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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紫電) 님의 서재입니다.

천마의 망나니 스승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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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紫電)
작품등록일 :
2024.08.02 04:53
최근연재일 :
2024.08.08 10:05
연재수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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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수 :
50,753

작성
24.08.0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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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갈세가의 자격(1)

DUMMY

“일없소.”

제갈진은 상대가 무릎을 꿇든 말든, 단호히 거절했다.

일단 기분이 나쁜 건 둘째치고, 지금 마교와 연결돼서 좋을 게 없었다.

“그렇소?”

그런데 천 공자는 거절당하고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대신 여전히 무릎을 꿇은 상태로 몸만 살짝 틀었다.

“그럼 다음으로 마음이 가는 제갈선 공자께 스승이 되길 청하오.”

“뭐?”

“무슨 문제 있습니까? 제갈진 공자?”

‘이놈이 내가 형님께 약하단 걸 알고 수작질을?’

참으로 비겁하다.

그러나 제갈선에게 직접 청한 이상, 제갈진이 끼어드는 건 크나큰 무례.

‘내 알 바냐!’

하지만 제갈진은 망나니답게 무례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그가 나서는 것보다 제갈선이 한발 빨랐다.

“미안하오. 천 공자. 나 역시 천원세가를 돕고 싶으나, 아무래도 난 천 공자의 스승 될 자격이 없는 듯 하오.”

“아니오. 난 제갈선 공자의 답에도 큰 깨달음을 얻었소.”

“그건 참으로 고마운 말이나. 그래도 아니 될 말이오.”

“아니라니까.”

“미안하오.”

다행히 제갈선이 먼저 제안을 거절했다.

‘됐다!’

이를 본 제갈진이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형님은 분명 호인이시지. 하지만 한 번 정한 일은 절대 굽히지 않는 고집 있는 분. 그러니 한 번 안 된다고 한 결정을 뒤집지 않겠지.’

이로써 모든 게 해결됐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한참이나 천 공자와 실랑이하던, 제갈선이 뜬금없이 동생을 불렀다.

“만일 천 공자가 정말 뛰어난 스승을 원한다면, 다시 한번 내 동생에게 청하는 게 어떻소이까?”

“네? 형님, 그 청은 방금 거절했는데.”

“분명 그랬지. 하지만 방금 논의에서 너의 주장은 이 형조차 깜짝 놀랄 정도더구나. 심지어 그것은 천 공자가 원한 것과 대단히 깊이 연관돼 있었고. 그러니 너라면 나와 다르게 천 공자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더구나.”

제갈진이 조목조목 따져가며 물었다.

아까 말했듯, 그는 한 번 정한 결정을 굽히지 않는 이.

하지만 제갈진을 정말 힘들게 하는 건, 그의 굳은 고집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설마 진이에게 스승의 예를 올리는 이가 나타날 줄이야. 크윽!”

난데없이 눈물을 흘리는 형을 보고 제갈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제갈세가는 평범한 무가가 아니다.

그들은 다른 무가처럼 무를 숭상하지 않으며, 그보단 다양한 학문을 익히길 원했다.

그리고 그렇게 익힌 학문을 남에게 가르치는 걸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여겼다.

비단 제갈세가하면 사람들이 너도나도 무림맹 총책사부터 떠올리는 데는, 그런 이유도 적잖아 있었다.

당장 제갈진만 해도, 한때 마교의 총책사지 않았던가.


“제갈세가의 사람이라면 응당 남 가르치길 좋아하고, 머리싸움을 즐기는 법. 다만 내 동생은 조금...... 그런 면이 옅은 줄 알았다. 물론 그걸 탓할 마음은 조금도 없단다. 그래도 살짝, 아주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었는데, 이렇게 이 형도 깜짝 놀랄 주장을 하고, 또 그 주장에 감화돼 스승으로 삼겠다는 이까지 나타났으니. 내 어찌 기쁨의 눈물을 참겠느냐.”

“아니, 아닙니다. 형님. 그건 전부 오해입니다.”

“확실히 오해일 수 있지. 그런데 그러면 또 어떠냐? 제갈세가의 사람이라면 한 번쯤 오해로 스승이 되어도 괜찮지 않겠느냐?”

‘아니, 그게 무슨 헛소립니까!’

제갈진이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진정 제갈세가 사람이라면, 사제의 연을 이리 쉽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제갈선은 그간 망나니라며 집안에서든 밖에서든 천대받던 동생에게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면모를 보고, 또 이를 인정해주는 이까지 나타나자, 그만 감정이 격해졌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든 동생과 천 공자 사이를 이어주려 했다.

“휴우!”

이에 제갈진이 짧게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지! 역시 넌 제갈세가의 사람이다!”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갈진이 고개를 끄덕인 건, 어디까지나 제갈선 때문.

‘형님이 아니면, 내가 왜 그런 귀찮은 걸 하겠습니다.’

다만, 일단 받기로 한 이상, 절대 손해는 보지 않는다.

‘분명 천원세가가 마교가 만든 거짓 가문이지만, 명색이 마교에서 사활을 걸고 만든 거니, 그리 쉽사리 걸리진 않겠지. 그리고 일단 걸리지만 않으면, 천원세가와 연을 맺는 건, 제갈세가에 이익을 주면 줬지, 절대 손해를 끼치진 않을 거다. 당장 천원세가의 명성이 오르면 제갈세가의 명성 또한 함께 오를 테니까.’

단,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천 공자.”

“음?”

제갈진의 부름에 천 공자가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무리도 아닌 게, 대화 중이던 상대가 갑자기 울어버리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건 제갈진이 알 바 아니었다.

“내게 천원세가를 주시오.”

“뭐?”

“내 조언을 받으려면, 먼저 천원세가에 대해 아는 게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그러니까 내놓으시오. 천원세가의 정확한 위치부터 가진 전각의 개수, 소속된 인원을 비롯해 사소한 것 하나 빼먹지 않고 전부. 당연히 전부 문서화해서 내놓으시오.”

그러니까 제갈진은 자신을 스승으로 모시고 싶으면, 마교가 비밀리에 만든 거짓 세력의 세세한 정보를 전부 내놓으라 했다.

아니,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리고 그것들을 전부 내 마음대로 배치 및 명령할 수 있는 권리까지 주시오.”

아예 그냥 그 세력 자체를 달라고 악을 썼다.


* * *


-공자가 요청한 문서를 당장 가지고 있지 않으니, 조만간 다시 방문하겠소.


그리 말하며, 천 공자는 급히 제갈세가를 떠났다.

제갈진은 딱히 그를 붙잡지 않았다.

그에게는 천 공자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마교와 엮일 일이 사라지는 거고, 돌아오면 마교의 비밀 세력 중 하나를 공으로 주워 먹게 된다.

그러니 뭐가 되든 상관없었다.

대신 제갈진은 그날부터 두문불출했다.


“둘째 공자님? 지금 처소에 계신데?”

“오늘도? 어제도 밖에 안 나간 것 같던데?”

“정말? 그럼 내가 어제 연무장에서 본 둘째 공자님이 환영이 아니란 건가?”

“연무장에서 봤다고? 난 서고에서 봤는데?”


그러자 세가 곳곳에서 제갈진의 목격담이 하인, 시녀들 사이에 떠돌았다.


“웬일로 도박장을 안 가고, 집에 있지?”

“심지어 연무장에서 제법 몸을 움직였다던데?”

“서고에서도 무언가 열중하고 계신데.”

“서고에서 조는 게 아니고 진짜 서책을 읽으신다고?”

“진짜라니까!”


그것도 상당히 좋은 방향으로.

하지만 이 소문의 끝은 항상 같았다.


“이상한데?”

“뭐가?”

“그 외......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그거라잖아. 그거.”

“그게 뭔데?”

“그러니까...... 그...... 죽을 때가 돼서 뒤늦게라도 행동거지를 바꾸는 거.”

“네 말은 둘째 공자가 죽을병에 걸렸다는 거야?”

“그게 아니라면 저 망나니가 왜 갑자기......”


-쯧!


한참 이야기에 집중하던 하인들은, 등 뒤에서 난 소리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잠시 뒤, 소리가 난 쪽에서 검일이 나타났다.

하인들은 급히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일개 하인과 제갈세가의 혈족을 호위하는 호위 간의 격차는 생각 이상으로 크다.

특히나 하인들은 얼굴은 관옥 같지만, 유난히 차가운 표정의 검일을 다른 무인보다 더 두려워하는 경향이 컸다.

물론 그것도 검일보단 그의 호위 대상인 제갈세가의 망나니 탓도 없잖아 있었다.

“......”

“......”

그 뒤, 검일은 말없이 하인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도리어 무서웠다.

검일 정도 되는 무인이면, 틀림없이 자신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을 건데, 아무 말이 없으니까.

단, 그들은 검일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어떤 소리를 들었다.


“쯧!”


아까와 같은 짧게 혀를 차는 소리.

이를 들은 하인들은 역시나 들켰다는 생각에,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황급히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감히 제갈세가의 둘째 망나니에 대해 함부로 떠들지 않았다.


* * *


“오늘도 밤을 새셨습니까?”

“어.”

제갈진은 호위의 방문에도 건성으로 답했다.

대신 손에 든 서책을 계속 몰두했다.

그 모습에 검일은 무시당했어도, 벅찬 감정을 느꼈다.

‘정말 이전과 달라지셨군요.’

아무렴, 원래라면 해가 뜬 시간에는 침상 위를 뒹굴거리기만 했는데.

그러다 해가 지면, 냉큼 도박장이나 주루로 뛰어갔다.

그랬던 망나니가 이제 눈앞에서 열심히 서책을 읽고 있다니.

호위이기 이전에 제갈세가의 무인으로써 제갈진의 변화는 이루 말로 못 할 감동을 주었다.


그래서 오는 길에 만난 괘씸한 하인들을 굳이 혼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틀림없이 그들의 의심도 사라질 거라 믿었기에.


그때, 제갈진이 서책을 덮고, 검일을 불렀다.

“그런데 너 할 일은 끝냈냐?”

“예?”

“뭘 모르는 척하고 있어. 내가 익히라고 한 무공들 말이야.”

“아, 그거라면 대충......”

“대충?”

“아닙니다. 열심히 익히고 있습니다.”

“쯧! 기한까지 하루 남았다. 내일까지 확실히 써먹을 수 있게 익히지 않으면......”

“......않으면?”

“그날로 쫓겨날 줄 알아.”


순간, 검일은 언젠가 하인들이 망나니에게 의심을 거둘 때, 자신은 제갈세가에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꼭 내일까지 익히겠습니다.”

그렇게 검일이 다짐을 굳힐 무렵, 갑자기 처소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진아!”

곧바로 안으로 들어오는 이는 제갈세가의 소가주인 제갈선.

그는 다짜고짜 앉아있던 동생을 억지로 세우곤, 몸 여기저기를 더듬었다.

“응? 이상하다. 멀쩡한데?”

그리곤 이상한 소리까지 해댔는데, 제갈진은 용케 화를 내지 않았다.

“형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게...... 몸은 괜찮느냐?”

“전 멀쩡합니다.”

“멀쩡하다고? 이상하다. 분명 다른 이들은 네가 죽을병에 걸렸다던데?”

제갈선의 입에서 죽을병이란 소리가 나오자, 옆에 있던 검일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놈들이!’

그는 나중에 따로 오해가 풀리든 말든, 그 자리에서 하인들을 족쳐야 했다며 후회했다.

한편, 제갈진은 정확한 사정은 모르나, 대충은 알 것 같고, 사실 크게 관심도 없어서, 그냥 가까이 들러붙은 형을 떼어냈다.

“다시 말하지만, 전 멀쩡합니다.”

“그래, 확실히 그래 보이는구나. 그런데 요며칠 네가 세가 밖을 나가지 않고 두문불출한다고 들었다.”

“네, 갑자기 익히고 싶은 공부가 생겼습니다.”

“정말 그것 때문이냐? 진짜 어디가 아파서 그런 건 아니고? 혹시 주위에서 무슨 말을 들은 건 아니고? 항상 말하지만, 굳이 억지로 바뀔 필요는 없단다. 넌 언제나 하고 싶은 걸 하거라. 혹 돈이 떨어진 건 아니지? 형이 용돈 좀 줄까?”

제갈선은 진심 어린 걱정과 조언으로 제갈진의 처소에 가슴 따뜻한 훈풍을 불어 넣어줬지만, 마지막에 이상한 헛소리로 주위 분위기를 싸늘히 식혔다.

‘하아!’

이에 세상에서 가장 형님을 존경하는 제갈진조차 저도 모르게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아직 그의 마음속에는 형님을 향한 존경심은 굳건했다.

비록 조금 전에 살짝 금이 가긴 했지만.

그런데 예부터 제갈세가에는 이런 격언이 전해져 내려왔다.


-사람 간의 신뢰에 금이 갈 때는 ‘이것’만 한 게 없다.


“참, 며칠 전, 천 공자의 일도 그렇고, 최근 진이가 많이 달라졌다는 말이 세가에 돌고 있단다. 그 덕분에 형이 가문 어른들을 설득해 이걸 받아왔단다.”

그리 말하며 제갈선이 동생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이건?!”

이를 본 제갈진이 조금 전까지 찌푸렸던 얼굴을 활짝 폈다.

그리고 전에 없이 밝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감사합니다. 형님!!”


......역시 인간관계 회복에는 ‘선물’만 한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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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젠장, 사기였어?!(2) 24.08.02 160 1 16쪽
2 젠장, 사기였어?!(1) 24.08.02 201 0 11쪽
1 그놈과의 악연 24.08.02 243 1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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