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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1980 밴드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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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26 17:04
최근연재일 :
2023.09.29 19:20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29,952
추천수 :
3,724
글자수 :
171,704

작성
23.09.01 21:00
조회
4,123
추천
114
글자
10쪽

국어교육과 장기현, 꿈은 시인

DUMMY

“아뇨. 죄송합니다.”


한양레코드의 나승연 팀장은 제 생각에 없었던 반응에 당황했다.


“···예?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네. 잘 들으셨습니다. 음반 계약 안 하겠습니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한양레코드와의 음반 계약을 마다할까? 했더니, 그 미친놈이 바로 그녀의 눈앞에 앉아 있었다.

그것도 다섯 명씩이나 된다.


“대체 왜요? 이 좋은 기회를?”


자기가 자기 입으로 좋은 기회라 말하는 게 우습긴 했지만, 솔직히 이건 정말 좋은 기회였다.

신인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이걸 받고도 발로 걷어찬다? 그녀의 좋은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대학가요제 참가하려고요.”

"아···."


‘대학가요제’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녀는 왜 그렇게 데뷔를 마다했는지 비로소 이해했다.


그래, 맞다. 대학가요제는 데뷔하면 참가 못 하지. '대학' 가요제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쪽은 당장 데뷔시켜주는 조건인데?


“대학가요제··· 후, 대학가요제를 좋아한 적은 있어도 대학가요제를 미워한 적은 없는데. 오늘부터 대학가요제를 미워하게 생겼네요. 조금만 더 생각해봐요. 대학가요제 대신 음반 낼 생각은 없어요? 이것저것 따지고 보면 거기서 거기인데.”

“음반은··· 내고도 망할 수 있잖아요.”


성호가 우물쭈물한 태도로 나승연 팀장의 뼈를 때렸다.


“···할 말이 없네요. 원래 그런 말 들었으면 대학가요제도 입상 못 할 수 있잖아요, 라고 말했을 텐데. 솔직히 제가 보기에 그쪽 팀, 입상은 따놓은 것 같아서 뭐라 말을 못 하겠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저는 포기 못 하겠어요. 그러니까-”


승연은 기현이 쭉 밀어두었던 계약서를 다시 들이밀었다.


“대학가요제가 끝나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같이 음반 하나 냅시다. 당장 음반 내라고는 안 할 테니까, 계약만 미리 해요.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대중음악연구회 음반 내야겠으니까.”

“그렇게까지요?”

“네. 여기 음악 듣고 그렇게까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 회사 인생 걸고서라도 음반 내야겠다. 여긴 된다, 하고요.”


무슨 일이 있어도 기다리겠다 말하는 승연을 어떻게 마다하겠는가?


“그러니까 나랑 계약, 할 거죠?”


승연은 아주 간절한 눈빛으로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이토록 무언가를 바란 적, 최근에는 없었던 것 같았다.


"어쩔 수 없군요."


기현은 미선과 멤버들을 바라보며 시선을 교환했다. 이내 이구동성으로 끄덕여지는 고개.


기현은 승연에게 오른손을 건넸다.

잘 부탁한다는 의미의 악수였다.


*


그렇게 예선에 선보일 자작곡도 만들고, 음반 계약도 했겠다, 이제 앞으로는 탄탄대로의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


분명히 탄탄대로였던 대중음악연구회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이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야. 에라이, 오글거린다고 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이지.”


기현은 노트에 무언가를 적다가 또 지우고 찢고 버리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기현은 창작의 고통을 솔찬히 느끼고 있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물론 이것도 아니고.


이러다 머리털이 남아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탈모가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건 다 가사, 가사 때문이다.


*


“곡을 다 썼으니, 이제 작사를 해야 하는데···. 너희들도 알다시피 내가 작사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거든.”


미선은 골치 아프다는 듯 앓는 소리를 내며 작사 얘기를 불쑥 꺼냈다. 가사가 빠진 노래를 대학가요제에 낼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대중음악연구회는 난관에 부딪혔다.

대체 누구에게 작사를 맡길 것이냐? 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도 처음 곡을 만든 건 누나니까 누나가 쓰는 게 좋지 않아요?”


병철의 말은 일리가 있었으나.


“나는 절대 못 해. 안 돼. 일 년에 책도 몇 권 안 읽는데, 내가 무슨 작사야.”


미선은 강경했다. 입에 거품을 물고 작사 절대 못 한다며 아예 못을 박았다.


“저도 자신 없어요. 전 미선 누나보다 책 안 읽어요.”

“그건 저도 그래요.”

“책은 읽지만, 작사는 영···.”


다들 작사에는 영 자신이 없었다.

대음연 멤버들은 남은 한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당연지사, 장기현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끄덕.


"내가 한다고?"


끄덕, 끄덕.


작곡까지 도왔으니, 어련히 알아서 빼주겠거니, 했던 게 낭패였다.


'···뭔 저거는 코 앞에 간식 둔 강아지도 아니고.'


기현을 올망졸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가사도 써? 왜?”


기현은 당황해서는 좌우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작사는 자신 없는데.’


과거 밴드 활동을 했을 당시, 기현이 작사를 하고는 했지만, 멤버에게서나, 청자들에게서나 좋은 반응은 없었다.

이상하고 멋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나름 심혈을 기울인 가사였는데···. 보나 마나 이번에도 그렇겠지.’


그래서 기현은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작사를 해 가면 또 이상하고 멋없다는 반응이 올 것 같아서, 기현은 작사가 꺼려졌다.

일종의 트라우마인 셈이다.


하지만 그가 작사를 해야만 하는 아주 아주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으니.


“오빠, 국문과잖아.”


내가?

국문과?

국문과였나?

아닌데?


기현의 머릿속이 혼란, 그 자체였다.


“아, 아닌데, 국어! 교육과인데!”


다급하게 국어교육과임을 소명하느라 목에서는 삑사리가 튀어나왔다.

국어국문학과가 아니라 국어교육과라 필사적으로 해명을 해봐도 영 소용은 없었다.


“에이, 똑같네- 국어 들어가면 그거나 저거나 저거나 그거나 거기서 거기지.”


대중음악연구회 멤버들의 머릿속 국어국문과 국어교육은 이미 거기서 거기, 도찐개찐, 오십보백보인 과가 되어버린 뒤였다.


“그래도 숙취라는 곡 주제는 미선이가 제일 잘 이해하고 있지 않나?”


기현의 회심의 일격이다.

그래! 곡 주제는 미선이가 제일 잘 이해하고 있을 테니까! 곡 주제 운운하면 아무 말도 못할 거야!


“···숙취? 웬 숙취?”


뭔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느냐는 얼굴이다.

기현은 미선을 보자마자, 무언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강하게 느꼈다.


“···숙취가 아니라고?”

“추억인데.”

"그러면 왜 이렇게 곡이 축축 처졌던...."

"나름 장조인데."


숙취가 아니라니.

기현은 운명을 절감했다.

반드시 작사를 해야만 하는 운명을···.


“하, 하, 하··· 하, 하···.”

“얘들아, 기현 오빠가 작사한댄다.”


기현은 미선에게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잠자코 있는 것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일임을 알았다.

기현에게 있는 일말의 남자의 본능적 감각이 맹렬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위험 신호를 보냈다.


여튼, 그래서 그렇게 된 일이었다.


“이놈의 자식은 왜 국어교육과여서···.”


머리를 쥐어뜯은 지, 오늘로 일주일째.

이건 다 원래의 장기현이 국어교육과 학생이라 벌어진 일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좋은 수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니야, 이상해.”


가사만 붙잡은 지 일주일이 되어가니, 정신도 이상해진 모양이다.

원래 곡에서 느꼈던 숙취에 대한 생각만 하니, 숙취 해갈에 좋은 국 같은 아주 머저리 같고 1차원적인 것만 떠올랐다. 그 이상으로 고차원적인 생각은 떠올리지 못했다.


‘아니야. 황태국, 콩나물국, 제법 괜찮지 않나? 생활밀착형 가사···.’


기현은 의식의 흐름대로 가사를 적어나가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어디서 좋은 가사 안 떨어지나.”


이제는 하늘에서 가사가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까지 다다랐다.

기현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하릴없이 다이어리를 뒤적거렸다.


파라락, 파락-


그러다 기현의 시선을 잡아끈 무엇.


‘그러고 보니 다이어리 앞쪽은 모두 시였지.’


시 한 편이었다.


80년대의 장기현이 쓴 시들이 기현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마치 필연적으로 80년대 장기현이 이쪽을 봐달라는 듯이, 자기를 알아봐 달라는 듯이, 아우성을 치는 듯했다.


“장기현, 내가 아니었으면 시인이 되었을 텐데.”


80년대 장기현의 꿈은 시인.

그는 간절하게 시인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문예창작과나 국어국문학과 대신 국어교육과에 진학했다.

사실 그건 내막을 듣지 않아도 익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아버지가 국어교육과 가라고 시켰겠지. 깡 하나 없는 장기현은 대들어보지도 못하고 국어교육과 갔을 테고.’


기현은 씁쓸해졌다. 그는 그럼에도 시인의 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게 어그러졌다.

자신이 개입한 이후로부터, 80년 장기현의 꿈은 모두 어그러졌다.


“얘 인생도 기구하네. ···따지고 보면 다 나 때문이지만.”


시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무수한 어제 그중 아린 하나에 하늘이 시리게 젖는다···.”


기현은 그가 남긴 시를 중얼거렸다.

시를 계속 입으로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장기현이 고심해 집어넣은 시구의 운율과 리듬을 따라 시를 읊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한 가지.


‘같은 뿌리라 그런지, 꼭 노래 같네.’


시와 노래 가사는 그 출발선이 같다.

밥 딜런은 자신이 작사한 가사로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고대 음유시인은 시를 노래했다.


‘이걸 멜로디에 붙여 봐도···.’


내친김에 흥얼거렸다.

노래의 분위기와도 제법 잘 어우러진다.

시의 화자가 과거를 곱씹는다는 점에서도.

그러니 이 시를 가사로 삼아도 좋을 터.


밥 딜런이 노래했던 가사처럼, 나도 그의 시를 노래하자.

몸에 강제로 얹혀살게 된 대가라고 생각했다.

비록, 내가 시인이라는 꿈을 대신 이뤄줄 수는 없지만.


“괜찮은데?”


기현이 바라던 대로 정말로 가사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작가의말

오늘의 곡

Earth, wind & fire- september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9.14 13:26
    No. 1

    잘 보고 있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아사아
    작성일
    23.09.17 02:24
    No. 2

    집에선 누나한테 잡혀살고 써클에선 미선인가 하는 무능력녀에 잡혀살고.. 호구냐

    찬성: 1 | 반대: 7

  • 작성자
    Lv.99 온조동
    작성일
    23.09.17 13:45
    No. 3

    작사 실력도 업 되기를....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30 gi*****
    작성일
    23.09.19 14:15
    No. 4

    september는 오늘 분위기보다 너무 신나지 않나요? ㅎㅎ
    한가지 적어드리면 용어로서는 신디사이저가 아니라 신서사이저가 맞습니다. synthesize (합성하다) 라는 단어에서 온 거라서요. 다만 고증은 신디사이저가 맞습니다. ㅎㅎ 그때는 한국인들이 영어를 어려워할 때라 th발음을 잘 못 할 때라서 '신디' 라고 불렀습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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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성북동 공주님, 강미선 +3 23.09.02 4,098 121 11쪽
» 국어교육과 장기현, 꿈은 시인 +4 23.09.01 4,124 114 10쪽
7 우리 음반 하나 냅시다 +7 23.08.31 4,183 109 10쪽
6 이게 이 곡이라고? +10 23.08.30 4,245 117 11쪽
5 선언 +7 23.08.29 4,264 123 11쪽
4 저 사람 괴물 아녜요? +7 23.08.28 4,425 113 10쪽
3 대중음악연구회 +11 23.08.28 4,574 121 9쪽
2 80년, 동명이인 장기현 +10 23.08.27 4,858 121 11쪽
1 1980년에 떨어졌다 +11 23.08.26 5,988 13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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