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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 님의 서재입니다.

영화감독, 끔찍하거나 비참하거나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alsxmchzh
작품등록일 :
2021.06.30 08:04
최근연재일 :
2021.08.26 23:47
연재수 :
49 회
조회수 :
4,262
추천수 :
120
글자수 :
281,224

작성
21.06.30 08:46
조회
323
추천
6
글자
8쪽

prologue

DUMMY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 3학년 선배가 술자리에서 했던 말이 있다. 영화과를 졸업한 감독지망생의 현실은 ‘비참하거나 끔찍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그리고 운이 좋아 지망생 꼬리표를 떼고 입봉작을 찍어도 1년에 한두 명을 제외하면 별반 다를 건 없다고 했다.

작년 한 해 동안 개봉한 영화의 편수는 1700여 편, 그중 소규모 독립 영화, 예술 영화와 같이 짧은 상영을 하는 영화를 제외하고, 1주 일간 40회 이상 상영한 영화는 647편, 그중에 지금까지 대중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영화는 10여 편, 1/170, 0.58% 이게 수많은 상업 영화 중에 성공하는 확률이다.


0.58%은 모바일 게임의 가챠 확률과 비교하면 높은 수치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 계산식에 들지도 못한 시나리오도 많다.


영화는 만들어졌으나, 제작사나 투자사의 생각으로 개봉이 취소되어 창고 영화가 된 경우, 제작에 들어갔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제작이 무산된 영화, 또한 수많은 작업실에서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가 쓰고, 여러 제작사와 마켓을 떠돌다 사라지는 시나리오, 기획 피디의 기획 아래서 시나리오 작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가 각이 나오지 않아 사라진 시나리오까지 포함하면 저 확률은 최소 10배 혹은 100배 이상으로 떨어진다.


나는 0.058% 혹은 0.0058%의 확률을 뚫어보려 한다.


“하민아, 진짜 그만둔다고?”


경북 구미 대기업의 폰에 들어가는 액정을 제작하는 2차 하청의 후처리실을 관리하는 대리가 처리 작업이 끝나 내가 기계에서 꺼내놓은 액정들을 트레이에 놓인 상태로 살펴보며 말했다.


“네.”


“아깝네, 이제 계약 기간도 다 채워서 곧 정식 직원으로 전환도 신청할 수 있을 텐데.”


“그래도 더 늦기 전에 해보려고요.”


“영화학과 나왔다고 했나?”


“네.”

정확히는 아직 졸업반으로 휴학 중이지만 딱히 더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아깝긴 하다. 보통 지루하고, 힘들어서 1년을 못 버티는데 이제 1년 다 채워서 정직원으로 전환되면 월급도 오르고 월차도 쓸 수 있어서 파견직일 때보다는 여유로워지는데.”


“하하···. 네.”

돈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대리가 월차는커녕 매일 특근까지 전부하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걸 자주 본 나로서는 그의 말에 선뜻 동의하긴 힘들었지만, 적당한 웃음소리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후처리 기계에서 꺼낸 액정을 대리 앞쪽 선반에 올려놓은 뒤 말하면서 다른 선반에 세팅되어있는 액정 한 트레이를 기계로 집어넣자 대리는 확인이 끝났는지 특별한 말 없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으며 후처리 기계를 다시 작동시키고는 자동으로 켜져 있는 모바일게임에 눈길을 돌렸다.


나는 대리가 확인한 액정 트레이를 다음 단계로 넘겨주고 나서, 이다음에 들어갈 트레이를 선반에 올리고, 액정을 하나씩 올려놓아 세팅한 다음 선반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액정을 기계로 넣고, 기계 안에서 10분간 후처리 되는 동안 우리는 할 일이 없었다.


10분이라 해도 대리는 기계를 돌리고, 기계에서 나온 제품을 확인하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어 거의 8~9분이었고, 나는 기계에서 액정 한 트레이를 꺼내면 그 트레이를 다음 파트로 넘겨주고, 그다음으로 들어갈 트레이에 액정을 하나씩 안 겹치게 늘어 놓아야 해서 실질적으로 쉬는 시간은 길어야 5분 정도였다.


그래도 몸이 힘들거나, 계속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쉼 없이 일하는 것보다는 이게 좋았다. 단점은 먼지에 민감해서 온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진복을 착용하고, 마스크로 얼굴을 다 가리고 일하는 답답한 느낌과 몸에 좋지는 않을 거 같은 약품 냄새 같은 것이었다.


의자에 앉아서 후처리 불량으로 버려진 액정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내 가만히 바라봤다.


-그래서 어떡하겠다는 거야? 저놈을 이리 데려오면 일이 더 꼬이는 거 몰라?


-결국 저 사람도 속은 거잖아.


-야!


투명한 액정 안에는 두 명의 사람이 피떡이 되어 쓰러져 사람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형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물론 아무런 전기도 기계장치도 연결되어있지 않은 플라스틱 조각에서 영상이 나올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분명 내 눈에는 영화 장면, 아니 실제 존재하는 영화는 아닌 영상이 보였다.


이 불량 액정을 6개월 전에 처음 폐기물에서 발견했을 때 너무 비현실 적이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영상 같은 게 보이냐고 물었다가 미친놈 취급을 잠시 받았다.


기계에 부착도 되지 않은 액정에서 영상이 보인다고 하니 미친놈으로 보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지만 분명 내 눈에는 영상이 보여서 확인차 물었으나,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미친 건 가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내 눈에는 너무 선명히 영상이 보여 대리에게 내가 가져가도 괜찮냐고 물어보고, 딱히 신기술 유출이나 이런 거에 문제 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실제 불량이 난 액정은 그대로 폐기 물품으로 들어가 쓰레기로 처리되기에 하나 정도 챙겨간다고 큰 문제가 없어서 가져가라고 허락했다.


그 후 6개월 동안, 이 액정은 항상 내 주머니 속에서 내가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 보는 유튜브 같은 게 되었다.


“이번엔 뭐냐?”

대리는 자신의 케릭터가 사냥하고 있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체 물어봤다.


“글쎄요. 스릴러인 거 같은데요?”


내가 영상이 보이느냐고 물었던 사람 중의 한 명인 대리는 내가 영화를 좋아해서 내 머릿속의 스토리가 재생되는 게 아니냐는 말을 내게 했었고, 그 후 가끔 이렇게 물어왔다.


“그런 환영이 보일 정도면 너도 영화에 참 미쳐있나 보다.”


“하하···. 네. 뭐 좋아하죠.”

내 눈에 영상이 보이는 이유가 내가 영화를 좋아해서라면 충분히 신빙성 있는 말이었다.


우리 학과에서 영화관에 VVIP 등급을 유지하는 사람은 많지는 않았지만, 내가 그중에 한 명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밥은 걸러도 신작이나, 해외 독립영화가 상영되면 모든 용돈과 알바비를 털어서 꼭 보러 가다 보니 어느새 VVIP가 되어 있었다.


군대에 있으면서도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휴가나 외박을 나오면 타의가 아닌 내가 좋아서 거의 온종일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낸 터라 공장 일을 하는 지금도 VVIP 등급은 유지되고 있었다.


거기다 어느 순간부터 대리의 말도 약간 신빙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게 대부분의 영상은 내가 처음 보는 스토리의 영상이었으나, 졸업작품으로 생각하는 시나리오가 영상화되어서 보인 경우도 더러 있었다.


물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스토리가 나오기도 했는데 그중 일부는 생각한 원 스토리보다 좋아서 시나리오를 고치기도 했다.


“내가 영화관을 잘 안 가지만 그 액정에서 네가 봤다는 영상이 궁금해서라도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면 꼭 보러 갈게.”


“감사합니다.”

차마 상업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는 숫자를 말할 수 없어서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대리는 미친놈이지만 영화에 미친놈으로 날 봐줘서 자주 이렇게 액정을 꺼내서 봐도 진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지는 않았고, 후처리실 안에서는 액정을 자주 꺼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액정 속은 컷이 바뀌어 있었고, 배경은 잘 안 보이지만 소파와 바닥에 깔린 천은 확실히 보였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소파에 앉아서 담배를 꺼내물었고, 다른 사람은 피떡이 된 형체를 바닥에 깔린 천 위에 내려놓고, 어디서 가져온 지 모를 솜과 빨간약으로 치료하고 있었다.


형체는 이미 엄청난 상처들로 빨간약 정도로 치료가 가능할까 했지만, 형체는 살아는 있는지 빨간약이 몸에 닿을 때 이따금 움찔거리는 게 화면으로 구별이 되었다.


짧은 시간 액정을 보다가 기계가 이제 곧 처리가 완료된다는 비프음을 울리자 액정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다시 기계 앞으로 다가섰다.




작가 alsxmchzh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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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Title Sequence:죽음의 미학 +1 21.08.23 56 2 13쪽
45 에필로그(Epilogue) #5 선댄스 영화제 +1 21.08.21 59 2 13쪽
44 에필로그(Epilogue) #4 선댄스 영화제 +1 21.08.20 50 3 16쪽
43 에필로그(Epilogue) #3 선댄스 영화제 21.08.18 50 2 12쪽
42 에필로그(Epilogue) #2 선댄스 영화제 +1 21.08.17 56 1 12쪽
41 에필로그(Epilogue) #1 선댄스 영화제 +2 21.08.16 63 2 12쪽
40 엔딩 시퀀스(Ending Sequence) 졸업작품의 특이점. +2 21.08.14 63 2 12쪽
39 #37 JC시네마 특별관 (저녁) +2 21.08.13 59 3 12쪽
38 #36 아트센터, 대공연장 (낮) 21.08.12 50 1 12쪽
37 #35 아트센터. 이미도 교수 연구실 (아침) 21.08.11 49 1 12쪽
36 #34 백산관 지하 편집실(낮) 21.08.10 56 2 12쪽
35 #33 작업실(밤) 21.08.09 50 1 12쪽
34 #32 작업실(밤) 21.08.07 58 2 12쪽
33 #31 한연대학교 소편집실(밤) 21.08.06 58 2 12쪽
32 #30 한연대학교 대녹음실 (밤) 21.08.05 59 2 13쪽
31 #29 작업실(밤) 21.08.05 54 1 12쪽
30 #28 쇼핑센터 옥상주차장(저녁) 21.08.02 53 3 12쪽
29 #27 부산대입구역 카페(낮) 21.08.01 53 2 12쪽
28 #26 한연대 후문, 자취방(낮) +1 21.07.30 58 2 12쪽
27 #25 빌라 세트장(정오) 21.07.29 53 1 13쪽
26 #24 빌라 세트장(낮) 21.07.28 51 1 13쪽
25 #23 작업실(낮) 21.07.27 56 1 14쪽
24 #22 작업실(낮) 21.07.26 60 2 14쪽
23 #21 대학로 연극과 강의실(저녁) +2 21.07.24 65 2 13쪽
22 #20 대학로 연극과 강의실(오후) 21.07.23 67 1 13쪽
21 #19 대학로 극단 비상 소극장(정오) 21.07.22 69 2 13쪽
20 #18 대학로 소극장 무대(낮) 21.07.21 69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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