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인기는 약인 동시에 독이라더라니
세 번째 해적 그룹까지 ‘갱생지도’ 를 한 후 나머지 해적 그룹은 뿔뿔이 흩어져 숨어버렸다.
일주일이나 걸렸으니 이삼일 간 싹 쓸어버리려고 했던 것보다는 훨씬 오래 걸린 것.
사실 나와 삼촌이 움직인 건 많지 않다. 일주일 내내 고생한 건 학선이. 총 48명의 '전직' 해적이 자기 자신을 이길 때까지 계속 겨뤘다. 물론 잠은 자고 밥도 먹고 잘 쉬어가면서.
<신념의 전장> 에서 '착하게 살려는 마음'으로 학선이를 이기려면 쉽지 않다. 정말 반성하고 생각을 고쳐먹은 놈들도 있긴 하겠지만 거의 다 자기최면이었을 거다.
그렇게 한 순간 다짐시켜 봐야 달라질 건 별로 없을 지도 모른다. 개인 한 명의 악은 그 개인의 욕망에서 나올지 몰라도 그것이 모여 집단이 되는 건 사회와 경제의 문제를 발판 삼아 수면 위로 드러나는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그렇게 학선이는 이 근방의 슈퍼스타가 됐다. 사흘째 되는 날 여러 명이 장비 들고 유튜브 무슨 채널이라고 찾아오더라고. 방송 순익을 30% 주겠다면서.
나와 삼촌은 이런 게 잘 맞는다. 나는 그쪽에 잘 해주고 싶은데 권한이 없고 애타는 쪽! 삼촌은 순익 50%은 먹어야겠다고 우기는 고집불통!으로 각각을 설정하고 47%로 거래하고 우리가 하는 일을 찍어가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이 올린 첫 번째 영상 조회수가 이틀만에 50만 5천. 그리고 삼촌은 이제 학선이와 협상을 한다.
“전부 네가 한 거니까 네가 우리 몫 중 80% 가져가는 거 맞아. 그냥 가져가.”
“삼촌 제가 돈을 벌려고 한 일이 아니기도 하고요.”
“이런 경우, 일을 한 쪽이 돈을 가져가야 우리도 나중에 고생하고 나눌 때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안 그래?”
“제가 삼촌께 도움받은 거잖아요.”
“그러니까 나하고 사서 10%씩 주는 거지. 어차피 저쪽이 버는 것도 잠깐이야. 그리 오래 안 걸려.”
뭐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근데 꼭 삼촌 생각대로 안 될 수는 있다. 어떻게 보면 놀랍고 어떻게 보면 놀랍지 않은데 학선이가 인터넷에 밈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거.
상대가 생각을 고쳐먹을 때까지 몇십 번이라도 계속 겨루는 불굴의 미남자··· 당연히 화제가 될 수밖에.
참 새삼스럽다. 유튜브를 돌려서 돈을 벌 수 있다니.
지난번의 내 마지막 통장 잔고는 70억. 뭐... 다른 더블S랭크나 트리플 S랭크 중에선 자산이 제일 적은 축에 속했을 거다. 50억까지 모으고부터는 돈 모으는 재미가 사라져서.
어쨌든, 그 돈 중엔 현상금 받은 게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사례비. 이렇게 말하기 좀 그렇지만 수없이 죽을 뻔하면서 벌어온 돈이다.
그 대신 유튜브로 아직 돈을 벌 수 있다니...
하, 이거 참. 유튜브가 다시 돌아간 게 2026년부터였나 27년부터였나.
상황이 이래서인지 별 일도 다 생긴다.
"사서야. 태국 국왕이 보자고 하는데 이거 무슨 일일까?"
"초대한다는 말만 있어요? 그럼 같이 밥 먹고 서서 사진 좀 찍자는 얘기겠네요. 학선이 중심으로."
학선이는 좀 불편한 얼굴이지만...
"가 두는 게 우리 모두에게 좋을까?"
나는 이런 걸 말할 때 그다지 망설이지 않는다.
"돈을 벌려면?"
인기는 돈이 된다. 그것도 어렵지 않게 버는 돈. 에스컬레이터 같은 거라서 가만히 멈춰있을 수 없고 더 떨어지거나 올라가거나의 문제이고.
올라갈 기회가 있으면 쓰는 게 좋다.
...삼촌이 날 보고 핀잔 준다.
"너 또 눈 돌아가는 거 보니 꿍꿍이가 있구만?"
"돈 벌어야죠, 돈. 돈 들어오는 게 얼마나 재밌어요."
살짝 이놈이 돈에 미친 놈은 아닐 텐데 하는 의심.
차고 넘칠 만큼의 돈은 벌어봤다. 400억 500억을 넘어 몇 천억 가진 사람들 왜 그리 돈을 더 벌려고 맛이 가는지는 이해를 못 하겠지만... 그 사람들은 가족이, 자식이 있어 그런가?
어쨌든 내가 리셋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돈은 거기에 잘 있을테고.
없다면... 없는 대로 돈이 문제될 일은 별로 없을 테고. 어떻게 버냐 얼마나 빨리 버냐의 문제 정도다.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생각을 했다.
미라의 흉내를 내 몇 가지 가설을 세워 봤다. 그동안 뒤져본 책 기준으로는 내가 미라에게 돌아간 시점부터 관측과 피관측의 어떤, 내가 아직 잘 모르는 부분을 이용해 '흩어진' 정보를 구성하고 내가 그 '소속' 이 되는 거란 느낌... 인데. 태양 주변에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해 지구로 전기를 보내자는 말 정도의 현실성이지만 불가능하진 않을 거다.
애초에 실제로 '리셋'을 하는 놈들이 있잖아. 에너지를 어디서 끌어쓰던 무슨 신기한 과학 법칙을 사용하던 뭔가 있겠지.
다만 고민이 있다.
'흩어진' 정보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의 정보인가? 혹시 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나?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한 쪽은 소멸되는 거라면...?
어렵다.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개찰구로 나가니...
어라...
어라?
어, 이건 생각 못 했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마지막 대형 괴물체 바쿠난와를 잡았을 때만큼의 사람이 몰려 있다. 다들 학선이의 별명인 나이트를 부르면서. 카메라 플래시도 어마어마하게 터지고.
학선이는 어떻게 된 건지 모르는 얼굴이다가 갑자기 고개를 확 숙이고 달려나간다.
야 야 여기 보통 사람도 많아서 그렇게 가면 누구 다쳐! 나는 학선이를 쫓았고 삼촌이 내 옆으로 따라와 말한다.
"쟤 내가 잡을게. 너 학선이 지금 사는 데 가 봐."
"아, 예 삼촌."
"나도 이걸 생각을 못 했네."
내가 얹혀 사는 학선이 집으로 오니까 역시나... 아니 이 사람들 심심해? 여기서 뭐 해?
"여러분~ 여러분~ 나이트는 오늘 여기 안 와요! 일단 돌아가세요~"
"뭐라는 거야, 못 생긴 게!"
"아저씨, 아저씨! 나는 여기서 기다리면 되니까 걱정 마십쇼! 아저씨 볼일 보러 가세요!"
"사서네! 저 사람 사서야! 나이트 졸졸 따라다니는 빨판상어!"
빨판상어는 또 뭐야.
하, 경유진 스킬을 기록 못 해놓은 게 아쉽네. 이 사람들 슬쩍 집에 보내는 건 일도 아닌데.
이거 이 사람들하고 말해봐야 소용없어. 내 할 말만 하고 가는 게 최선이다.
"여러분 여기 있는 동안엔 학선이 여기 안 올 거예요! 저는 갑니다?"
집을 떠나 예전에 효진이 경호원네와 시합했던 지하실로 오니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
삼촌은 싱가포르와 방콕에서 우리가 사온 여행 선물을 테이블 위에 쫙 올려놨고...
학선이가 안 좋은 표정으로 파랗게 질려있다.
아 이건 정말 의외다. 어쩐지 본인에게도 예상 밖의 일일 것 같아.
우리 중에 이런 문제에 밝은 사람이 없을 텐데.
학선이는 건물 3층의 숙소 빈 방으로 가서 쉬기로 했고, 킬리 누님이 설명한다.
"어쨌든 불안증인 것 같아요. 의사가 진단을 해야 분명하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학선 군에게는 누가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 평가받는다는 것에 공포감을 갖고 있는 것 같고요, 갑자기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그러는 것을 눈으로 보고 놀란 거 아닐까 싶고요."
하 지난번의 2025년에 만난 학선이는 달랐는데.
...
정말 달랐나?
나는 학선이를 잘 알았나...?
효진이가 정리한다.
"이런 문제는 자기도 몰랐을 거니까 두 분, 두 사람 얼굴 펴시고! 괜찮아요 삼촌. 우리 그룹 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 제일 좋은 병원하고 상담사하고 이야기할테니 괜찮아요!"
삼촌과 나도 며칠 쉬어야 한다고 학선이와 같은 층에 있는 빈 방에 각자 짐을 풀었다.
음.
청소 좀 해야겠다. 하지만 그 전에 바람 쐬면서 생각을 해야겠어.
옥상으로 올라와 한참 끙끙거리고 있자니 익숙한 에너지가 다가온다. 아마 내게 세상에서 가장 낯익은 에너지...
나는 고개를 돌리고 손을 흔들어 미라에게 인사했다.
"넌 뭔가 끙끙거릴 일 있으면 꼭 높은 데로 오더라."
"하하... 우리 없는 사이 한국에선 별 일 없었고?"
"우리 관련 법안으로 여당 야당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것 정도?"
"야당 쪽에 진짜 효진이가 로비 들어갔나?"
"아니지, 그건 농담이었지. 어느 쪽 법안이 통과되어도 우리에겐 벽이 또 하나 생기는 거지만, 양쪽 법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생각하면 나도 생각이 좀 많아지네."
철저한 통제냐 불안정하고 위험한 공존이냐...
"겸사겸사 우리 아빠 좀 잘리고."
아, 웃어버렸다. 미라도 씩 웃는다...
정신차리자. 정신 차려.
"우리 언니 있잖아."
"응? 응."
"내가 말하고 다니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언니도 괜찮다고 했으니까. 언니가 학선이하고 비슷한 부분이 좀 있어."
...!
나는 난간에 늘어진 듯 기대있다가 제대로 섰다.
"아까 킬리 언니가 말한 것처럼... 강박 쪽 불안이 맞을 거야. 아무도 자길 신경쓰지 않아도 남의 눈치를 계속 의식하는... 그런 사람, 잘 알지 않아?"
있지.
보육원에서 자란 우리는 그런 거 좀 잘 알지.
"그런 거니까, 일시적인 것일 수도 있고. 해서 네가 그리 신경쓸 문제는 아닌 것 같아. 그 말 하러 왔어."
"아이고 수고스러우시게. 감사합니다."
"너 가끔 되게 뭔가 과잉인 거 알지?"
하하하...
미라의 표정이 좀 편하게 바뀌었다. 아, 이게 찾아온 본론인 것 같은데.
"그리고 궁금한 게, 방콕하고 싱가포르에서."
"응."
"뭐가 맛있었냐?"
- 작가의말
어제 왼쪽 검지를 크게 다치고 바깥에서 타블렛으로 글을 쓰다 날려먹는 등 몇 가지 일이 있어 업로드가 늦었습니다.
금일 중 한 편 더 써 올릴 예정입니다.
항상 읽어주시는 것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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