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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spberry 님의 서재입니다.

파이프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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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spberry
작품등록일 :
2016.04.2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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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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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17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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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전쟁

DUMMY

닥터 윌슨은 크리스탈의 표면에 떠오른 두 단어 중, 통신이라 쓰여진 단어를 눌렀다. 곧이어 두 단어가 사라지고, 검은색 바탕에 하얀색 원이 떠오르며 알람소리와도 같은, 기이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카지트는 별 해괴한 소리를 다 듣겠다는 듯 눈쌀을 찌푸렸다. 시체와 피로 가득한 광장에 울려퍼지는 소리는 어딘가 공허하고 섬뜩했다.



긴장된 시선이 단말로 모였다. 여전히 철창 안에 있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의 시선 역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하는 그들의 시선은,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뚜루루루루.



달칵.



무언가를 집어드는 것같은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그 기묘한 울림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멈췄다. 숨막히는 정적이 시체 사이를 누볐다. 꿀꺽, 누군가의 침삼키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러나 단말에서 눈을 떼는 자는 없었다. 마치 조금이라도 그것을 시선 바깥에 둔다면, 뭔가 불길한 일이라도 일어날 것이라 여기는 것처럼.



짧은 침묵. 그러나 그 너머로 들리는 희미한 숨소리.



도로스들은 단말 너머로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단말은 그 어느 누군가와 연결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누구인지는 뻔했다.



"...무슨 일입니까, 아쉬드."



들려온 목소리는 어딘가 낯이 익은 목소리였다. 그것이 누군지 아는 도로스들은 조용히 숨을 삼켰다. 뿌드득, 누군가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단말 저편의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 레온하르트들은 가라앉은 눈으로 조용히 도로스들을 응시했다.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누가 응대할지 정하던 도로스들은, 카지트의 이글거리는 눈에 결국 그에게 단말을 넘겼다.



"아쉬드, 어째서 대답하지 않는 겁니까? 완전한 인간을 확보하는데 뭔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도로스들이 남부로 갔다고 확정하는 말투에, 카지트들은 놈이 어느정도 그들의 동선을 궤뚫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긴 당연한 일이다. 인질은 잡고 있는 놈이니 그들이 여기까지 오리라는 것을 확신했을테니.



카지트는 어쩐지 자신만만 놈의 태도가 짜증났다.



"대답? 지금 그 새낀 대답 못 할 걸. 지금쯤 그렇게 좋아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면담이라도 하고 있지 않을까?"



킬킬거리는 비틀린 웃음. 악의어린 대답에 단말 너머에서 잠시 숨을 삼키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하. 설마 실패했을 줄은 생각치도 못했군요. 어떤 수를 썼는진 모르겠지만, 정말 운 하나는 좋으십니다."



"운 또한 실력이고 하잖아? 그런 점에서 네놈 새끼들은 많이 떨어지는 거 같은데."



카지트는 이죽였다.



"뭐라고 하든 별로 상관없습니다. 그보다 아쉽군요. 얌전히 잡혔으면 편했을 것을."



쯧, 혀차는 소리가 단말 너머로 나직하게 들려왔다. 그는 무한동력의 자취에 대해 일언반구하지 않았다. 아마 단말을 카지트가 잡았다는 것에서 무한동력이 어떻게 되었는지 깨달았겠지. 당연한 귀결이다.



놈은 태연하게 응대했다. 마치 무한동력을 일깨우는 열쇠인 도로스를 얻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잘나가는 정치가로써 철저하게 감췄으나, 상대가 좋지 않았다. 카지트와 레온하르트는 숨겨진 상대의 초조함을 읽었다. 흔들리는 호흡과 불안정한 리듬. 콜드리딩은 오스카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으니 효과는 떨어지지만 교차 검증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카지트는 입가에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아무래도 슈나이더인가 뭔가 하는 집사 영감이 잘해주고 있는 듯 했다. 빌어먹게 싫어하는 놈이 곤란에 쳐해있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지. 카지트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놈을 흔들기 위해 말을 걸었다. 좀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했다. 정말로 만의 하나, 놈이 그들을 속이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상황이 꽤 좋지 않나봐? 응? 힘들지? 잡을 수 있을거라 확신했던 무한동력의 열쇠는 빼앗기고, 그것도 모자라 무한동력도 우리 손에 넘어가고. 여기에 신경쓰자니 그쪽도 난장판이지? 아주? 이 빌어먹을 새끼, 잘됐다!"



그는 들으라는 듯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사심까지 잔뜩 들어간 도발에 도로시는 동생의 등을 퍽퍽 두들겼다. 그래봤자 도로스에겐 툭툭 건드리는 거나 다름 없었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지만 저런 사람들과 어울려다녔냐는 듯한 찌를 듯한 눈빛은 도로스에게 무엇보다도 무섭게 다가왔다.



"내가 너같은 놈들은 잘 알아. 나도 흔히 말하는 쓰레기지. 사람 모가지따길 밥먹듯 했고, 거들먹거리고 무능하기 짝이 없던 용병 나부랭이들에겐 칼침 몇 번 놔줬지. 하지만 이런 나같은 놈도 구역질나는 '악'가 뭔지 알고 있다고! 개 거지같은 야망이니 꿈이니 하는 뭣같은 걸로, 정신나간 짓거릴 태연하게 저지르는 너같은 놈을 두고 하는 소리다!"



말하면 말할수록 카지트는 마음 저 깊은 밑바닥에서 무언가끓어오르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너 이 개같은 새끼!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반드시 막아주마! 그리고 좌절한 네 모습을 보고 실컷 비웃어줄 거다!"



도로스는 크흠, 헛기침을 했다. 프로바움은 팔꿈치로 카지트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외치던 카지트는 그제야 제가 너무 흥분했다는 것을 깨닫고 머리에 난 귀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살쾡이 때문에 화를 낼 타이밍을 놓친 도로스 역시 지친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오스카는 침묵을 유지했으나, 머리를 식힌 카지트는 그 침묵 속에서 내재된 분노를 읽어냈다. 옳거니, 확실히 상황이 저놈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군. 카지트는 입꼬리를 올렸다. 놈은 보통 녀석이 아니니 어지간한 일가지곤 쉽게 흔들리지 않을 터.



저렇게 절제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놈이 흔들릴 정도라면 어지간한 일은 아니겠지.



"...후. 이놈이고 저놈이고 정말 성가시게 하는군요. 아직 무한동력을 깨우진 못했나 봅니다?"



그는 애써 스스로를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훗, 그건 네 상상에 맡기지. 어떨 것 같아?"



카지트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며 무한동력에 관한 정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애썼다. 아직 무한동력에 관해서 아는 건 거의 없으니. 무엇보다 대체 얼마만큼의 피를 쏟아부어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 소량의 피로 활성화 시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목숨이 위험 할 정도의 피를 갈구할 수도 있으니.



그리고 놈들이 한 번에 한 명을 바쳤다는 점에서 한 사람당 단 한 번의 기회 밖에 없을 수도 있으니까.



"글쎄요? 무한동력이 작동했다면 지금 우리들은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을테니까 말이죠."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카지트는 그들이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면, 이미 그 무언가를 저지르고 있거나. 궁지에 몰린 사람은 무서운 법이다. 이렇게 몰린 상태에서 꺼내드는 카드는 분명 심상치않은 비장의 카드이리라.



"그렇다는 건...흠, 흥미롭군요."



그렇다는 건 도로스가 순수한 인간이 아니라는 소리거나 아직 피를 쏟아붓지 않았다는 것. 전자야 그럴 리가 없으니, 후자의 확률이 높다. 오스카는 그렇게 판단했고,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 빙그레 웃음지었다.



아직 그에게 기회가 남아있었다.



"후후, 아예 잘됐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없애버리도록 하죠. 제가 가질 수 없으면 남도 가지지 못해야지 않겠습니까?"



"뭐?"



카지트는 반문했다. 어딘가 깊은 악의마저 어린 오스카의 말에선 불길한 느낌이 흘러나왔다. 온갖 경험과 갈고닦은 감각으로 길러온 그의 감이 맹렬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이 새끼야, 무슨 소리야! 대답해!"



카지트는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으슬으슬한 느낌을 애써 뿌리치며 외쳤다. 그러나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통신이 끊어졌다. 단말의 너머에선 더 이상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카지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없애버린다? 무엇을? 무한동력? 700년 동안 이어져온 저것을 없앤다?



카지트는 회의적인 시선으로 은은한 빛을 뿌리는 무한동력을 응시했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매끈한 표면과 광택도는 재질. 저걸 부순다는 건 도저히 상상 할 수 없다. 무한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저것을 어떻게 부순다는 말인가.



"카지트, 느낌이 좋지 않아요."



살쾡이는 불안감과 경계심 섞인 도로스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만약 무한동력이 부술 수 없는 것이라면, 녀석은 어째서 무언가를 없앤다는 말은 했을까?



마주치는 시선. 도로스의 빨려들어갈 듯 검은 눈동자와 살쾡이의 샛노란 눈동자가 교차했다. 날카로운 세로 모양의 동공이 한층 더 좁아졌다.



우르릉.



땅이 흔들렸다.



카지트는 눈을 크게 떴다. 무언가 그의 머리 속에서 번쩍였다. 전기충격과도 같은 깨달음이 내리쳤다.



다시 한 번 땅이 흔들렸다. 동시에, 육골로 쌓인 거대한 제단의 일부분이 무너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기이한 으르렁거림이 새어나왔다. 괴기스럽고 선명한 적의마저 어린 울음소리는 모두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모두의 시선이 흉포한 땅울림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한 제단에 꽂혀있을 때, 단 한 명, 카지트의 시선은 도로스에게 못박힌 듯 꽂혀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없애버린다는 오스카의 목소리가 섬뜩하게 되풀이 되었다.



열쇠. 그래, 놈은 누구도 무한동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기위해 도로스를 죽일 거다.



섬뜩한 깨달음. 그리고 묵직하게 몸을 죄여오는 그르렁거림. 감은 그 어느 때보다 불길한 감이 그를 엄습했다.



"저게 뭐야!"



철창 안에 있던 누군가의 절규섞인 외침.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한 살과 뼈의 제단 안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가의말

지드님// 고전 코미디는 재밌죠 헤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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