`심각하네···. 아니, 것보다 초상권은 없는거냐···.`
별의별 소문과 악평이 양산되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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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궁은 적당히 쓸만한 수준으로 어중간한 자들이 모여 자리 잡고 있었다.
서로 기 싸움을 하며 좀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다투고 있었으나 영력을 해방하자 전부 쉽게 굴복하여 복원궁을 회수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사라진다."
태백산에 돌아오자마자 태백승의 의념체가 나를 부르는 신호를 느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태백승의 의념체에게 가니 자신은 이제 사라진다고 말해주었다.
"그건 무슨 말입니까?"
"인과를 쌓았으니 환생할 자격을 얻었다. 더는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
비록, 의념체에 불과하였으나 인과를 충족하였기에 윤회에 들어갈 자격을 얻은 모양이다.
"그럼···."
태백승의 의념체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있다가 빛이 번뜩이더니 사라졌다.
너무나도 심플하게 훅 가버렸기에 다소 당황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쨌든 이제 내가 진짜 수호자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라 신궁과 같은 역할인 하늘에 제를 지내는 천제단이 근처에 있다는 점을 빼면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여기로 옮겨야겠네.`
무쇠봉에 오래 머물러 선기가 다소 깃들기는 했으나 태백산 영맥의 핵심인 태백산 용맥이 이곳에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나저나 천제단···. 태백승은 저걸 이용할 이유가 없었지만 나는 아니지.`
신라 신궁.
천제단.
종교를 만들 예정이었기에 같은 역할을 하는 이것들은 나에게 매우 유용한 보물이었다.
`연결의 힘을 지닌 이것들을 이용하면 차원 이동뿐만이 아니라 소환도 가능-. 잠깐···. 소환···. 소환이라···.`
불현듯 다소 뜬금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를 소환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내가 나에게 재물을 바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내 영단에 존재하는 진조의 흔적을 소환하는 것은 가능할까.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실험해봐도 괜찮겠지. 세 번째는···. 안 되겠지만.`
우주 어딘가에 있는 진조가 소환된다면 내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기에 세 번째는 시도하기 다소 꺼려졌다.
인과율 때문에 실력이 제한되더라도 종의 정점이 지구 진조였기에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일단···. 철저히 준비를 한 후에 한 번 시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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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여러 세력들은 힘을 합쳐 지구를 비롯한 여러 세계를 만들었다.
독립적으로 만드는 편이 자신들에게 걸맞은 인재를 만들 수 있지만, 굳이 지구와 같은 세계를 만든 까닭은 실험을 위해서다.
초월자들은 완전을 추구하는데 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 자신들 세력의 부족함을 알고자 다른 세력들이 만든 생명체와 같은 공간에 놓아두고 실험을 하는 것이다.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가 힘을 합쳐 만든 세계.
에린과 레메게톤이 힘을 합쳐 만든 세계.
천교, 절교, 한울이 힘을 합쳐 만든 세계.
모든 세력이 힘을 합쳐 만든 지구 외에도 소수의 세력이 힘을 합쳐 만든 세계 또한 우주에는 매우 많았는데 어떠한 자들은 이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솎아내기 혹은 품종 개량.
잔인한 말이지만 현실이 그러했다.
지구 근원에서 인위적으로 생명력을 뽑아내는 개벽이 진행됨에 따라 수준 낮은 지구 생명체는 죽어갔고 생명력 농도가 짙어져 강자는 늘어났다.
여기서 특별한 자들 혹은 눈에 띄는 강자들은 각 세력이 본인들의 세계로 소환해주었지만, 그 숫자는 극히 일부.
대다수 지구 생명체는 조건 만족을 위해 활동하거나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였는데 의외인 점은 이러한 세계가 되었음에도 신을 믿는 자들이 드물다는 것이다.
"답해주지 않고 외면하는 신? 우리에게 시련을 주는 신? 그게 신이라고 생각하나? 아니다! 진정한 신이란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분이다! 인ㅁㅣㄴ-. 여러분!"
과거, 어딘가에 소속되었던 홍보 담당자였던 자는 인민이라 말할 뻔했지만 서둘러 고쳤다.
"모두 알다시피 이 세계는 법이 사라졌다! 질서가 사라졌다! 가진 것이 없는 자는 휘둘리다 양분이 될 뿐! 우리는 위대한 등불의 신이 비추어주는 빛의 인도에 따라-."
`뭐야 이건···.`
천제단과 신라 신궁을 침식하는 작업을 하던 중 기이함을 느껴 산 밑을 관측하니 수십만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거대한 단 위에 여러 명의 사람이 있었고 그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연설하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뜬금없이 벌어진 일이어서 다소 당황했다.
`은하성천교 간판이 있는 것으로 보면 활빈당 녀석들이 한 건가? 아니지. 그들이 내 허락 없이 할 리가 없어. 그럼, 누가 한 거지?`
종교를 만든다는 것은 활빈당 간부들 말고는 모른다.
그들을 제외하면 아는 자들이 없기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설마···. 다중인격으로 변한 건가?`
뱀파이어는 새로운 인격이 만들어지기 쉬웠다.
여러 생명체로 변하고 분신을 자주 사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격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아니야. 그럴 리는 없어. 다중인격이면 특성을 사용할 때 문제가 생겼을 테니까.`
얼마 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또 다른 나를 만드는 특성인 `존재와 무(El ser y la nada)`는 심각한 페널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페널티는 크게 2가지였다.
첫 번째는 완벽히 동일한 존재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세계의 법칙으로 인해 세계가 둘 중 하나를 죽이려 한다는 것.
두 번째는 완벽히 동일한 존재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아 살의를 품을 정도로 혐오한다는 것.
이 중에서 두 번째를 순화시켜 표현하자면 밖에서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고 가방을 맨 사람을 보면 불쾌감이 느껴지는 것과 비슷했다.
이러한 이유로 분신을 만들 때 자신보다 약하게 만들거나 머리카락 길이를 조정하거나 하는 등 차별점을 두는 것이 정석이었다.
하지만 나는 첫 번째라면 모를까 두 번째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저건 나지만 나와는 다르다.]
쉽게 말해 이런 느낌이었기에 서로가 불쾌함을 느끼지 않았다.
이는, 자신조차 믿지 않는 성향 때문이었는데 이것 때문에 유니콘 로드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이다.
`내 성향은 다중인격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작아.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저렇게 된 원인이 없다는 건데···. 아!`
생각 도중 머릿속이 번뜩였다.
나와 연결되어 있으며 가끔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녀석이 있기 때문이다.
`인형지주!`
서둘러 인형지주의 위치를 찾았다.
태백산 영맥과 합쳐진 의념은 1초도 되지 않아 태백산 전체를 관측했고 인형지주의 위치를 찾아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인형지주는 얼굴 없는 어린애의 형태를 한 채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내 영향 때문에 얼굴이 없는 것일까?
고민하던 찰나 내가 과거에 배운 초음파 계열 문자이자 언어인 음초진문으로 의사를 전달하며 내가 최근에 만든 등불 문양을 거미줄로 만들었다.
[앞으로 이 문양이 없는 불신자는 전부 죽여야 해!]
`뭐? 아니, 나는 그런 거 시킨 적이 없는데? 아니, 잠깐. 그 이전에···. 저렇게 의사소통을 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내버려 두고 신경 쓰지 않았기에 저렇게 성장했을 줄은 몰랐다.
[몰살이다! 몰살! 내 말 안 들으면 니들도 다 죽어! 히히히히히! 죽여! 전부 죽이는 거야!]
`......`
의념체가 만들어진 영초들의 경우 지성을 얻게 되면 연결된 자의 성향에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내 성격과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설마, 내 숨겨진 성향이 저런 건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나는 양심적이고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데···.`
동족인 뱀파이어들 창고를 턴 적은 있지만, 일반인들을 건드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금까지 흡수한 자들 전부 나를 공격한 자들이었기에 도의에 어긋난 짓을 하지 않았다고 자부했다.
`생각해보니 좀 많이 턴 것 같기도···.`
동족 - 혈족 - 친척.
이렇게 생각했기에 동족들을 털었어도 죄책감을 크게 느끼지 않기는 했다.
`...아니지. 이것 때문은 아니야.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어. 내가 아닌···. 그래. 다른 녀석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해.`
생각을 정리한 후 인형지주 근처에 의식을 집중했다.
태백산 전체는 나의 일부나 마찬가지.
의식의 집중과 동시에 중력이 가해져 대지가 짓눌렸고 대지가 뒤집혀 인형지주를 감쌌다.
[이, 이건!]
그리고 거대한 흙으로 된 손이 대지에서 솟아나 구체가 된 인형지주를 내가 있는 방향으로 던졌다.
순식간에 내가 있는 곳까지 날아온 흙의 구체는 분해되기 시작했고 그 속에서 인형지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 키잇?"
아무것도 모른다는 느낌으로 손바닥 크기의 은빛 거미가 머리를 갸웃거린다.
그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어 잠깐, 말문이 막혔다.
`나는 이렇게 능청스럽지 않아. 타인과 교류하기를 꺼리니까. 도대체 원인이 뭐야?`
수상쩍었기에 섣불러 접근하지 않고 첨성대를 소환해 천천히 분석해보았다.
"키잇? 키이이잇?"
뚫어지라 바라보며 분석하자 인형지주는 루비 같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로봇이 춤추듯 경직된 움직임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음? 이 녀석 기운이···. 선기가 지나치게 응축되었잖아? 이 정도라면 지구에 맞지 않은-. 잠깐···. 애초부터 이 녀석은 상위 세계의 영초였지.`
인형지주는 절교 거래소에서 구매한 만년설삼과 봉래산의 선기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만년설삼은 상위 세계의 인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지구의 설삼이 수십에서 수백만 년 쌓아야 얻을 수 있는 영기가 존재했을 터.
차원 이동으로 기운이 쇠했다고는 하지만 인과가 지구에 맞지 않는 영초다.
`상위 세계의 인과가 영향을 끼쳤구나.`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첨성대에서 전해지는 정보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이 새끼···. 본성이 원래 그런 녀석이었나···.`
지구에서는 만년영초쯤 되어야 의지가 생기는데 높은 등급의 세계는 그 이하만 되어도 의지가 생긴다.
이 녀석의 원본인 만년설삼들은 수백에서 수천 년 정도 만에 의지가 생겼는데 대다수가 주변 동물들 골탕 먹이고 어설픈 원형체를 만들어 인근 마을의 물건을 훔쳤다.
이를, 악행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강화하고 보호하기 위해 한 행위니까.
다만, 가장 의지가 강한 녀석이 완전한 원형이 형성되기 전부터 생명체를 죽인 경험 때문에 인형지주가 과격하게 변한 것 같았다.
`영악한 것은 골탕 먹인 업으로 인한 것이겠지···. 하아···. 이걸 어쩌냐···.`
먹으려고 구매했는데 자의식이 이리 강할 줄은 몰랐기에 골치가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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