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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돌고래 님의 서재입니다.

미래를 알아도 피할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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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별빛돌고래
작품등록일 :
2017.06.18 14:57
최근연재일 :
2017.08.08 21:05
연재수 :
60 회
조회수 :
17,700
추천수 :
678
글자수 :
326,812

작성
17.08.07 21:05
조회
104
추천
3
글자
12쪽

단 꿈에 젖는다.

일일 연재. 오후 9시 5분 연재.

37화부터 본격적으로 문체를 수정하였습니다. 문장의 호흡이 너무 길어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감상해보시고 평가 내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DUMMY

0058.

도착한 곳은 어둡고 황폐한 방 안이었다. 희미하게 비치는 창백한 태양만이 방안을 비추었다. 낡고 부서진 가구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고, 불투명한 커튼이 사방으로 쳐져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간간이 살랑거렸다.

유하는 그녀가 있는 곳으로 짐작되는 방향으로 향했다. 희미한 습기가 느껴졌다. 지저분한 커튼들을 거둬가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어디선가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온통 갈라지고 찢어진 벽지들이 지저분하게 보였다. 세월의 흐름을 탄 낡은 방은 먼지와 쓰레기로 가득했다.


스르륵.


유하는 퍼뜩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히 뭔가 커튼들 사이로 움직였다. 그러나 그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었다. 그저 낡은 커튼자락만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드문드문 깨진 벽 사이로 햇빛과 바람이 들어와 그의 숨통을 틔워주었다. 무너지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이 성은 유구한 세월이 거쳐 갔다. 퇴락한 성채는 간신히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와 비슷했다. 그러나 방안에서 시내가 흐를 리가...?

유하는 소리를 따라 걸어갔다. 아마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 있을 것이다.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그는 계속 길을 걸었다.


그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흐르는 곳에 도착했다. 깨지고 갈라진 틈으로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이곳은 성 꼭대기일 텐데 어디서 물이 흐르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마왕의 성이었다. 일반적인 상식을 들이대면 안 된다. 유하는 물줄기를 따라 움직였다. 왠지 모르게 이 물줄기가 그녀가 있는 곳을 알려주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였다. 물줄기 사이로 뭔가 튀어 올랐다. 그는 흠칫 놀라 경계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긴장으로 인한 착각이었을까? 하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좀 꺼림칙했다. 차라리 뭔가 곧 일어날 징조로 보는 게 속이 편했다.


사방을 경계하며 다시 길을 걸었다. 이 방에 들어온 지 한참이 지났지만 맞은편 벽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층은 방 하나로 이루어진 거대한 공간 같았다. 아니면 공간 자체가 왜곡되어 있는지도...

갑자기 유하의 팔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섬뜩하게 느껴지는 차가운 냉기가 그를 소름끼치게 했다. 그는 재빨리 몸을 회전시키며 창을 휘둘렀다.

그러나 아까와 마찬가지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하하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밝고 명랑한 소리였다. 유하는 홱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에 뭔가 희미한 것이 저 반대편 커튼 사이로 쏙 숨어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살폈다. 정체모를 것이 그의 주위에 있었다. 그러나 그 실체를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꼭 유령같았다.


‘유령?’


유하는 섬뜩한 상상에 진절머리가 쳐졌다. 이곳은 낡은 폐성이었다. 현대 지구에 있었을 당시에는 유령 같은 것에는 코웃음을 쳤지만 이곳은 정신과 육체의 경계가 모호한 곳이었다.

실제 유령이 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야하!]


이번에는 고함소리였다. 신이 나서 지르는 함성 같았다. 뭔가 와글거리는 잡음이 순간 들렸다 사라졌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유하는 걸음을 빨리했다. 한시 바삐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희고 투명한 것이 와글거리며 그의 앞을 스쳐지나갔다.

너무 창졸지간의 일이라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꼭 무슨 민들레 솜털 같은 것이 무리를 지어 우르르 지나갔다. 마치 물고기 떼가 군집하여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과 흡사했다.

기겁하여 걸음을 멈춘 그의 다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재빨리 내린 시선 끝에는 괴이하게 생긴 식물 뿌리가 사람같이 느릿느릿 걸어 다니며 그의 옆을 지나갔다.

그의 볼을 차가운 것이 톡 건드렸다. 하얗게 빛나는 작은 새 한 마리가 그의 볼을 콕 쪼고는 날개를 펄럭여 도망갔다.

어느새 주의 주변에는 하얀 아지랑이 같은 것이 뭉게뭉게 일어났다. 온갖 동물과 식물의 모습을 한 그것들은 유하는 신경도 쓰지 않고 저들끼리 뭉쳐 다니며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수많은 수의 유령들은 다행히 그에게 위해를 끼칠 생각은 없어보였다. 아니, 그것보다 그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들은 서로 알 수 없는 온갖 언어와 소리로 제멋대로 떠들며 깔깔댔다. 하나같이 행복하고 느긋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마왕의 성에 태평한 유령들이라니.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잠시 동안 경계하던 유하는 다시 시내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저들은 그에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어찌될지는 몰라도 이곳에 더 이상 있어봤자 얻을 것은 없을 것 같았다.

시냇물은 점점 양이 불어났다. 놀라운 점은 이 방안의 유령들은 죄다 이 시내에서 태어난 것 같다는 점이었다.

무심코 바라본 시냇물 속에는 온갖 생명체들이 담겨있었다. 응당 있을 것 같은 물고기들은 물론이고 식물, 동물, 무생물을 막론하고 엄청난 수의 유령들이 들락거리며 자유롭게 떠들어 댔다.

이 시냇물의 정체가 무엇이 길래 유령들이 튀어나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녀를 만나는 일이었기에 그는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수색에만 전념했다.


마침내 그 끝이 보였다. 그의 시선을 가로막는 휑한 벽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존재도. 정체모를 자는 그에게 등을 돌린 채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이제껏 이정표로 삼았던 시냇물은 그곳에서 비롯되었다. 작은 샘에서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는데, 마치 금빛 숲의 푸른 샘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유하는 직감적으로 등을 돌리고 있는 자가 마왕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녀가 이렇게 작고 왜소해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적어도 그의 상상을 완전히 빗나가 있었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뒤로 다가갔다.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적대적일까. 아니면 반겨줄까.

그러나 그녀는 유하가 바로 뒤로 올 때까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다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자가 불러준 그 이름을.


그녀는 몸을 움찔 했다. 굳어버린 석상 같은 몸이 파드득 떠는 모습은 신기할 정도였다. 그녀는 몸을 뒤로 돌렸다. 느릿한 동작에 애타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그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얼굴은 형편없이 부어올라 있었다. 특히 눈은 개구리같이 팅팅 부어 있었고 아직도 남아 있는 눈물에 온통 젖어 있었다.

유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안쓰러우면서 동시에 웃겼다. 장엄하고 화려한 전투는 고사하고 퉁퉁 부은 얼굴로 응시하고 있는 마왕과 용사라니 꼭 만담 같은 장면이었다.

미처 다물지 못한 입가로 새어나온 실소에 그녀는 발끈했다. 눈에 쌍심지를 켜더니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그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으악!”


절로 비명이 튀어나왔다. 과연 마왕. 후려치는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한참 끙끙대던 유하는 그녀를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왜 뭐! 네가 잘못했잖아! 사람을 대면하고는 대뜸 비웃음이라니 매너가 너무 없는 거 아냐?”


그녀는 기세 좋게 소리쳤지만 당황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게다가 개구리 왕눈이 같은 얼굴로는 위엄이나 공포 따위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일단 사과하고 그녀를 진정 시켰다. 막 잠에서 깨어난 그녀를 자극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녀는 일단 제정신으로 보였다. 이게 일시적일지 아니면 계속 될지 알 수 없었지만 대화를 하기에는 부족함 없는 상태였다.

도저히 타락한 존재로는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멀쩡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지는 알수 없었지만 유하는 우선 그녀를 달래는 일에만 전념했다.


그녀는 들떠보였다. 이세계로 추방된 뒤로 그녀를 찾아온 첫 손님이라 했다. 유하는 그녀에게 맞추어 손님 역할을 맡았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를 본 것은 그녀가 그를 살리려고 무리하게 접근했을 때를 빼고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정확한 시간을 알 수는 없었지만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그는 매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낡은 성은 그녀의 손짓 하나로 옛날의 화려한 모습을 되찾았고, 기쁨에 가득 차 웅성거렸다. 다른 일행들이 걱정되었지만 바깥의 위험은 대부분 제거된 상태. 뒤는 안심할 수 있었다. 그는 걱정을 잊고 이 시간을 즐기기로 마음 먹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뜻밖의 곳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손님과 주인의 역을 맞아 즐겁게 보낼 뿐이었지만 그에게 어느새 심정의 변화가 생겼다.

그녀를 보면 볼수록 심장이 두근거리고 달콤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마음을 진탕시키며 일거수일수족을 멍하니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그에게는 뜻밖의 사태였다. 지금껏 이렇게 쉽사리 사랑에 빠진 적은 없었다. 그는 신중한 성격이었고 그의 사정상 제대로 된 연애는 해본 적도 없었다.

이게 사랑일까? 그렇다면 이것은 순수한 그의 감정일까. 아니면 최초의 조상이 남긴 기억의 영향일까.


그의 고민은 상관없이 꿈같은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그는 이세계로 오고 나서 가장 행복하고 느긋한 일상을 맛보고 있었다.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 정원을 산책하고 책을 읽는다.

가끔씩 그녀와 성 근처의 호수로 피크닉을 갔다. 겨울호수와는 달랐다. 어찌된 영문인지 성 주변은 항상 푸르른 대지에 봄기운이 진하게 감돌았으며 생명이 넘치는 아름다운 땅으로 변모해 있었다.

유하는 가끔 의문을 느꼈지만 곧 그녀의 부름에 의해 하던 생각을 접어버리는 일을 반복했다. 그녀는 밝고 명랑한 성격에 세심한 면이 있었다. 그녀와 같이 있으면 그야말로 흐르는 세월을 잊어버리고 행복에 잠길 수 있었다.

오랫동안 고독하고 외로운 생활을 해온 유하에게 있어 지금의 시간은 정말로 달콤했다. 결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행복이었다.


어느 날 유하는 그녀와 함께 쿠키를 구웠다. 그녀는 요리 솜씨가 훌륭했다. 그의 생각으로는 신의 자리에 있으면 그 아래 수하들에게 시킬 법도 한데 그녀는 무엇이든 직접 움직이는 것을 선호했다.

성에 있는 수많은 하인과 하녀들은 그때마다 자신들이 할 일이 사라진다며 한탄을 해댔지만 그녀의 웃는 얼굴 앞에서는 그런 말들은 쑥 들어갔다. 그저 즐거운 재잘거림만이 남았다.

그는 옆에서 그녀의 일을 도왔다. 그리고 그의 취향에 맞추어 반죽에 초코칩을 듬뿍 뿌렸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것을 건넸다.


그러나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유하는 의문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그는 깜짝 놀랐다.





오타, 오류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작, 추천, 댓글은 글쓴이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작가의말

꿀 빠는 시간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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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알아도 피할 수 없는 것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0 에필로그. +8 17.08.08 181 6 3쪽
59 꿈은 깨어졌지만 미래는 여전히 존재한다. 17.08.08 124 4 8쪽
» 단 꿈에 젖는다. +4 17.08.07 105 3 12쪽
57 추억에 잠길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4 17.08.06 93 3 11쪽
56 침묵이 지배하는 곳에서. +4 17.08.05 110 4 12쪽
55 어둠 속을 지나다. +4 17.08.04 107 4 11쪽
54 깨닫는 것이 느리다. +4 17.08.03 97 4 15쪽
53 죽음이 웅크린 곳. +4 17.08.02 113 4 12쪽
52 일을 마무리 짓는 과정은 언제나 험난하다. +4 17.08.01 97 4 14쪽
51 사랑과 광기는 종이 하나 차이. +4 17.07.31 107 5 12쪽
50 기습과 역습의 하모니. +4 17.07.30 133 5 11쪽
49 함정. +4 17.07.29 118 5 11쪽
48 완벽함이란 서글플 때가 있다. +4 17.07.28 132 4 12쪽
47 거친 파도는 덮쳐왔다 물러가는 법이다. +4 17.07.27 139 5 14쪽
46 전주곡. +4 17.07.26 140 5 11쪽
45 기억을 헤아리다. +6 17.07.25 132 6 13쪽
44 계략과 계략의 만남. +8 17.07.24 135 6 12쪽
43 모험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2 17.07.23 168 7 12쪽
42 뜻밖의 모험. +4 17.07.22 151 7 13쪽
41 운명은 바람을 타고 흐른다. +6 17.07.21 154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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