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호의 사나이
“이번 사건은 보통의 일이 아닙니다.”
흥분한 204호가 책상을 쿵 내리쳤다.
“맞아요. 이건 경찰에 신고해야 해요.”
“에이, 떡 돌린 걸로 어떻게 신고를 해요.”
203호 아줌마가 비꼬듯이 말했다.
“아니, 왜 또 시비예요? 댁이 뭔데.”
“하이고, 말하는 꼬락서니하고는.”
“자자, 그만들 싸우세요. 애도 아니고,
뭐 그런 걸로 싸워요?”
104호와 105호 아주머니들도 소근거렸다.
“203호랑 204호는 아직도 저러네.”
“그니까요. 저 사람들 동창이었대요.”
“흐엑. 웬 일이람.”
“거기 아주머니들... 아니, 104호랑 105호도
조용히 하세요.”
205호 부녀회장이 다시 위엄있게 말했다.
“떡을 드시고 입은 피해들을 말씀해주세요.”
조용히 있던 107호가 손을 번쩍 들었다.
“예, 107호 어머니. 말씀하세요.”
“그 떡 때문에 저희 아이가 변했어요.”
“좀 더 자세히 말해주실래요?”
“그러니까...”
107호 아주머니가 침을 꼴깍 삼켰다.
“그 떡을 먹고 난 후부터였어요.
착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던 애가
갑자기 뭐에 홀린 듯 게임만 하더니
밥도 안 먹고 게임만 해요.
어제는 컴퓨터 선을 뽑았더니 글쎄,
‘게임 속에 사람들이 있잖아!!!’ 하면서
TV를 아작냈어요.”
107호의 사연에 아줌마들이 수근덕댔다.
“심각한 일이네요. 또 다른 분이요?”
“저희 집도 망가졌어요.”
302호였다.
“저희 집은 저랑 할머니, 엄마, 이렇게
세 식구가 살아요. 비록 가난했어도
저희 집은 늘 행복했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그 떡을 드신 뒤부터
‘디아블로’ 라는 게임에 미쳐계세요.
대체 왜 그렇게 열중하시는 거냐 물었더니
‘아무리 게임 속이지만 악마들이 판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라고 하셨어요.
아마 지금도 악마들을 잡고 계실 거예요.“
사연이 끝나자 아줌마들이 다시 수근거렸다.
“세상에, 그 할머니 독실한 기독교인 아니여?”
“어쩐지 요새 새벽 기도회도 안 나오시더라니.”
“다들 조용하세요.”
205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아파트 주민이 피해를 봤군요.
유감을 표합니다.
이번 사건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103호가 또 떡을 돌리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합니다!”
그런데 그 때였다,
303호에 사는 꼬마가 말했다.
“304호 아저씨는 떡 안 먹었는뎀.”
“뭐?”
나는 귀를 의심했다.
“304호 아저씨는 아직 떡 못 받았어요.
그래서 아직 안 먹었는뎀.”
흥분한 나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다들 그거 먹고 뒤질 뻔 했는데, 지만 안 쳐먹었다고??”
“에그머니나! 저 총각, 또 왔어.”
“아이구우, 누가 좀 내보내요!”
이런 시발..!! 아직도 떡을 안 먹었다고??
이 거지 같은 일을 지만 쏙 피해갔다구?
“103호 총각, 일단 진정하고...”
“이런 쉬발...!!!!”
부녀회장이 나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미 나는 극도의 흥분 상태였다.
“304호, 이 개이쉐끼!! 떡을.. 떡을..!!”
“에그머니나. 경찰 불러요, 빨리.”
우리의 적은 새로 이사 온 102호도,
핵무기를 연상케하는 그 망할 떡도 아니었다.
우리의 진짜 적은... 304호였다.
‘이 잣 같음을 나만 느낄 순 없지.’
그 날부터 나는 304호에 떡을 돌리기 위한
작전을 시작했다.
——————————————-
304호를 만나기 위해 밤을 샌지 5일째,
나는 304호의 집 앞에서 밤낮 없이 기다렸다.
“아휴, 저 총각 또 있어.”
“어머머.. 대체 왜 저런디야.”
“엄마! 저 아저씨는 저기서 살아?”
“아가, 쳐다보지마. 병 걸려.”
처음에는 305호로 이사를 갈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결국 나는 엘리베이터 옆을 선택했다.
우리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하나밖에 없다.
집에 들어가기 위해선 반드시 이 곳을 거쳐야만 한다.
“어후.. 춥다. 이불을 하나 더 가져올까...”
아직 초여름이어서 그런지 밤의 온도는 차가웠다.
게다가 슬슬 배도 고프기 시작했다.
가지고 온 ‘또라에몽 박스’를 뒤적거리자,
옥수수 통조림 한 개가 잡혔다.
“고레가 사이고오가..”
아름답게 포장된 옥수수 통조림을 땄다.
윤기가 좌르를 흐르는 옥수수알과
담백하고 고소한 향기 콧구멍에 닿았다.
“캬, 쥑인다.”
역시 옥수수는 통조림이지!
입에 옥수수를 한 숟가락 떠넣었더니,
문득 헤어진 여자친구 생각이 스쳤다.
[오빠. 뭐해?]
[응? 왜?]
[옥수수 샐러드 있는데 왜 통조림을 사와?]
[뭔 개소리야, 옥수수는 통조림이 짱이야!!
아무리 자기라도 이건 절대 안 줄 거야.
넘보면 뒤져! 아주 뒤진다고..!!!”]
그 날 이후로 연락도 안 받고...
그래, 역시 아무리 아끼는 물건이어도
여자친구보다 아껴선 안 되지.
크응, 훌쩍. 하, 밤이라 그런가.. 괜히 센치해지네.
- 쿠우우우우우웅 -
‘응?’
그 때였다.
- 우우우웅... 띵 동 -
“응, 엘베 내렸어. 응, 그래. 잘 자.”
- 끼익 끄윽 끼익 끄윽 -
누군가 내렸다. 운동화가 매끈한 바닥을 쓸며
내 앞을 뚜벅뚜벅 지나간다.
처음 보는 얼굴, 하지만 익숙한 발소리.
낯설지만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
- 띠 띠 띠 띠 띠로리!!! -
“잠깐만!”
“??”
도어락을 누르고 있던 녀석에게 다가갔다.
놀란 녀석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져있다.
“저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녀석.. 틀림없다. 100%다.
“야, 304호. 너지?”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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