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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배우, 천만배우로 거듭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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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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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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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4-7

DUMMY

방창욱 감독과의 첫 만남과 DMZ 캐스팅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

‘쥐리’의 마지막 촬영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맡은 김창길은 임방희(강은진)를 체포하러 가서 박무연(채민석)에게 총을 맞고 살해되고, 바로 이어서 ‘쥐리’의 백미인 북한 특수부대와 국정원 요원들 간 거리 총격씬이 촬영된다.

계절은 어느덧 봄을 지나 초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드디어 죽으러 왔냐?”


나를 본 채민석 선배가 장난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네. 저는 먼저 갑니다. 선배님도 곧 따라오십시오.”

“하하하!!!”


내가 죽고 난 후 며칠 후 채민석은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황성규와 격투 끝에 사살된다.

‘쥐리’의 비중 있는 역할 중 죽지 않은 역할은 주연 황성규가 유일했다.


“저기 불사신이 오시네.”


채민석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황성규가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단정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황성규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뭔 땀을 그렇게 흘려? 긴장 돼?”

“더워서 그렇죠. 갑자기 날씨가 더워지네.”


황성규는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채민석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늦봄치고는 상당히 더운 날씨였다.

황성규가 이마에 땀을 닦으며 내게 물었다.


“연후 너 오늘 마지막 촬영이지?”

“네. 선배님.”

“너 영화에서 죽는 거 처음인가?”

“그렇죠.”

“기분이 어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였다.

죽는 연기를 할 때 어떤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일까.

아님 죽어 가면서도 연기를 할 때처럼 감정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일까.

황성규 선배가 어떤 의도로 질문을 한 것인지 파악을 하기 어려웠다.


“기분이요? 어떤 기분이 드는지 잘···.”

“죽는데 무슨 감정이 들어? 그냥 졸라 찝찝한 거지.”


옆에서 듣고 있던 채민석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받아쳤다.

채민석의 말을 들은 황성규가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형님은 뭔 말을 그렇게 해요? 연후가 뭔 얘기하나 들어보려고 그랬구만. 이거 완전 잡쳤네. 나 이만 갈래요.”

“싱겁기는. 뭔 그런 장난을 치고 그래.”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면서 내 시야에서 멀어졌다.

황성규의 농담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나는 허탈감에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그때, 조감독이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준비하세요. 곧 촬영 들어갑니다.”


조감독의 말에 사람들의 동작이 빨라졌다.

나는 얼른 분장팀으로 가서 메이크업을 받았고, 소품팀에 가서 총을 챙겼다.

마지막으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촬영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감독이 촬영을 시작을 알리기 위해 무비 슬레이트를 들고 나섰다.


찰칵!


무비 슬레이트 소리와 함께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임명현(강은진)이 실은 북한 공작원 임방희였다는 걸 알게 된 김창길(나)은 임명현을 만나러 가게에 들어선다.

가게에 있던 임명현은 나를 보자 깜짝 놀라 묻는다.


-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 요즘 장사는 잘 되십니까? 보내주신 햄스터가 자꾸 죽어서 왔습니다.

- (그래요? 그럴 리가 없는데···.)


임명현은 내 말을 듣고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났음을 어느 정도 눈치챈다.

나는 주머니에서 도청기를 꺼내며 그녀에게 말한다.


- 햄스터 안에 이런 게 들어 있더군요. 나랑 충원이가 작전 나갈 때면 항상 임방희가 나타났는데, 아마도 이것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 (그게 무슨 말씀인지? 저는 하나도 모르겠네요.)

- 충원이가 작전에 나가면 접선 상대방은 죽어도 충원이는 죽지 않았죠. 분명 총알이 남았을 텐데도 말이죠. 그건 임방희가 충원이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 (······.)

- 이제 그만 털어 놓지. 임방희!


임방희는 온몸을 부들부들 떤다.

나는 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 임방희의 손에 채우려 한다.

그때, 구석에서 나타난 박무연(채민석)이 총으로 나를 쏜다.

나는 바닥에 쓰러지고, 박무연은 임방희를 데리고 사라진다.

곧바로 윤충원(황성규)가 가게로 들어오고,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한다.


- (창길아! 창길아! 어떻게 된 거야?)

- 며··· 명현씨가 이···임방희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다 눈을 감으며 최후를 맞이한다.


“컷! 좋아. 연후 그동안 고생 많았다.”


경 감독의 ‘컷’사인과 함께 ‘쥐리’에서 나의 분량은 전부 마무리되었다.

촬영 전 심각하게 생각했었던 영화에서 죽는 기분.

그것은 바로 시원섭섭함이었다.

이제 촬영을 끝냈다는 시원한 감정과 더불어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섭섭한 감정.

영화가 아니더라도 어떤 일을 끝냈을 때 거의 대부분 이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한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엉거주춤 서 있는데, 사람들이 하나둘 다가와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드디어 죽었구나! 축하한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악수를 건네는 채민석 선배.


“그동안 고생 많았다. 다음에 또 같이 찍자!”


서운한 얼굴로 다음을 기억하는 황성규 선배.

그리고, 활짝 웃는 얼굴로 나에게 다가와 악수를 건네는 강은진.


“연후씨. 오늘 연기도 좋았어요. 정말 신인배우 맞아요. 어쩜 그렇게 연기에 몰입을 잘 해?”

“그래요? 나는 그냥 평소처럼 했는데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네요.”


강은진의 칭찬에 얼굴에 미소가 저절로 떠올랐다.

오는 말이 있으면 가는 말도 있어야 하는 법.

강은진이 저번처럼 자신을 칭찬해 주는 말을 기다릴까 싶어서 말을 하려던 찰나 그녀가 먼저 중얼거리듯 말을 내뱉었다.


“그 사람은 왜 연후씨를 그렇게 말한 거지?”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앗! 아무것도 아니에요.”


강은진이 얼른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누가 나에 대한 얘기를 한 건지 어느 정도 감은 왔다.

그래도 나는 확실하게 알고 싶었다.


“누가 뭐라고 했어요? 사실대로 말씀해 보세요.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할게요.”


강은진이 말하기 곤란한지 눈을 몇 번 찡그렸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며 반드시 알아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몇 번 입술을 달싹거리던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다고 하지 마세요. 실은 대본 리딩날 강윤성씨가 나한테 오더니 연후씨가 연극 몇 달밖에 안 해본 사람이라고 하면서 영화 망칠까 봐 두렵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성규 오빠께 말했더니 오빠도 그런 얘기 들었다고 감독님한테 말씀드리겠다고 했어요. 죄송해요. 제가 직접 보고 판단을 했어야 했는데 괜히 다른 사람 말만 듣고···.”


강은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놀랄 것도 없었기에 마음은 편안했고, 오히려 더 담담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랬군요. 강윤성 선배가 제 극단 선배니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어쨌든 촬영 잘 끝났으니까 다행이죠. 강 선배 나쁜 사람 아니니까 너무 이상하게 보지 마세요.”

“어머! 연후씨 너무 대인배다! 나 같으면 쫓아가서 귀싸대기라도 한 대 날릴 텐데.”


오랫동안 미국에서 생활한 여배우가 ‘귀싸대기’란 말을 쓰니 귀여워 보였다.

속마음이야 그녀의 말처럼 가서 싸대기라도 날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내게 득이 될 게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작은 일을 잘 방어하다 보면 언제가 크게 한 방 날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선배한테 귀싸대기를 어떻게 날려요? 죽빵이라면 모를까!”

“하하하!!! 그래요. 죽빵 날리기 전에 꼭 부르세요!”


강은진은 까르르 웃으며 다음 촬영 장소로 이동했다.

나는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자리에 서 있었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배우, 스탭들을 보고 있자니 나만 홀로 다른 곳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황성규를 쫓아가고 있는 강윤성이었다.




대로변 총격씬은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지향하는 경재구 감독의 의지가 나타나 있었다.

기존 한국 영화에서 총격씬은 모형 권총에 불꽃이 터지면서 국산 경차 몇 대 작살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쥐리’의 총격씬은 미국에서 공수해 온 실제 총기에다 공포탄을 장전했고, 현지 특수 촬영팀의 지원을 받았다.

게다가 박살나는 차량도 최소 국산 중형 세단 이상이거나 고급 외제차였다.

그만큼 예산이 많이 드는 촬영이라 재촬영을 할 수 없었기에 감독이나 스탭들 모두 신경이 곤두설 대로 곤두서 있었다.

방금 전 사망한 나는 이 씬을 촬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으로 촬영장을 훑어봤다.

그런데, 저 멀리 눈에 띄는 모습이 들어왔다.

바로 황성규와 그 옆에 있는 강윤성이었다.

강윤성은 황성규에게 쉴 새 없이 말을 붙이고 있었으며 황성규는 건성건성 그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황성규의 얼굴엔 귀찮아하는 표정이 역력했으나 강윤성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입을 놀렸다.

매너 좋은 황성규가 가끔 그를 보며 미소를 짓기라도 하면 강윤성은 더 신이 나서 얘기했다.

그러다 강윤성이 뭔 말을 했는지 황성규가 나와 눈이 마주쳤고, 이어서 강윤성도 황성규를 따라 나를 쳐다봤다.

우리 세 사람의 어색한 시선 교환이 몇 초 동안 이어졌고, 황성규는 나를 보던 시선을 거두고 강윤성에게 가라고 손짓했다.

강윤성은 나를 싸늘하게 노려보며 황성규의 옆을 떠났다.


“자. 촬영 시작합니다.”


조감독의 외침으로 촬영은 시작됐다.

박무연(채민석)과 임방희(강은진) 일행이 도망치고 뒤에서 국정원 요원들이 일제히 사격을 개시한다.


탕. 탕. 탕.

드르륵. 드르륵.


권총과 소총의 어지러운 발사음과 함께 촬영 현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시끄러운 총격전 소리에 옆에 있는 사람들의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지경.

도망치던 박무연 일행 중 하나가 국정원 요원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쓰러진 일행을 구하기 위해 박무연이 다가가려고 하지만, 임방희가 박무연을 말린다.

쓰러진 일행은 총을 몇 발 더 맞고 숨을 거둔다.

그 모습을 본 박무연은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국정원 요원을 향해 총을 발사한다.

박무연의 총격에 국정원 요원 두 사람이 쓰러진다.


- 개새끼들 다 죽여버리갔어!

- 박무연 동무. 이제 피하셔야 합니다.


박무연을 연기하고 있는 채민석의 눈에 특유의 광기가 비추면서 미친 듯이 총을 쏴대고, 임방희가 그의 팔을 당기면서 다급하게 대사를 친다.

드디어 총격전은 마무리되고, 박무연과 임방희는 차를 타고 사라진다.

그의 뒤를 쫓는 황성규와 강윤성.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을 놓치고 만다.


“컷! 좋습니다!”


컷을 외치는 감독의 얼굴에 흥분이 가득했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는 그의 얼굴에서 환희의 빛이 떠올랐다.

경 감독이 그러자 스탭과 배우들도 주위를 둘러보며 기쁨을 나누기 시작했다.

촬영장에서 이렇게 좋은 기운을 나누는 영화치고 흥행이 안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20세기를 마무리하는 최고의 영화, 한국 영화의 줄기를 바꾸는 영화 ‘쥐리’는 이렇게 완성되고 있었다.


“연후야! 잠깐 얘기 좀 할까?”


넋 놓고 사람들을 보고 있는 사이 황성규가 다가와 말했다.


“네. 선배님.”


사람들이 없는 구석으로 그는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뒷모습에서 촬영 전 강윤성과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아마도 강윤성의 얘기를 하지 않을까 싶어 긴장한 순간.

걸음을 멈춘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금요일에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무대 인사 있다. 나와라!”

“네? 무대 인사요?”


고개를 끄덕인 그는 다시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다른 얘기는 없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는 이미 멀어진 뒤였다.

이틀 후면 금요일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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