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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돌고래 님의 서재입니다.

미래를 알아도 피할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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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별빛돌고래
작품등록일 :
2017.06.18 14:57
최근연재일 :
2017.08.08 21:05
연재수 :
60 회
조회수 :
17,697
추천수 :
678
글자수 :
326,812

작성
17.07.31 21:05
조회
106
추천
5
글자
12쪽

사랑과 광기는 종이 하나 차이.

일일 연재. 오후 9시 5분 연재.

37화부터 본격적으로 문체를 수정하였습니다. 문장의 호흡이 너무 길어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감상해보시고 평가 내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DUMMY

0051.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혼란의 와중에 죽었거나 아예 참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던 사람이었다.

패트릭이었다.

그는 이상하게 침착한 모습으로 마족과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카나뮤하렌을 돌보느라 미처 뒤처리를 마무리 짓지 못하여 살아있는 마족도 꽤 있었다. 그런데 패트릭은 그런 위험쯤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인지 천연덕스럽게 한 방향을 향하여 계속 걸어갔다.

그가 걷는 방향에는 전투 직전에 악어머리 마족과 말다툼을 하던 뱀눈의 마족이 사지가 잘려진 채로 땅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성력이 육신에 침투할 대로 침투한 후라 곧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고위 마족을 일개 인간인 패트릭이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어째서 저런 모습으로 접근을 하고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유하는 패트릭을 붙잡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유하 일행도 뒤이어 우르르 따라왔다.


“패트릭 씨?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유하는 조심스럽게 패트릭을 멈춰 세웠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할 필요성이 있었다. 마족의 수구로 생각되는 패트릭을 무턱대고 믿을 수가 없었다.

패트릭은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유하를 보고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에 유하는 약간 당황했다. 완전히 파괴된 대지의 참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소였다.


“아 유하님, 안녕하십니까. 아까 그분은 괜찮으십니까? 아무리 위대하신 분이라 하더라도 상처가 심각해보여서 걱정했었습니다. 뭐, 지금 보니 멀쩡하신 것 같군요.”


패트릭은 다른 일행들과도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동료들은 떨떠름해 하면서도 아직 적대적인 분위기까지는 만들지 않았다. 유하와 마찬가지로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패트릭도 유하과 동료들이 만들어낸 대화재의 위력을 몸소 보았을 텐데 어째서 저렇게 편안한 미소를 짓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은 적이 아니라는 걸까? 아니면 속임수? 그렇다면 정말로 담대한 행위였다.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해야 할 일이 남아서요. 마무리를 지어야 합니다.”


패트릭은 몸을 돌리더니 거침없이 불탄 대지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유하는 당황하면서도 감시의 일환으로 그 뒤를 따랐다. 왠지 끌려가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의 행동에 호기심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유하는 경계심을 유지한 채로 패트릭의 뒤를 밟았다. 패트릭은 뱀눈의 마족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뱀눈 마족은 몸이 타들어가면서도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성력에 오염된 자신의 팔다리를 직접 잘라가면서까지 죽음을 막아보려 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패트릭에 의해 무산되었다.


패트릭은 뱀눈마족에게 다가가더니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이상한 검을 마족의 몸에 거침없이 쑤셔 넣었다. 그러더니 냉정한 움직임으로 마족의 육신에 수차례 검을 박아 넣었다. 정육점 고깃덩어리를 자르듯 일고의 망설임도 없는 움직임이었다.

검이 닿는 부분마다 새하얀 불길이 일며 마족의 몸을 태웠다. 크게 의식하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그 검은 성구의 하나로 보였다.

신관이 일정한 힘을 지속적으로 불어넣어서 만드는 도구로, 유하 자신의 애창도 비슷한 종류의 무기였다. 그의 창은 유하 자신의 피를 먹였다는 것이 다를 뿐 마찬가지로 성스러운 기운을 입힌 무구였다.


“캬아악! 크아아아아!”


뱀눈마족이 미친 듯이 바르작거리며 땅으로 허물어졌다. 놈은 무시무시한 증오의 눈길로 패트릭을 쏘아보았다.


“이 버러지가! 네놈! 우릴 속이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더러운 쥐새끼가 배반을 해? 원수를 갚아주려 했건만 은혜도 모르고!”


패트릭은 무표정한 얼굴로 뱀눈 마족을 응시했다. 그리고 굳었던 얼굴은 미약하게 흔들리더니, 광기에 찬 미소를 지었다.


“은혜? 무슨 은혜?”


마족은 대꾸를 하지 못했다. 패트릭이 놈의 입에 검날을 쑤셔 넣었기 때문이었다.


“네놈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는데... 인간이 무슨 뇌가 없는 저급한 생물인줄 아나? 머리를 굴리는 건 다들 하고 있단 말이다. 뭐 내가 멍청해 보였다는 것은 인정해. 정말로 병신 같았으니까. 그래도 그런 뻔히 보이는 수작으로 접근하면 내가 속아 넘어갈 줄 알았나?”


마족의 입에 박힌 검이 천천히 움직여 볼을 갈라 파고들었다. 피가 홍수처럼 쏟아지는데 검날에 닿는 족족 시커멓게 증발하며 끔찍한 소리를 냈다. 마족의 혀가 반으로 쪼개져 흘러내렸다.

뱀눈을 한 마족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그어억 하는 괴이한 신음만 냈다. 얼굴이 시커멓게 물들며 창백한 불길이 피부를 태웠다. 마족은 경련하며 몸부림 쳤지만 그의 몸은 이미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된 상태였다.


“원수를 갚아주겠다고? 아 그래. 결국 갚게 되는군. 바로 네놈이 내 원수니까. 왜? 정체를 숨기고 접근하면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저 자에게 덤벼들 것 같았나? 죽은 사람을 살려주겠다는 그런 엉터리 제안에 내가 속아 넘어갈 줄 알았어? 난 분노 때문에 목적을 착각하는 머저리가 아니야. 터무니없는 희망 따위에 몸을 맡기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아. 물론 제의는 아주 좋았다. 목표를 확실히 정할 수 있었거든. 정말 감사한다.”


마족의 눈이 흡 떠졌다. 뭐라 말하려는 듯 얼굴이 움찔거렸지만 놈은 이미 재기불능의 상태였다. 패트릭은 결국 냉정을 넘어 열기어린 몸짓으로 마족의 몸을 포를 뜨듯 헤집기 시작했다.


“맛이 어때? 이건 이리나에게 주려던 결혼 예물 대신 산 성구다. 네놈이 장난삼아 건드린 여자가 결국 네 죽음의 원인이 된 거야. 네놈이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지옥에서도 똑바로 기억해둬라!”


결국 마족은 육신의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산산조각이 나서 불타올라 죽었다. 놈은 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바람에 실려 허무하게 사라졌다. 한때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초라한 최후였다.


유하 일행은 그런 패트릭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시무시한 기세에 뭐라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패트릭은 일을 끝마치고 나서 한참 동안 멍하니 있더니. 유하 일행을 흘끗 보고는 그에게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 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더욱 아슬아슬해 보였다.


“제 일은 이제 다 끝났습니다. 이제 절 처단하시겠습니까?”


“네?”


유하는 영문을 몰랐다. 패트릭이 함정을 판 것까지는 이해했다. 그러나 왜 그가 패트릭을 죽여야 한단 말인가? 성구를 다루는 것을 보니 마족이 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입니까. 제가 왜 패트릭씨를 처단합니까.”


“여러분을 위험에 빠지게 한 것이 저니까요.”


패트릭의 설명은 놀라웠다. 처음부터 패트릭의 목표는 마족이었다. 그가 끔찍한 사건으로 약혼녀를 잃은 후 접근한 자가 있었다. 놈은 그럴듯한 감언이설로 패트릭을 꾀었다.

그러나 놈이 간과한 점은 패트릭은 그가 아무리 분노에 차 있다한들 아무 잘못이 없는 유하에게 분풀이를 할 만큼 어리석거나 모난 성격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수상한 놈이 일부러 접근했는데 이상함을 눈치 채지 못하면 병신이지요. 저는 분노로 이성을 잃은 척하며 그놈의 뒤를 캤습니다. 한갓 인간인 제게 방심하여 틈을 보일 정도로 어리석은 놈이라 다행이었습니다.

그놈은 저를 완전히 손바닥 안에 넣은 줄 알았겠지요. 저는 그것을 역이용해 이번 기습을 함정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습니다. 몇 번의 우연과 행운에 힘입은 계획이었습니다만, 결국 목적은 달성했으니 다행이지요.”


“그렇다고 해도 제가 패트릭씨를 죽일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결국 이놈들과는 싸워야 할 운명이었고,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에 지나지 않아요. 패트릭씨의 계획에 휘말린 것은 좀 그렇지만... 조금 말려들었다고 해서 사람을 죽일 정도로 제가 삐뚤어진 성격은 아닙니다.”


유하는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 패트릭이 마족을 속이려 계획을 세웠을 때부터 그의 인생은 생과 사가 갈리는 험난한 삶이었을 것이다. 물론 계획에 제멋대로 이용당했다는 것은 조금 기분이 안 좋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죽일 정도로 분노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패트릭의 행동은 오히려 유하 일행에게 도움이 되었다. 마족들의 말과 패트릭의 설명을 취합해보면 패트릭은 정보를 은폐하고 왜곡시켜 카나뮤하렌의 정체를 숨기는데 성공했다.

마족들이 카나뮤하렌을 염두에 두었다면 이렇게 쉽사리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패트릭의 행동으로 유하 일행은 막대한 이득을 보았다고 볼 수 있었다.

유하는 동료들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동료들은 선한 성품이었지만 일단 피해자의 입장이니만큼 제멋대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아, 이건 우리가 감사하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려운 싸움을 쉽게 만들어주셨는데 오히려 정말 고맙지요.”


“어이구 젊은이. 너무 고개를 숙일 필요 없으이. 오히려 잘된 일인걸. 그동안 정말 힘들었겠구만. 고생 많았네 그려.”


“그렇죠? 패트릭 씨가 잘못하신 것은 없어요. 반대로 우리가 감사드려야 하지 않나요?”


털뭉치들은 아예 이해를 잘 하지 못한 것 같았다. 피해를 입은 것도 없는데 무슨 잘못을 했냐는 투였다. 카나뮤하렌은 툴툴거렸지만 그가 다친 것은 자업자득이었으니 할 말이 없었다.

오히려 이레네는 패트릭의 신변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패트릭 씨.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요? 마족에게 단단히 찍혔을 것 같은데. 어디 적당하게 봐둔 피난처가 있으신가요? 아니면...”


패트릭은 약간 당황하는 눈치였다. 이렇게 쉽게 용서받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투였다. 얼굴이 퀭한 것이 마족들 사이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안 봐도 훤했다.

유하와 동료들은 한동안 패트릭의 거취에 대해 의논했다. 약혼녀를 잃은 슬픔에 나중 일은 생각도 안하고 달려들었으니 이대로 가다가는 살해당하는 운명이 될 것이 뻔했다. 그를 안전한 곳에 피신시킬 필요가 있었다.

여러 의견이 분분했으나 결론은 곧 나왔다. 애초에 마족의 위협에서 벗어난 장소는 몇 없었다. 카나뮤하렌이 단칼에 결정지었다.


“뭐, 그럼 마왕에게 쳐들어가기 전에 이 녀석 셀 에크티프에 떨궈 놓고 가자! 수인족 애들도 마족 놈들이랑 한판 붙을 준비 만만하니 연락도 할 겸 같이 가지 뭐.”


순식간에 결정을 내리고 유하 일행은 용으로 변한 카나뮤하렌 위에 올라탔다. 패트릭은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과연 마족을 농락한 남자답게 적응이 빨랐다.

유하 일행을 태운 카나뮤하렌은 거침없이 허공을 날아올랐다. 올 때는 그나마 용의 모습을 감추고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과감하게 본신을 드러냈다.

기이할 정도로 가볍게 날아오른 카나뮤하렌은 곧 무시무시한 속도로 허공을 가로질렀다. 마법으로도 다 막지 못한 상쾌한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유하는 그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홀로 있을 그녀를 떠올랐다.

시간을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었다. 그녀를 만날 날을 상상하며 유하는 멀어지는 대지를 뒤로했다.




오타, 오류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작, 추천, 댓글은 글쓴이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작가의말

하녀의 이름은 이리나였지요. 유일하게 패트릭이 언급했습니다.


패트릭에 대한 복선이 좀 있긴 했죠. 그런데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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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알아도 피할 수 없는 것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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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에필로그. +8 17.08.08 181 6 3쪽
59 꿈은 깨어졌지만 미래는 여전히 존재한다. 17.08.08 124 4 8쪽
58 단 꿈에 젖는다. +4 17.08.07 104 3 12쪽
57 추억에 잠길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4 17.08.06 93 3 11쪽
56 침묵이 지배하는 곳에서. +4 17.08.05 110 4 12쪽
55 어둠 속을 지나다. +4 17.08.04 107 4 11쪽
54 깨닫는 것이 느리다. +4 17.08.03 97 4 15쪽
53 죽음이 웅크린 곳. +4 17.08.02 113 4 12쪽
52 일을 마무리 짓는 과정은 언제나 험난하다. +4 17.08.01 97 4 14쪽
» 사랑과 광기는 종이 하나 차이. +4 17.07.31 107 5 12쪽
50 기습과 역습의 하모니. +4 17.07.30 133 5 11쪽
49 함정. +4 17.07.29 117 5 11쪽
48 완벽함이란 서글플 때가 있다. +4 17.07.28 132 4 12쪽
47 거친 파도는 덮쳐왔다 물러가는 법이다. +4 17.07.27 139 5 14쪽
46 전주곡. +4 17.07.26 140 5 11쪽
45 기억을 헤아리다. +6 17.07.25 131 6 13쪽
44 계략과 계략의 만남. +8 17.07.24 135 6 12쪽
43 모험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2 17.07.23 168 7 12쪽
42 뜻밖의 모험. +4 17.07.22 151 7 13쪽
41 운명은 바람을 타고 흐른다. +6 17.07.21 154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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