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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 님의 서재입니다.

영화감독, 끔찍하거나 비참하거나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alsxmchzh
작품등록일 :
2021.06.30 08:04
최근연재일 :
2021.08.26 23:47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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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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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글자수 :
281,224

작성
21.08.10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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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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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34 백산관 지하 편집실(낮)

DUMMY

너무 작업실에만 붙어 있다는 혜원이의 걱정어린 협박에 지훈이 자취방에서 하루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나, 혜원, 지훈이 3명이 작업실에 모여 세 번째인 흑백 편집본을 감상했다.


“좋은데? 이미 영화적 완성도는 내가 말할게 아닌 거 같고, 여기서부턴 감독의 취향에 따라 갈리는 수준인데 이쥰 넌 어때?”


“흑백으로 편집했네?”


“어. 왜 이상해?”


촬영 감독의 의견은 중요했는데 흑백에 의문을 표해 되물었다.


“아니. 주제 의식 전달은 그게 더 좋은 거 같기도 하고, 근데 피만 붉게 표현되니까 너무 잔인하게 느껴지긴 하더라.”


“그걸 의도한 거니까. 우리 영화에서는 살인하는 장면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니까··· 고어 영화라면 주차장 씬 뿐 아니라 그다음에 벌어졌으리라 생각되는 장면들도 찍었겠지만, 우리는 장르가 다르니까. 그런데 그 살인이 아주 불쾌하고 잔인한 게 느껴지게 하는 방법으로 눈이 흑백에 익숙해진 관객이 거의 10분 만에 보는 검붉은 색으로 살인을 잔인하게 느껴지게 만들었어.”


“그런 의도라면 충분히 전달은 됐어.”

나와 지훈의 대화에 혜원이가 대답했다.


“이제 후시 녹음이랑, 음향 효과음 한 번 더 다듬어서 음향 마무리하면 끝이겠네.”


“네가 보기엔 충분하다는 거지?”


“어. 뭐 어차피 세부적인 부분 조금씩 손대는 거야. 마지막까지 손댈 것 아냐? 세세한 부분들 손댄다고, 큰 줄기가 바뀌는 건 아니니까. 3개의 가편집 중에 난 이게 제일 좋다.”


“그렇겠지. 큰 줄기가 끝났으니까 이제부터 세세하게 조절해야지.”


가장 큰 방향을 정하는 게 편집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 이후는 소리의 밸런스를 맞추거나, 연결이 튀는 부분을 조절하고, 장면의 위치나, 컷을 어디서 끊어야지 영화가 더 매끄럽게 보이는가 처럼 세세한 부분들을 기술적으로 조정해야 했다.


물론 이 부분도 시간이 많이 들긴 하지만, 최소한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있는 작업이었다.


처음 편집의 방향성을 정하는 건 시간이 얼마가 걸릴지 모르는 작업이었고, 이 작업이 딜레이되기 시작하면 영화의 일정이 통째로 밀리는 경우도 있었다.


“큰 줄기는 정해졌네. 이제 작업하면 얼마나 걸리려나?”


“한 1주일 정도?”


“혜원아 저놈 말 믿지 마. 화면 하나 놓고도 어디서 끊을지 정하는데 몇 시간씩 걸리는 놈이니까. 그래도 큰 줄기는 잡아서 제출일 전까지는 완성하겠지. 우린 가자.”


작업실을 떠나는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다시 편집에 들어갔다.


편집의 방향성을 정하는 게 그림의 밑그림을 그리는 거라면 이제부턴 그려진 밑그림 안에 색을 하나씩 채워가는 작업을 해야 했다.


“끝났다!”


지훈이의 말처럼 내가 말한 1주일이 아닌 2주가 더 지나서야 영화 편집이 끝났다.


세부 편집을 시작하고 1주 동안은 작업실과 지훈이의 자취방을 오가며 편집했고, 11월 20일이 지나 학교 편집실을 이용할 수 있으면서부터 닭장과 같은 편집실에서 1주일의 시간이 더 지나 편집을 마무리했다.


편집이 끝나고 바로 영민이에게 전화를 걸어 편집실로 불렀다.


“일찍 끝나셨네요? 다른 팀은 아직 한창 씬 편집 중인 거 같던데.”


영민이의 말처럼 담배를 피우기 위해 후문을 왔다 갔다 하면 편집실마다 편집의 고통으로 비명이 가끔 들려왔다. 방음판으로 완화된 게 밖으로 들릴 정도니 안에서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편집을 1, 2주 정도 빠르게 시작했으니까. BGM은 확인했지?”


“네. 대충 어떻게 넣으실지 알겠던데. 바로 작업하실 거죠?”


“어. 일단 이건 내가 편집하면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 부분이거든. 이거 보면서 한번 확인해줘.”


“네. 전에 대충은 밸런싱 맞춰놔서 크게 손댈 부분은 없지 않아요?”


“그렇긴 한데. 몇몇 부분은 봐야 할 거 같아서. 소리를 좀 키워야 할 거 같은 부분도 있어.”


“네. 한번 볼게요.”


영민이가 영화를 확인하는 동안 후문으로 나가 아이코스에 담배를 꽂았다.


담배에 열을 올리는 사이 경헌 선배도 담배를 피우기 위해 나왔다.


본격적인 편집에 들어가서인지 평소에 깔끔하게 꾸미고 다니기로 소문난 경헌 선배조차 머리에 까치집이 지어져 있었다.


“선배, 어제 편집실에서 주무신 거에요?”


오후 3시인 지금 머리에 까치집이 있다는 건 어제 집에 안 들어갔다는 뜻이었다.


“한창 편집 중이라 그렇게 됐네. 이번 주 중으로 끝내려고 하다 보니까 거의 철야 작업이다. 넌 거의 끝났다고 하지 않았냐? 왜 아직도 편집실에서 살고 있어?”


“2, 3일이면 끝나요. 음향 밸런싱이랑 마지막 확인만 하면 될 거 같아서요.”


“어떻게 작년부터 촬영한 나보다 빠르네.”


“에이 선배는 다큐라 후시 녹음도 하셔야 하고, 후반 작업 하실 게 많잖아요.”


“그러게. 다큐다 보니까 시간 조절이 쉽지 않네. 현장 상황이 컨트롤 되는 게 아니니까. 더 어려운 거 같아.”


“선배는 1학년 때부터 다큐만 지원하셨다고 들었는데···.”


“다큐는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거 같아. 졸업하고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 선배 언론고시 보시는 거 아니었어요? NBS랑 KPBS 준비 중이시라고 들었던 거 같은데 아니에요?”


다큐멘터리는 현장에서 범위가 그리 넓지 않았다. 가끔가다 대박이 터지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긴 했지만 그건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경우였고, 대부분은 교육 방송과 NBS, KPBS 같은 공영 방송사에 소속되어 촬영하는 게 주류였다.


하지만 교육 방송은 피디가 직접 제작하기보단 교육 방송 소속 PD가 기획하고, 실제 제작은 외주 받은 업체가 제작했고, 자체 제작은 NBS와 KPBS 두 곳 정도만이 한국에서 직할 다큐멘터리 부서를 두고 꾸준히 제작하는 곳이었다.


“준 비중 이긴 하지. 근데 다른 인문계 학교 애들이랑 성적 싸움하는 게 쉽지 않아서. 고민 중이야. 일단 KPBS는 올해 시험에 지원하긴 해서 2차 결과 기다리는 중이야. NBS는 내년 여름에 채용이라, 시작도 안했고.”


“와. 2차면 거의 합격 아니에요? 3차가 최종면접 아닌가?”


영화과이다 보니 대부분은 영화업계로 뛰어들어서 방송사의 시스템을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그래도 졸업생 중에 1년에 4, 5명 정도는 방송사로 지원하는 예도 있어서 주워들은 게 있기는 하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주류가 아니다 보니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했다.


“아니. KPBS는 3차 실무 능력평가 이후에 4차로 최종면접.”


“실무랑 면접은 형 정도면 프리패스잖아요. 이미 다큐를 몇 개나 찍으셨고, 상도 받으셨는데.”


“2차에 합격해야지. 떨어지면 고민이다. 외주 제작사 쪽으로 알아봐야 할지도 모르겠어. 다큐를 계속 찍는 게 맞는지도 고민이고.”


“형 다큐멘터리는 이미 인정받은 수준의 다큐잖아요. 야마가타 영화제에서 수상하신 것도 학생 부분이 아니고, 일반 감독님들 작품이랑 경쟁해서 받으신 거잖아요.”


“금칠하지 마. 운 좋게 받은 거지.”


“형 누가 들으면 욕해요.”


“내 감상이 그런 건데 어쩔 거야. 넌? 아직 결정 안 했어?”


“일단 졸업하고, 제작사 쪽에 연출부 막내 자리 한 번 알아봐야죠.”


“너도 고생길이 열렸네.”


“그러게요. 1학년 때 4학년들 보면 전부 다 영화 전문가로 보였는데. 제가 막상 4학년 되고 나니까. 영화계에 발도 안들인 애송이였다는 걸 알게 되네요.”


“뭐. 그런 거지. 고1 때 3학년 보면 엄청 커 보이잖아. 비슷한 거야. 들어가자. 앞으로 며칠이나 밤을 더 새야 할지 모르겠다.”


“네. 형도 수고하세요.”


“그래 너도.”


경헌 선배랑 헤어지고, 작업실로 들어가자 영민이가 이미 영화를 다 보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뭐해? 작업해야지.”


“형 이거 뭐예요? 왜 흑백이에요?”


“아~ 너 안봤었나? 왜? 이상해?”


“아뇨. 그런 건 아닌데. 미리 언질이라도 주시지 갑자기 보니까 약간 충격적이긴 하네요. 흑백인데 다 보고 나니까 흑백으로 본 게 맞나라는 생각도 들고.”


“중간에 피는 붉게 나와서 그럴 거야.”


“아! 그래서 그런가 보네요. 피가 검붉은 게 엄청 찐득하고, 선명하게 느껴지던데요.”


“그래서 소리는 체크했어?”


“아! 아뇨. 영화가 재밌어서 집중해서 보느라. 다시 천천히 보면서 체크해야겠네요. 일단 작업 시작하시죠.”


“그래. 우리 일정 확인했지? 12월 2일에 후시녹음 잡혔다. 근데 6시간밖에 못써.”


“네. 효과음은 추가녹음 안 해도 돼서 상관없어요. 23씬에 누락된 부분만 녹음하면 돼서 괜찮을 거에요. 다른 부분은 후시녹음 안 하시죠?”


“어. 현장에서 잘 녹음돼서 괜찮을 거 같아. 너 생각은 어떤데?”


“특별히 걸리지는 않았어요. 이번에 집중해서 체크해볼게요.”


멈춰있던 영화가 다시 처음부터 재생되자 영민이가 헤드폰을 쓰고 소리에 집중했다.


나도 다른 헤드폰으로 소리와 영상 봤다.

나는 이미 수백 번을 넘게 봤던 영상이라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는 뭐가 잘못됐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지금 필요한 건 이 영상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영민이에게 편집을 진행하면서 영상을 안 보여주며 작업했다.


영민이는 영상을 중간중간 멈춰가며 내가 넘겨준 체크리스트에 뭔가를 써넣으며 영화를 감상했다.


러닝타임 23분짜리 영화였는데, 중간에 계속 멈춰서 이것저것 써넣느라 두 배가 넘는 50분 만에 체크를 끝냈다.


녹음 감독답게 영민이는 내 체크리스트 외에 내가 체크하지 못했던 작은 소음들도 다시 잡아냈고, 소리 크기를 조절하거나 일부는 조각조각 잘라서 잡음을 지워나갔다.


그렇게 영민이와의 작업까지 3일의 작업 시간을 더 가지고, 혜원이가 섭외해 준 3학년 연기자들과 후시 녹음까지 마친 이후 다시 하루 동안의 편집을 마치자.


최종적 완성본이 나왔다.


최종 완성본이 나오고, 내가 편집하는 형태로 바꾸기 전으로 돌아간 작업실에 영화에 참가했던 스태프 전원이 작은 시사회를 위해 모였다.


의자 수가 부족해 스크린을 완전히 바닥으로 내리고, 바닥에 돗자리를 깔아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촬영 전부터 촬영 기간까지 거의 날마다 붙어 있던 사람들이 3주 정도 안 만나다가 다시 만나서인지 영화가 시작되기 전 잡담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혜원이가 나서서 정리했다.


“자 오늘 끝나고 스태프 회식 있으니까 못 나눈 얘기는 그때 하고, 일단 우리 영화부터 확인하자. 다들 처음 보는 거니까 감상하고 감상평을 내일까지 단톡방에 적어줘.”


“누나, 오늘 회식이면 누나랑 술 마시는 건데 내일까지 감상문을 적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아, 그런가? 그럼 모래까지 적어줘. 하민아 괜찮지?”


“어. 괜찮아. 다들 궁금해하는 거 같으니까. 시작하자.”


“오케이. 감상문은 모래까지이니까 다들 지켜주고, 그럼 비공개 시사회 시작하자.”


혜원이는 말을 마치곤 작업실에 불을 끄자 암전돼 작업실이 암흑에 휩싸였다.


영화는 시작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였다.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거리에 관객은 모르지만 촬영한 스태프들은 당연히 눈치챌 수 있는 이한이 멈춰서서 카메라를 지긋이 바라보는 거로 영화가 시작됐다.




작가 alsxmchzh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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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3 일산 세트장 (낮) +1 21.08.26 52 2 11쪽
48 #2 제작사 사무실 (낮) 21.08.25 50 3 12쪽
47 #1 마포 한승환 감독 작업실 (낮) +3 21.08.24 53 1 12쪽
46 Title Sequence:죽음의 미학 +1 21.08.23 55 2 13쪽
45 에필로그(Epilogue) #5 선댄스 영화제 +1 21.08.21 59 2 13쪽
44 에필로그(Epilogue) #4 선댄스 영화제 +1 21.08.20 50 3 16쪽
43 에필로그(Epilogue) #3 선댄스 영화제 21.08.18 50 2 12쪽
42 에필로그(Epilogue) #2 선댄스 영화제 +1 21.08.17 56 1 12쪽
41 에필로그(Epilogue) #1 선댄스 영화제 +2 21.08.16 63 2 12쪽
40 엔딩 시퀀스(Ending Sequence) 졸업작품의 특이점. +2 21.08.14 63 2 12쪽
39 #37 JC시네마 특별관 (저녁) +2 21.08.13 59 3 12쪽
38 #36 아트센터, 대공연장 (낮) 21.08.12 50 1 12쪽
37 #35 아트센터. 이미도 교수 연구실 (아침) 21.08.11 49 1 12쪽
» #34 백산관 지하 편집실(낮) 21.08.10 55 2 12쪽
35 #33 작업실(밤) 21.08.09 50 1 12쪽
34 #32 작업실(밤) 21.08.07 58 2 12쪽
33 #31 한연대학교 소편집실(밤) 21.08.06 58 2 12쪽
32 #30 한연대학교 대녹음실 (밤) 21.08.05 59 2 13쪽
31 #29 작업실(밤) 21.08.05 54 1 12쪽
30 #28 쇼핑센터 옥상주차장(저녁) 21.08.02 53 3 12쪽
29 #27 부산대입구역 카페(낮) 21.08.01 53 2 12쪽
28 #26 한연대 후문, 자취방(낮) +1 21.07.30 58 2 12쪽
27 #25 빌라 세트장(정오) 21.07.29 53 1 13쪽
26 #24 빌라 세트장(낮) 21.07.28 51 1 13쪽
25 #23 작업실(낮) 21.07.27 56 1 14쪽
24 #22 작업실(낮) 21.07.26 60 2 14쪽
23 #21 대학로 연극과 강의실(저녁) +2 21.07.24 65 2 13쪽
22 #20 대학로 연극과 강의실(오후) 21.07.23 67 1 13쪽
21 #19 대학로 극단 비상 소극장(정오) 21.07.22 69 2 13쪽
20 #18 대학로 소극장 무대(낮) 21.07.21 69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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