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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향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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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향
작품등록일 :
2016.10.0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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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4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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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7,804

작성
16.10.05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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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5쪽

서전서숙(瑞甸書塾) (1)

DUMMY

재임을 데리고 온 이상설은 우선 갑작스런 부친의 죽음을 이겨낼 수 있도록 세심하게 보살펴주었다. 친우가 죽었음에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천륜인 아비를 잃었으니 그 심정이 오죽 했겠는가.

더군다나 재임은 어미도 없는 상태였다. 이제는 천애(天涯)의 고아(孤兒)였다. 이상설은 재임을 보살피는데 정성을 다했다.


을사조약 반대운동은 난항을 겪고 있었다. 황제폐하는 친일파와 일본 헌병대에 둘러 쌓여있어서 인지, 많은 애국지사(愛國志士)들의 상소와 순절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일본 헌병들이 집회가 있을만하면 나타나서 모두 체포하는 등 점점 강경대응을 불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이완용은 오히려 적반하장(賊反荷杖)식으로 신문에다가 자신이 어쩔 수 없었다는 사설을 올리며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새 조약의 주지(主枝)로 말하면, 독립(獨立)이라는 칭호가 바뀌지 않았고 제국(帝國)이라는 명칭(名稱)도 그대로이며 종사(宗社)는 안전하고 황실(皇室)은 존엄한데, 다만 외교(外交)에 대한 한 가지 문제만 잠깐 이웃 나라에 맡겼으니 우리나라가 부강해지면 도로 찾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것은 오늘 처음으로 이루어진 조약이 아닙니다.


(중략)


어찌하여 중대한 문제가 이미 결판난 오늘날에 와서 어떻게 후회하면서 스스로 새 조약을 파기하고 옛날의 권리(權利)를 만회(挽回)하겠다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들과 그들의 동조자들의 활약 때문인지 많이 이들의 요구에도 조약이 철회된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상설도 재임을 보살피는 틈틈이 상동교회에 나가서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런 이완용을 비롯한 대신들의 행태에 비분강개(悲憤慷慨)하며 대응방안을 논의했지만, 일본을 등에 업고 설치는 그들에 대한 해결책을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조정의 대신이 찾아와서는 영의정(領議政) 자리를 약속하며 다시 관직에 나올 것을 회유지만, 이상설은 이미 꼭두각시가 되어버린 조정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조정에 들어서 직접적으로 그들과 싸울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돌아가는 상황을 봐서는 친일파 매국노들과 일제의 압력에 제대로 일을 해나갈 수 없을 터였다.

아니, 오히려 그가 관직이 나가는 일이 매국노들의 일에 정당성을 만들어 주는 배경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상설을 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매국노들과는 함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관직제의는 거절하겠습니다.”


이상설의 말에 조정에서 나온 관료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하고는 돌아갔다.


이상설은 친일매국노들과 일제에 둘러 쌓여있을 황제폐하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설사 자신이 조정에 등청을 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더구나 자신의 그들의 거수기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 대신 이상설은 따로 국권회복운동(國權回復運動)을 위해서 여러 방향으로 노력을 했다. 하지만, 집요한 일본 헌병들과 계속되는 친일파들의 방해와 압박으로 인해서 제대로 일을 진행 시킬 수가 없었다.


이상설은 국내에서 하는 국권회복 운동은 더 이상 진행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까지 활동방향을 모색했지만, 결국 방법을 찾지 못한 이상설은 결국 국외로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평소 함께 뜻을 함께 해왔던 이동녕(李東寧), 정순만(鄭淳萬) 등과 상의했다.


“저는 이대로는 국내에서는 더 이상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해외로 나가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상설의 말에 이동녕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저도 점점 한계를 느끼는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국외로 나간다고 해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그것도 고민입니다.”

“그래도 여기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있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은 선택일겁니다.”

“그렇...겠지요?”


그렇게 심사숙고(深思熟考)하던 두 사람은 결국은 이상설과 함께 국외로 나가기로 결정했다.

사실 이동녕과 정순만은 상동교회를 통해서 알게 된 이후로 같은 뜻으로 함께 활동을 해온 사람들이었다. 더불어 두 사람 다 나라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한 사람들이었다.


국외로 나가기로 뜻을 모으고, 집에 돌아온 이상설에게는 한 가지 걱정이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재임에 관한 것이었다. 앞으로 자신이 가야할 길은 가시밭길이었다. 더구나 이제는 국외로 나가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그 머나먼 타지에서 어린 재임이 모든 것을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이상설은 재임을 데려가야 하는 지에 대해서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저리 고심을 하던 이상설은 결국 재임을 친우인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에게 맡기기로 했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부자이면서 자신의 친우인 그라면 분명히 재임을 잘 돌봐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재임을 끝까지 돌보겠다고 약속한 친우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가야할 길에 재임을 데려가는 것은 꺼려졌다.

이상설은 재임을 불러서 자신의 결정을 말했다.


“더 이상 국내에서는 국권회복 운동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구나. 그래서 나는 이제 국외에서 활동을 하려 길을 떠나려한단다. 너는 어쩌겠느냐?”


이상설의 말에 재임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잠시 한숨을 내쉰 이상설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남기를 바란다. 앞으로 내가 가야할 곳은 너처럼 어린 아이가 견디기에는 너무 힘든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이곳에 남아서 모쪼록 공부에 정진 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너에 대한 것은 내 친우인 우당에게 미리 말해 두었다. 너는 총명하고 영특하니 혼자서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알겠느냐?”


재임은 말없이 이상설이 말을 듣고만 있었다. 이상설은 답답한 생각에 재임에게 물었다.


“뭐라도 말해 보거라.”


잠시 망설이던 재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같이 가고 싶습니다.”

“뭐라고.”

“저도 선생님을 따라서 함께 가고 싶습니다.”


고개를 들고 말하는 재임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 거렸지만, 단단한 결심이 어려 있었다. 이상설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나를 쫓아간다면, 필시 큰 어려움이 겪을 것이다. 풍찬노숙(風餐露宿)의 연속일 것이다. 너는 그것을 견뎌낼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도 돌아가신 지금, 선생님은 제게는 유일하게 남은 가족과 같습니다. 선생님도 저를 가족같이 여긴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저는 더 이상 가족과 떨어지는 것은 싫습니다.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꼭 함께 가고 싶습니다.”


혹시라도 이상설이 거절할까 싶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아이의 눈에는 이미 매달린 눈물이 방울져 떨어지려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설의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다. 긴 한숨을 내쉰 이상설이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말대로 우리는 가족이다. 네 결심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자꾸나.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 함께 가도록 하자. 그래도 공부를 하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재임의 소매로 매달린 눈물을 훔치고는 밝게 웃었다.


“네. 알겠습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이상설은 며칠 후, 이동녕, 정순만 등과 함께 재임을 데리고 대한제국을 떠났다. 처음 목적지로 삼은 곳은 상하이(上海)였다. 그렇게 상하이로 향한 이상설 일행은 상하이에 머물면서, 상황을 살폈다.


하지만 청나라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곳곳에서 반청 무장봉기를 선동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여기저기에서 반란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상하이에 있는 동포들도 아직 그렇게 기반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상하이에서는 국권회복사업을 벌이기에 여의치 않다는 생각에 다시 세 사람은 고민에 빠졌다.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동녕의 말에 이상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디가 좋겠습니까?”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정순만이 대답했다.


“간도(間島)나 연해주(沿海州) 지역은 어떻습니까? 이미 그곳에는 제법 많은 동포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곳이라면 우리가 하려는 일에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쪽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동포들의 힘을 모아야하는 일인데, 상하이에는 그것이 힘들 것 같으니 말입니다.”


사실 이 시기에 상하이에 있던 동포들의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직 대부분의 지사(志士)들은 국내에서 활동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이상설은 결국 두 사람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리고 동포들이 많다는 연해주로 가기로 결정했다. 상하이를 떠난 네 사람은 연해주의 해삼위(海蔘威), 즉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Владивосток)에 도착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동포들이 모인 곳을 살피며 머물 장소를 찾던 이상설은 그곳에서 연해주(沿海州) 연추(延秋, 현재명 크라스키노, Kraskino, Краскино)에서 간도관리사를 지냈던 이범윤(李範允)을 만나게 되었다. 연추는 초기 연해주에서의 한인 동포들의 중심지였다.


이범윤은 1902년 간도시찰사의 직을 받고 부임하여 청나라의 위협으로부터 백성들을 지킨 강단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1904년 러일전쟁 당시에 자신의 부대 500명과 함께 러시아 군대와 연대하여 함경북도 지역에서 일본군과 교전했던 전력도 있었다. 더구나 그의 부대원들은 사포대(私砲隊)로 연발총으로 무장, 훈련한 부대였으며, 그 구성원의 대부분이 구한국 군과 의병 출신들이 포함되어 있어 항일의식이 투철하였다.


이런 이범윤의 활약에 청나라는 조정에 압박을 넣어 1905년 정부로부터 소환명령이 떨어졌지만, 이에 불응한 이범윤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러시아로 망명하여 연해주 연추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그와 함께 한 사람들과 함께 한인마을 건설하면서, 자신의 부대를 정비하며 앞으로 국권을 잃은 조국에서 일들에 대한 대비하고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상설이라고 합니다.”

“이범윤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오셨다고 했습니까?”

“상하이에서 오는 길입니다.”

“멀리서 오셨군요. 그 먼 곳에서 오느냐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요즘 조선 사정에 대해서 들은 것은 없으십니까?”


이범윤의 물음에 이상설은 한숨부터 먼저 나왔다.


“휴우~ 저도 떠나온 지 제법 되어서 정확한 사정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떠나올 때만 하더라도 을사조약을 반대하여 많은 이들이 상소를 올리고, 반대집회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헌병들이 무자비한 진압과 을사오적을 비롯한 친일매국노들로 인해서 제대로 반대의견을 표하는 것도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네. 아무래도 친일매국노들과 일본 헌병들에게 둘러싸인 황제폐하께서는 조약의 승인을 거부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되돌리기는 어렵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휴~ 나라 사정이 말이 아니군요.”


이상설의 말에 이범윤도 나라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선생께서는 어떻게?”

“저도 상소도 올리고 집회도 참여했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일제의 탄압으로 더 이상 국내에서의 활동이 어렵다고 생각되어서 새로운 출구를 찾고자 이렇게 떠돌고 있습니다.”


말을 마친 이상설이 이범윤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곳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이범윤은 자신의 눈치를 보는 이상설을 보고는 빙긋 웃음을 보여주었다. 삶에 지친 그의 외관과는 다르게 눈은 매우 빛나고 있었다.


“저도 일제에 협력하는 조정의 부름에 마다하고 러시아로 망명한 상태입니다. 처음에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막막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내 나라가 아닌 이상 어디 쉬운 일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기반을 쌓다보면, 일제에 대항해서 다시 국권을 회복할 힘도 쌓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범윤의 말에 이상설은 크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런 황량한 남의 나라 땅에서도 나를 위한 마음을 잃지 않고 노력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사람이란 자신의 고민에 대한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 이상설의 생각을 눈치 챈 것일까? 이상설을 보던 이범윤이 조심스럽게 이상설의 의견을 물었다.


“혹시라도 이곳에서 같이 머무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아직 갖추어진 것은 얼마 없지만, 이곳도 곧 좋은 마을이 될 터이니, 이곳에서도 선생의 뜻을 펼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떻습니까?”


이상설의 이범윤의 제의가 내심 고마웠지만, 선뜻 승낙하기는 어려웠다. 이곳은 이미 한 조직으로 묶여있는 상태에서 나름의 계획이 있을 텐데, 자신이 임의로 일을 해나가는 것이 오히려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망설이는 이상설을 보고는 이범윤은 다른 지역을 추천했다.


“아니라면, 연변(延邊)지방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고민하던 이상설은 새로운 장소에 선뜻 호기심이 들어 물었다.


“연변이라면 간도에 있는 곳이 아닙니까?”

“네, 조선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름이.... 아! 용정(龍井), 용정이라고 하더군요. 생각해보니 그곳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남으셔서 함께 해도 좋겠지만, 그곳도 아마도 선생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상설은 가만히 중얼거렸다.


‘연변이라....“


왠지 이상설은 자신의 마음을 강하게 당기는 것이 느꼈다.


이범윤의 추천을 받아들인 이상설은 그길로 발길을 북간도(北間島)로 돌려서 연길현(延吉縣) 용정촌(龍井村)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용정에 정착하였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살림살이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다들 먹고 살기에 바빠서 제대로 된 교육도 받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이니 교육시설이 있을 리도 없었다.


이것을 본 이상설은 교육시설이 제일 급하다는 생각을 했다. 제대로 이들을 가르치면서 연변을 한국 독립운동 기지로 육성해 나가려는 뜻을 품었다.


곧바로 이상설은 같이 온 이동녕, 정순만과 주축이 되어서 용정에 있는 서전평야(瑞甸平野)의 이름을 딴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설립하였다. 만주에 설립된 최초의 신학문 민족교육기관이었다. 그것이 1906년 8월의 일이었다.


작가의말

1)새 조약의 주지로 말하면, 독립(獨立)이라는 칭호가 바뀌지 않았고 제국(帝國)이라는 명칭도 그대로이며 종사는 안전하고 황실(皇室)은 존엄한데, 다만 외교에 대한 한 가지 문제만 잠깐 이웃 나라에 맡겼으니 우리나라가 부강해지면 도로 찾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것은 오늘 처음으로 이루어진 조약이 아닙니다.

그 원인은 지난해에 이루어진 의정서(議定書)와 협정서(協定書)에 있고 이번 것은 다만 성취된 결과일 뿐입니다. 가령 국내에 진실로 저 무리들처럼 충성스럽고 정의로운 마음을 가진 자들이 있다면 마땅히 그 때에 쟁집(爭執)했어야 했고 쟁집해도 안 되면 들고 일어났어야 했으며, 들고 일어나도 안 되면 죽어버렸어야 했을 것인데 일찍이 이런 의거(義擧)를 한 자를 한 사람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중대한 문제가 이미 결판난 오늘날에 와서 어떻게 갑자기 후회하면서 스스로 새 조약을 파기하고 옛날의 권리를 만회하겠다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 조선왕조실록 1905126(양력 1231) "고종"에 대한 이완용 ”을사조약에 대한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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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Lv.58 파워드
    작성일
    17.01.25 23:25
    No. 1

    카... 마지막에 작가의 말에 쓰신 이완용 말 보고 눈물이 나네요... 유교 탈레반에 찌들고 상황파악 못하는 자들로 넘쳐났다는 반증이겠지요.. .

    찬성: 2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2 종이향
    작성일
    17.01.31 15:30
    No. 2

    아마도 시야가 좁아진 상태에서 자신들 만의 우물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로 봐야겠지요. ''
    알면 알수록 슬픈 역사의 단면이 아닐 수 없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62 디쟈토
    작성일
    17.03.23 02:27
    No. 3

    잘 보고 갑니다. 영의정을 내각총리대신으로 바꿔야하지 않을까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2 종이향
    작성일
    17.03.27 15:46
    No. 4

    흠.... 아마도 영의정의 자리가 내각총리대신급이라서 말씀하신 것이 맞을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구체적으로 영의정자리를 제시했다고 나왔습니다.

    아마도 정확하게 총리대신이란 자리가 확립이 되기 전이거나, 영의정이란 자리가 총리대신급의 다른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좀 더 조사를 정확한 조사를 한 후에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의견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87 니르바슈
    작성일
    17.04.06 22:08
    No. 5

    와..... 어째 독재자와 변명이 그리 똑같나전씨라던가 박씨라던가...
    그때 쟁집을했어야한다고...? 저런걸 국정교과서에 넣어서 개소리란 이런것이다를 확실히 보여줘야함

    찬성: 2 | 반대: 1

  • 답글
    작성자
    Lv.42 종이향
    작성일
    17.04.10 15:32
    No. 6

    모든 위정자의 변명은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내가 아닌 남을 탓하는 것 말입니다.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죠.

    누구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으니 말입니다. ㅜㅜ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18.07.17 16:14
    No. 7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5 流顯(류현)
    작성일
    18.07.22 19:20
    No. 8

    시작부 단어 틀렸습니다 괴변(×)→궤변(○)
    괴변 : 괴이한 일 사건
    궤변 : 이치에 닿지 않는 말 헛소리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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