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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spberry 님의 서재입니다.

파이프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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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spberry
작품등록일 :
2016.04.25 18:51
최근연재일 :
2020.12.28 18:10
연재수 :
18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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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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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3
글자수 :
97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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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1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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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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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12. 종결

DUMMY

도로스는 움직였다.



함정? 위험? 목숨?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도저히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왜 힘이니 뭐니 하는 쓰레기같은 이유 때문에 누나가 희생당해야 했는지. 닥터 윌슨의 속삭임에 애써 머리를 강제로 식히고 곰곰히 생각하고 생각해보았으나 나오는 결론은 없었다.



아니.



어떻게 머리를 굴려도 그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이 모든 건 놈의 잘못이다.



누나가 죽은 것도, 마을 사람들이 죽은 것도, 그리고 이 모든 게 벌어진 것도. 모두 오스카 때문이다. 그가 원흉이다. 통제 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불이 붙는다. 도로스는 놈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마치 누이를 잃은 그 날의 그처럼. 놈의 절망하는 표정을 보고 싶었다. 증오를 토내해는 목소리를. 후회와 허망함으로 텅 비어버린 눈동자를. 고통과 상실감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저열하고 음험한 욕망을 품고, 도로스는 간절하게 오스카의 죽음을 바랐다. 아니, 이것 또한 잔뜩 뒤틀리고 뒤섞여, 검게 물든 진흙탕같은 그의 감정처럼 복잡했다. 분명 그는 오스카의 죽음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론, 단순히 죽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고 여기고 있었다.



놈은 좀 더 고통받아야한다. 좀 더 절규해야한다. 좀 더 아파하고, 좀 더 후회해야 한다. 좀 더, 좀 더, 좀 더!!



그 혼자 였다면 주저없이 목숨을 도외시하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설사 팔이나 다리 하나 쯤을 잃더라도 오스카의 일그러진 얼굴을 짓밟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하지만, 그를 붙잡은 닥터 윌슨의 손길에서, 그는 동료의 걱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섯불리 달려들지 못했다. 닥터 윌슨의 말마따나 오스카는 그를 도발해서 먼저 처리 할 속셈이라는 건 분명했으니까. 무한동력의 주인인 그가 죽으면 자연스레 무한동력은 그 힘을 잃는다. 그리고 이 자리의 그 누구도 다시 적합한 '인간'을 찾기 전까진 무한동력의 힘을 얻을 수 없겠지.



실질적으로 순수한 '인간'을 찾는 건 이제 거의 불가능 할 테니, 그 누구의 손에 귀속되는 일은 없으리라. 그것이야 말로 오스카의 노림수라는 건 도로스라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러나 그것도 슬슬 한계에 부딪혔을 떄, 닥터 윌슨의 한 마디가 그를 궤뚫었다.



'저놈,이 뭘 원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저놈이 원하,는 걸 그대,로 따를 생각입니,까?'



그 한 마디. 그것이 그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놈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 싫다. 그렇다면, 놈 역시 모든 게 내가 원하는 대로 된다면 싫어하지 않을까? 단순한 발상이었으나, 그에겐 커다란 전환으로 다가왔다.



오스카가 싫어하는 것...그가 좋아할 만한 일은 뭘까. 도로스 자신이 죽고 무한동력은 사용자를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모조리 건물에 파묻혀 죽는 것. 그게 그의 의도라면, 그가 좋아할만한 일이라면 도로스는 그 반대로 하면 된다.



도로스는 방독면 안에서 차갑운 미소를 지었다.



그가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오스카를 제치고 그들이 살아남아 지상에 도달하고 게름하르트의 의지를 잇거나 세계를 멸망시킨 무기인지 뭔지를 손에 넣는 거겠지. 솔직히 그런 무기 따위를 손에 넣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은 그들일테고, 오스카는 이곳에 남을 테니까. 관심은 없지만, 그가 싫어 할 만한 일이라면 말만이라도 해주자.



도로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가 자칼의 비웃는 눈을 마주했을 때, 그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놈은 끝까지 살아남아서 계속 괴로워해야 한다. 하지만, 도로스는 도저히 저 개자식을 죽이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서로 양립한 감정을 추스리고 한 가지 타협을 맺었다.



놈을 이 자리에서 죽인다. 그것만큼은 절대로 양보 할 수 없다. 다만 지상에 올라가자. 그게 정말로 놈이 바라지 않는 결과일테니. 목표가 정해지자, 신기하게도 두서없이 아무렇게나 끓어넘치던 충동이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드러나는 것은 절제된 분노.



기나긴 상념과 고뇌를 정리하고, 도로스는 달렸다. 눈 앞에는 그의 감으로도 탐지 할 수 없는 함정들. 무한동력으로 해결 할 수 없는 그것들은 위험하다. 프로바움의 단단한 금속 피부마저 수초만에 녹여버릴 정도로 강력한 것들이니, 아차 하는 순간 즉사 할 것이다.



하지만 도로스는 개의치않았다.



달리는 속도를 유지하며 힘을 주어 높이 뛴다. 그러나 거리가 부족하다. 오스카가 숨은 책상과의 거리가 반이나 줄었으나, 아직 반이 남았다. 일견 무모해보이는 특공. 그러나 도로스는 자살이나 목숨을 버린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거야 말로 오스카가 그리 원하던 것이니까!



천천히 한 발이 바닥에 닿는다. 뒤에서 비명처럼 그의 이름을 외치는 카지트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그러나 도로스는 돌아보지 않는다. 얼음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이글거리는 질척한 감정들은 책상 뒤에 숨은 오스카를 직시한다.



조그마한 것들이 모여 큰 위험이 된다. 놈은 그리 말했다. 그렇다면, 조그마한 것들이 '모이기 전'에 움직이면 되잖아?



딸각.



발을 내딛은 바닥이 움푹 들어가며 알 수 없는 가루가 퍼져나온다. 하얀색의 그것은 도로스의 다리에 저주처럼 엉겨붙었다. 그러나 역시 그의 감은 어떠한 경고도 보내지 않았다. 이것 자체로는 무해하니까. 하지만 다른 물질과 섞인다면 분명 끔찍한 효과를 낼 것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도로스는 한 발 짝 다가온 죽음에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바닥을 딛은 한 발을 주춧돌 삼아 다시 뛰었다.



"뭣!"



놀라는 오스카의 목소리에 도로스는 작은 희열감을 느꼈다.



두 번 내딛어야 치명적인 효과가 생긴다면, 단 한 번만 내딛으면 되는 것이다.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책상. 거기에 매달려서 보우건으로 오스카를 확실히 끝장내버릴 것이다. 아니, 일단 팔 다리를 노려서 전투력을 빼앗는다. 그 후, 놈에게 자신들의 승리와 놈이 그렇게 원하지 않았던 결과를 들려줄 것이다. 분명 얼굴을 추하게 일그러뜨리고 분노하며 괴로워하겠지. 도로스는 그 얼굴이 보고싶어 참을 수 없었다.



"엇!"



책상에 달리붙기 위해 손을 뻗었을 때, 도로스는 갑작스런 감의 경고를 느꼈다.



솔직히 말해서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젖힌 것은 반쯤 운이 었다.



타앙!



까앙!



"윽...!?"



도로스는 머리를 강타한 둔탁한 충격에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대체 뭐가 일어난 거지?! 방독면의 시야 너머로 보이는 총구. 잿빛 화연이 피어오르는 그것과 그 너머의 오스카. 도로스는 오스카가 총을 쐈다는 사실을 그제야 인지했다.



그리고 세워진 책상을 붙잡지 못하고,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도로스!!"



카지트들의 비명이 그보다 한 박자 빠르게 바닥으로 추락했다.



도로스는 멀어지는 천장을 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방독면을 금속으로 바꾼 덕분에 살았구나. 각도가 좋았던 덕분인지 도탄된 듯 싶었다. 하지만 그 운도 여기까지다. 머리에 가해진 충격 덕분인지 사지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제대로 힘이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떨어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겠지만.



무의식 중에 방황하던 시선이 오스카와 다시 한 번 마주쳤다. 승리를 확신한 기분나쁜 미소와 유열에 찬 눈동자. 그것을 보는 순간, 도로스는 신기하게도 다시금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저 새끼를 죽이기 전엔 안죽어! 아직,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그는 뒤늦게서야 조금씩 힘이 돌아오는 팔다리를 허우적 거리며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 함정을 깔기 위해 전부 치웠겠지. 그러니 도로스의 몸부림은 헛된 발버둥이다. 아니, 그럴 터였다. 적어도 오스카는 승리를 확신한 그 시점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야, 이 멍청한 새꺄아!!"



허공을 휘적이던 도로스의 손이, 분명히 닿을 리 없던 무언가를 잡았다. 아니, 잡았다기보단 잡혔다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까.



도로스가 딛었던 곳을 그대로 따라밟고 점프한 카지트는 도로스의 팔을 낚아채고 전력을 다해 뒤로 던졌다.



"부탁한다!"



뒤에서 닥터 윌슨과 프로바움이 도로스를 힘겹게 받아내는 소리를 뒤로 하고, 카지트는 사뿐히 방벽처럼 세워진 책상 앞에 착지했다.



딸깍!



"윽...아프잖아!"



바닥에서 올라온 가시는 검은 부츠 따윈 우습다는 듯 간단하게 뚫고 그의 발을 찔렀다. 따끔한 고통이 뒤따랐지만 딱 거기까지다. 이미 도로스가 발동시킨 함정을 밟은 덕분에, 실제로 카운트 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생각해보면 말야, 너무 쫄아있었던 같아. 그지? 함정이 어쩌구 저쩌구 해서 겁먹었는데,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니잖아? 물론 도로스, 저 불나방같은 자식은 생각이란 걸 좀 했으면 하지만 말야."



책상을 마주한 채 카지트는 사납게 웃었다. 도로스의 멍청한 짓거리 때문에 골이 쑤셨지만, 덕분에 분위기의 주도권이 다시 이쪽으로 넘어왔다. 주도권이 이쪽에 있는 이상, 다시 얄팍한 혀놀림에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후...후후. 역시 이 정도로는 안되는 군요. 정말이지...신물 마저 나네요. 분명히 최선의 수로 벼랑까지 몰아넣었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이렇게 보란 듯이 뛰어넘다니."



오스카는 이를 갈며 몸을 책상 뒤로 숨겼다. 카지트에게 총을 겨누는 것보다 빨리, 그의 탄환이 그를 궤뚫어버릴 거라는 예지에 가까운 확신이 있었다. 카지트란 사내는 수많은 전장을 헤쳐나온 역전의 전사였으니까. 단순히 호신술로 사격술을 배운 그와는 비교 할 수 없다.



"됐고. 이제 좀 죽어라."



한 발로 선 카지트는 사냥감의 목덜미를 노리는 사냥꾼처럼 트리플 배럴 샷건을 빼들고 무릎을 굽히며 뛸 준비를 했다. 용수철처럼 순식간에 책상 위로 뛰어올라 놈을 쏴버릴 작정이었다.



"카지트! 제가 끝내게 해주세요!"



"어, 그래 그래. 그럼 제압만 해놓지 뭐."



방금 전까지 죽기 일보직전이었던 도로스의 항의 아닌 항의에 대충 대답하고, 그는 뛰어올랐,



콰아앙!!!



구구구궁!!!



뛰어오르기 바로 직전 폭음에 휘말렸다.



이번 폭음은 그전과는 달랐다. 바로 방 바깥에서 일어난 폭음은 거대한 진동과 함께 바닥의 일부분을 앗아갔으니까!



도로스들은 비틀거리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기기긱, 철골이 휘는 소리와 함께 방 한 귀퉁이가 아래로 말려들어가며 시꺼면 아가리를 벌렸다. 마치 거인이 바닥을 쭉 잡아찢고 있는 것만 같다. 폭음이 멈춘 이후에도, 도로스들은 구르르릉 거리는 건물의 목울음을 들을 수 있었다.



쿠-웅.



무언가 무거운 것이 추락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토토는 바닥에 잔뜩 업드린 채 벌벌 떨었다.



도로스는, 점점 치솟는 감의 경고를 들었다. 분명 이대로 여기 있으면 산 채로 건물에 깔려 죽으리라. 그러나 지금 당장은 그런 섬뜩한 예감보단 카지트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카지트! 괜찮아요?!"



도로스는 후드득 떨어지는 돌조각들을 쳐내며 고개를 들었다.



"이러다 진짜 죽게 생겼군. 어이, 카지트! 아직 살아있나!"



프로바움은 절뚝 거리며 일어서서 카지트가 있던 곳을 바라봤다. 바닥 곳곳이 벌레먹은 것처럼 흉하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오스카가 자랑하던 함정들도 이번 폭발은 어쩔 수 없었는지, 가루나 액체부터 시작해서 바늘이나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튀어나와 있었다.



그 너머 오스카가 숨은 책상 만큼은 굳건하게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마 오스카 역시 무사하겠지. 그러나 책상을 향해 아파치 너클을 총 형태로 바꿔 겨눈 채, 프로바움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카지트는...보이,지 않습니,다..."



닥터 윌슨은 반쯤 죽어가는 목소리로 더듬이를 부르르 떨었다. 카지트가 서 있었던 바닥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마치 톱으로 썰어낸 것처럼 거칠게 도려내진 흔적은 너무나 뚜렷해서 알아보지 못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카지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도로스는 허망하게 주저앉았다.



"이걸로 한 명은 처리했군요. 후후, 뜻하지 않은 우연의 산물이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군요. 아무래도 아직 단념하긴 이른가..."



잘그락.



거대한 책상을 방패로 내세우며 도발을 흘리던 오스카의 목소리가 돌연 멈췄다. 그러나 도로스들의 주의는 그에게 없었다. 무언가 소리가, 소리가 들렸다. 건물이 내는 소리는 아니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몸에 두른 장비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소리였다. 적어도 도로스들은 확신했다. 그들 역시 조용히 숨을 삼킨 채 카지트가 사라진 구멍으로 시선을 돌렸다.



잘그락. 잘그락.



턱!



점점 커진 소리 위로 털이 덥수룩한 손 하나가 턱 올라왔다. 바닥 위로 짚은 손의 주인을, 도로스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카지트!"



반사적으로 뛰쳐나가려던 도로스를 닥터 윌슨이 잡아세웠다. 방독면을 썼기에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닥터는 어쩐지 불만에 찬 시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어째 오스카와 마주한 이후 조금 뻔뻔해진 것 같다고 느끼며, 닥터는 난장판이 된 바닥을 가리켰다.



"온갖 것,들이 뒤섞여 있어,서 위험합니,다. 서로 섞였,을 때 위력을 발,휘하는 함정이니, 일,단은 조금 기다,리고 상황을 살피,는 게 낫습니다."



닥터 윌슨이라고 어찌 빨리 달려가 카지트를 끌어올리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러기엔 길이 너무나 위험했다. 온갖 함정이 뒤섞여서 한 치 앞도 예상 할 수 없는 난장판을 만들어놓았으니. 지금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기같은 것이 알록달록하게 올라오고, 계속해서 치이익 거리며 무언가 녹거나 융해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도로스가 그랬던 것처럼 점프해서 멀리 뛴다해도, 어찌됐건 중간에 한 번 발을 딛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폭발이 불러온 진동 때문에 사방으로 튄 저것들은 발 딛을 공간을 애초에 봉쇄하고 있었으니 무리나 다름 없었다.



"윽...아파 뒈지겠네...이 빌어먹을 새끼! 진짜 죽여버린다!"



구멍에서 기어올라오려던 카지트는 기운이 빠지는지 다시 손 하나만을 바닥 위로 걸친 채 매달려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나 악을 쓰며 으르렁 대는 목소리에선 아직 약간의 여유가 느껴졌다.



"하여간 저 멍청한 녀석. 걱정이나 시키곤..."



프로바움은 후우, 긴 한숨을 내쉬곤 아파치 너클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뭉게뭉게 퍼지는 탁한 화연이 납탄을 쏘아냈다.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속도로 날아간 탄환은 세워진 책상의 끝자락을 때렸다. 틱! 하고 도탄된 탄환에 작은 불똥을 튀겼다. 어떻게든 카지트를 쏴서 떨어뜨리기 위해 기회를 보던 오스카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다시 몸을 책상 뒤로 숨겼다.



"후..."



그는 더 이상 무슨 말을 내뱉을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듯 했다. 몇 번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어도 어떻게든 다시 기어올라오는 모습에 질려버린 듯 했다. 다만 그래도 아직 한 조각의 이성을 붙들고 있는 이유는 도로스들에게도 여유가 없기 때문이리라.



이번의 폭발은 아주 가까웠으니, 다음 번 폭발로 모든 것이 마무리 될 터. 도로스들 역시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오스카의 입장에선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의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고 걸레쪼가리가 된 시점부터, 무한동력이 저쪽의 손으로 넘어간 그 때부터, 자신의 목숨 따윈 이미 포기한지 오래다.



사용자를 찾은 무한동력은 더 이상 그의 손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설사 되찾더라도 한 번 사용자를 찾은 그것은 그에게 무용지물이나 다름 없겠지. 그러니까다. 그가 가질 수 없다면 그 누구도 가져서도 안된다. 모든 것의 위에 설 그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그의 목숨 마저 걸고 도로스들을 죽인다. 모든 것을 걸고 무한동력을 부수고 그 누구도 찾을 수 없는 지저地低 저 깊은 곳으로 파묻어 버린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면 무한동력을 부수는 것도 가능하겠지. 설사 부수지 못하더라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옛 유적조차 제대로 발굴도 하지도 못하는 천한 것들이 이 거대한 묘비를 파헤칠 수 있을 리가 없지.



오스카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최대한 대치 상황을 길게 끌도록 버틸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의 작전은 생각대로 잘 먹혀들어가고 있었다.



"큰 일 났군. 빨리 저놈을 어찌 해야 할 텐데."



프로바움은은 초조함을 감추고 주위를 훑었으나, 부식되고 작은 폭발을 일으키고 있는 바닥 외에 건질 것은 없어보였다.



"이대,로 다시 한 번 더 폭,발이 일어난다,면..."



닥터 윌슨은 혹시나 폭발의 여파로 문에 이상이 생기진 않았을까 하며 그들이 들어온 문을 밀어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곰곰히 생각에 잠긴 채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던 고고학자는 이윽고 그들이 잊고 있었던 한 가지를 떠올렸다.



"방! 숨겨,진 방! 그곳으로 가,는 건 어떻겠습,니까?"



"나도 그 생각은 해보긴 했네만, 어차피 무너질 곳 아닌가? 차라리 최대한 아래로 내려가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네."



프로바움 그리 말하며 군데군데 뻥뻥 뚫린 바닥의 구멍을 가리켰다. 저기로 뛰어내리는 것도 확실히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그럴싸했다. 더 위로 올라가봤자 탈출 할 수 있다는 승산이 없으니까. 무너지는 건물에서 도망치려면 밑으로 내려가는 편이 옳았다. 그러나 도로스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니요. 그 숨겨진 방으로 가야할 것 같아요."



도로스는 제 감을 믿었다. 오스카의 함정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긴 했으나, 적어도 지금까지 그들을 이끌어준 감이니까. 그의 감이 숨겨진 방으로 향하라고 알리고 있었다.



"흐음...그런가.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길을 이끄는 건 길잡이의 역할이니."



프로바움은 순순히 물러났다.



"야! 이 자식들아! 나 좀 끌어올려 달라고! 힘들어 죽겠다..."



"그러고보니 저놈이 있었군."



프로바움은 귀찮다는 듯 한 손으로 카이저 수염을 매만지며 다시 한 번 아파치 너클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는 소리가 또다시 틱! 하고 책상에 도탄되며 작은 불똥을 튀겼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틈타 은밀히 총을 쏘려던 오스카는 다시 책상 뒤로 물러났다.



"흥. 같잖은 수를 쓰기는. 저 쓰레기 같은 놈의 견제는 내가 맡겠네. 둘은 어떻게든 카지트를 구해서 여길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해보게."



프로바움은 파이프 담배를 꼬나물고는 책상 너머로 시린 눈빛을 쏘아냈다.



닥터 윌슨은 주의깊게 바닥을 주시했다. 아직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과 보글거리는 소리는 약효의 효과가 생각보다 오래간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 단 시간 안에 길을 뚫기는 무리가 있을 듯 했다. 다만 문제는 시간.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둘은 머리를 맞대고 곰곰히 생각했다. 토토는 홀로 함정들에 다가가 코를 킁킁 대다가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독성은 여전한 것 같았다.



"하늘을 날 수만 있다면..."



도로스는 작게 읊조렸다. 날지 못해도 둥둥 뜰 수만 있다면 손쉽게 카지트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아직 매달린 채 끙끙 대고 있는 카지트는 올라오기는 커녕 매달리는 데만 힘이 부치는 듯 했다. 아직 조금의 유예는 남아있는 듯 했지만, 그리 긴 시간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



"도로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닥터 윌슨은 도로스의 혼잣말에서 뭔가 영감을 얻은 듯, 도로스에게 말을 걸었다.



"예? 하늘을 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요.. 날 수 없더라도 적어도 둥둥 뜰 수만 있다면..."



"난다, 입니,까..."



아니, 둥둥 뜬다? 뜬다? 뛴다? 뛴다?! 뛴다!



뭔가 입 속으로 중얼중얼 거리던 닥터 윌슨은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아! 소리를 내며 목에 두두둑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도로스를 쳐다보았다.



"도로스! 바로 그 겁니,다!"



"예? 뭐가요?"



"도로스가! 저를! 밟,고 뛰는 겁니,다!"



닥터 윌슨은 말하며 손가락으로 도로스와 자신을 번갈아가며 가리켰다.



"저를 밟,고 뛴다면 더 먼 거,리를 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굳,이 중간에 다,시 발을 딛을 필,요 없이 단번,에 카지트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을 겁니,다!"



탕! 하고 울려퍼지는 소리는 프로바움의 총구에서 나는 것인가, 도로스의 머리 속에서 떠오른 깨달음이 내는 것인가.



"오오, 닥터! 역시 닥터! 오오!"



"제발 나 좀 끌어올려줘! 슬슬 손에 힘이 빠진다고!"



도로스는 감탄하며 닥터 윌슨을 밟고 뛸 경우 대략적인 비거리를 머릿속으로 생각해보았다. 자신의 몸인 만큼 그런 계산은 빠르고 어느 정도 정확했다.



"될 거 같아요!"



도로스는 외치며 최대한 뒤로 물러났다. 가능한 한 속력을 붙여서 뛸 작정이었다. 닥터 윌슨은 머리를 수그리고 네 손으로 감싸며 뒤로 돌았다. 더 이상 매끄럽지 않은 그의 등껍질을 도약의 발판으로 써먹을 셈이다.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갈게요!"



외치며 도로스는 지체없이 달렸다.


작가의말

지드님// 항상 늦어서 죄송합니다 ㅠㅠ

아히ㅡ님// 헤헤 읽어주셔서 감사하요 ㅎㅎ. 끝이 그리 멀지 않았으니 그때까지 잘 부탁 드릴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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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지드
    작성일
    18.09.10 19:23
    No. 1

    난장판이예요 도로스의 천원돌파! 기대할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5 아히ㅡ
    작성일
    18.09.11 00:34
    No. 2

    결국 도르스는 오즈에게 도달하고 인류의 고향 지상으로 도달하겠지만
    여러모로 고생하네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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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종장 +4 18.11.11 240 8 13쪽
177 종장 +2 18.11.04 205 11 19쪽
176 종장 +3 18.10.20 208 8 14쪽
175 종장 +3 18.10.12 236 9 16쪽
174 12. 종결 +2 18.09.29 211 8 27쪽
» 12. 종결 +2 18.09.10 232 7 22쪽
172 12. 종결 +2 18.08.20 224 8 20쪽
171 12. 종결 +1 18.08.01 214 9 17쪽
170 12. 종결 +3 18.07.20 226 10 23쪽
169 12. 종결 +1 18.07.02 188 9 19쪽
168 12. 종결 +1 18.06.13 210 11 21쪽
167 12. 종결 +1 18.05.28 214 10 18쪽
166 12. 종결 +1 18.05.07 220 12 19쪽
165 12. 종결 +1 18.04.17 264 9 19쪽
164 12. 종결 +1 18.04.04 241 11 17쪽
163 12. 종결 +1 18.03.21 264 12 20쪽
162 12. 종결 +1 18.03.04 259 12 14쪽
161 12. 종결 +3 18.02.25 282 12 12쪽
160 12. 종결 +3 18.02.10 282 10 12쪽
159 12. 종결 +2 18.02.04 331 12 10쪽
158 12. 종결 +2 18.01.24 295 13 12쪽
157 11. 전쟁 +1 18.01.13 311 10 17쪽
156 11. 전쟁 +2 18.01.01 324 9 11쪽
155 11. 전쟁 +3 17.12.24 289 11 20쪽
154 11. 전쟁 +1 17.12.17 316 12 10쪽
153 11. 전쟁 +1 17.12.09 316 11 16쪽
152 11. 전쟁 +2 17.12.01 325 12 18쪽
151 11. 전쟁 +2 17.11.26 304 1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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